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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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39화
제6장 다시 만난 실피아 공주 (2)
“…….”
이레스가 지금 자신의 앞에 펼쳐진 상황을 확인하고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한 나라의 왕자라는 놈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을 만나기 위해 직접 왕성으로 나왔고, 한 나라의 공주라는 여인은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바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고, 왕족을 수호하는 기사단이란 것들은 타 왕국의 귀족에게 무릎을 꿇고 있으니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던 것이었다.
이레스가 눈동자만 살살 돌려 주위를 살펴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들어가실까요?”
“그럼 사양하지 않고.”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싱긋 미소를 그리며 대답하는 데우스 왕자였다.
* * *
“이건 진짜 희귀한 광경이네…….”
성도에 자리 잡은 그레이즈 가문의 별장 손님방에서 느껴지는 모습에 반데크가 작게 중얼거리자 이레스는 바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조용히 말했다.
“한마디만 더하면 알지?”
“예.”
대답과 동시에 입을 다물며 차를 홀짝홀짝 마시는 반데크를 보던 이레스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미소를 그리고 있는 데우스 왕자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왕자님께서 이곳엔 어쩐 일로?”
“이번 사건을 도와드리기 위해 오게 되었습니다.”
“……예?”
헥토스 왕국이 어떻게 도와주려고 왕자와 공주를 보냈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았지만, 데우스 왕자가 미소만 그릴 뿐 대답을 하지 않자 이레스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실피아 공주를 바라보았다.
“잘 지내셨습니까, 공주님?”
“네? 네.”
엘리스와 똑같은 외모의 소녀가 쑥스러워하는 모습에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아무도 모르게 빠른 속도로 미간을 찌푸렸다가 바로 인상을 편 이레스가 다시 데우스 왕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니, 도울 거면 한 나라의 왕자만 오면 되는데 공주는 왜 데리고 오는데, 공주는.’
클라리아도 울음을 터트렸던 사건이 실피아 공주와의 스캔들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사건의 주인공이 자신을 찾아왔으니 만약 이 일이 소문이라도 나는 날엔 자신은 가문으로 돌아오자마자 클라리아의 눈물을 막기 위해 별의별 행동을 다 취해야 할 것이 분명했다.
약간 째려보는 식으로 바라보았음에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미소를 그리며 시선을 마주치는 데우스 왕자였다.
‘담이 커졌다고 해야 하나? 아버지를 닮아간다고 해야 하나?’
데우스 왕자를 빤히 바라보던 이레스가 무언가 바뀐 그의 모습에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미 저보다 먼저 도착하신 거 같으니 아실 것입니다.”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
“유실리안 제국.”
“아……. 만난 것은 아니지만 멀리서 마차를 보았습니다. 누구나 예상하듯 아마 정치적 압박 또는 징벌이라는 이유로 전쟁의 명분을 얻기 위해서겠죠.”
이레스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것입니다. 물론 전쟁의 명분을 얻는 것은 어렵겠지만 말이지요.”
“있어도 상관없기는 합니다. 이미 혈맹으로 묶인 테라인 왕국과 헥토스 왕국 아닙니까. 테라인 왕국의 무력과 헥토스 왕국의 미스릴을 합치면 가능할 거 같기도 한데.”
거대한 미스릴 광맥을 다시 찾아낸 헥토스 왕국은 왕국의 최고 전성기라 불리던 뛰어난 무관, 문관들을 보유한 가운데 미스릴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단과 정예병들까지 만들어냈다.
아마 테라인 왕국과 헥토스 왕국이 유실리안 제국과 전쟁이 일어난다면 오히려 두 왕국은 유실리안 제국의 공격을 막아낼 가능성이 높았다.
병사를 제외하고 기사들과 마법사의 실력만 따지면 테라인 왕국은 이미 유실리안 제국의 무력과 비슷하다고 했고, 헥토스 왕국은 뛰어난 무관과 문관들로 인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거기에 미스릴까지 추가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아마 두 왕국이 뭉친다면 병력의 숫자는 밀리겠지만 무력으로는 압도할 가능성이 있었다.
진한 미소를 그리며 말하는 데우스 왕자의 모습에 이레스가 피식 실소를 흘리며 답했다.
“물론 정리가 끝난다는 전제하의 이야기이지만요.”
“그렇긴 하죠. 하하하!”
이레스가 말하는 정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던 데우스 왕자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고, 이레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물었다.
“그런데 정말 무슨 일로 오신 것입니까?”
