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13화
무료소설 구름공작: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13화
제6장 성도의 이레스 (1)
“충!”
레이온이 남쪽 성문 관리실에 도착하자마자 관리실 정문을 지키던 두 병사가 자연스럽게 양손으로 창을 잡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레이온은 건물 앞에 세워진 마차를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켈론 백작가?”
테라인 왕국에 자리한 가문의 문양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켈론 백작가의 마차가 관리실 앞에 있는지 몰라 잠시 고개를 갸웃한 레이온이었지만 이내 걸음을 옮겨 문 앞으로 걸어가며 병사들에게 물었다.
“그가 있나?”
“……그, 그렇습니다.”
레이온이 말하는 그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고 있음에도 뒤늦게 대답하고, 심지어 말까지 더듬는 병사의 모습이 그가 얼마나 깽판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하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관리실 안으로 들어선 레이온은 몇몇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걸어갔고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귓속으로 선명하게 파고드는 사내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아니, 어떻게 사람을 괴물 취급할 수 있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아닙니다!”
“아니면 다야!”
“아닙니다!”
“아니면 다냐고!”
아주 익숙한 음성의 주인이 한 사내를 공격하고 있었다.
레이온이 걸음을 멈추며 뒤를 따라오던 벅튼을 바라보았다.
“왜 저러는 거 같은가?”
“아마도 오크 때문인 거 같습니다.”
벅튼이 잠시 생각을 하다 대답했다.
“함께 온다던 그 오크 말인가?”
“그렇습니다. 미리 병사들에게 언질을 주었기는 했지만.”
그것은 전날 잠시 후면 도착한다고 알려준 이야기였다. 즉 지금 나타날지 몰라 병사들이 오크와 함께 온 이, 이레스를 건드리고 만 것 같았다.
“하아.”
또 한 번 한숨을 내쉬고 만 레이온이 문고리를 잡았을 때 이번엔 여인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자 문고리를 돌릴 수가 없었다.
“이제 그만하세요.”
“아니! 보시지 않았습니까!”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예요.”
“안 됩니다! 이때 버릇을 확 고쳐놔야지!”
레이온의 시선이 다시 벅튼에게 향했다.
“이레스와 오크만 온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게.”
벅튼도 알 수 없었기에 잠시 말을 더듬자 레이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문고리를 돌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아주 가관이라고 볼 수 있었다.
검은 머리의 청년, 이번 사건의 중심자인 이레스가 의자에 앉아 있었고 남쪽 성문의 책임자가 경직된 듯이 차렷 자세로 대답을 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 아름다운 여인이 서서 중재를 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살짝 돌렸던 이레스는 방 안으로 들어온 이가 레이온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레이온 저하.”
“무슨 일이지?”
레이온은 인사를 받아주는 대신 인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
아무리 잘못을 하였다고 해도 성문을 지키는 책임자를 너무 압박하는 모습은 모든 백성을 보살펴야 하는 왕자라는 신분으로 보았을 때 너무 안 좋은 모습이었다.
이레스가 힐끔 기사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다짜고짜 공격을 하였기에…….”
“그런가?”
레이온이 바로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이번엔 성문의 책임자의 변명을 듣기 위해 그를 바라보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모든 책임은 오크를 발견하자마자 다짜고짜 살수를 펼치려 했던 문지기들에게 있었다. 하지만 귀족으로서 이렇게까지 일을 벌여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미친개라 불렸던 이레스라고 해도 공작가의 소가주였기 때문이다.
“이레스.”
“예, 저하.”
너무 고분고분한 목소리를 들으니 순간 짜증이 났다.
그의 성격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의 성격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니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어색했던 것이었다.
“무엇을 원하는가?”
이레스가 바로 주머니에서 금으로 된 물건을 꺼냈다.
“수리비용입니다.”
“…….”
신분패였다.
금색 신분패는 공작가부터 받을 수 있는 신분패이지만 하필 그냥 신분패도 아니고 소가주를 증명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는 신분패였다.
“다른 신분패는?”
“인연이 있어 빌려줬습니다.”
“…….”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신분패를 남에게 빌려주었다는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레이온이 고개를 돌려 여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여인이 한쪽 무릎을 살짝 굽히며 인사했다.
“켈론 백작가의 장녀 셰리가 레이온 왕자님을 뵙습니다.”
“……그대는 또 왜 이곳에 끼어 있는 것이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레이즈 가문과 켈론 백작가를 연관 지을 수 있는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인, 셰리가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도로 향하던 도중, 도적 떼의 습격을 받았는데 이레스 공자님께서 도와주셔서 함께 왔습니다.”
“……똥을 밟고 말았군.”
“…….”
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레이온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시선은 이레스에게 돌아가 있었다.
대충 추측을 해보니 오크를 보고 병사들이 먼저 건드리고 그 도중 신분패를 보여주었다가 그들이 망가트려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수리비용은 왕실에서 대주지.”
“아, 아닙니…….”
성문 책임자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레이온이 오히려 그런 책임자를 째려보며 말했다.
“다음부터 이런 일이 없도록 하시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살수를 펼쳤던 이들은 전부 3개월 감봉과 일주일간 마운틴 수련장으로 보내도록 조취를 취하시오.”
“……알겠습니다.”
멍하니 레이온을 바라보던 성문 책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운틴 수련장은 테라인 성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대한 산 위에 자리 잡은 수련장으로서 고의적으로 사고를 일으키거나 하극상, 뇌물 혐의 등등, 군율을 어긴 자들을 보내는 지옥의 수련장이었다.
레이온이 고개를 돌려 다시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그럼 끝난 건가?”
