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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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16화
제7장 그레이즈 가문의 무력 (2)
“왕실호위기사단의 3부단장!”
“예!”
익숙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자 레이온의 시선이 대련장 끝에 자리하고 있는 검은 머리의 청년, 이레스에게 향했다.
이레스는 레이온이 도착한 것도 모르는 듯이 3부단장을 바라보며 피식 실소를 흘리며 외쳤다.
“현재 케르취가 상대한 기사의 숫자가 몇 명인가!”
“여, 여덟입니다!”
“그런데도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것인가!”
“…….”
레이온의 시선이 다시 3부단장과 케르취에게 돌아갔다.
집중을 하며 대련을 지켜보니 3부단장은 연신 공격을 하고 케르취는 연신 방어를 하고 있었지만 물러서는 이는 부단장이었고 다가서는 이는 케르취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사는 대련장 끝으로 물러서기 시작했고 케르취는 계속해서 글레이브를 휘두르며 천천히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었다.
케르취는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다. 하지만 점점 상처가 회복되는 모습이 오크의 재생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뛰어난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뒤로 물러서던 3부단장이 발을 헛디디며 대련장 아래로 추락했다.
쿵!
“잘하는 짓이다. 상대에게 정신이 팔려서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다니.”
“…….”
할 말이 없던 3부단장은 입을 열어 변명을 하거나 반박을 하는 대신 케르취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고 그도 똑같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 뒤에 이레스의 옆으로 돌아갔다.
이레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다음 올라와!”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갑작스레 한 기사가 번쩍 손을 들며 외치자 주위에서 대련장 위를 지켜보던 기사들과 이레스의 시선이 그 기사에게 향했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듯 기세가 다른 기사들보다 강렬한 얼굴에 기다란 검상을 입은 중년의 사내였다.
“말해봐.”
“벌써 아홉의 기사를 상대한 오크입니다. 더 가능한지 알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케르취가 대련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비웃는 것이 아니라 걱정이 섞인 질문이었다.
“…….”
이레스가 중년의 기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기사의 말대로 케르취는 이미 아홉 무인을 상대하며 육체적인 피로와 정신적인 피로가 최대로 쌓여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뛰어난 신체능력과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계속된 전투로 지치는 것은 인간이나 오크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오크를 상대해본 자만이 알 수 있었다.
뛰어난 재생력과 피로는 관계없다는 것을 말이다.
“오크와 싸워본 적이 있군.”
“그렇습니다!”
기다란 검상과 40을 넘긴 듯한 외모의 기사.
주위에 서 있던 기사들이 그의 정체를 깨닫고는 깜짝 놀란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왕실기사단 전체 서열 3위.
왕실기사단에 열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오러나이트 중 한 사람인 트라일이었다.
“…….”
이레스도 기억을 더듬다 그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고 그의 실력을 알기에 힐끔 케르취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케르취는 피로가 쌓여 있는 상태임에도 트라일을 발견하자마자 글레이브를 강하게 쥔 채 트라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투의 종족답게 역시 강자를 알아보는 것은 본능적인 것 같았다.
“케르취.”
“취익! 예!”
“뒤로 빠져서 쉬고 있어.”
트라일을 보고 호승심을 느끼기는 하였지만 케르취에게는 호승심보다는 충성이 먼저였다.
자신의 등 뒤로 이동한 케르취의 숨소리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자 이번엔 이레스가 한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트라일을 바라보았다.
“올라와라. 내가 해줄 테니까.”
“…….”
트라일은 대련장 위에 올라오는 대신 이레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무엇을 뜻하는지 대충이나마 감이 왔던 이레스가 피식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정령검사를 우습게보는 것이 아니라면 올라와서 진지하게 임해야 할 거야.”
“…….”
익스퍼드 상급의 경지로 알려진 이레스였다. 그렇기에 그는 바로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망설이고 말았다.
가르침을 내리기 위해 왔던 이레스가 자신과 대련을 하다 창피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령검사로서 생각을 하면 말이 달라진다.
저벅저벅.
빤히 이레스를 바라보던 트라일이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이 천천히 대련장 위로 올라섰다. 역시 자신도 케르취와 마찬가지로 대련장 위를 오르는 그를 보고 씨익 미소를 그리고 말았다.
잠시 트라일을 바라보던 이레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레이온을 향해 손을 살짝 흔들었다.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자신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린 레이온이 다시 집중하며 대련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곁으로 의료실을 다녀온 몬트가 다가왔다.
“총 여덟 명입니다.”
아홉 명을 상대했고 대련장 아래로 떨어져 패배를 하게 된 기사를 제외하고는 전부 입원해 있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레이온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부상 정도는?”
“빠르면 보름, 늦으면 한 달 정도의 요양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뭐?”
“뼈가 엄청난 충격을 받아 부러지다 보니 회복하는 데 오래 걸릴 것이라고…….”
오크와 대련을 하는데 어디 하나 부러지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다.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무언의 대답을 한 레이온이 다시 대련장 위를 바라보았다.