테라인 왕국을 도우러 왔다며 회담이 시작되기 전까지 왕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되었지, 굳이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아…….”
데우스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들기고는 고개를 돌려 실피아 공주를 바라보았다.
“…….”
“…….”
순간적으로 네 사람의 주위로 정적이 찾아왔다.
자신의 여동생을 빤히 바라보던 데우스 왕자가 씨익 웃으며 이레스를 한번 바라보고는 그 옆에 앉아있는 반데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반데크 공자, 잠시 산책 좀 하겠소?
“……아.”
실피아 공주와 이레스의 사이에서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반데크가 작게 탄성을 내지르더니 데우스 왕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시겠습니까? 왕자님.”
“하하하!”
“하하하!”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고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동시에 손님방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이었다.
이레스가 두 사람이 나간 손님방의 문을 바라보다 실피아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헥토스 왕국에서 만났던 그녀의 성격을 보아 먼저 인사를 할 것 같지 않자 이레스가 먼저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실피아 공주가 고개를 번쩍 들어 바라보더니 다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레스 님께서도…….”
“…….”
“잘 지내셨나요?”
“예.”
단답으로 대답한 이레스였지만 실피아 공주는 자신의 말을 받아준 것이 좋았는지 고개를 숙인 상태로 미소를 그렸고, 테이블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이레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확실하게 느껴지는 사랑의 감정이었다. 그래서 너무 한숨이 나왔다.
여동생인 엘리스와 비슷한 외모 때문에 그저 여동생 같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거기다 나이도 자신보다 세 살이나 어린 열일곱이었다.
자신의 여동생보다 겨우 한 살 많은 것에 불과했다.
‘미치겠구만.’
문제는 짜증난다고 인상을 찌푸릴 수가 없고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테이블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것처럼 그녀도 테이블을 거울 삼아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레스는 그 순간 생각했다.
차라리 오우거 왕과 한 번 더 싸우라면 싸웠지, 엘리스 공주와 한 방에서 단둘이 있는 것은 정말 못 해먹는 일이라고 말이다.
* * *
테라인 왕성의 거대한 대전.
왕좌에 앉아있던 테라인 국왕은 대전의 문에 집중하며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레이온 왕자에게 말했다.
“단 한 치의 틈을 보이지 말거라. 소문대로라면 유실리안 제국의 1황자는 지금의 황제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예.”
짧게 대답했고, 자신처럼 대전의 문을 바라보고 있지만 테라인 국왕은 왕자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유실리안 제국의 사신이 도착했습니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테라인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라 해라.”
끼이익.
대답과 동시에 대전의 문이 열리며 황금색 갑옷으로 무장한 다섯 명의 기사와 그들의 호위를 받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두 남녀가 왕좌의 길을 걷더니 계단 앞에서 멈춰 섰다.
두 남녀는 테라인 국왕을 한 번 일변하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유실리안 제국의 일황자, 슬리안이라고 합니다.”
“유실리안 제국의 일황녀, 유레이아라고 합니다.”
“…….”
아무리 제국의 황자라고 해도 한 나라의 주인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테라인 국왕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지만 지금 불리한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한발 물러섰다.
“힘든 걸음 하셨소.”
“아닙니다. 당연히 찾아 뵀어야 했는데 늦게 도착해서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뭐가 송구스럽고, 무엇 때문에 당연히 찾아 뵀어야 했다는 것일까…….
테라인 국왕은 그 말뜻을 알아내기 위해 슬리안 황자를 바라보았고, 그는 미소를 그리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테라인 국왕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 은밀하게 찾아왔던 멕케인 공작이 한 걸음 내디디며 먼저 입을 열었다.
“테라인 왕국의 멕케인 공작이 유실리안 제국의 황자를 뵙습니다.”
슬리안과 똑같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하는 멕케인 공작이었다.
“…….”
아무 말 없이 멕케인 공작을 바라보던 슬리안은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고 있자 똑같이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유실리안 제국의 일황자 슬리안이오.”
이미 황자라는 이유로 존대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는지 멕케인 공작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슬리안의 반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유실리안 제국에서 무슨 이유로 테라인 왕국을 찾아온 것입니까?”
“이유는 아시다시피 하나뿐입니다.”
미소를 그리며 말하는 슬리안이었고 대전에 자리한 모든 귀족들이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헨바인 백작이 저지른 일로 인해 테라인 왕국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약간 긴장된 것이었다.
슬리안이 긴장한 듯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귀족들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진하게 만들려 할 때 멕케인 공작이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허허허,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
바로 대답하는 대신 멕케인 공작을 빤히 바라보았다.
