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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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43화
제8장 제국의 사신들 (2)
끼익.
다시 한 번 테라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역시 왕성은 나와 안 맞아.”
작게 중얼거린 이레스가 천천히 눈을 뜨며 테라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누구나 반할 정도의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왔다면 두 번째는 젊은 사내였다. 그것도 오랜만에 보는 사내였다.
“오랜만입니다.”
“일하느라 수고하십니다.”
멕케인 가문의 소가주, 크리스였다.
인사를 건네며 다가오는 크리스의 모습에 고개를 살짝 숙이며 농담 삼아 말을 건네는 이레스였다.
크리스는 그 모습에 작은 미소를 그리더니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똑같이 연회장 안쪽을 바라보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고, 어느새 한 노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슬리안 황자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도착했다고 하더군요.”
“아…….”
이레스의 시선도 크리스를 따라 슬리안 황자 일행에게 돌아갔다.
멕케인 공작의 또래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와 그 뒤에 서 있는 4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크리스는 그의 시선이 페이른 후작과 함께 연회장에 도착한 붉은 머리의 사내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돈 백작. 유실리안 제국의 마스터 중 한 사람입니다.”
“확실하게 압박하겠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지네요.”
테라인 왕국에는 왕국의 검이라 불리는 그레이즈 가문의 가주와 헬버튼, 그리고 왕실호위기사단장인 케이든 후작, 마지막으로 테라인 왕국의 남쪽 경계선을 지키고 있는 마이손 백작까지 총 네 명의 마스터가 있지만 현재 왕실 안에 자리하고 있는 마스터는 케이든 후작이 전부였다.
아마 페이른 후작이 마스터 경지의 기사인 아돈 백작을 데리고 온 이유는 함부로 마스터 경지의 기사를 움직일 수 없는 테라인 왕국과는 다르게, 유실리안 제국은 언제 어디서든 마스터 경지의 오른 기사를 데리고 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일 것이 분명했다.
“설마 예상 밖입니까?”
물끄러미 아돈 백작을 바라보던 이레스가 크리스에게 고개를 돌리며 묻자 그는 작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님께서는 이미 마스터 경지에 오른 기사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총 여덟의 마스터를 보유하고 있는 유실리안 제국이었기 때문에 멕케인 공작은 이번 회담에서 분명 소드마스터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 가능한 빨리 끝나면 좋겠는데.”
작게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리는 이레스의 모습에 크리스가 작은 미소를 그리며 물었다.
“재미없으십니까?”
“지금 제 생각은 아마 크리스 공자님과 똑같을 것입니다.”
“쿠쿠쿡.”
웃음을 터트린 크리스가 다시 연회장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페이른 후작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페이른 후작으로 인해 아주 오래 걸릴 것이 분명합니다. 아버님께서 반드시 말을 섞으면 안 된다고 했던 인물이니까요.”
“그렇다면 계속 이렇게 테라스에서 죽치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군요.”
“그렇죠.”
크리스의 대답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이레스가 다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휴식을 취하려 할 때였다.
끼이익.
또 한 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레스는 바로 고개를 살짝 내려 테라스에 들어선 이를 확인하고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만석입니다. 다음에 다시 오십시오.”
레이온 왕자였다.
“…….”
자신을 힐끔 쳐다본 뒤에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레스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레이온 왕자가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그의 옆에 앉아있는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저런 놈하고 엮여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습니다.”
“후후.”
작은 미소를 그린 크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레이온 왕자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레이온 왕자님을 뵙습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크리스와 똑같이 미소를 그리며 인사를 받아준 레이온 왕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이레스의 옆에 서서 인상을 찌푸렸다.
“실피아는 왜 소환했냐?”
“……예?”
이레스가 고개를 살짝 틀어 자신을 바라보자 레이온 왕자는 바로 엄지손가락으로 등 뒤를 가리켰다.
연회장 안쪽에는 유실리안 제국의 황녀인 유레이아 황녀와 이레스의 정령인 실피아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다.
“벌써 소문이 돌았다.”
“……아, 진짜.”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린 이레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레이온 왕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또 뭡니까?”
“이번 소문은 간단하더군. 유레이아 황녀와 정령 실피아는 예전에 만난 적이 있다.”
“……간단하군요.”
생각보다 간단하다는 느낌을 받아서인지 바로 관심을 끊으려 했던 이레스였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크리스의 말에 인상을 또 한 번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은 왕실에서도 모르는 사이 이레스 공자님이 유실리안 제국의 황족들과 만난 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정치계에서 그레이즈 가문을 제외시키기에는 아주 좋은 소문이라고 볼 수 있죠.”
“황족이기 때문인가요?”
“예.”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크리스의 모습에 물끄러미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실피아를 바라보던 이레스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돌려 레이온 왕자를 바라보았다.
“큰 문제입니까?”
“사소한 문제가 될 수도 있고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진짜 빌어먹을 인생이다. 빌어먹을 인생.”
사고치지 않을라 했는데 또 사고를 치고 말았다.
* * *
끼이익.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계속되는 연회가 지겨워졌는지 몇몇 귀족들이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할 때 또 한 번 테라스의 문이 열렸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테라스 안으로 들어온 이를 확인한 이레스가 인상을 화악 찌푸렸다.
“하하하. 이레스 공자님께서는 제가 싫은가 봅니다.”
‘싫다고 해도 떠나지 않을 거면서 말은 오질라게 잘해요. 진짜.’
웃으며 다가오는 슬리안 황자의 모습에 속으로 욕설을 내뱉은 이레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슬리안 황자님을 뵙습니다.”
“그레이즈 가문의 이레스 공자님을 뵙습니다.”
분명 미소를 그리며 자신의 인사를 받아주는데 참 재수 없다는 생각을 한 이레스가 다시 바닥에 주저앉으려 할 때였다.
“아, 레이온 왕자님은 아까 인사를 나누었지만 이레스 공자님에게는 아직 소개시켜드리지 않은 분이 계셔서 찾아왔습니다.”
깜빡했다는 듯이 검지로 머리를 툭툭 두들긴 슬리안 황자가 몸을 돌리며 테라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유실리안 제국의 책사이신 페이른 후작님과 제국의 마스터이진 아돈 백작이십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테라스를 바라보는 순간 두 사내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더니 슬리안 황자에게 다가왔다.
다시 자세를 잡고 서 있으려 하는데도 이상한 중압감이 몰려왔다.
이레스는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그 순간 그의 머리 위에서 작은 바람이 불며 정령 실피아가 나타났다.
“그 아이가…….”
슬리안 황자가 어느새 이레스의 머리 위에 나타난 작은 소녀를 바라보며 작게 감탄하며 중얼거렸지만 이레스는 그의 중얼거림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크리스에게 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한바탕 난리치면 반드시 죽겠지요?”
“예.”
“버텨야 하는데…… 으음.”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린 이레스는 양옆에 서 있는 레이온 왕자와 크리스가 이상한 중압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다가오는 두 인물을 바라보고 있자 다시 고개를 돌려 아돈 백작을 바라보았다.
유실리안 제국의 특징인지 작게 미소를 그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참 재수 없었다.
이대로 버텨야 할 것인지, 물러서야 할 것인지 자신도 모르게 생각하던 이레스가 피식 실소를 흘리는 순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슬리안 황자의 다리 안쪽으로 바람의 화살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