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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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50화
제11장 몇 대 맞고 시작하자? (2)
‘전쟁이 좋긴 하구만…….’
그를 데리고 동방 경계선에 위치한 공개 연무장에서 대련을 하던 이레스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이 기억하던 데인이 아니었다.
단순한 공격이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이 강력했고, 최소한의 움직임을 통해 상대의 빈틈을 찾던 전과는 다르게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식으로 강렬한 공격의 전투방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채애앵!
맑은 검명과 함께 두 자루의 검이 부딪쳤다가 떨어졌다.
데인은 뒤로 두 걸음 물러나고 이레스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통해 적을 쓰러트리는 전투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익스퍼드 상급 경지인 그가 익스퍼드 상급, 그것도 자신보다 몇 년 더 앞서 경지에 오른 정령검사를 압박할 수 있는 무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꽤 늘었는데?”
데인이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말을 받았다.
“말씀드렸다시피 전쟁에 익숙해져서.”
“…….”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전투방식이 데인에게 더 어울렸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자연스러운 공격이었다.
그렇기에 감탄한 것이었지만, 데인으로서는 이레스가 자신이 헬버튼의 가르침을 전부 무시하고 스스로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
“계속 가마.”
입을 꾹 다물며 자신을 바라보는 데인의 모습에 이레스가 씨익 미소를 그리며 말하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피아.”
쉬이익.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것이었지만 작은 바람과 함께 바람의 정령 실피아가 소환되었다.
“정령술도 사용하시는 겁니까?”
“응. 노엔.”
쿠구궁.
작은 지진이 일어나며 공개연무장 위로 땅의 정령인 노엔이 소환되었다.
“…….”
하늘을 날아다니는 소녀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바람의 정령 실피아와 이레스의 옆에 서서 소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땅의 정령 노엔을 번갈아 바라보던 데인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저, 도련님?”
“왜?”
“노엔은 원래 감추는 것이…….”
“아……. 동방 경계선은 아직 모르는구나.”
“……?”
“유실리안 제국에게 들켰어.”
해맑은 미소를 그리며 말하는 이레스를 멍하니 바라보던 데인이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 미친놈이였…… 헙!”
속으로 중얼거려야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튀어나왔다.
데인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그의 속마음은 나올대로 나온 상태였다.
“……하하하.”
“하하하.”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데인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고 이레스가 똑같이 웃음을 흘리는 순간이었다.
쉬이익!
공개연무장의 땅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흙가시가 솟아나 공격을 했다.
데인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검을 휘둘러 흙가시를 부러트렸고, 다시 이레스를 바라보는 순간 황급히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쉬이익!
흙가시가 생성되는 것과 동시에 바람의 화살 한 자루가 쏘아졌기 때문이었다.
황급히 허리를 숙여 바람의 화살을 피해낸 데인이 다시 자세를 잡으려는 순간, 허리를 숙였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아예 바닥에 몸을 밀착시켰다.
슈우웅.
그레이즈 가문의 검술 변화식인 다크 클라우드가 바람의 화살의 뒤를 따라 쏘아졌던 것이었다.
“역시 정령사와 대결하는 법을 잊었어.”
바닥에 몸을 밀착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레스가 말하자 데인이 황급히 옆으로 몸을 굴렸고, 그 순간 그의 얼굴이 있던 자리로 흙가시가 솟아올랐다.
“…….”
“…….”
“도련님?”
“왜?”
멍하니 흙가시를 바라보고 있던 데인의 부름에 이레스가 싱긋 미소를 그리며 받아주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기껏 키워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직장까지 알아본 인간을 배신한 놈한테 내가 그런걸 따질 것이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동의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렇긴 했다.
이레스가 그런 것까지 따질 정도였으면 자신이 한 행동을 웃으며 받아주었을 것이고, 일부러 동방 경계선을 지원해서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뚜둑. 뚜둑.
이레스가 목을 좌우로 꺾으며 몸을 풀더니 천천히 검을 늘어트렸다.
“일단 몇 대 맞고 시작하자?”
“피하는 것은?”
데인이 군침을 꿀꺽 삼키며 묻자 이레스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피해봐. 재주껏.
쉬이잉.
