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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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07화
제3장 재회 (2)
헨바인 백작이 인신매매를 하였으며 그것을 알게 된 그레이즈 가문이 그들을 징치하기 위해 영지전을 벌였다는 이야기는 영지전이 끝남과 동시에 테라인 왕국 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테라인 왕국 두 개의 기둥 중 하나가 움직이는 것이었기에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당연했고 헨바인 백작이 벌인 일도 엄청난 범죄에 해당되었기에 소문은 빠르게 확산되었지만 하나의 소문이 함께 돌아다니며 테라인 왕국뿐만 아니라 주변 왕국까지 발칵 뒤집어 놓고 말았다.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가 바람과 흙을 조종한다!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의 정령술은 거대한 성문을 뚫어버릴 정도로 강력하다!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하였던 두 속성의 정령과 계약을 했다!
각기 다른 세 개의 소문이 주변 왕국과 테라인 왕국 내부에 퍼지기 시작했지만 세 가지 소문의 중요 내용을 하나로 요약하면 간단했다.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가 바람의 정령과 흙의 정령과 계약을 했다!
저벅저벅.
테라인 왕국의 유일한 왕자, 차기 국왕으로서 교육을 받고 있던 레이온은 그 소문을 듣자마자 교육을 중도에 끊고 왕의 집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 빌어먹을 자식은 감출 거면 제대로 감춰야지…….”
뒤를 따르던 호위 기사들이 자신의 말투를 듣고 깜짝 놀란 듯이 몸을 흠칫 떨었지만 레이온은 정말 짜증 난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린 채 계속 걸음을 옮겨 왕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왕자님을 뵙습니다.”
왕의 집무실을 지키는 기사들은 왕을 지키는 자들이었기에 근무 도중 한눈을 팔면 안 되기에 근무 도중에는 왕자에게 목 인사를 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레이온이 두 기사의 인사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문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아버지는?”
“케이든 후작님과 함께 들어가시고 몇 시간째 밖으로 나오지 않으신 채 근무 중이십니다.”
“그럼 그 소문도 모르는 건가?”
성 밖으로 심부름을 나갔던 한 시녀의 입을 통해 왕국 전체로 퍼진 데에 걸린 시간은 겨우 두 시간에 불과했다.
거대한 왕국이 사람의 입과 입을 통해 전달되니 속도가 점점 빨라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것이었다.
“…….”
두 기사가 대답 대신 입을 꾹 다물자 레이온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똑똑똑.
“무슨 일이냐?”
“레이온입니다.”
잠시 문 안쪽이 조용했지만 이내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와라.”
레이온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왕실호위기사단의 두 기사들을 보며 말했다.
“기다리게.”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집무실을 지키는 기사들 양옆에 서자 레이온은 바로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
“…….”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레이온이 느낀 것은 엉망이라는 것이었다.
사방에 널브러진 서류와 테라인 국왕의 옆에서 서류를 함께 보고 있는 케이든 후작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테라인 국왕에게 걸어가려던 레이온이 자신의 발밑에 떨어진 서류에 시선을 돌렸다.
인신매매에 대한 법률이 적힌 법률서의 한 부분이었다.
헨바인 백작이 일으킨 범죄가 테라인 왕국 전체에 죄를 물어올 수도 있어 다른 왕국들의 정치적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 중인 것 같았다.
“후……. 왔느냐?”
고개를 살짝 들어 레이온을 발견한 테라인 국왕은 안경을 벗으며 콧잔등을 매만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이동했다.
레이온도 테라인 국왕을 따라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들으셨습니까.”
“들었다.”
몇 시간째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작업을 했음에도 알고 있다는 것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레이온의 시선으로 책상 위에 놓인 통신 구슬이 눈에 들어왔다.
그레이즈 공작과 이미 노엔 때문에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다.
“뭐,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쩔 수 없었다고 들었다.”
“……그렇습니까?”
테라인 국왕은 이제 좀 쉰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소파에 편히 기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레이즈 공작에게 들어보니 실피아의 힘을 이용하여 성문을 박살 낸 다음에 헨바인 백작을 찾았지만 그가 도망가려 해서 노엔의 힘을 빌렸다고 하더구나.”
“…….”
처음에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기에 이해를 하려고 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상이 찌푸려지고 말았다.
“그게 어쩔 수 없는 것입니까?”
도망치기에 잡으려고 했다가 테라인 왕국뿐만이 아니라 주변 나라까지 발칵 뒤집어놓는 사건을 만들었다.
테라인 국왕이 피식 실소를 흘렸다.
“놓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게 네 스승의 말이다.”
검술 스승이 이레스였다. 그렇기에 장난 식으로 말하는 테라인 국왕이었지만 레이온은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아버지를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또 하프 엘프라고.”
“사기 칠 수도 있지. 그레이즈 공작도 혈통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해결되었다고 그쪽이 가장 무난하다고 했고, 소문의 주인공도 그것을 믿고 있는지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이……. 미……친.”
헥토스 왕국에 사기를 친 것도 눈감아 주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대륙을 상대로 사기를 치려 하는 이레스였다.
문제는 자신이 그런 이레스를 옹호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 * *
식사를 마치고 그레이즈 공작이 방으로 돌아가자 이레스는 바로 자신과 함께 식사를 하고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카인을 바라보았다.
아실리는 여전히 인간들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방에서 따로 식사를 했기에 식당에 있는 사람은 인간의 모습을 한 카인과 이레스가 전부였다.
주방장이 가지고 온 차를 전부 마시자 이레스가 카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잠시 바람이나 쐬시겠습니까?”
“그럴까요?”
