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20화
무료소설 구름공작: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20화
제9장 바실리아스 (1)
소녀는 주위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슬쩍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흑발이 잘 어울리는 청년.
테라인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사람이 테라인 아카데미 학교 식당에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국수를 먹고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혼자만 식당에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무시를 했겠지만 그 옆에 앉아 있는 한 사람, 아니 한 생명체를 보고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는 모든 학생들이 다 모였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식당에 모여 있었다.
“맛있냐?”
“취익! 모르겠습니다.”
인간들이 먹는 식당에서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몰라 이레스와 똑같은 국수를 주문하여 힘겹게 젓가락질을 하던 케르취는 젓가락을 버리고 그냥 그릇째 마시고 있었다.
이레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국수를 바라보는 케르취의 모습에 피식 실소를 흘렸다.
아침 고기, 점심 고기, 저녁 고기를 먹는 오크로서 밀가루 음식을 처음 먹는 것이니 맛을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니까 고기를 시키라니까.”
“취익, 너무 작습니다.”
이레스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국수를 먹으려 했지만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소녀의 모습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봐?”
“죄, 죄송합니다!”
너무 당황하고 있던 소녀는 깜짝 놀란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과를 했고 이레스는 안 그래도 쏠려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강해지자 다시 앉으라는 듯이 손짓을 한 뒤에 젓가락질을 하며 물었다.
“이름은?”
“헤라라고 합니다.”
“…….”
평민의 신분이었는지 더 이상 자신의 소개가 없자 이레스가 고개를 돌려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는 바실리아스를 바라보았다.
만약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을 것같이 그의 묵묵함은 그와 너무 잘 어울렸다.
“갈 곳은 있냐?”
“…….”
바실리아스가 잠시 몸을 흠칫 떨더니 고개를 저었고 이레스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다시 국수에 손을 대며 물었다.
“가고 싶은 곳은?”
“…….”
또 고개를 저었다.
1학년 때부터 귀족들이 찾아올 때마다 미리 등용 약속을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바실리아스는 졸업과 동시에 귀향할 생각이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레스는 다시 질문을 던지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식사를 시작했고 그 질문을 끝으로 어떠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자 힐끔힐끔 이레스와 바실리아스를 바라보던 헤라도 조금씩 입안에 음식을 집어넣었다.
가장 먼저 식사를 끝낸 자는 그릇을 들고 국수를 마시던 케르취였고 다음이 이레스, 다음이 바실리아스, 마지막이 헤라였다.
헤라를 끝으로 식사가 끝나자 이레스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바실리아스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그렸다.
“전교 1등?”
“…….”
바실리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레스가 알았다는 듯이 똑같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레이즈 가문은 어떠냐?”
전생의 기억을 뒤져보았었다.
전쟁과 관련된 것이라면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기억하는 책사 중에는 바실리아스라는 이름이 없었기에 티어스가 말한 대로 말을 하지 못한다는 장애로 인해 졸업과 동시에 귀향한 것 같았다.
“……?”
바실리아스가 무슨 뜻이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자 이레스가 다시 말했다.
“네가 충성할 가문 말이야.”
“…….”
가만히 이레스를 바라보던 바실리아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헤라를 바라보며 손짓을 했다.
몇 번의 손짓을 끝으로 그의 손이 내려가자 헤라가 이레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을 못하는데 괜찮으냐고 하는데요?”
“그럼 너도 와.”
“……예?”
“바실리아스와 말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책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
“어디 약속한 가문이라도 있어?”
“그, 그게.”
이레스는 물끄러미 헤라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창피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없는데요…….”
“이유는?”
“헤헤헤. 공부를 못해서.”
아무리 공부를 못한다고 해도 3학년이 되었다는 것은 군사학부의 교육을 따라갈 정도로 다른 학부의 학생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이레스가 고개를 돌려 바실리아스를 바라보았다.
“너도 헤라랑 함께 오면 좋을 거 아니야. 말을 하지 못하는데 아는 사람이 없으면 좀 그러니까.”
“…….”
바실리아스는 다시 손짓을 했고 헤라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이유를 알고 싶다는데요?”
“이유가 뭐 있나. 책사가 부족하니 책사를 찾으려는 것이지.”
“그게 불량품이라도 상관…….”
다시 손짓을 읽고 해석해주던 헤라가 슬픈 눈으로 바실리아스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손짓을 했고 그녀는 다시 입을 열어 손짓을 해석해주었다.
“그게 말을 하지 못하는 불량품이어도 상관없냐고…….”
“…….”
이레스가 잠시 바실리아스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세상은 불량품이어도 성능이 뛰어나면 사용하는 곳이다.”
“…….”
“말을 못하는 게 뭐가 그리 잘못되었다고.”
실제로 말을 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욕으로 들릴 수 있는 이야기였다.
말을 할 수가 있으니 말을 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모르고, 말을 하지 못하기에 사람들의 불쌍하다는 시선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실리아스는 계속해서 진지한 표정으로 이레스를 바라보다 다시 헤라를 향해 손짓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병사와 기사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레스가 그 질문에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그건 네가 해야 할 일인데 왜 남한테 물어?”
“……예?”
“…….”
두 사람은 이레스를 바라보았고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오로지 실력만 따지는 곳이 그레이즈 가문이다. 그래서 데인은 헬버튼 할아버지의 제자가 될 수 있었고 데미안은 그레이즈 가문의 유일무이한 마법공학자가 되어 그 누구도 얕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지. 오로지 실력으로 증명을 했기 때문에. 아, 참고로 테라인 아카데미 경제학부에 재학 중이던 클라리아는 차기 총관이 되었고.”