테라인 왕국을 찾아오기 전에 미리 테라인 왕국의 중요한 정보를 머릿속에 박고 있던 슬리안이었다.
‘멕케인 공작이라…….’
테라인 왕국의 세 개의 기둥 중에 하나이자 왕실파와 귀족파로 나뉜 테라인 왕국의 정치계 중 귀족파의 수장을 맡고 있는 정치계의 소드마스터라 칭송받는 귀족이 멕케인 공작으로, 회담이 열릴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인물이라고 알고 있었다.
‘역시 테라인 왕국이라 이건가…….’
소문을 들었을 때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아 테라인 왕국이 유실리안 제국과 맞먹는 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을 때 딱 절반, 마스터의 숫자만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소문은 진실이었다.
슬리안이 작게 미소를 그리며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 대전의 문 바깥에서 다시 기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헥토스 왕국의 사신이 도착했습니다!”
“…….”
슬리안이 고개를 돌려 대전의 문을 바라보았고 테라인 국왕이 천천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들라 해라.”
끼이익!
문이 열리며 일남일녀가 호위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왕좌를 향한 길을 걸어 계단 앞에서 멈춰서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헥토스 왕국의 일왕자 데우스가 테라인 왕국의 주인을 뵙습니다.”
“헥토스 왕국의 왕녀 실피아가 테라인 왕국의 주인을 뵙습니다.
유실리안 제국의 황족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데우스 왕자와 실피아 공주의 인사였다.
테라인 국왕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시오.”
두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레이온 왕자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바로 옆에 서 있는 슬리안 황자와 유레이아 황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헥토스 왕국의 일왕자 데우스라고 합니다.”
“유실리안 제국의 일황자인 슬리안이라고 합니다.”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 있지만 눈을 웃고 있지 않은 슬리안 황자였다. 그것은 한평생 동생인 제이스 왕자에게 일부로 빈틈을 보이면서 단 한 차례의 반격을 기다리던 데우스 왕자도 마찬가지였다.
생각지도 못한 데우스 왕자의 지원으로 멕케인 공작이 작게 미소를 그리며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 또 한 번 대전의 문밖에서 기사가 소리쳤다.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가 도착했습니다.”
“…….”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대전의 문으로 향했다.
슬리안 황자는 헥토스 왕국을 집어삼키기 위해 준비해둔 모든 작전을 무산시켜버렸던 주인의 도착이었기에 쳐다본 것이고, 멕케인 공작은 다양한 사건사고를 일으킨 자국의 주인공이었기에 고개를 돌렸고, 데우스 왕자는 자신의 희망이 도착했기에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대전의 문으로 향해 있자 이레스를 떠올리고 작게 웃음을 터트린 테라인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라 하라.”
끼이익.
문이 열리며 한 청년이 걸어왔다.
다른 황자와 왕자와는 다르게 홀로 걸음을 걷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머리카락과 허리춤에 차고 있는 기다란 롱소드.
천천히 왕좌를 향하는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던 이레스가 테라인 국왕과 레이온 왕자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두 사람만 볼 수 있는 작은 미소를 그리고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 이레스가 테라인 왕국의 주인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구나.”
“일주일도 안 된 것으로 압니다만.”
“하하하!”
제국의 사신으로 황자가 자리하고 왕국의 사신으로 왕자가 자리하고 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테라인 국왕이 말했다.
“일어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이레스였지만 그는 유실리안 제국의 사신도, 동맹국인 헥토스 왕국의 사신도 바라보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음에도 자신을 바라보는 이레스의 모습에 테라인 국왕이 작은 미소를 그렸다.
“인사하거라. 유실리안 제국의 황자와 황녀이고, 다른 두 사람은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이레스는 작은 미소를 그리며 대답을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
“…….”
슬리안 황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두 사람 사이로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적이 일어났지만, 먼저 눈을 피한 사람은 이레스였다. 하지만 황자는 웃을 수가 없었다.
“어제 뵙는데 또 뵙는군요.”
“그렇습니다.”
“…….”
유실리안 제국의 황자가 앞에 있음에도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고 왕국의 왕자에게 인사를 건넸기 때문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격이라 느꼈는지 슬리안 황자의 눈썹이 찡긋거렸고 두 사람과 인사를 마친 이레스는 바로 고개를 돌려 슬리안 황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레스라고 합니다.”
“…….”
너무 단순한 소개 때문인지 또 한 번 어떠한 말도 내뱉지 못한 슬리안 황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