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12화
무료소설 구름공작: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12화
제5장 셰리 (2)
잠시 후 셰리는 후련하다는 듯이 미소를 그리며 이레스를 향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고 이레스도 그녀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받아준 후에 마차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네.”
“아무리 성도로 향한다고 해도 호위가 너무 적은데요?”
‘백작가의 장녀이신데.’ 라는 말이 없었지만 그녀는 그 질문에서 그 뜻을 알아차렸는지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꿈을 위해 가문을 나왔거든요.”
“……예?”
전생에서는 켈론 백작가의 장녀이자 그레이즈 가주의 아내라는 이유로 빠른 속도로 법무부 장관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셰리는 법무부 장관이 되기 위해 가문을 나왔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문의 장녀와 가문을 나온 장녀는 미묘하지만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가문의 장녀로서 법무부 장관이 되는 것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실력과 뒤에서 그녀를 밀어주는 가문이 있어 오를 수 있었던 것이지만 가문을 나와 셰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의 몸으로 법무부 장관이 된다는 것은 뒤에서 받쳐주는 가문의 힘을 받지 않고 실력만으로 장관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었다.
잘하면 전생과는 달리 힘겹게 장관의 자리에 오르거나 아예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었다.
가문을 나왔다는 것이 그런 것이었다.
가문의 사람이기는 하나 가문의 힘을 받지 않고 실력만으로 승부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셰리가 그저 미소만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자 이레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미래가 바뀌니 사람의 운명 자체가 바뀌어버렸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 * *
셰리와 만난 곳에서 성도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부상자가 있기에 휴식을 취한 것이지 대략 산 하나만 넘으면 성도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기 때문이다.
산을 넘어 인도를 따라 성문을 향해 걸어가니 성도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멈춘 이레스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너무 많은데?”
다른 귀족이었다면 그냥 가문의 이름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들어갈 수 있었지만 바쁜 일이 없었던 이레스는 줄을 서서 기다리려 했기 때문이다.
그때 마차의 창문이 열리며 셰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끼익.
“왜 그러세요?”
“사람이 많아서요.”
“그런가요?”
“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이레스가 셰리를 바라보았다.
“시간 많으시죠?”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랍니다.”
“그럼 기다…….”
“으아아악!”
사람들이 만든 기다란 줄 앞으로 걸어가며 말하던 이레스의 목소리가 중도에 끊기더니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응?”
이레스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비명을 지른 사내를 바라보았고 때마침 비명 소리를 듣고 몇몇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을 때 한 명이 아닌 수십 명의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오, 오크가 나타났다!”
“느, 늑대와 오크가 나타났다!”
“…….”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한데 어울린 경악이 담긴 외침에 이레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등 뒤에 서 있는 케르취에게로 향했다.
시선이 자신 쪽을 향하며 소리를 지르니 고개를 갸웃했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케르취를 보고 놀라 소리친 것이었기 때문이다.
“취익?”
케르취는 사람들이 왜 소리를 지르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이레스와 똑같이 고개를 갸웃했고 그 모습에 사람들이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할 때 수십 명의 병사들이 달려왔다.
타다다닥!
챙!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성문을 지키던 한 병사가 이레스의 뒤에 서 있는 오크를 발견하자마자 걸음을 멈추며 검을 꺼내 들었다.
“누,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가장 선두에 나섰던 병사가 성문을 담당하는 수비 대장이었는지 그의 걸음이 멈추자마자 병사들도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추며 이레스와 케르취를 향해 검과 창을 꺼내 자세를 잡았다.
이레스가 그런 병사들을 바라보다 검지로 케르취를 가리켰다.
“오크.”
“취익.”
“이름은 케르취, 검은 갈퀴 부족의 족장이지.”
“취익. 감사합니다.”
너무 자연스럽게 나온 소개 때문인지 눈을 껌뻑이며 케르취를 바라보던 수비대장이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누구냐!”
이레스가 바로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케르취가 먼저 입을 열어 그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취익! 나의 주군이시다!”
“…….”
다른 설명을 전부 제외했다.
자신이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라는 것도 제외했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케르취였다.
오크의 주군!
병사들이 깜짝 놀라며 이레스를 바라보았고 수비대장은 눈을 부릅뜨더니 큰 소리로 소리쳤다.
“원진을 펼치고! 인질로 잡혀 있는 마차를 보호하라!”
“취익! 덤벼라!”
“…….”
아직까지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던 셰리는 순식간에 마차를 보호한 채 이레스와 케르취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병사들의 모습에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이레스가 그런 셰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설명 좀 해주시지.”
“아니, 너무 급작스러워서.”
너무 빠른 속도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수비대장을 말릴 겨를이 없었다.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병사들이 다가오자마자 바로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건만 수비대장이 먼저 말을 꺼내고 이레스가 당연하다는 듯이 소개를 하다 보니 잠시 멍해져 셰리와 마찬가지로 반응할 틈이 없었다.
이레스의 고개가 자신의 앞으로 나서는 케르취에게 돌아갔다.
케르취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등 뒤에 매달아놓은 그레이브를 쥐고 병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미쳤나…….”
“취익! 그 누가 되었든 주군에게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
“…….”
