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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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11화
제5장 셰리 (1)
왜 하필!
지금!
여기서 왜 이 인간이 나오냐!
거구의 산적은 자신을 셰리라 소개한 여인과 인사를 하는 검은 머리의 청년,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인 이레스를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테라인 왕국에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이레스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하나. 테라인 왕국의 검이라 불리는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
둘. 테라인 왕국의 왕자인 레이온의 검술 스승으로 최단 기간에 익스퍼드 중급 경지에 검사로 올려 보내는 최고의 검술 스승.
셋. 헥토스 왕국의 왕자인 데우스를 가르치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헥토스 왕국의 기사들에게 검의 스승.
넷. 바람의 정령과 계약한 익스퍼드 상급 경지의 정령검사.
마지막 다섯. 바람의 정령뿐만이 아니라 땅의 정령과 계약을 했다는 것이 확실치 않지만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난다고 이상한 소문이 돌지만 인간으로서 최초로 두 속성의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로 추정되는 정령사.
하나하나 테라인 왕국에 퍼진 소문을 생각하면 그의 위치는 자신이 감히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고 자신이 덤벼도 순식간에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레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향하자 거구의 산적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그리며 받아주고는 버럭 소리쳤다.
“튀어!”
“넌 남아!”
“예!”
큰 소리로 명령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몸을 돌리며 도망치려던 거구의 산적은 자신의 귓속에 파고드는 이레스의 목소리에 큰 소리로 대답하며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젠……장.”
대답을 했지만 욕설도 저절로 나왔다.
걸음을 멈춘 거구의 산적은 자신이 멈춤과 동시에 바로 자신의 부하들을 바라보며 미안함에 씁쓸한 미소를 그렸지만 이레스의 음성이 다시 울려 퍼지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나머지는 꺼져.”
“아니 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부하들의 음성이 그의 인상을 더더욱 찌푸리게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저 빌어먹을 쉐이들…….”
욕설을 내뱉으며 부하들을 째려보았지만 그들은 이미 자리를 벗어나 산속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이레스가 다시 말했다.
“뒤돌아.”
“헤헤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처세술이라는 것이 발동된 것인지 거구의 산적은 몸을 돌리자마자 멍청한 웃음을 흘리다 넙죽 허리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
멀리서 보아 왔던 그 모습과 정반대의 모습에 이레스는 어이없다는 듯이 물끄러미 거구의 산적을 바라보다 피식 실소를 흘렸다.
“이름은?”
“해머라고 합니다!”
“망치?”
“헤헤헤, 산적들에게 길러지다 보니.”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이레스가 해머에게 물었다.
“근처에 검가가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검가.
검으로서 귀족의 자리에 오른 가문이 근처에 있으면 주위에 자리 잡은 산적들은 자연스럽게 화전민 취급을 받게 되었다.
거구의 산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기는 하지만 근처에 미친년놈들이 있어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친년놈?”
산적들에게 욕설을 받을 정도로 인망이 없는 귀족이 있었는지 생각하기 위해 고개를 갸웃한 이레스였지만 그 모습이 자신이 귀족을 욕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 해머가 황급히 양손을 저었다.
“산적 단체입니다. 산적 단체. 다른 산적단에게 수입금을 넘기라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멀리 있는 검보다 근처에 있는 검이 더 무섭다는 뜻이었다.
“흐음…….”
다른 산적 단체에 접근하는 강한 무력을 가진 산적단이 있었는지 기억을 뒤져보았지만 기억에 존재하지 않았다.
기억에 없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둘 중에 하나였다.
테라인 왕국에 그렇게 큰 해를 끼치며 살아가던 산적 단체가 아니던가. 그냥 자신이 관심이 없어서 토벌했다고만 알고 있는 산적 단체, 둘 중 하나였다.
이레스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해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귀족 건드리면 뒈진다.”
“예!”
“아니, 사람들 건드리면 뒈진다!”
“……예!”
이번엔 뒤늦게 대답하는 것을 보니 망설였다는 것이 딱 느껴졌다.
잠시 생각을 하던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수입금을 넘기라고 할 정도면 그냥 내버려두지 않겠지.”
“하지만 화전민처럼! 그저 농사만 짓고 살겠습니다!”
