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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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08화
제4장 왕의 목소리 (1)
왕의 목소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마자 근처 벤치에 자리한 카인은 물끄러미 세 정령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왕의 목소리는 정령왕의 힘이 담긴 물건입니다.”
“……뭐,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정령의 물건.
이미 실피아 덕분에 왕의 목소리는 정령왕들이 만든 물건이자 정령계에서 잃어버렸다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카인으로 인해 엘프들이 수호해야 하는 물건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왕의 목소리.
처음 왕의 목소리를 발견했을 때 실피아의 설명을 들었기에 대충이나마 어떻게 제작되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레스는 되물었다.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그저 다른 속성의 정령과 계약할 수 있다는 것뿐, 다른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작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지만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왕의 목소리는 고대 아티팩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물건이 아니라 중간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떨어진 물건이라는 점이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카인이 힐끗 이레스를 바라보다 다시 세 정령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정령계에서 살고 있는 모든 정령들의 대표, 즉 정령왕은 어느 날 이상한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작은 팔찌였죠.”
“그러고 보니.”
정령계는 정신계이다.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으며 천계와 마계와는 다른 또 다른 세계가 정령계로 정신의 세계라고도 불리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 팔찌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었다.
“뭐, 옛날 인간들의 마법사가 했다고 생각합니다.”
마법사를 생각하니 이해가 가기도 했다.
실험이라는 명목 하에 마족들과 계약을 할 정도로 마법 연구에 미친 자들이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카인이 약간 말이 다른 길로 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고개를 갸웃하다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기하게 바라보던 정령왕들은 정령계에 처음으로 떨어진 물건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힘을 담아 보관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정령계에 나타난 물건이라고 자신들의 힘을 담아요?”
“인간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처음 보는 물건을 발견하면 자신의 것으로 우기기 위해 자신들의 징표를 남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카인의 부연 설명을 듣고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이레스였다.
“그렇게 정령왕들의 힘이 담긴 물건이 어느 날 어떠한 이유로 정령계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물건이 엘프들의 손에 들어왔고 신기하게 여긴 한 엘프 분은 그 물건을 착용했고 정령왕들 중에 가장 많은 힘을 부여했던 불, 물, 바람, 흙의 네 속성의 정령과 동시 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 계약.
네 가지 속성의 정령과 동시 계약을 했다.
이레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카인의 시선을 따라 세 정령들에게 돌아갔다.
“그렇다면 저도 땅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뿐만이 아니라 다른 정령들과도 계약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정령왕의 힘이 얼마나 강한 힘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거짓을 모르는 종족인 엘프가 직접 네 속성의 정령과 동시 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예.”
“대신 제약이 있겠죠?”
자신이 두 속성의 정령과 계약을 했지만 그 이후 정령들과 계약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제약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카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제약이라고 보기도 힘듭니다.”
“……그런가요?”
“정령과의 친화력에 따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정령력이요?”
“친화력이요.”
이레스가 천천히 고개를 갸웃하며 카인을 바라보았다.
정령 친화력은 정령의 기운으로 즉 바람의 기운, 땅의 기운 등의 기운을 뜻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엘프들에게 정령력과 정령 친화력은 인간과는 다른 뜻을 가진 언어인 것 같았다.
“인간의 말을 빌리면 얼마나 정령들과 친하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하다?”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레스는 미간을 좁히며 정령들을 바라보다 물었다.
“다른 능력도 있습니까?”
“있을 겁니다.”
“겁니다, 라는 것은.”
“모른다는 뜻입니다.”
“…….”
“…….”
잠시 말문이 막혀버린 이레스가 멍하니 카인을 바라보았고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왕의 목소리와 계약한 엘프 분은 처음 계약했던 그분을 제외하고 없습니다. 그저 그분께서 정령왕을 뵙고 자신들의 물건이라며 잘 지켜달라는 부탁으로 인해 그저 수호하는 물건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정령왕이 부탁해요?”
“다시 정령계로 돌려보내는 방법을 모르니 그냥 자신들의 힘이 담긴 물건을 지켜달라는 것이었죠. 그렇게 일백 년을 주기로 엘프들은 나누어서 수호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하필 지금은 몬스터의 숲이라 불리는 숲 속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모여들면서 그곳에서 살고 있던 엘프들이 공격을 받았고 엘프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을을 버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몬스터의 숲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잠시 몬스터의 숲을 떠올리던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십, 수백 종의 몬스터들이 살고 있는 숲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몬스터들과 토벌하였던 몬스터들의 숫자만 따진다면 작은 왕국의 총 군력과 맞먹을 정도의 숫자였다.
