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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공작 154화

무료소설 구름공작: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53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구름공작 154화

제2장 사신 이레스 (2)

 

 

“한마디로 들어주지 않겠다는 것이군.”

 

“들어드릴 것입니다. 그것이 유실리안 제국과 연관이 없는 이야기라면 말입니다.”

 

“…….”

 

어차피 유실리안 제국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크리스는 자신의 예상이 맞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말을 한 것인데 칸이 잠시지만 입술을 씰룩거리자 바로 말을 바꾸었다.

 

“물론 대평야의 주인이 제국의 명령을 따를 리는 없겠지만요.”

 

“…….”

 

무언가 배려를 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한구석을 긁어대는 듯한 말이었다.

 

크리스도 칸이 느끼는 감정을 알아차린 것인지 마치 말을 끝내지 않은 것처럼 살짝 입을 벌리고 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너무 조용한 삶……. 목숨을 건 즐거운 유희도 할 만하지.”

 

“…….”

 

“전부 죽여라.”

 

채애앵!

 

막사 안을 채우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무기를 들었지만 크리스는 당황하기는커녕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이 내민 제안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칸은 크리스를 빤히 바라보다 다시 오른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목 위를 제외하고는 말에게 먹이로 보내줘라.”

 

저벅.

 

무인들이 한 걸음 내디뎠고 데인이 자연스럽게 크리스의 측면에 서서 바닥에 찍고 있던 검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제대로 된 회담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전쟁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가 이래서 안 온다고 했는데…….”

 

데인이 울상을 지으며 작게 중얼거리더니 검집에 숨겨두었던 검을 꺼내려 하는 순간 크리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평야의 주인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서슴없이 말하겠습니다. 목적이 무엇입니까?”

 

칸은 대답하지 않은 채 바라보았고 크리스는 마치 그 무표정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듯이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식량 부족? 정복감? 거래?”

 

식량 부족에서도 어떠한 표정을 짓지 않았고 사람들 특유의 정복감에 대해 물을 때에도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심지어 ‘거래’라는 단도직입적인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도 이레스의 시선에는 칸의 표정이 변화가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크리스는 달랐던 거 같았다.

 

크리스가 생각을 하는 듯이 칸을 바라보다 작은 미소를 그리며 이레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레스 공자님.”

 

“예.”

 

“도망칠 수 있을까요?”

 

평범한 질문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이레스의 머릿속에는 정말 오만가지의 생각이 오갔다.

 

자신이 직접 회담이 안 된다면 도망치자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칸의 눈앞에서, 그것도 적진의 본진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니 방법이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칸의 장수들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무심한 듯 바라보고 있지만 칸의 왼손은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무릎 위에 올려져 있었다.

 

다시 한 번 오만가지의 생각이 들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게 되니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레스가 씨익 미소를 그리며 칸을 바라보았다.

 

“……?”

 

너무 당당한 그 미소를 보고 칸이 잠시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땅 아래로 흙가시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쿠우웅!

 

그와 맞추어 거대한 중압감이 다시 몰려오고 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땅을 박차려 했지만 이미 준비를 하고 있던 이레스로서는 중압감을 이겨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꼼짝 마!”

 

이레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칸이 비웃으며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땅 아래에서 솟아난 흙가시가 장수들 전체를 공격하기 위해 솟아오른 것이 아니라 한 사내에게 집중되어 있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미소를 지우며 주춤했던 칸이 다시 비릿한 미소를 그리며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한 사람 죽인다고 달라질 것은 없는데?”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레스는 달랐다.

 

“문제는 그 사람의 위치가 문제이지요.”

 

입가에 작은 미소를 그리며 반박을 했다.

 

도망을 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순간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기마민족의 칸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칸은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대검을 사용하고 2m가 넘는 장신이 아닌 두 자루의 곡도를 사용하는 기마민족의 사람들 중에 키가 작은 사내로, 전대 칸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었다.

 

갑작스레 자신이 기억한 칸에 대해 떠올리니 막사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을 무의식적으로 살펴보게 되었고, 두 자루의 곡도를 들고 있는 다른 장수들보다 키가 작은 청년을 발견하자마자 움직이게 되었다.