미소를 그리며 물으니 아실리와는 다르게 카인도 미소를 그리며 대답을 하고는 이레스를 따라 영주성을 나와 정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레스는 자신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정원을 산책하는 카인을 힐끔 쳐다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죠……. 아까 인사를 하다 들으셨을 겁니다. 수호자라고.”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실리는 자신을 전사라 소개하고 카인을 수호자라고 했다.
무언가를 지키는 것이 수호다. 그리고 수호자는 무언가를 지키는 사람을 뜻한다.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카인은 작은 미소를 그리며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호자란 각 부족에서 한 사람씩 선별되는 정령사를 뜻합니다.”
“한…… 사람씩이요?”
“정확하게 말하면 나무의 정령과 계약을 한 사람입니다.”
“…….”
고개를 끄덕이려던 이레스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카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알기로 대륙에서 태어나는 중간계의 정령은 하나가 전부였다.
금속의 정령도 하나, 나무의 정령도 하나였다. 그런데 각 부족에서 한 사람씩 나무의 정령사와 계약한 사람에게 수호자라는 칭호를 내린다고 하니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었다.
카인도 이레스가 의아해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는지 바로 부연 설명을 했다.
“물론 나무의 정령과 계약할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뿐이니 한 부족에서 나타나면 다른 부족에는 수호자가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아.”
“그리고 그 수호자는 정령수를 관리합니다.”
“…….”
정령수.
일명 세계수라 불리는 정령수는 엘프들의 힘의 원천인 정령의 힘과 마나의 힘을 엘프들에게 전달해주는 신기한 나무를 말했다. 그런데 그런 정령수를 지키는 것이 수호자라고 하니 이레스는 카인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앞에 엘프들의 힘을 지키는 자가 있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벌써.”
정령수를 관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도 정령수이니 말이다.
그런데 소문이 퍼진 지 단 삼 일 만에 찾아왔다.
인간들을 피해 숲 속에 숨어들었다면 소문을 듣는 것은 최소 보름은 지난 후거나 아예 듣지 못했어야 정상이었다.
카인이 걸음을 멈추고는 뒤늦게 걸음을 멈춘 이레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령수는 하나가 아닙니다.”
“……아!”
오크들에게 부족이 존재하듯이 엘프들에게도 부족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부족들은 각기 다른 엘프목을 수호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카인은 다른 부족들의 엘프목도 함께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쁘시겠습니다.”
자신을 격려하는 이레스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카인이 작게 실소를 터트리고는 물었다.
“왜 나무의 정령과 계약한 사람이 엘프목을 관리하는지 물어보시지는 않는 것입니까?”
“정령수도 나무 아닙니까?”
“…….”
“나무의 정령의 능력은 모르지만 뛰어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궁금합니다.”
“어떤 것입니까?”
“그걸 왜 저에게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
카인이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묻는 이레스를 빤히 바라보다 다시 미소를 그렸다.
“아예 없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야.”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한 이레스는 다시 카인과 산책을 했지만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하나 질문 좀 해도 되겠습니까?”
“예.”
“실피아, 노엔.”
“……?”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피아와 노엔을 소환하는 자신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는 카인의 모습에 이레스가 미소를 그렸다.
“나무의 정령을 볼 수 있겠습니까?”
“질문입니까?”
“아, 이것은 부탁입니다.”
이레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이 다시 한 번 반대로 고개를 갸웃하던 카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엔디아.”
사삭.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근처에 있던 나무가 흔들리더니 나뭇잎 하나가 땅으로 떨어지며 소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부르셨어요?
맑고 청랑한 목소리가 어울리는 귀여운 정령이었다.
“아, 제가 불렀습니다.”
-…….
엔디아가 고개를 돌려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이레스는 그런 엔디아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이 미소를 그리며 바라보다 자신의 머리 위와 오른쪽 어깨에 앉아 있는 노엔에게 시선을 돌렸다.
“친구다.”
-……응?
-……예?
-와아아아!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당황한 노엔과 엔디아였지만 그저 친구라는 말에 환한 미소를 그리며 엔디아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나는 실피아였다.
-어? 어?
-우와아아아!
이레스가 당황하는 엔디아와 해맑은 미소를 그리며 하늘을 날아 분수대 근처로 날아가는 실피아를 바라보다 어깨에 앉아 있는 노엔을 바라보았다.
“나무의 정령, 엔디아라고 해.”
-엔디아…….
“지켜줘.”
-…….
지키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던 노엔이 울상을 그리며 자신을 올려다보자 이레스는 미안하다는 듯이 작은 미소를 그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노엔은 그런 이레스를 계속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두 정령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이레스는 그제야 카인을 바라보았다.
“…….”
카인도 저렇게 활발한 정령은 본 적이 없었던 것인지 신기한 듯 실피아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실피아를 보고 신기해하는 것은 인간이나 엘프나 똑같다는 생각에 피식 실소를 흘린 이레스가 카인을 불렀다.
“카인 님.”
“……예.”
자신에게 고개를 돌렸지만 여전히 신기하다는 듯이 힐끔힐끔 세 정령을 바라보는 카인의 모습에 이레스가 말했다.
“뭐, 친구 좀 사귀라고 해놓은 것입니다.”
“친……구요?”
“예, 친구.”
카인의 시선이 다시 정령에게 이동되었고 빤히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레스가 작게 미소를 그렸다.
“그렇군요. 친구.”
“예, 친구. 그리고 물어볼 게 있는데.”
이제 질문이 온다는 것에 카인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자 이레스는 바로 오른팔을 들었다.
왼팔과는 달리 팔목에 채워진 하나의 금속 팔찌가 카인의 눈에 들어왔다.
이레스는 왼손 검지로 팔찌를 가리키며 물었다.
“왕의 목소리가 대체 어떤 물건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