구름공작 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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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78화
제2장 흙의 정령사 아레스 (1)
“좋구나!”
갈색 피부를 가진 아주 작은 소년을 어깨에 태운 채 걸음을 옮기던 적발의 사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거대한 산맥을 오르면서도 이리저리 살펴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자신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깜짝 놀란 것인지 어깨에 앉아있는 소년이 몸을 흠칫 떨자 적발의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그렸다.
“미안미안. 하지만 밖에 나오니까 좋지?”
-응.
갈색 피부의 작은 소년, 흙의 정령 노엔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 이레스는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와 동생과 타협한 끝에 헨바인 가문으로 직접 떠나게 된 이레스는 흑발이 적은 테라인 왕국에서 흑발을 가진 사내가 나타나면 의심할 수도 있다는 조언에 바로 적색으로 염색을 했다.
흙의 정령사 아레스.
헨바인 영지에서 증거를 찾기 위해 떠나는 이레스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그레이즈 가문의 영역이었기에 머리카락의 색을 바꾸더라도 자신을 알아볼 수가 있어 혼자 걸음을 옮겼지만 이레스는 가문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순간 노엔을 소환해 함께 움직였다.
실피아가 바람의 힘을 통해 하늘을 날게 해주었다면 노엔은 땅의 힘을 통해 지형을 바꾸었다.
“으으음. 좀 쉴까?”
너무나 따스한 햇볕 때문에 크게 기지개를 켠 이레스가 고개를 돌리며 질문을 던지자 그의 옆으로 작은 지진이 일어나더니 흙으로 만들어진 의자가 나타났다.
쿠구궁.
질문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가 나타나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그린 이레스가 노엔의 머리를 작게 쓰다듬었다.
“아이구. 우리 귀여운 노엔.”
-헤헤.
머리를 쓰다듬는 이레스의 애정표현이 좋았는지 해맑게 미소를 그린 노엔을 향해 싱긋 웃어준 이레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가방에서 지도를 꺼냈다.
그레이즈 영지를 한번 확인하고 헨바인 영지를 한번 확인하고 현재 자신이 위치한 산맥을 확인하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하아. 멀기는 무진장 멀구나.”
그레이즈 가문에서 도망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헨바인 가문은 자리를 잡을 때 그레이즈 가문과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말을 타고 움직여도 수십 개의 산맥을 넘어야 했으니 일주일이나 걸렸고, 처음부터 걸어서 움직인다면 보름이라는 시간이 걸릴 정도로 먼 거리였다.
이제 겨우 이틀이 지났지만 산맥만 타기 시작하면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실피아의 도움을 통해 하늘을 날아다니다 보니 없는 길도 만들어서 움직이는 것처럼 벌써 그레이즈 영지와 헨바인 영지의 중간에 자리한 산맥에 도착한 상태였다.
“심심하기도 하고.”
-……심심?
어깨에 앉은 채로 주위를 둘러보던 노엔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이레스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너무 조용한 것을 심심하다고 하는 거야.”
-……너무 조용한 거.
마치 외우려는 듯이 자신의 대답을 작게 중얼거리는 노엔의 머리를 또 한 번 쓰다듬은 이레스가 지도를 가방에 넣은 뒤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홀로 떠 있는 태양이 마치 자신의 상황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쩝. 사람이라도 보고 싶구만.”
평범한 귀족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레스는 마을이 나타나도 그냥 지나쳐 산에 오르고 실피아의 도움을 통해 빠르게 움직였으며 잠을 청할 때는 노엔과 함께 흙으로 된 작은 집을 만들어 잤다. 그러다 보니 아레스라는 이름으로 움직였을 때 그가 만난 사람은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물론 아레스라는 인물 자체가 거짓이었기에 알고 있는 사람이 적는 것이 좋기는 하였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한 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이레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이 올라가야 하는 산맥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한 지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산맥 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렇게 많은 사람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는데.”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에 가까운 인기척이 느껴졌다.
“전쟁이라도 났나?”
고개를 갸웃하며 노엔과 함께 계속해서 산맥 위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들의 시야로 사람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빨리! 빨리!”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듯이 바퀴가 끌리는 소리와 사내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고 말 위에 탄 채로 등 뒤로 화살을 쏘는 사내와 마차를 호위하고 있는 수십의 용병과 병사. 그리고 그들의 뒤를 쫓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열심히 등 뒤로 활시위를 당기던 사내가 고개를 돌려 다시 말을 이끌다가 이레스를 발견하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산적이 나타났으니 어서 도망치시오!”
“……?”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레스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그리고 말았다.
평범한 용병이었다면 자신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 본 적도 없는 사람을 돌볼 여유가 없었을 터인데 자신을 걱정하듯 소리를 지르자 자연스럽게 미소가 그려진 것이었다.
이레스가 고개를 돌려 노엔을 바라보았다.
“노엔, 도와주자.”
-……응.
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나자 뭐가 그리 창피한지 이레스의 머리카락 속으로 숨었던 노엔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레스는 의자에 앉은 채로 목을 좌우로 까닥이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그닥! 다그닥!
드르르륵.
말발굽 소리와 마차를 지탱하는 네 개의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며 산적에게 쫓기는 사람들이 이레스의 옆을 지나쳐가는 순간 말 위에 오른 사내가 고개를 돌리며 다시 소리쳤다.
“빨리 도망…….”
