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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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09화
제4장 왕의 목소리 (2)
카인은 헨바인 영지에 도착하고 그다음 날 아실리와 함께 헨바인 영지를 떠났다.
“왕의 목소리라…….”
두 엘프를 배웅해주기 위해 헨바인 영지 성문 앞까지 나왔던 이레스는 두 엘프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왼손에 채워진 팔찌를 바라보았다.
왕의 목소리.
정령왕의 힘이 담겨 있어 모든 정령들과 계약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정령계에서 떨어진 물건이자 ‘정령과 친하다면’이라는 이상하고 애매모호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다른 정령과 계약할 수 있는 물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영주성으로 돌아가는 이레스는 계속해서 왕의 목소리를 바라보며 친하다는 것의 기준을 생각했지만 영주의 집무실, 그레이즈 공작의 앞에 서서 그의 명령을 들었을 때 모든 고민이 사라지고 말았다.
“……예?”
“왕성 좀 다녀와라.”
왕성.
그레이즈 공작이 말하는 왕성은 하나밖에 없었다.
테라인 성도 중심에 자리 잡은 왕실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테라인 왕국의 대표가 살고 있는 장소, 테라인 왕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왜요?”
“버리게.”
버린다.
지금까지 가져야 할지, 버려야 할지 고민을 하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그레이즈 공작이 말하는 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계속해서 고민을 하던 그레이즈 공작은 가문과 영지와의 거리가 너무 멀어 헨바인 영지를 왕실에 넘기려는 것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는 듯이 그레이즈 공작을 바라보던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려 하자 그가 먼저 하나의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전하께 보여 드려라.”
“……전하를 뵈라고요?”
“헨바인 영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문제지만 인신매매 피해자들에 대한 정보도 들어 있다.”
테라인 왕국 내에서 일어난 최악의 범죄 사건이다.
당연히 다른 나라에서 트집을 잡고 압박을 할 수도 있으니 인신매매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좋았다.
이레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레이즈 공작은 그런 자신의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케르취랑 벅튼만.”
“…….”
호위를 뜻하는 것은 대충 이해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한 이름이 있었다.
“케르취요?”
벅튼은 데려간다는 것에 이해를 할 수 있었지만 케르취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레이즈 공작이 이레스의 되물음에 귀찮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어차피 그쪽 일도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
이미 흙의 정령사로 위장을 하여 헨바인 영지를 찾았을 때 이레스가 소문을 퍼트렸고 헨바인 백작과의 영지전을 통해 그레이즈 가문이 오크와 동맹을 맺었다는 것을 모르는 가문은 없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보고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피할 수도 있고 공격할 수도 있는데요?”
오크를 보고 깜짝 놀라 피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만약 이레스와 벅튼이 없는 사이 케르취를 발견한 병사나 오크가 공격을 한다면 문제가 생겨버린다.
아무리 소문이 퍼졌다고 해도 아직 오크는 사람들에게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그레이즈 공작이 이레스의 반문에 오히려 피식 실소를 흘렸다.
“그래서 네가 가만히 있을 위인이냐?”
“때려죽이겠죠. 제 수하를 건드렸는데.”
“…….”
그래도 고민을 조금이라도 할 줄 알았던 그레이즈 공작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아들의 모습에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하를 뵙고 헨바인 영지 처리, 인신매매 피해자, 그리고 오크들과 연맹하게 된 이유를 알려주고 딴 데로 새지 말고 가문으로 돌…….”
“이왕 가는 거 아카데미 좀 들렀다 오겠습니다.”
그레이즈 공작의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또 왜?”
“쓸 만한 애들이 있나 찾아보려고요.”
“…….”
순간적으로 혹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이레스가 데리고 왔던 세 사람인 데인, 데미안, 클라리아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레스가 그레이즈 공작의 눈을 보고는 손을 저었다.
“그렇게 쓸 만한 애들이 있을지는 알 수가 없고요. 그냥 몇 명 좀 찾아오겠습니다.”
“알았…….”
대답을 하려 했던 그레이즈 공작이 입을 다물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었다 폈다 반복한 뒤에 물었다.
“졸업하려면 멀었는데?”
날짜를 세어보니 대충 졸업생들이 졸업하기까지 3, 4개월 정도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레스도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퇴시켜야죠.”
“…….”
“공부보다는 실전이 최곱니다.”
* * *
그레이즈 공작의 명령을 받고 이레스 일행이 왕성으로 향하기 시작한 지 이틀이 지났을 때 테라인 왕국에는 또 한 번 기이한 소문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늑대를 탄 오크와 인간이 성도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헨바인 영지에서의 전투는 단 두 가지의 소문으로 분류되어 퍼졌다고 볼 수 있었다.
