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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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77화
제1장 새로운 미래 (2)
저벅저벅.
그레이즈 영지에서 가주의 허락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지하연무장으로 향하던 이레스는 자신도 모르게 어이없는 미소를 그리며 계단 끝에 굳건히 닫혀 있는 문을 바라보고 말았다.
“이게 무슨.”
제자인 데인이 이레스와 함께 떠나는 날, 헬버튼은 바로 공작에게 달려가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 말한 뒤에 몬스터의 숲으로 들어갔다.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자신이 배운 것을 다시 한 번 하나하나 기억하고 함께 수련을 하다 보니 작은 깨달음을 얻었고 그 깨달음을 정리하기 위해 몬스터의 숲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헬버튼이 데인을 가르치면서 얻은 작은 깨달음은 그저 자신의 검술에 대한 정리본과도 같은 깨달음에 불과했기에 지하연무장이 아닌 몬스터의 숲을 선택한 것이고 숲에 들어선 그는 바로 오크의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인간보다 수배는 뛰어난 신체와 수십 배는 뛰어난 무력을 자랑하는 이종족인 오크들과 대련을 통해 자신의 깨달음을 정리하려 했던 것이었고 ,태생이 전투의 종족이었던 오크들은 그런 헬버튼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렇게 닷새.
닷새였다.
헬버튼은 닷새 동안 오크의 마을에서 생활을 하며 그들과 대련을 했고 케르취가 다른 몬스터들을 공격하고 그들의 대장과 싸우면서 최초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원초적인 전투를 보게 되었다.
오크의 마을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케르취는 자신의 행동에서 공격과 회피, 방어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생각과 본능적인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유일하게 다른 몬스터들의 대장들과 싸울 때는 방어와 회피를 버리고 공격만 하여 쓰러트리고 상처를 입었다.
헬버튼은 그 모습을 보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피할 수 있는 공격임에도 공격을 허용하고 싸우는 그 모습이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피할 수 있는 공격임에도 맞으면서 싸우느냐고 물었고 케르취가 그 질문에 대답을 하였을 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취익! 나는 오크들을 다스리는 족장이다! 취익! 아무리 다른 몬스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고 해도 취익! 적의 대장은 나처럼 누군가를 다스리기에 죽자 살자 덤비고 취익! 내 뒤에는 나를 따르는 이들의 운명을 쥐고 싸운다! 취익! 그렇기에 피하지 않는 것이다! 피하는 것 자체가 나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취익! 내가 아주 위험한 상황이 되면 식구들이 두려워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취익!’
대답을 들었지만 회피와 방어를 포기한 채 공격을 하는 이유가 너무 애매모호했다. 그래서 헬버튼은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거랑 피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가? 오히려 적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만큼 피한다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더욱더 강한 무력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는가?’
케르취는 헬버튼을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취익! 나는 인간들의 싸움방법을 모른다! 주군이신 이레스 님이 싸우는 방법을 보았지만 그 방법을 따라하고 싶지는 않다. 취익!’
‘……따라하고 싶지 않았다?’
‘취익! 나는 오크다! 오크는 오크만의 싸움방법이 있다. 취익! 한 부족을 다스리는 족장과 싸우게 되면 공격과 방어, 회피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취익! 그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순수하게 싸우는 것, 그것이 오크의 싸움방법이다. 취익!’
‘…….’
헬버튼이 다시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흥분을 한 것인지 케르취가 더욱더 큰 소리로 대답했다.
‘피하고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취익! 오크만의 싸움방식으로 적들을 쓰러트릴 수 있다! 취익! 아무리 다치고 부러지고 베이더라도 이긴다! 취익! 그러면 식구들은 나를 더 믿을 것이고 자신의 싸움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취익! 같은 방식이라도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으니 오크만의 방식으로 싸우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취익!’
이레스는 그레이즈 공작의 설명을 통해 들은 헬버튼과 케르취의 대화를 떠올리고는 피식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이거 완전 거물을 얻었구만.”
그저 다른 오크들보다 강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한 케르취가 헬버튼의 스승이 되어버릴 정도로 엄청난 깨달음을 전해주었다.