대답과 동시에 이레스의 신형이 사라졌고, 그가 자리하고 있던 곳에 흐릿한 잔상밖에 남아있지 않자 데인은 황급히 왼발을 주축으로 오른발을 뒤로 보내며 검을 휘둘렀다.
채애앵!
바람의 힘과 마나의 힘을 이용해 사라지듯이 빠른 속도로 우측으로 이동해 공격했지만 오감이 발달한 것처럼 바로 공격을 튕겨내는 데인이었다. 하지만 이레스는 오히려 미소를 그렸다.
“막아봐.”
“15분!”
데인이 갑작스레 소리를 질렀고 뒤로 물러나 있던 이레스가 고개를 갸웃할 때 그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15분만 버티겠습니다!”
“…….”
한마디로 15분만 버티면 용서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레스가 진지한 표정과 함께 바라보는 데인의 모습에 피식 실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내가 미쳤냐?”
“역시…….”
데인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 손잡이를 강하게 쥐었다.
15분만 버티게 해달라고 부탁해도 안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자신과 대련하는 이는 그레이즈 가문에서 가장 성질머리가 더러운 이레스였기 때문이었다.
“그래. 버틴다! 버텨!”
데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살기가 어린 눈으로 이레스를 바라보았고, 그 모습에 이레스가 똑같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땅 아래에서 흙가시를 생성하고 하늘 위에는 수십 개의 바람의 화살을 만들어 쏘아 보냈다.
“그래! 버텨봐! 새꺄!”
* * *
처음 이레스 일행과 헥토스 왕국 사신단이 찾아왔을 때 데인의 모습을 보고 당황함이 가득 찼던 회의실은 이젠 적막으로 가득 차 있었다.
테라인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자 모든 검사들이 단 한 번이라도 가르침을 받고 싶어하는 인물이 동방 경계선에서 최고의 검사로 이름난 데인과 대련을 펼치기에 구경을 갔었기 때문이었다.
“…….”
“……꿀꺽.”
기사들이 군침을 삼키며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해도해도 너무할 정도로 강했고, 해도해도 너무할 정도로 잔인했다.
정말 죽일 것처럼 흙가시를 소환했고 정말 몸 한 곳에 구멍을 낼 정도로 날카로운 바람의 화살을 만들어 쏘아 보냈고, 정말 몸을 터트릴 것처럼 오러탄을 쏘아 보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보아온 데인의 모습이 거짓말이라는 듯 재빠른 몸놀림과 전쟁터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화려한 검술로 그 공격을 막아냈다는 것이었다.
뭐, 1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때 이레스의 주먹에 얻어터졌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갑자기 기마민족이 공격했다고?”
회의실 상석에 앉아있는 이레스, 크리스, 데우스 왕자 중 이레스의 질문에 할튼이 깜짝 놀란 듯이 몸을 흠칫 떨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언제부터?”
“나흘 전이었습니다.”
“……?”
나흘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만히 생각하는 이레스의 모습에 그의 옆에 앉아있던 크리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헥토스 왕국의 사신단이 동방 경계선을 지났을 때입니다.”
“…….”
별의별 사건이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레스는 고개를 돌려 크리스를 바라보았고, 크리스는 고개를 돌려 데우스 왕자를 바라보았다.
“혹시 근래에 헥토스 왕국 측에서 기마민족을 건드린 적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만.”
접촉도 없는데 그들이 헥토스 왕국의 사신단이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공격을 했다는 것에 이레스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그럼 답은 나왔군요.”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크리스의 모습에 회의실에 자리하고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되었다.
크리스는 회의실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을 쭈욱 훑어보다 이레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유실리안 제국.”
“……걔네는 또 왜?”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는 이레스였고, 크리스는 그 모습에 싱긋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테라인 왕국과 헥토스 왕국의 동맹이 파기되면 가장 이득을 보는 곳이 유실리안 제국이기 때문이지요.”
“아…….”
그랬다.
헥토스 왕국의 사신단이 테라인 왕국의 국경에서 목숨을 잃는다면 아무리 그들을 습격한 이가 다른 나라의 인물이어도 테라인 왕국에서도 외교관계가 나빠지게 된다.
