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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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47화
제10장 반데크와 페이언 왕국 (1)
이레스가 다시 한 번 소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달은 것은 회담이 끝난 바로 그다음 날이었다.
“미……친.”
단 하루였다.
마치 자신이 두 속성의 정령과 계약을 했다는 것이 원래의 목적이라는 듯이 후련한 미소를 그리며 유실리안 제국의 사신들이 떠난 그다음 날, 테라인 성도뿐만이 아니라 테라인 왕국 곳곳에 이레스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없다는 두 속성의 정령과의 계약을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이자 정령검사인 이레스가 해냈다!
인신매매 피해자였던 엘프가 이레스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하여 두 속성의 정령과 계약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모두가 정령과 관련된 소문이었다.
단 하루였다. 단 하루 만에 사람의 입과 입을 통해 퍼지고 통신구슬을 통해 성도에 있던 귀족들이 가문에 보고를 하며 점점 소문이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지니 최소 한 달 안에 대륙 곳곳으로 퍼질 소문이기도 했다.
문제는 두 속성의 정령과 관련된 소문만 퍼지면 괜찮지만, 이레스라는 인물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그레이즈 가문의 사람들까지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리자 아주 쓸모없고 소문 자체를 가문에 유리하게 작용시키도록 노력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소문까지 퍼지게 되었다.
페이언 왕국이 선택한 미래가 기대되는 인물이 그레이즈 가문의 여식인 왕국의 꽃, 엘리스에게 첫눈에 반해 청혼을 하였다!
페이언 왕국의 정령검사 반데크가 이레스의 제자가 되어 두 속성의 정령과 계약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성도로 향하던 이레스가 그 소문을 듣자마자 바로 가문의 별장으로 걸음을 돌려 쉬고 있던 반데크와 아침부터 대련을 벌였다는 것은 하나의 여담이었다.
* * *
유실리안 제국의 사신들이 찾아왔을 때와는 다르게, 다음 날 오후의 대전에는 테라인 국왕, 레이온 왕자, 이레스, 그리고 멕케인 공작을 대신하여 자리한 멕케인 가문의 소가주인 크리스와 이번 회담의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 반데크가 자리하고 있었다.
페이언 왕국의 사신단이 찾아오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인신매매를 통한 정치적 압박을 위해서가 아닌 한 가지의 부탁을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기 때문에 멕케인 공작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크리스를 보낸 것이었다. 또한 테라인 국왕은 이딴 회담에 인력을 소비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모든 귀족들을 자신의 자리로 돌려보내 이번 회담의 중요 인물들만 자리하고 있었다.
어제 서 있던 그 자리에 똑같이 서 있던 이레스는 전날과는 다르게 대전에 있는 모든 이들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고는 작게 투덜거렸다.
“정령들은 거짓말 못 하는 거 아시면서.”
“바로 돌려보냈어야지 당황은 왜 했느냐?”
이레스의 투덜거림을 듣고 어이없다는 듯이 핀잔을 주는 테라인 국왕이었고,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심히 동의한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온 왕자였다.
“이번엔 네 잘못이 크다.”
“압니다. 저도 가면 맞아 죽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구요.”
아마 테라인 왕국 전체로 퍼지기 시작한 소문은 분명히 사고를 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던 그레이즈 공작의 귀에도 들어갔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즉, 일단 돌아가면 대련이라는 명목하에 마스터의 힘이 어떤 것인지 아주 철저하고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었다.
‘준비라도 마치고 소문이 퍼졌으면 좋으련만.’
두 정령과 계약을 했다는 소문이 퍼진 상태였기에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소문이 퍼졌다.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가는 날 이해할 수 있을거 같았고…….
비오는 날 정말 죽어라 맞으면 먼지가 나올지…….
돌아가는 날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고, 그 모습에 크리스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자 이레스는 바로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남의 불행이 그렇게 즐거우십니까?”
“후후후, 죄송합니다.”
지금 상황이 너무 재미있던 것인지 사과를 하면서도 웃음을 흘리는 크리스의 모습에 또 한 번 작게 한숨을 내쉬고만 이레스가 고개를 홱 돌려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반데크를 바라보았다.
“오면 바로 떠나라.”
“혀, 형님.”
“내가 왜 니 형님이야!”
한 나라의 국왕과 한 나라의 왕자가 함께 자리하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른 이레스가 작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그를 바라보며 음산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어차피 넌 엘리스의 짝이 아니었어, 그러니까 포기해.”
“포기 못합니다.”
“한 판 더 할까?”
어느새 그의 어깨 위에는 흙의 정령인 노엔이 앉아있었다.
이미 유실리안 제국에게 두 속성의 정령과 계약한 것이 들켰으니 남의 시선을 느끼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어차피 쏟아진 물, 그로 인해 맞아 죽을 수도 있지만 그 전까지는 속 시원하게 살려는 것이었다.
반데크가 입술을 살짝 내밀며 고개를 돌리고, 이레스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 대전의 문밖에서 기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페이언 왕국의 사신이 도착하였습니다!”
“들라 해라.”
끼이익.
