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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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45화
제9장 회담 전쟁 (1)
연회가 끝난 다음 날.
테라인 왕성 대전에는 아침 일찍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슬리안 황자가 주를 이룬 회담이 아닌 사신단의 대표인 페이른 후작이 주를 이룬 회담을 위해 일찍 대전에 모인 것이었다.
“…….”
10분 뒤에 도착한다고 연락한 유실리안 제국의 사신을 기다리며 테라인 국왕은 천천히 대전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언변이 약한 무관 귀족과 아직 젊은 혈기왕성한 귀족들을 전부 내보내고 최소 10년은 정치계에서 머물렀던 귀족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왕좌와 가장 가까운 곳에 멕케인 공작과 그레이즈 가문의 대표로 자리한 이레스가 서 있었다. 또한 그 옆에는 테라인 왕국의 유일한 왕자인 레이온 왕자와 왕실호위기사단 단장인 소드마스터 케이든 후작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치와 언변으로 따지면 테라인 왕국 최고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고, 무력으로 따져도 아돈 백작과 같은 경지에 머무르고 있는 케이든 후작과 수많은 소문을 만들어내고 있는 정령검사 이레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10분이라는 시간이 마치 한 시간, 하루, 열흘, 일 년의 시간처럼 아주 조용한 대전 안으로 기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유실리안 제국의 사신이 도착하였습니다!”
“…….”
모든 귀족의 시선이 바로 대전의 문으로 돌아갔고, 잠시 눈을 감으며 생각을 정리하던 테라인 국왕이 천천히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들라 해라.”
끼이익.
테라인 국왕의 대답과 동시에 대전의 문이 열리며 열 명의 사내와 한 명의 여인이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저벅저벅.
대전 안에는 유실리안 제국의 사신들이 만들고 있는 발소리밖에 들리지 않았고, 모두의 시선은 사신들의 가장 앞에 서 있는 노인에게 고정되었다.
사신들을 이끌며 걸음을 옮기던 페이른 후작은 왕좌로 오르는 계단 앞까지 도착하는 순간 이레스가 한 걸음 내디디며 바라보자 싱긋 미소를 그리며 그 자리에서 멈춰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유실리안 제국의 페이른 후작이 테라인 왕국의 주인을 뵙습니다.”
“…….”
슬리안 황자가 하였던 인사와는 다른 인사였다. 하지만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던 테라인 국왕은 당황하지 않고 작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실리안 제국 사신단의 방문을 환영하는 바이오.”
“…….”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질문하여 음산한 분위기가 흐르던 이틀 전과는 달리 훈훈한 분위기가 감도는 회담의 시작이었다.
페이른 후작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테라인 국왕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그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 한쪽 무릎을 꿇었고, 인사를 하였던 다른 제국의 사신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뒤를 돌아봐 모든 귀족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확인한 페이른 후작이 죄송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살짝 숙인 후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실리안 제국이 테라인 왕국에게 사신단을 보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청하겠소.”
이유는 이미 슬리안 황자에게 들어 알고는 있지만 이번에도 예를 다하며 답하는 테라인 국왕이었고 페이른 후작은 대답을 듣는 것과 동시에 바로 등 뒤로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이 뒤에 서 있는 귀족들에게 향하는 순간 페이른 후작의 바로 뒤에 서 있던 귀족이 품에서 서신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귀족에게서 서신을 받은 페이른 후작은 바로 돌돌 말려져 있는 서신을 활짝 펼치며 입을 열었다.
“인신매매에 대하여 질문하겠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겠소.”
“질문에 답하는 도중 만약 그 안에 거짓말이 존재한다면 테라인 왕국은 유실리안 제국은 물론이고 대륙을 속였다고 판단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것도 모두가 예상했던 이야기였기에 대전에 자리하고 있던 귀족들이 입을 다물었고, 테라인 국왕도 음성이 아닌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대답을 했다.
페이른 후작이 잠시 서신을 바라보더니 그것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것처럼 바로 고개를 들었다.
“테라인 왕국 소속의 귀족, 헨바인 백작이 인신매매를 벌였습니다. 테라인 왕국은 그의 죄를 인정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소.”
“인정한다고 하여 다시 묻겠습니다. 인정하겠다는 것은 테라인 왕국은 헨바인 백작이 인신매매를 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음에도 묵인했다는 뜻입니까?”
“…….”
테라인 국왕이 눈가를 살짝 좁히며 페이른 후작을 바라보다 피식 실소를 흘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오?”
“…….”
이번엔 페이른 후작이 입을 다물며 바라보았고 이내 작은 미소를 그리며 서신을 힐끔 내려다보며 말했다.
“형식상 절차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렇다면 대답하겠소. 아니오.”
분명 그가 펼친 서신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기도 그랬기에 테라인 국왕은 바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페이른 후작이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왕좌에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는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이시자 헨바인 백작을 징벌하였던 이레스 공자님께 묻겠습니다.”
“답하겠습니다.”
“질문에 답하는 도중 만약 그 안에 거짓말이 존재한다면 테라인 왕국은 유실리안 제국은 물론이고 대륙을 속였다고 판단하겠습니다.”
“…….”
이레스는 회담이 시작되기 전 자신과 함께 대전에 도착한 멕케인 공작의 말이 떠올랐다.
* * *
대전으로 걸음을 옮기던 이레스는 우연찮게 대전으로 향하는 기다란 복도 앞에서 멕케인 공작과 조우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허허허, 요즘 사고를 많이 치고 다닌다고 들었네.”