자신도 마스터 경지에 오른 적이 없어 몰랐지만 검사이기에 대충이나마 케르취의 설명에서 한 가단의 단서를 얻을 수가 있었다.
한마디로 케르취가 방어와 회피를 버리고 싸우는 이유는 오크만의 싸움방식, 즉 자신의 싸움방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자신만의 싸움방식을 믿어라.
자신만의 싸움방식을 믿고 적들을 상대할 때는 자신의 싸움방식을 통해 쓰러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라.
그것이었다.
오크에게 오크만의 전투방식이 있듯이 사람마다 각기 다른 전투방식이 존재할 것이 분명했다.
누구는 공격에 더욱더 치중되어 있으며 누구는 방어에, 누구는 회피에 치중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은 모두 다른 성격, 다른 신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같은 검술을 사용하지만 그레이즈 공작은 공격, 이레스는 방어, 알레인은 회피에 치중되어 있는 것이 그 예라고 볼 수 있었다.
끼익.
문 앞에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문고리를 돌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이레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연무장 정중앙에 서 있는 채로 연속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헬버튼이었다.
쉬이익!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단서가 잡힐 듯 말 듯한 자신의 상황을 알려주듯이 강한 검풍과 아주 약한 검풍이 번갈아 몰아쳤고 검신에는 작은 빛이 머물다 사라졌다.
“자신만의 방식, 자신만의 방식.”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지만 사방이 막혀 있다 보니 이레스의 귀에도 들어오는 음성이었다.
쉬익!
쉬익!
그저 가로, 세로, 대각선, 찌르기 총 네 개의 방식으로 공격을 번갈아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검신에는 계속해서 작은 빛이 머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아무리 집중을 하고 있다고 해도 한 곳을 바라보며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었던 헬버튼이 이레스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검을 집어넣으려할 때였다.
“자신만의 방식.”
이레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헬버튼이 자신의 행동을 중간에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예?”
“대련이나 한번 할까요?”
“도련님?”
헬버튼이 잘못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을 때 이레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의 맞은편에 서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실피아.”
쉬이익!
작은 바람이 그의 앞에 머무르더니 바람의 정령 실피아가 나타나 헬버튼을 향해 손을 흔들더니 이레스의 어깨 위로 날아갔다.
“노엔.”
쿠구궁.
지하 연무장으로 작은 지진이 일어나더니 흙의 정령 노엔이 나타나 이레스의 옆에 서서 그의 바지춤을 잡았다.
두 정령을 번갈아 바라보던 이레스가 헬버튼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그렸다.
“할아버지.”
“예. 도련님.”
“자신만의 방식의 싸움을 보고 싶으십니까?”
“……음!”
순간 기억이 났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그레이즈 가문에서 최초로 나타난 정령 검사이자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두 속성의 정령과 계약한 사내였다.
한마디로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싸우는 사내였다.
이레스가 헬버튼의 작은 감탄사에 작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속성을 다루는 정령검사는 그만의 전투방식이 있죠.”
* * *
“……저 가주님?”
쾅! 쾅! 쾅!
콰아앙!
쿠우웅!
사방이 막혀 있어 거대한 폭발음이 일어나면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장소임에도 자신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렸는지 그레이즈 공작이 고개를 돌리자 데미안은 양손에 들고 있는 구슬을 가만히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왜 이것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작업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데미안은 그레이즈 공작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받았다. 공작은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저장을 할 수 있는 촬영용 아티팩트가 있냐고 물었고 그 질문에 있다고 대답하는 순간 데미안은 영주와 함께 지하연무장으로 향하고 말았다.
그레이즈 공작이 계속해서 현재의 모습을 저장하고 있는 듯이 반짝이고 있는 구슬을 바라보다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쉐에엑!
쿠구궁!
바람으로 만들어진 수십 발의 화살이 쏘아지는 것과 동시에 헬버튼의 등 뒤와 양옆으로 흙으로 만들어진 벽이 생성되어 그가 공격을 피할 장소를 점거해버렸다.
“흐으읍!”
쉬이익!