수비대장이 그런 케르취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이레스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천천히 한손을 들어 올렸다.
전생의 기억은 이레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지금 수비대장이 손을 들고 앞을 향해 강하게 휘둘렀을 때 원진을 그리고 있던 병사들이 동시에 돌격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귀족이나 타 왕국의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전투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고 대부분을 기억하는 이레스였다.
“돌…….”
쉬이익!
수비대장의 손이 앞으로 휘둘러지려는 순간 이레스가 주머니에서 꺼낸 신분패를 그에게 던졌다.
쉬이익!
지금의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던 이레스였기에 신분패를 던지는 데에도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이, 이런!”
수비대장은 검은 늑대를 타고 있는 오크와 인간을 바로 적으로 판단했기에 이레스가 신분패를 날렸을 때 암기인 줄 알고 황급히 검을 휘두르려 했다.
이레스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그거 부수면 뒈진다!”
카인에게 신분패를 넘기다 보니 이제 자신을 증명하는 신분패는 저거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대충 신분패 하나를 만드는 데 이삼 일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도 없으면 그 이삼 일간이 불편한 것이 신분패였다.
쉬이이익!
퍽!
이레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수비대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검을 휘둘렀다.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인상이 찌푸려졌고 암기를 던질 줄 몰랐던 수비대장이 분노한 듯이 이레스를 째려보았다.
“……응?”
오크에게 모든 정신이 팔려 있어서 뒤에 서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자세히 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이었다.
특히 검은색 머리카락은 테라인 왕국에서 희귀한 색깔이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잠시지만 본 적이 있던 사람이었다.
2, 3년 전의 기억이지만 너무 인상이 깊어 기억을 하고 있던 이와 이목구비가 비슷했다. 아니 똑같았다.
“서, 설마.”
“이런 빌어먹을…….”
이레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땅에 떨어진 신분패를 바라보았고 수비대장도 그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땅으로 향했다.
암기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금으로 만들어진 신분패였다.
신분패는 총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병사든 준 귀족 취급을 받는 기사든 직업을 가리지 않고 평민이라면 동으로 만들어진 신분패를 받았으며 남작부터 후작까지 귀족이라면 은으로 만들어진 금속패를 가지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공작부터 공왕까지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신분패를 받았다.
자신의 눈앞에 떨어진 것은 방금 전에 충격으로 구부러졌기는 했지만 황금으로 만들어진 신분패였다.
검은 머리의 청년.
금속으로 만들어진 신분패.
순간 수비대장의 머릿속으로 왕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하나의 소문이 떠올랐다.
그레이즈 가문에서 오크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
잠시 땅에 떨어진 구부러진 자신의 신분패를 바라보던 이레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수비대장을 바라보았다.
“니미 씹…….”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수비대장이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욕설을 중도에 끊었던 이레스가 수비대장의 뒤통수를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제 벅튼이라는 기사가 왔었지?”
“……헉!”
수비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며 자신이 모르는 사이 치매가 왔는지 의심을 하고 말았다.
오늘 교대한 동료에게서 들었다.
어제 그레이즈 가문의 기사단인 구름 기사단의 벅튼이라는 기사가 찾아와 말했다고 했다. 오크를 대동한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가 올 것이니 놀라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을 까먹고 있었다.
이레스가 놀라는 수비대장의 모습에 씨익 미소를 그렸다.
“왔었군.”
“그, 그렇습니다.”
“이름이?”
“아케인이라고 합니다!”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비대장 아케인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테라인 아카데미에 있을 때 내 별명이 있었는데 뭔지 아나. 아케인?”
“자, 잘 모르겠습니다.”
“미친개.”
“…….”
너무나 자연스럽게 안 좋은 별명을 말하는 이레스의 모습에 아케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눈이 웃지 않았다.
살짝만 만져도 뜨겁다고 느낄 정도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조금 문제가 생겨서 신분패가 그거밖에 없는데 그게 부러져버렸네?”
“하, 하하.”
“웃겨?”
“아, 아닙니다!”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웃기는 이야기가 아니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난 그 별명이 좋더라.”
묻기가 겁났다. 하지만 눈이 물어보라고 외치는 거 같았다.
꿀……꺽.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초반부터 별명이 미친개이면 내가 아무리 난동을 부려도 더 낮아질 별명이 없잖아.”
“…….”
“그러니…….”
이레스가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씨발! 책임자 오라고 해!”
* * *
“어, 어디 계신다고?”
어제 도착했어야 할 이레스가 동쪽 성문 관리실에 있다는 소리에 벅튼은 보고를 하러 온 병사를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레이온 왕자를 바라보았다.
이레스를 기다리기 위해 하루 종일 손님방에 앉아 있던 레이온은 병사를 바라보다 인상을 화악 찌푸렸다.
“왜 거기 있는 건가?”
“그, 그것이.”
병사가 한 나라의 왕자가 앞에 있다는 것도 깜빡한 듯이 잠시 머뭇거리자 레이온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가보지.”
보고를 하러 온 병사가 당황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무슨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고 그 중심에 이레스가 있다는 소리였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었지만 레이온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뛰어난 무력을 가지고 있어도 한 가문의 소가주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어도 미친개는 미친개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