사신단에 합류하고 있는 이가 왕국의 1왕자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공격할 것이면 그들이 들어서기 전에 공격할 것이지, 왜 들어선 이후에 공격을 하냐 이거였다.
“……이레스 님.”
갑작스레 각자 생각에 잠겨 그들이 공격하는 이유를 생각하고 있을 때 크리스가 조심스럽게 이레스를 불렀다.
이레스는 바로 고개를 돌렸고, 그의 어색한 미소를 보고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표정이 무진장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만?”
“갑자기 한 사람이 떠오르다 보니 느낌이 이상해지더군요.”
“……한 사람이요?”
“제이스 왕자.”
“…….”
헥토스 왕국의 두 번째 왕자이자 귀족파의 힘을 쥐고 왕좌를 노리고 있는 데우스 왕자의 동생이었다.
“……설마.”
제이스 왕자의 이름이 나옴과 동시에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데우스 왕자가 작게 중얼거리자, 이레스도 뒤늦게 그의 말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바로 한쪽에서 무릎을 꿇고 손 들고 있는 데인을 바라보았다.
“통신구슬 있지?”
“있습니다만.”
헥토스 왕국과의 동맹 연장을 위해 함께 움직였던 데인이었기에 제이스 왕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가문으로 연락해.”
“뭐라고 전하면 되겠습니까?
천천히 손을 내린 데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묻자 이레스가 바로 동방 경계석, 국경 단장인 할튼을 바라보았다.
“병력의 숫자가 어떻게 됩니까?”
“오천입니다.”
이레스가 다시 데인에게 시선을 돌릴 때였다.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데우스 왕자가 진지한 목소리로 부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레스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길 바랍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미소를 그리며 받아주지만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이 정말이라면 모든 것을 없애버릴 듯이 활활 타오르는 눈빛을 머금고 있는 데우스 왕자였다.
* * *
“정말 가지가지 하는 아들놈이군.”
다시 한 번 울려퍼지는 이레스의 소문을 듣고 골머리를 감싸고 있던 그레이즈 공작은 통신구슬을 가지고 황급히 달려온 헬버튼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기사 수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기사 수련장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근무를 서고 있던 병사와 기사들의 인사를 받게 되었지만 그는 예전과는 달리 모든 인사들을 무시한 채 기사 수련장에 도착했다.
쿵!
그레이즈 공작이 기사 수련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수련을 하던 모든 기사들이 동시에 무릎을 꿇으며 왼손으로 오른쪽 주먹을 감싸쥐었다.
“주군을 뵙습니다!”
“구름 기사단과 레어울프 기사단에게 명령을 내리겠다.”
갑작스러운 명령 때문인지 그레이즈 공작이 말한 두 기사단장을 제외한 인원이 힐끔 그레이즈 공작을 바라볼 때 두 기사단장이 동시에 소리쳤다.
“구름 기사단 단장 벅튼이 명을 받들겠습니다!”
“레어 울프 기사단 단장 라칸이 명을 받들겠습니다!”
“지금 당장 기병 삼천을 모집하라.”
“…….”
일천이면 소수의 병력으로 선봉대에 어울리는 숫자였다. 하지만 그레이즈 공작이 소수의 병력을 말할 때마다 그들의 실력은 최상급, 즉 정예를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벅튼과 라칸이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대답하려 할 때 그레이즈 공작이 몸을 돌려 헬버튼을 바라보았다.
“그레이즈 가문의 가주로서 기사 헬버튼에게 명한다.”
젊은 기사들과는 다르게 자연스럽게 한쪽 무릎을 꿇은 헬버튼이 인자한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그레이즈 가문의 기사, 헬버튼이 명을 받들겠습니다.”
“제자 아이반과 오크라이더 오천, 구름 기사단과 레어 울프 기사단을 이끌고 동방 경계선으로 향해 이레스와 합류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
헬버튼의 대답을 듣자마자 다시 고개를 돌려 벅튼과 라칸을 바라보던 그레이즈 공작은 준비 시간을 주기 위해 먼저 걸음을 옮겨 기사 수련장을 떠났다.
통신구슬을 통해 들려온 설명이 100% 장담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이라면 테라인 왕국은 반드시 움직여야 했다.
유실리안 제국을 상대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최고의 아군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