왕국 안에서는 적이지만 대륙을 무대로 삼는다면 그 누구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아군이 그레이즈 가문과 멕케인 가문이었다.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인사를 받아주는 멕케인 공작의 모습에 이레스는 대답 대신 작은 미소와 함께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같은 길을 걸으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이레스의 행동을 지켜보던 멕케인 공작이 입가에 그린 미소를 진하게 만들며 대전으로 걸음을 옮길 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심하게.”
“……예?”
적이라고 볼 수 있는 멕케인 가문의 가주였지만, 지금은 유실리안 제국이라는 거대한 적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믿어야 하는 아군이었다. 그래서 이레스는 멕케인 공작을 우대한다는 뜻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멕케인 공작이 이레스의 되물음에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아마 유실리안 제국에서는 테라인 전하를 공격하기보다는 이레스 공자를 공격할 것이 분명하네.”
“어째서입니까?”
“헨바인 백작을 처리한 가문이 어디인가?”
“……그렇군요.”
그레이즈 가문이 이번 사건의 주인공인 헨바인 가문을 멸문시켰기에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왕실보다는 직접 처리하였던 그레이즈 가문을 공격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었다.
멕케인 공작이 이해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레스의 모습을 힐끔 쳐다본 뒤에 회담이 열리는 대전의 문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모든 것을 토해내야 하네. 단 하나의 거짓이 있는 순간 그 거짓이 테라인 왕국을 위험에 빠트릴 수가 있으니.”
* * *
“알겠습니다.”
잠깐이지만 조금 전 멕케인 공작과의 대화를 떠올린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페이른 후작은 잠깐의 망설임이 마음에 걸렸는지 그를 빤히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레이즈 가문은 헨바인 가문을 공격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인신매매였습니다. 맞습니까?”
“그것은 하나의 이유일 뿐 다른 이유도 존재합니다.”
“…….”
페이른 후작이 가만히 이레스를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헨바인 백작은 은밀하게 그레이즈 영지와 가장 가까운 몬스터의 숲을 선동하여 영지를 공격하려 하였습니다.”
“…….”
이레스와 마찬가지로 잠깐의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는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페이른 후작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더욱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레스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페이른 후작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레이즈 가문이 관리하는 몬스터의 숲에서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몬스터의 숲으로 어떤 인간들이 침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몬스터의 숲으로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일 터인데 어떻게 그것을 의문으로 삼으신 겁니까?”
“그 인간들이 붙잡히기 전에 그레이즈 가문에서 오크들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
오크와의 동맹은 이미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유실리안 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문 중에 하나였다.
몬스터로 분류되었던 오크들이 인간들과 동맹을 맺으며 다시 이종족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예측 때문이었다.
페이른 후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설명을 이어달라는 듯이 바라보았다.
이레스는 그런 페이른 후작을 바라보며 무슨 꿍꿍이로 설명을 부탁하는 것인지 궁금한 듯이 바라보며 다시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오크들에게 붙잡혔고, 그레이즈 가문으로 연행되었습니다. 몬스터들을 선동하여 공격하려 했으니 그레이즈 가문에서는 주범을 찾기 위해 고문을 하였고, 그 결과 헨바인 백작의 명령을 받은 특수병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인신매매가 아니더라도 무의미한 살생을 저지를 작전을 펼쳤다는 것으로 멸문이 가능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헨바인 가문에서 몬스터의 숲으로 선동하려 했다는 증거를 포착한 그레이즈 가문은 헨바인 가문으로 스파이를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유실리안 제국은 그레이즈 가문의 대표, 이레스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하겠습니다.”
페이른 후작이 손을 들어 설명을 중도에 끊어버리더니 테라인 국왕을 바라보며 허리를 깊게 숙여 양해를 표한 후에 다시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헨바인 백작가를 찾아갔던 그레이즈 가문의 스파이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요청은 필요없네.”
잠시 생각을 하던 테라인 국왕이 대답하자 페이른 후작은 그 말의 뜻이 이 안에 스파이로서 헨바인 가문에 잠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전에 자리한 모든 이들을 바라보았지만 처음 듣는다는 듯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레스가 손을 들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때 테라인 국왕의 말뜻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제가 헨바인 백작가에 숨어들었던 스파이입니다.”
“…….”
설마 한 가문의 소가주가 직접 찾아갔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잠시 당황한 듯 이레스를 바라보던 페이른 후작이 황급히 미소를 그리며 질문을 던졌다.
“이레스 공자님께서 정말 헨바인 백작가로 잠입하셨습니까?”
“예.”
“몬스터의 숲을 선동하려 했다는 증거는 잡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헨바인 가문을 찾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찾은 증거물은 헨바인 백작이 명령을 내렸다는 사망보험 계약서였습니다. 하지만 가문의 인장이 찍혀있지 않았고, 증거로는 불확실하다는 느낌을 받아 침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헨바인 백작이 정말로 몬스터의 숲을 선동하려 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음에도 헨바인 가문으로 잠입했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솔직하게 대륙 어디에도 다른 가문에 스파이, 즉 첩자를 심는 것에 대한 법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누가 되었든 첩자를 발견하는 즉시 사살하기 때문에 일부로 법률을 만들 이유가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공작가인 그레이즈 가문에서 백작가인 헨바인 가문에게 스파이를 보낼 때 한 가문의 소가주를 보낼 것이라는 것은 어이가 없는 이야기였다. 거기다 스파이로서 헨바인 가문에 잠입했다는 이레스는 너무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