 

그가 바로 지금의 칸의 아들이자 기마민족 최초의 대를 이어 칸의 자리에 오를 사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두 자루의 곡도를 쓴다.

 

실력은 익스퍼드 중상급으로 추정되고, 몸집이 크고 작고를 제외하고 얼굴을 바라보면 이목구비가 비슷했다. 그래서 도박하는 셈치고 인질로 잡아봤는데 그게 정답이었는지 한순간이지만 칸의 움직임이 멈춰졌다.

 

“…….”

 

물끄러미 흙가시에 포박된 청년을 바라보던 칸이 피식 실소를 흘리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죽여도 상관없다. 어차피 약한 자는 죽어야 하는 것이 기마민족이니까.”

 

완전 남남이라는 느낌을 전해주었고 고개를 돌려 청년을 바라보아도 인질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당당해 보였지만 이레스는 오히려 미소를 그리며 칸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움직이지 마.”

 

“전부 죽여.”

 

칸이 살기가 섞인 목소리로 바로 반박을 했지만 청년의 정체를 알고 있던 장수들이 주춤했다.

 

이레스가 힐끔 장수들을 바라보고는 다시 칸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칸의 아들을 죽이고 싶으면 움직여봐.”

 

“어차피 전쟁터에 데리고 온 이상 그 녀석도 죽음의 전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어이없게 뒈지는 것은 말도 안 되지.”

 

“…….”

 

칸은 입을 다물었고 이레스는 바로 크리스와 데인을 바라보며 인질로 잡은 청년을 가리켰다.

 

“잡아요. 꽤 난놈이니까 조심하고요.”

 

크리스와 데인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청년을 향해 다가가자 이레스는 아직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칸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그렸다.

 

“돌아가면 살려주지.”

 

“놓아주면 고통 없이 죽여주지.”

 

이레스의 말에 칸이 바로 반박을 했다.

 

분명 실력 면에서는 칸이 이레스를 압도하고 있었지만 이레스의 가문, 인질이 족쇄가 되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힘과 자존심 하나로 칸의 자리에 오른 그였다.

 

당연히 적들에게 농락당한 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나 보네. 그럼 말을 바꾸지. 우릴 보내주면 살려주지.”

 

“…….”

 

칸이 눈가를 살짝 좁힌 채 바라보았고 이레스가 미소를 그리며 그의 시선을 받아쳤다.

 

“다른 장수들은 그래도 정령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견제를 하고 있었는데 저놈만은 다르더군.”

 

“…….”

 

“전쟁이 처음인 놈을 데리고 왔으니 이렇게 허무하게 죽이고 싶지는 않겠지.”

 

“…….”

 

“물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이레스를 바라보던 칸이 작은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냥 거래 때문에 죽치고 있다 가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

 

“한 번만 더 내 눈에 들어오면 넌 죽는다.”

 

이레스가 가만히 칸을 바라보다 작은 미소를 띠며 물었다.

 

“저놈 죽일까?”

 

* * *

 

“실피아.”

 

-응!

 

분노한 칸을 대신하여 인질을 양도받기로 한 레이베드와 적진에서 벗어난 이레스는 바로 실피아를 소환하여 청년의 사방으로 바람의 화살을 만들었다.

 

“무슨 짓인가!”

 

칸, 하나의 나라로 보면 왕의 아들인, 왕자가 인질로 잡혀있는 것도 굴욕적인 상황에서 그의 주위에 목숨을 앗아갈 화살이 만들어지자 레이베드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이레스는 오히려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사람을 잘 못 믿어서 말이야.”

 

“우리 민족은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인간은 원래 약속을 잘 안 지키니까 그딴 거 안 지키고 살아도 돼.”

 

웃으며 손을 살래살래 저은 이레스는 자신의 옆에 서서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크리스와 데인을 무시한 채로 레이베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움직이면 뒤진다. 정령이 사라지기 전에 움직여도 뒤진다. 그냥…… 뒤지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네가 그러고도 귀족이라고 할 수 있나!”