“그냥 그레이즈 가문으로 와라.”
“……예?”
이번에도 잠시 망설이고 만 해머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그레이즈 가문을 찾아가라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레스가 해머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취직시켜줄게.”
“……진짭니까?”
“병사.”
“…….”
솔직히 말하면 정말 끌리는 제안이었다.
전장에서 싸우고, 검의 가문인 그레이즈 가문이라면 전쟁에서 선봉을 맡는 대표적인 가문이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죽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산적들의 손에 길러진 해머로서는 이렇게 살고 싶지가 않았다. 문제는 그렇다고 냉큼 받아들일 정도로 자신을 키워준 산적 단체를 버리고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레스가 망설이는 해머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그냥 힘들면 찾아와라.”
“알겠습니다! 그럼.”
큰 소리로 대답한 해머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려 하자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앞뒤로 저었다.
“이제 가. 그리고 한 번 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오야.”
“만수무강하십쇼!”
해머는 바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에 빠른 속도로 산속으로 도망을 쳤고 이레스는 그런 그의 등을 바라보다 턱을 쓰다듬었다.
“재미있는 놈일세.”
정령사가 되다 보니 다른 사람이 정령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저 해머라는 청년에게서 아주 희미하지만 정령의 기운을 느꼈기에 그는 그레이즈 가문으로 찾아오라고 말했다.
회유하기에는 산적이라는 것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레스뿐만이 아니라 그레이즈 가문 자체가 따로 신분을 가리지 않고 재능만 있으면 근처를 지나는 거지까지 회유했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찾아오더라도 정령의 기운이 너무 희미하다 보니 제대로 계약을 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그래서 그냥 힘들면 찾아오라고 했다.
자신이 하지 말라고 했지만 해머는 다시 상단이나 사람들을 약탈할 것이다.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정말로 근처에 수입금 일부를 달라고 협박하는 강한 산적단이 있으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운이 나쁘면 죽겠지만 그것은 이레스가 상관할 바 아니었다. 아까운 정령사 하나가 어이없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정령의 기운을 가지고 있지만 말했듯이 너무 희미하며 제대로 계약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해머의 등을 바라보던 이레스가 고개를 돌려 칼론 백작가의 장녀 셰리를 바라보았다.
“레드문 잘 받겠습니다.”
셰리가 싱긋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호위 잘 부탁드립니다.”
* * *
켈론 백작가는 중립파를 유지하고 있는 가문이었지만 그레이즈 가문의 장남과 혼약을 맺으면서 왕실파로 넘어온 가문이었다. 하지만 켈론 백작가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가문의 두 여인 때문이었다.
여인의 몸으로 테라인 왕국 최초로 법무부 장관이 되어 모든 법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셰리와 상업에 재능이 있어 엄청난 부를 자랑하는 켈론 상단의 여주인.
그레이즈 가문의 장남이자 소가주였던 이레스는 두 여인 중 셰리와 정략혼인을 하였지만 두 사람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혼인과 동시에 셰리가 법무부 장관이 되기 위해 성도로 올랐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략혼인이었기에 두 사람에게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레스는 셰리에게 아주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
이레스의 시선이 셰리가 타고 있는 마차에 고정되었다.
‘미안합니다.’
말 그대로 너무 미안했다.
전생의 이야기이기는 하나 자신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악착같이 버티고 버텨 법무부 장관까지 올랐던 셰리는 단 3년 만에 반역에 성공한 멕케인 가문에 의해 숙청을 당했다.
자신도 모르게 오랫동안 지켜본 것인지 마차를 지키던 병사와 기사들이 힐끔힐끔 이레스를 쳐다보았다.
이레스가 그런 병사들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그렸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병사들은 바로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았고 이레스는 그런 병사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다 주위에서 경비를 서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바로 고개를 돌리는 병사들과는 달리 기사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이레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들에게 이레스는 단 한 번이라도 만났으면 하는 귀족 중 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레이온 왕자를 익스퍼드 중급의 경지까지 올렸기에 신기하고 역시 왕실파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동맹연장 사신단으로 헥토스 왕국에 들렀을 때 일어난 사건이 소문이 퍼지면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저 잠시 가르침을 요청했는데 그 요청으로 두 기사의 경지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자신도 그를 만나 가르침을 청해 받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것이었다.