왕자라는 신분으로 왕국을 생각한다면 기사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고 부상을 입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다시 피어난 검사로서의 기억이 대련을 막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대련을 중지시키는 대신 그저 묵묵히 대련장 위를 바라보는 레이온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작은 미소를 그린 이레스가 고개를 돌려 트라일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러나이트?”
“그렇습니다.”
“방심하지 말 것.”
“…….”
트라일이 대답 대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심을 하고 싶어도 정령검사와의 첫 대련이라는 사실에 긴장감이 생겨 그럴 수가 없었다.
스르릉.
맑은 검명과 함께 양쪽으로 검날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 한쪽 날밖에 존재하지 않는 트라일의 장도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블레이드. 또는 장도(長刀)라 불리는 검은 소드, 또는 장검(長劍)이라 불리는 양쪽 날이 존재하는 검을 사용하는 기사들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볼 수 있었다.
장검은 양쪽으로 검날이 있다 보니 검신이 거대하여 비교적 바람의 영향력을 많이 받지만 장도는 한쪽으로밖에 날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장검보다 크기가 작아 바람의 영향력을 적게 받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구성을 따지면 검보다 도가 약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장도는 강하게 휘두르면 바람의 저항력이 검보다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똑같은 힘으로 휘두르면 검보다 더 빠른 속도로 휘둘러졌다.
또 다른 단점을 생각한다면 찌르기와 베기가 가능한 검이라는 무기와는 달리 베기에 특화된 도라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오러나이트라는 경지를 생각하면 크게 단점으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레스가 장도를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피아.”
쉬이익.
대련장 위로 작은 바람이 일어나며 이레스의 머리 위로 한 소녀가 나타났다.
“……오.”
“저 소녀가.”
“그 유명한…….”
‘역시.’
자신이 유명해지니 따라서 유명해졌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그리던 이레스가 뒤이어 들려오는 기사들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테라인 왕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한 마디만 더 남의 여동생을 언급하면 아예 뼈를 갈아마실 테니 알아두도록.”
시선은 대련장 위에 서 있는 트라일에게 향해 있지만 그의 말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던 기사들이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이레스가 자세를 잡고 있는 트라일의 모습에 미안하다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천천히 검집에 숨겨놓은 검신을 드러냈다.
스르릉.
트라일과 똑같은 검명이 울리며 두 자루의 무기가 서로를 노려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5분, 아니다 한 10분만 막아봐.”
“……예?”
“…….”
이레스는 대답 대신 씨익 미소를 그리며 땅을 박찼다.
* * *
“자유기사?”
그레이즈 영지의 남쪽 성문을 맡고 있던 기사는 명패와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자유기사였다.
테라인 왕국에서 자유기사가 발견되면 잠재된 재능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바로 가문에서 영입을 해 갔기에 그레이즈 가문을 찾아오는 자유기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통과시키려던 병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자유기사를 바라보았다.
다른 것은 전부 평범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니라 궁을 들고 등 뒤에는 화살 통을 매달고 있었다.
“……활을 쏘십니까?”
“그렇습니다.”
“흐음.”
신기하기는 해도 그레이즈 가문에서 일어난 사건이 워낙 많고 몬스터의 숲으로 지원을 나갔다가 오크와 술자리도 함께 한 적이 있던 병사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큰 소리로 외쳤다.
“통과!”
“아, 저기.”
“무슨 일이시오?”
“그게…….”
궁을 든 자유기사가 머리를 살짝 긁적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이레스 님이 계시는지…….”
“응? 모르셨소?”
“예?”
“지금 왕실에 보고를 하기 위해 성도에 계시오.”
“아……. 그렇군요.”
자유기사는 머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한 뒤에 안으로 들어갔고 병사는 다시 자신의 근무에 돌아갔을 때 또 한 번 그의 고개가 절로 갸웃대고 말았다.
“……무슨 일로 오신 것입니까?”
자유기사와는 다르게 제대로 된 경어가 나왔다.
“이레스 공자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왕실의 허가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무리 없이 들여보낼 수 있었다.
신분을 증명하는 패도 있으니 만약 이상한 모습이라도 보이면 가문에 연락을 취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찾아온 손님이라면 달랐다.
“받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미리 가문에 연락을 하셨습니까?”
“아니요.”
“…….”
푸른 머리의 사내가 싱긋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깜짝 선물이라고나 할까요?”
“깜……짝 선물이요?”
“아니다, 깜짝 만남이 좋겠군요.”
잠시 사내를 바라보던 병사는 신분패를 다시 건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가문에 연락을 해놓겠습니다.”
“아닙니다. 들어보니 지금 성도에 있다고 하셨으니 근처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병사는 대답과 동시에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고 청발의 사내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는 그레이즈 영지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뭐 한 나라의 왕자라도 됩니까? 대장님이 그렇게 긴장하는 것을 보니.”
아직도 청발의 사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병사의 모습에 한 병사가 다가와 묻자 그는 입을 벌릴 듯 말 듯 아주 작게 열어 명령을 내렸다.
“가문에 보고해라.”
“예?”
“페이언 왕국의 사람이 찾아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