“…….”
이레스가 여전히 진지한 표정을 그리고 있는 바실리아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
바실리아스가 고개를 저었다.
자만이 아닌 자신감이었다. 지금 테라인 아카데미에서 자신과 적수가 될 만큼 뛰어난 인물이 없다는 것을 3년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 실력을 증명하면 되는 거야.”
“…….”
“증명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냐고 묻는데요?”
“헥토스 왕국.”
이레스가 대답 대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바실리아스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 다시 손짓을 하려 하였지만 그의 입에서 다른 말이 튀어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리고 말았다.
“제이스 왕자, 데우스 왕자.”
“……!”
단 세 개였다.
생각을 하는 듯이 이레스를 바라보던 바실리아스는 그가 말하는 것을 짐작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이레스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 손바닥으로 턱을 받치며 말했다.
“엄청나지?”
바실리아스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증명하는 방법, 증명하는 장소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너무 커다란 곳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래 걸린다면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지만 얼마 안 남은 거 같더라.”
가만히 이레스를 바라보던 바실리아스가 양손을 들어 올리더니 왼손은 검지를 하나 펼치고 오른손은 검지와 중지를 펼쳤다.
헤라가 그 손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할 때 그 손가락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고 있던 이레스가 한 손을 들어 검지만 펼치자 바실리아스가 눈을 빛냈다.
이레스가 그런 바실리아스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갈 곳 없지?”
“…….”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도 줄 테니까 와라.”
“…….”
바실리아는 그런 이레스의 모습에 작게 미소를 그리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었고 이레스는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헤라를 바라보았다.
“너도 기죽지 말고.”
“예?”
“걱정 말라고. 군사학부 3학년이라면 어디 가서 기죽을 일은 없으니까.”
“…….”
“그리고 너 바실리아스 좋아…… 읍!”
“으아! 으아! 으아!”
황급히 이레스의 입을 막은 헤라는 뾰족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 바실리아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무 진지하여 말을 걸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어차피 자신도 군사학부에서 성적이 나쁘다 보니 어떤 가문에서도 등용을 하러 오지 않았다.
물론 졸업과 동시에 제대로 된 인재를 찾기 위해 수많은 가문이 몰려오겠지만 그레이즈 가문보다 더 뛰어난 가문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에휴.”
작게 한숨을 내쉰 헤라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비운의 천재.
장애가 있어 세상에서 사라졌던 비운의 천재 바실리아스를 증명하는 방법, 그에게 헥토스 왕국에서 반역이 일어났을 때 총군사를 맡기는 것으로 그것을 얻을 수가 있었다.
지금 바실리아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장소라는 것을 알아차린 결과였다.
* * *
식당을 나와 근처 벤치에 자리한 이레스가 바실리아스와 헤라를 번갈아 바라보다 물었다.
“혹시 아는 사람 중에 능력이 출중한데 아직 가문과 약속이 안 잡힌 사람이 있어?”
“…….”
잠시 생각을 하는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바실리아스가 고개를 돌려 헤라를 바라보며 손짓을 하자 그녀는 사색이 된 듯이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저었다.
“걔는 안 돼!”
“…….”
바실리아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계속해서 손짓을 했고 헤라는 계속해서 고개를 젓자 벤치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이레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둘이서 알콩달콩 지들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하지 말고 좀 알려줘.”
“그, 그게…….”
헤라가 대답 대신 말을 더듬자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던 바실리아스가 근처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들어 바닥에 글을 적었다.
-경제학부입니다.
“경제학부?”
클라리아 말고 또 뛰어난 이가 있었나 하며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 이레스의 모습에 바실리아스가 바닥에 적은 글을 지우고 다시 글을 적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지 관리에 뛰어난 아이입니다.
“호오.”
아무리 천재라 불리는 클라리아가 있다고 해도 현재 영지를 관리하는 사람은 총관, 그의 제자인 클라리아, 알레인 이 세 사람이 전부였기에 인재는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말을 못하냐?”
바실리아스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묻는 이레스의 모습에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은 뒤에 다시 글을 적었다.
-다리를 다친 아이입니다.
“다리를 다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던 이레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
-예, 이제 아홉 살이죠.
“입학이 가능했냐?”
그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바실리아스가 아니라 헤라였다.
헤라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테라인 아카데미 최초로 수석 입학이 둘이 나왔습니다.”
“그중에 한 명이 그 아이라고?”
“그렇긴 한데…….”
“그렇긴 한데?”
헤라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에휴.”
“웬 한숨이야.”
“……에휴.”
헤라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고 이레스가 짜증 난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려 할 때 바실리아스가 바닥에 따라오라고 적은 뒤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바실리아스가 도착한 곳은 테라인 아카데미의 후문이었다.
“……여긴 또 왜?”
바실리아스가 대답 대신 미소를 그리더니 인도를 따라 후문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를 보호하는 듯 서 있는 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그를 따라 걸어가니 거대한 나무 한 그루와 그 밑에 앉아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작은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아, 그렇군.”
헤라가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리던 이유는 모르겠지만 왜 수석 입학생임에도 바실리아스와 똑같이 어떠한 가문에서도 등용을 약속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다리를 다쳤다는 것은 다리를 절뚝이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 의자에 바퀴를 달아 만든 휠체어를 타고 있을 정도로 걷지 못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