고개를 끄덕인 이레스가 싱긋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가문에 연락 좀 넣어주시길 바랍니다.”
“이유는?”
이레스가 대답 대신 신분패를 톡톡 두들기자 레이온의 인상이 또 한 번 찌푸려졌다.
신분패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절차가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대략 2, 3일간의 시간이 필요했고 현재 어떠한 신분패도 가지고 있지 않은 레이온은 2, 3일간은 성도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움직이면 반드시 사건이 발생하고 사고가 일어났다.
아무리 사소해도 반드시 일어났다.
눈앞에서 헥토스 왕국에서 벌어진 일을 보았던 레이온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성도에서 2, 3일을 지내야 한다고 하니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인상을 찌푸린 것이었다.
* * *
성문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해결하고 켈론 백작가의 장녀와 헤어진 이레스는 레이온과 함께 왕의 집무실로 향했다.
“흐음, 열다섯?”
보고서를 읽던 테라인 국왕의 중얼거림에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나머지 사라진 이들은 찾았지만 피해자 열다섯 명은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너무 늦었다.
처음 헨바인 백작이 인신매매를 하고 있다는 서류를 발견했을 때 판매가 시작된 것은 대략 1년 전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을 대륙 반대편으로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긴 시간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다시 테라인 국왕이 보고서를 향해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이레스의 뒤에 서 있는 케르취에게 고정되고 말았다.
이미 그레이즈 공작에게 듣고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레이즈 가문에서 오크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오크를 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 보는 오크가 신기했던 것이었다.
이레스가 테라인 국왕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 케르취를 바라보았다.
“케르취. 인사드려, 그때 말씀드린 아버지의 주군이시다.”
“취익! 검은 갈퀴 부족의 족장 케르취가 큰큰주군을 뵙습니다.”
“…….”
“……큰큰주군?”
자신도 모르게 케르취의 말을 따라 하며 고개를 갸웃한 사람은 어이없다는 듯이 멍하니 있는 테라인 국왕이 아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레이온이었다.
“취익! 주군의 아버지는 큰주군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취익! 큰주군의 주군은 큰큰주군입니다.”
“……그런가?”
“취익! 그렇습니다!”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이 바로 대답하는 케르취의 모습에서 잠시지만 이레스의 모습이 보이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저은 레이온이 테라인 국왕이 들고 있는 보고서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헨바인 가문은 어떻게 되었는가?”
들은 것과 보고는 다른 것이다.
이레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헨바인 백작과 그의 아들은 전부 처형당하였으며 뒤처리는 알레인이 해결하고 있습니다. 아마 며칠 내로 서신이 도착할 것입니다.”
“그런가?”
“예.”
테라인 국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이레스를 바라보다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다른 보고는 없는가?”
“테라인 영지를 포기하겠습니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다.
헨바인 영지와 그레이즈 영지와의 거리는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테라인 국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
“또?”
“오크 부족을 수하로 맞이하였습니다.”
“위험도는?”
어떻게 보면 오크를 수하로 두었다는 것은 헨바인 백작이 벌인 인신매매 사건과 맞먹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것이 최초와 범죄라는 측면에서 다르기는 하지만 이번에 오크가 성도에 나타난 것도 모자라 왕성에 들어섰으니 테라인 왕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왕국에도 소문이 전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레스가 진지한 테라인 국왕의 눈빛을 확인하자마자 똑같이 진지한 눈빛과 함께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레이즈 영지의 백성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아직 그레이즈 영지의 백성들은 이야기는 들었어도 본 적은 없는 상황입니다.”
그저 소문으로만 그레이즈 가문이 오크와 동맹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녔을 뿐 실제로 오크를 만난 그레이즈 영지의 백성들은 없었다.
그저 부모가 그레이즈 가문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그때그때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가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 정말 오크들이 영지에 들어서면 처음에는 혼란이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기사와 병사들은?”
“자신의 등을 맡길 정도입니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말이었다.
등을 맡긴다는 것 자체가 동료를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테라인 국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했다.
“지금은 너무 바쁘다 보니 그렇게 길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군. 나머지는 레이온 왕자에게 들을 테니…….”
말끝을 흐리며 끝마무리를 짓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이 자신이 가져온 보고서를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레스는 바로 인사를 하고 레이온과 함께 왕의 집무실을 나왔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자신의 궁으로 향하던 레이온이 이레스를 힐끔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노엔.”
“…….”
이레스가 뜨끔한 듯이 몸을 흠칫 떨며 레이온을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다?”
“헨바인 백작이 도망을 치려 하기에 잡으려면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뒷감당은 우리보고 하라고?”
“……쩝.”
이레스는 대답 대신 입맛을 다시며 먼 산을 바라보았고 레이온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걸음을 옮겨 자신의 궁으로 돌아갔다.
호위기사를 문 앞에 세운 뒤에 방으로 들어온 레이온이 이레스를 째려보았다.
“다른 왕국에서 사신단, 그것도 정령사가 찾아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정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에 눈치 볼 사람은 없다.”
그의 말대로 방 안에는 이레스와 케르취, 그리고 레이온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크가 함께 방으로 들어간다는 것에 잠시 망설이던 호위기사였지만 레이온이 단호하게 명령을 내려 함께 들어올 수 있었다.
이레스가 바로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대답했다.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하아…….”
계속해서 나오는 한숨을 막아내지 못한 레이온이 침대 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다른 보고는 없고?”
이레스가 잠시 생각을 하는 듯이 천장을 바라보다 대답했다.
“아…….”
“아?”
“엘프.”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