이레스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자 그들도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주변을 경계했고 이레스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다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케르취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에게 각자의 버릇이 있듯이 케르취에게도 버릇이 있었다.
그것은 전투가 끝나고 휴식을 취할 때가 되면 자신의 무기를 바닥에 꽂은 채 바라보는 것이었다.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자 멍하니 있게 된 이레스가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완벽히 뒤바뀌어버린 미래가 되어버렸네.’
대표적으로 바뀌어버린 미래를 뽑자면 첫 번째가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왕실로 돌아가는 레이온 왕자가 전생과는 달리 일찍 자퇴를 하고 돌아갔다는 것이고 두 번째가 헥토스 왕국의 멸망을 막아내고 미스릴 거래를 해냈다는 것, 세 번째가 헨바인 백작이 인신매매를 하고 있다는 것이고 마지막이 대략 3, 4년 뒤에 만났어야 할 켈론 백작가의 장녀 셰리를 지금 만났다는 것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또 다른 것이 있다면 헥토스 왕국을 다녀온 뒤에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사신단에 속해있던 귀족들에게 붙었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그레이즈 공작과 그리폰 기사단의 힘에 의해 사라졌으니 큰 관심을 끌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자신이 바꿔간 미래를 생각하던 이레스는 마차의 문이 열리며 셰리가 밖으로 나오자 그녀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그렸다.
“깨셨습니까?”
“잠이 안 와서요.”
그녀만의 특유의 아름다운 미소를 그린 셰리가 모닥불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레스는 그런 셰리를 바라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뒤바뀐 미래에 대해 천천히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무슨 일로 성도까지.”
멍하니 모닥불을 바라보던 셰리는 이레스의 질문을 듣자마자 진지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지금이 성도로 나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요.”
전생에서 법무부 장관이었던 셰리였다.
아무리 미래가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가진 각자의 꿈까지 바꿀 수는 없었으니 이레스는 그녀가 말한 성도로 나설 수 있는 기회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인신매매.
발견 시 즉각 사형이 가능한 대륙 최악의 범죄가 테라인 왕국에서 일어났으니 법과 정치에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지금이 테라인 왕국의 위기이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로 볼 수 있었다.
셰리는 처음 법무부에 발을 디뎠을 때 테라인 왕국이 정한 치안법에 대한 단점을 적은 서류를 보여주며 법무부에 발을 디딜 수가 있었다.
‘약간 빠른 감이 있지만 그쪽 분야에서는 천재라고 소문났었으니.’
법무부 장관이 되기까지 셰리가 테라인 왕국을 위해 개정한 법률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었다.
그것도 4, 5년 후 미래에서 법무부에 발을 디뎠을 때 한 달 만에 바꾼 것이 다섯 가지나 되었으니 지금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해도 법과 관련된 재능이 꽃필 시기가 아니라고 볼 수는 없었다.
이레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이번엔 셰리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레스 공자님은 무슨 일로 가시는 건가요?”
“헨바인 백작이요.”
“아아.”
법무부에 발을 디디기 위해 셰리는 헨바인 백작이 인신매매를 벌였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인신매매에 대한 법률과 귀족의 범죄가 왕국에 끼치는 여러 사건을 종합하여 서류로 만들었다.
셰리가 눈을 반짝이며 이레스에게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피해자의 숫자를 알 수 있을까요?”
현재 자신이 알기로는 셰리가 최초의 법무부 사람이었으며 최초의 법무부 장관이었다. 즉 아직까지 법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부 남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셰리도 그것을 알기에 무의식적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여인의 몸으로 법무부에 들어갈 확률이 적었으니 확률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온 서류를 재수정하려는 것이었다.
“음…….”
이레스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다 어차피 알려진 사항이라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대충 사십 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구출한 인원은 스물다섯, 아직 열다섯의 피해자들은 찾지 못하였죠.”
“……그렇군요.”
작게 고개를 끄덕인 셰리는 그 이후로 다양한 질문을 던졌고 이레스는 그 질문의 대답과 불확실하다는 말을 섞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