쿠구궁!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레스의 앞으로 거대한 흙벽이 솟아나 달려오는 산적들의 걸음을 강제로 멈추게 했다.
쿵! 쿵!
물론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산적들이 급하게 걸음을 멈추다보니 뒤에서 달려오던 사람들이 앞의 상황을 몰라 뒤늦게 멈춰 서 떠밀리듯 흙벽에 부딪친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
“…….”
땅 밑에서 갑자기 솟아난 흙벽을 보고 산적들이 당황하며 걸음을 멈추는 순간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던 산적들도 입을 다물었고 도망치던 용병들의 외침도 사그라졌다.
정적이 찾아온 공간에서 혼자 고개를 갸웃하며 흙벽을 바라보던 이레스가 노엔에게 다시 한 번 부탁을 하는 순간 거대한 흙벽에서 사람의 얼굴 하나가 나타날 정도의 구멍이 만들어졌다.
이레스가 구멍을 통해 보이는 당황한 산적들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
산적들은 당연히 인사에 반응하는 대신 구멍을 통해 보이는 이레스의 얼굴만 보았고 그는 그런 산적들을 향해 싱긋 미소를 그렸다.
쿠구궁!
거대한 소음과 함께 그들의 뒤를 제외하고는 산적들의 사방에 흙가시가 솟아났다.
지금의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 흙벽을 바라보던 산적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흙가시로 옮겨졌고 다시 이레스에게 돌아갔다.
“…….”
이레스는 그런 산적들을 향해 입가에 그린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뒈지기 싫으시죠?”
“저, 정령사.”
* * *
순식간에 거대한 흙벽을 만들어 길을 없애버리고 자신들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운 흙가시를 만들어 주변을 포위하는 이레스의 모습에 산적들은 등 뒤에 흙가시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바로 도망을 쳤다.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마법사보다 더 희귀하다는 자연을 다루는 정령사가 자신의 앞에 있었으니 마법사도 없고 익스퍼드 경지에 오른 무인도 없던 산적들이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흐음.”
산적들이 도망간 지 시간이 좀 흘렀지만 이레스는 여전히 턱을 쓰다듬으며 자신이 만든 거대한 흙벽과 흙가시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흙을 조종해서 사용하는 것이 상대를 당황시키고 빠른 공격이 가능했기에 효과적이기는 했는데 빠르게 생성하여 사용하는 것만큼 빠른 속도로 정령력이 소모되었다.
이레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정령력을 흡수한 대지를 바라보았다.
“예쁘기는 한데 쓸데가 없으니.”
흙의 정령력을 머금게 된 대지는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예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없었으니 그냥 예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뿐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생기지도 않았다.
훈련을 할 때에도 그랬지만 흙의 정령력을 머금은 대지는 갈색 빛을 머금지만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그라지기 때문이다.
다시 고개를 돌려 흙벽을 바라보았다.
“얇게 만드는 게 좋으려나?”
문제는 흙벽과 흙가시를 얇게 만들어 사용하더라도 정령력의 소모는 줄어들겠지만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정령력의 소모량은 똑같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힘이 들 것이 분명했다.
헬버튼과의 대련.
그때에도 순식간에 흙가시와 흙벽, 흙주먹을 만들어 공격을 했었지만 소비가 너무 빠르다보니 자신과 비슷한 실력의 상대나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정령력의 소모는 아주 불리하게 작용될 수가 있었다.
-……미리 만들면?
“오.”
생각보다 아주 단순했었다.
그냥 미리 땅에다가 만들어놓고 올려보내는 힘만 사용한다면 정령력이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일을 최소화할 수가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작게 감탄을 한 이레스가 노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똑똑해.”
-……똑똑해?
“응. 어쩌면 누나보다 똑똑한 거 같은데?”
-실피아 누나?
“그렇지.”
생각을 해보니 소환만 되면 놀러 다니는 게 전부였던 실피아였다.
“……걔는 노는 것만 좋아하니까.”
물론 실피아를 소환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노엔이 칭찬을 듣고 미소를 그리고 있을 때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인물이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혹시 정령사이십니까?”
“드, 드디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린 이레스가 몸을 돌리며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에 앉아있는 노엔을 바치듯이 가져다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의 나라, 페이언 왕국에서 용병으로 생활한 지 5년이 흘러 여행을 할 겸 대륙으로 건너온 흙의 정령사 아레스라고 합니다. 물론 정령과 계약을 한 것은 페이언 왕국에서 용병일을 하기 전이며 현재 등급은 B등급입니다.”
“…….”
묻지도 않았는데 필요 없는 것까지 설명하는 이레스의 모습에 잠시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사내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반응해주더니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죄송하지만 어디까지 가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여행 중입니다! 하하하!”
“그, 그렇습니까?”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에 즐거운 이레스였지만 그런 그의 상황을 모르는 사내는 천천히 말 위에서 내려와 자신을 소개했다.
“테라인 왕국의 자유기사 아이반이라고 합니다.”
“아. 자유기사이시군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테라인 왕국에도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기사라는 신분을 통해 자유롭게 여행을 하는 자유기사라는 제도가 존재했다.
정식으로 등록된 가문에서 기사의 직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전장에서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기사들이 제자를 받는 등, 실력은 뛰어나지만 신분이 애매모호한 자들이 무술대회에서 우승을 할 경우 수여되는 직위, 그것이 자유기사였다.
자신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아이반을 바라본 이레스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