문이 열리며 세 명의 남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가 서른 중반의 사내였으며 바다의 왕국인 페이언 왕국을 대표하는 푸른색 양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헉!”
사신들을 바라보던 반데크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서자 똑같이 페이언 왕국의 사신들을 바라보던 이레스가 고개를 돌렸다.
“왜? 아는 사람이라도 있냐?”
“아, 아버지.”
“…….”
아버지.
사전의 용어로는 자기를 낳아 준 남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었다.
이레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신단 선두에 서 있는 사내에게 고정되었다.
반데크의 아버지라면 페이언 왕국의 귀족 가문 중 하나인 베이큰 가문의 가주라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왕좌의 앞으로 걸어오자 이번에도 이레스가 앞으로 나서며 멈춰야 할 위치를 알려주었고, 베이큰 자작은 작은 미소를 그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페이언 왕국의 사신, 베이큰 자작이 테라인 왕국의 주인을 뵙습니다.”
“……수고가 많네.”
어서 오라는 말이 아니라 아들 때문에 힘든 아버지에게 하는 격려였다.
베이큰 자작은 테라인 국왕의 격려를 듣고는 무의식적으로 반데크를 바라보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유실리안 제국과의 회담은 정치적인 전쟁이었기에 딱딱하고 긴장감으로 가득 찼지만, 페이언 왕국과의 회담은 사소한 이유 때문에 찾아온 것이어서 훈훈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아니네.”
작게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은 테라인 국왕이 일을 보라는 듯이 반데크를 바라보자 베이큰 자작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페이언 왕국의 사신이 페이언 왕국의 주인을 대신하여 베이큰 더 반데크에게 명령을 내리겠다.”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사신과 그 사신을 받아들이는 설명이었고, 반데크는 몸을 흠칫 떨고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페이언 왕국의 베이큰 더 반데크, 명을 듣겠습니다.”
“……듣겠다?”
“예! 듣겠습니다!”
“…….”
베이큰 자작은 입을 꾹 다물었고, 테라인 국왕이 재밌다는 듯이 미소를 그렸고, 레이온 왕자가 민망한지 이마를 살짝 긁었다.
국왕의 명령으로 찾아온 사신을 만난다면 ‘명을 듣겠습니다.’가 아닌 ‘명을 받듭니다.’라고 말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귀족이라면 당연한 것이었는데 반데크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내뱉었다.
“…….”
“…….”
순식간에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감싸기 시작했고, 베이큰 자작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테라인 국왕을 바라보았다.
“잠시 양해를 구해도 되겠습니까?‘
“그러도록 하게.”
테라인 국왕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베이큰 자작은 다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반데크를 바라보았다.
“아들아.”
“……예, 아버지.”
“그냥 오거라. 애비 성격 건드리지 말고.”
“……죄송합니다.”
“하아.”
대전을 가득 채우고 사라질 정도의 큰 한숨을 내쉰 베이큰 자작은 고개를 살짝 들고 있는 반데크의 눈빛이 단호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자신의 아들 옆에 서 있는 이레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들을 둔 애비로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반데크의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제대로 된 귀족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레스는 작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고, 그 모습에 또 한 번 한숨을 내쉰 베이큰 자작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엘리스가 우리 아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확실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이레스였고 베이큰 자작은 착찹한 눈으로 반데크를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물었다.
“혹시…….”
“제 동생은 정략혼인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시킬 겁니다.”
“……그렇습니까?”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다시 한 번 묻는 베이큰 자작의 모습에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저희 아버지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후…….”
크게 숨을 들이킨 베이큰 자작이 반데크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들아.”
“예, 아버지.”
“포기하고 돌아와라.”
“못합니다.”
단 한 번도 대답을 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열 받은 것인지 이마를 살짝 부여잡은 베이큰 자작이 다시 아무 말 없이 반데크를 쳐다볼 때 테라인 국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되겠소?”
“예, 말씀하시지요.”
바로 몸을 돌리며 허리를 살짝 숙이는 베이큰 자작이었고, 테라인 국왕은 그런 아버지와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반데크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레이즈 공작이 하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않았지만 아마 반데크를 거절하는 이유는 페이언 왕국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오.”
“……예.”
“그리고 페이언 왕국은 바다를 떠날 생각이 없고.”
“맞습니다.”
“그럼 테라인 왕국과 동맹을 맺고 반데크에게 테라인 왕국과 페이언 왕국과의 서신을 주고받게 하는 역할을 맡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
베이큰 자작이 힐끔 반데크를 바라보다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버지로서 아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놓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아들은 왕국이 정한 미래를 기대하는 인물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귀족으로서 그를 테라인 왕국에 남겨두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죄송합니다.”
“흐음……. 그럼 방법이 없지 않소?”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테라인 국왕도 머리를 굴려서 떠나지 않으려는 반데크와 데리고 가려는 베이큰 자작의 사이에서 가장 좋은 방법을 떠올려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불가하다고 하면 반데크는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눈치만 봐도 현재 페이언 왕국의 사신단에는 반데크를 이길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혹시 반데크가 미래를 기대하는 인물 중에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대전에 자리하고 있던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멕케인 가문의 소가주 크리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