 

칸을 찾아왔던 귀족들을 보면 대부분이 실력도 없으면서 당당한 놈들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인간은 실력도 있음에도 하는 행동이 너무 기이하여 더더욱 마음에 들지가 않아 귀족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협박하고 인질로 잡는다.

 

아무리 많은 귀족들을 만나 보지 못했어도 레이베드는 이런 인간은 난생처음이었다.

 

“내가 좀 살아보니까. 귀족이라는 타이틀이 밥을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내 목숨 버려가며 귀족질을 하고 싶지는 않더라.”

 

“이이잇.”

 

웃으며 대꾸한 이레스는 레이베드가 분에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무기를 강하게 말아 쥐는 모습에 도발하는 듯이 한 번 더 비릿한 미소를 그린 뒤에 정령 실피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저 오빠랑 놀다가 부르면 돌아와야 돼.”

 

-응!

 

논다는 이야기 때문인지 실피아가 해맑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레스는 미소를 그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에 청년을 바라보았다.

 

“실피아랑 놀다 보면 풀려나니 애들 잘 막아라. 저들이 움직이는 순간 네 목숨이 날아가니까.”

 

“…….”

 

청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바라보았고 그 모습에 이레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몸을 돌릴 때였다.

 

“카이.”

 

“……?”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이레스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고 청년은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카이.”

 

“어쩌라고?”

 

“이름을 대라.”

 

“이레스.”

 

“이레스, 넌 내 손으로 죽인다.”

 

“…….”

 

이레스가 칸의 아들, 카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실소를 흘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상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할 거 같았다.

 

처음으로 전장에 나서서 방심을 하다 보니 인질로 잡힌 것은 둘째 치고 인질이 되어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끌려가니 너무 창피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왕의 아들인데 말이다.

 

이레스는 활활 타오르는 듯한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이.”

 

“…….”

 

“인질로 잡히기 싫으면 실력을 키워 인마. 상대의 실력도 모르고 죽인다고 하지 말고.”

 

“…….”

 

카이은 반박을 하는 대신 입을 꾹 다문 채로 살기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이레스는 작은 미소와 함께 몸을 돌려 동방 경계선의 요새로 걸음을 옮겼다.

 

* * *

 

“알고 계셨습니까?”

 

동방 경계선으로 걸음을 옮겨 기마민족과 요새의 성벽 중간까지 걸음을 옮겼을 때 크리스가 이레스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어떤 걸요?”

 

“칸의 아들이 있다는 것을요.”

 

이레스가 힐끔 크리스를 바라보고는 씨익 미소를 그렸다.

 

“도박이죠. 도박.”

 

“……도박이요?”

 

고개를 살짝 끄덕인 이레스는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등 뒤가 따끔거리는 한 사내의 눈빛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이목구비가 비슷했거든요.”

 

“…….”

 

데인과 크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이레스를 바라보기만 했다.

 

“도련님.”

 

“왜?”

 

“만약 칸의 아들이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면 도망칠 방법이 따로 있었던 것입니까?”

 

데인은 갑자기 그게 궁금해졌다.

 

분명 자신이 회담을 위해 사신을 보냈을 때 그 사신의 목만 돌아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런데도 사신의 자격, 그것도 총사령관이라는 높은 직책을 맡으며 움직였으니 분명 회담이 틀어지면 어떤 방법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궁금해진 것이었다. 과연 기마민족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탈출할지를 말이다.

 

“…….”

 

이레스가 바로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돌려 데인을 바라보았다.

 

“짜릿하지 않았냐?”

 

“……예?”

 

“너 방금 죽을 뻔했어.”

 

“…….”

 

“…….”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껌뻑이던 데인이 인상을 화악 찌푸렸다.

 

답이 나왔다.

 

“저 미친개가 진짜…….”

 

이레스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본진으로 쳐들어간 것이었다. 그래서 죽을 뻔했다고 말한 것이었다.

 

만약 칸의 아들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도주를 하는 데 성공을 해도 누구 한 명은 반드시 죽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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