정면을 제외한 사방을 가로막고 있는 흙벽을 부수고 도망치기에는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헬버튼이 강한 기합과 함께 검을 강하게 내리치는 순간 그의 앞으로 오러로 만들어진 막이 생성되어 바람의 화살을 막아냈다.
쉬이익!
콰아앙!
거대한 폭발음이 다시 한 번 사방을 울리기 시작했고 헬버튼은 흙먼지로 이루어진 안개가 생성되자마자 바로 땅을 박차며 이레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왜 사람들이 마스터 경지에 오르기 힘든 줄 아느냐?”
“……예?”
거대한 굉음 때문인지 자신의 물음을 제대로 듣지 못한 데미안이 반문을 하자 그레이즈 공작은 대답 대신 작은 미소를 그리며 이레스와 헬버튼의 대련을 바라보았다.
오러나이트로서 마스터 경지를 앞둔 헬버튼과 두 속성의 정령과 함께 싸우는 정령검사의 대결은 이미 마스터 경지에 올라 있는 자신이 보아도 공부가 될 정도로 치열하고 화려한 대련이었다.
자신만의 전투방식.
오러나이트 경지와 마스터 경지의 경계선에 자리한 무인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백 명이라고 하면 한두 명만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마스터 경지에 오르는 것은 아주 힘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만의 전투방식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자신이 배운 검법과 평생을 같이 했기에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아주 약간이지만 공격에 치중되고, 방어에 치중되어도 그것은 성격과 신체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이기에 실질적인 자신의 전투방식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 배운 검법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맞는 검법을 찾는 것.
그것이 마스터 경지에 오르는 단서였다. 하지만 오러나이트 경지에 오르기까지 자신의 검법을 믿고 그 검법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무인들로서는 그 단서를 찾아내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그레이즈 공작은 데미안을 불렀다.
이 대련을 모두 저장하고 나중에라도 오러나이트 경지에서 실력이 멈춰버린 무인들에게 보여주어 자신만의 전투방식을 찾기 위한 힌트를 주기 위해서 말이다.
아무리 이야기를 하고 머리로 이해를 하더라도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입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 더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쾅! 쾅!
또 한 번 연속적으로 울려대는 거대한 폭발음에 다시 한 번 미소를 그리던 그레이즈 공작이 순간적으로 눈을 반짝이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주 희미했지만 헬버튼의 몸에서 작은 순백의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레스의 몸에서 갈색이 빛나고 있었다.
“역시 단서를 눈앞에 두어서라고 생각은 되지만…….”
순백의 빛이 온몸을 감싸는 것이 깨달음의 벽이 깨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마스터는 그 깨달음의 벽을 부수고 깨달음을 제대로 갈무리하는 순간 오르는 경지였으니 지금 벽을 깼다고 대련을 멈추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거기다 지금 자신의 앞에서 경지에 오르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사람은 헬버튼뿐만이 아니었다.
“갈색이라…….”
처음 보는 색깔의 오러가 이레스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마나의 기운이라기보다는 노엔을 집중하며 바라보았을 때 느끼던 기운이었다.
두 사람이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상대에게 일어나는 모습에 작은 미소를 그리며 땅에 착지하는 순간 다시 한 번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쉬이익!
거대한 오러가 헬버튼의 검신을 감쌌고 이레스의 몸을 감싸고 있던 갈색이 그의 옆에서 함께 대련을 하고 있던 노엔의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순백의 오러로 둘러싸인 두 자루의 검이 서로를 향해 부딪치는 순간 작은 지진이 일어나더니 수십 개의 흙가시가 나타났고 수십 개의 바람의 화살이 쏘아지고 헬버튼의 주변으로 거대한 원형막이 생성되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기파가 사방으로 퍼졌고 그레이즈 공작이 손을 들어 오러막을 생성하며 미소를 그렸다.
콰지직.
투두둑.
그레이즈 공작의 뒤쪽을 제외하고 거대한 기파가 폭발하면서 생긴 충격파가 천장이 무너질 듯 흔들리며 파편이 떨어트리고 벽면에 금이 갈 정도로 강대했기에 나중에 한번 연무장을 수리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손에 넣었기 때문에 그레이즈 공작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