“마을을 버리고 피신을 하여야 했지만 왕의 목소리를 가지고 움직이기는 힘들었습니다.”
“왜요?”
처음으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왕의 목소리를 처음 발견하였을 때 그 물건은 작은 상자에 봉인된 물건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물건을 들고 도망치기 힘들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엘프는 자연의 종족이라고 불릴 만큼 자연과 가까이 살아가는 종족이며 왕의 목소리가 없어도 두 속성 이상의 정령들과 계약을 할 수 있는 종족이었다.
나무를 타고 움직이면서 화살을 쏘아도 백발백중이었으며 날렵한 몸놀림을 통해 숲 속에서는 엘프를 이길 수 있는 종족이 드물다고 할 정도였다.
카인이 씁쓸하다는 듯이 작은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수천수만 마리가 먹이를 노리듯이 쫓아왔다고 합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한 종족이 공격을 하면 다른 종족이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친 듯이 달려와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도망을 치던 엘프 분들은 점점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
“그래서 선택한 것이 봉인이었다고 합니다.”
부연 설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몇십 년, 몇백 년이 지났을 때 이레스가 왕의 목소리를 찾아내 계약을 했다. 하지만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다.
차라리 왕의 목소리와 계약을 하여 다른 속성의 정령들과 함께 싸우면 손쉽게 도망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궁금증이었다.
카인이 이레스의 눈에서 그 궁금증을 읽은 것처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켜 달라 부탁하였습니다.”
“예.”
“그것도 정령왕의 부탁이었기 때문에 엘프 분들은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봉인을 했습니다.”
“……무언가 씁쓸하네요.”
지켜 달라는 약속 때문에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계약을 하지 않고 오로지 봉인만 했다는 것이 약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인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단 한 번 계약자가 나타난 후에 왕의 목소리와 계약하신 분은 없으시며 그 이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알고 있는 것은 한 속성의 정령과 계약을 하더라도 정령들이 계약자를 좋아하게 되면 다른 속성의 정령과 무리 없이 계약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흐음.”
카인은 이레스가 고민하는 듯이 턱을 쓰다듬으며 정령들을 바라보고 있자 작은 미소를 띠며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혹시 이레스 님과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저와요?”
친해진다는 것이 어떤 걸 기준으로 하는지 생각에 잠기기도 전에 뜻밖의 부탁을 받자 이레스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 주머니에서 하나의 패를 꺼냈다.
그레이즈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신분패였다.
이레스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싶더니 신분패를 양손으로 잡고 구부러트렸다.
빠각.
신분패는 그대로 두 동강이 나버렸고 이레스는 그 두 동강이 난 신분패의 한 부분을 내밀며 실피아를 불렀다.
“실피아.”
쉬이이익!
노엔과 엔디아와 함께 놀고 있던 실피아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이레스의 앞에 멈춰 섰다.
-왜?
“벅튼에게 가서 통신 구슬 하나만 받아와 줄래?”
-통신 구슬?
이레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실피아가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사라지더니 몇 분 후에 작은 구슬을 하나 들고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실피아의 힘을 통해 공중에 떠 있는 통신 구슬을 집은 이레스가 바로 카인에게 내밀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방해하는 무언가가 없으면 통신이 불가능하지만 쉽게 저와 연락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을 뜻하는 것인지.”
“테라인 왕국 바깥?”
“그럼 방해한다는 것은?”
“디스펠 마법 같은 거요.”
마법 또는 마나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마법이 디스펠 마법이었다.
카인이 잠시 생각을 하는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레스가 이번에는 조각난 신분패를 들었다.
“카인 님에게 드린 그 신분패를 가지고 그레이즈 가문에서 운영하는 상단, 또는 기사단, 또는 그레이즈 가문과 연관된 귀족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보여주면 연락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신분패는 하나였지만 이레스는 차기 가주로서 교육을 받으며 하나의 신분패를 더 받았다. 그 하나가 그레이즈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신분패이고 다른 하나가 그레이즈 가문의 가주라는 것을 증명하는 신분패였다. 그래서 신분패를 당연하다는 듯이 구부러트릴 수가 있었다.
카인이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레스에게 말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부탁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레스는 그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큰 문제가 아니면 도와 드려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