하나가 오크들이 그레이즈 가문의 군대가 되어 전투를 벌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가 두 속성의 정령과 계약했다는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이레스와 오크들이 기마(騎馬) 대신 검은 늑대, 다크 울프를 타고 움직인다는 것은 퍼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물론 이레스도 처음에는 그런 소문이 떠돌아다닌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무리 그레이즈 가문이 오크의 군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소문으로 퍼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었기에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 오크는 몬스터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을에 들르지 않고 움직였기 때문이다.
마을에 들르더라도 벅튼 혼자 들어가서 식량을 구입하고 나오는 것이 전부였고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 테라인 성도에 가까워졌을 때 그들은 왕국에 떠돌고 있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거 나와 케르취를 말하는 거지?”
“취익?”
고개를 갸웃하는 이레스와 그저 작게 울음을 토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케르취를 번갈아 바라보던 벅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
천천히 고개를 돌린 이레스가 자신이 타고 있는 다크 울프와 케르취가 타고 있는 다크 울프를 번갈아 바라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도 처음에는 평범한 기마를 타고 움직이려고 했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기마들이 오크에게 공포를 느껴 발광을 하니 어쩔 수 없이 다크 울프를 타고 움직인 것이었다.
이레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벅튼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될까?”
“아마 발견되는 순간 싸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싸워?”
벅튼이 힐끔 케르취를 바라보고는 대답했다.
“그레이즈 가문에서 오크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해도 아직 오크는 사람들에게 몬스터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오크를 발견하면 토벌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런 오크가 똑같이 늑대를 타고 움직이는 인간과 함께 있으면…….”
“아주 나쁜 쪽으로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오크와 함께 움직이는 것도 모자라 붉은색 눈동자를 제외하면 온몸이 검은색으로 물들어있는 늑대를 타고 움직이니 사람들이 발견하면 분명 아주 나쁜 쪽, 흑마법사 같은 손을 대지 말아야 할 곳에 손을 댄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컸다.
이레스가 빤히 케르취와 다크 울프를 바라보다 벅튼을 바라보았다.
“먼저 가서 알려.”
“……괜찮겠습니까?”
무엇이 괜찮으냐고 묻는 것인지 몰랐던 이레스가 고개를 갸웃하다 물었다.
“뭐가?”
“그게……, 아닙니다.”
무언가 콕 꼬집을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따로 움직이면 무언가 안 좋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없었던 벅튼은 고개를 젓더니 먼저 테라인 성도를 향해 말을 박차며 달려 나갔다.
빠르게 달려가는 벅튼과는 달리 천천히 다크 울프를 이끌며 걸음을 옮기던 이레스가 케르취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며칠 뒤에 좀 높은 사람을 만날 거야.”
“취익! 높은 사람이 누굽니까? 취익!”
“음…….”
오크를 기준으로 하면 국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잠시 이마를 긁적이던 이레스가 불확실하다는 듯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울 아버지의 주군?”
“취……익?”
케르취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에게 주군은 이레스고 작은 주군은 알레인이었으며 큰 주군은 그레이즈 공작이었다. 그런데 큰 주군에게 또 주군이 있다고 하니 머릿속으로 약간 혼동이 왔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케르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큰큰 주군입니까?”
“…….”
이레스도 케르취가 자신의 아버지를 큰 주군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테라인 국왕을 큰큰 주군이라 부르는 것에 웃음을 터트리는 대신 똑같이 고민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취익! 알겠습니다.”
“그리고 가면 함부로 싸우면 안 된다.”
“취익! 알겠습니다.”
이레스가 즉각즉각 대답하는 케르취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그리다 고개를 떨어트려 자신과 케르취를 태우고 있는 두 다크 울프의 머리를 때렸다.
퍽! 퍽!
크르릉.
자신을 태운 다크 울프는 그저 불렀냐 하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돌아보았는데 케르취를 태운 다크 울프는 울음을 터트리며 노려보았다.
“이게 미쳤나.”
이레스가 주먹에 마나를 씌우고 다시 휘둘렀다.
퍼억!
깨갱!
머리가 땅에 부딪친 다크 울프가 작게 울음을 토하며 눈을 내리깔자 이레스가 자신을 태운 다크 울프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무거나 먹으면 탈나니까, 주는 것만 먹고.”
지나가는 말이나 사람을 잡아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크 울프는 정말 알아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고 이레스는 다크 울프의 머리를 작게 쓰다듬은 뒤에 다시 천천히 성도로 향했다.
“아. 깜빡한 게 있다.”
“취익! 어떤 것입니까?”
“아마 레이온이라는 사람을 만날 거야.”
한 나라의 차기 국왕인 레이온 왕자가 이레스의 입에서 나오니 그냥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케르취가 고개를 돌려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그냥 도련님이라 부르면 돼.”
“취익! 도련님…….”
“응, 도련님.”
고개를 끄덕여 확답을 준 이레스가 계속해서 걸어가 산맥을 오를 때였다.
채재쟁!
산 위쪽에서 검명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