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53화
무료소설 구름공작: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53화
제2장 사신 이레스 (1)
“이, 이게 무슨.”
전군(선봉대)의 사령관 직책을 맡은 레이베드는 다음 날의 전투를 위해 막사에서 휴식을 취하던 도중, 적이 나타났다는 병사의 보고를 듣고 달려왔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더듬고 말았다.
퍼어엉!
“크, 크으윽.”
수십 마리의 군마들이 널브러진 채로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었고 병사들은 몸 한 부분을 부여잡은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사망자는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이었는지 모두가 쓰러진 채로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레이베드는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다리가 부러지거나 팔이 부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사망자가 없었다는 것이 일부러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 제압했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
레이베드의 시선이 지금의 엄청난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내, 기마병에게 둘러싸인 채로 편안한 미소를 그리고 있는 흑발의 청년에게 돌아갔다.
대륙에서 보기 힘든 흑발의 청년은 아주 단순하지만 깔끔한 동작으로 병사들의 공격을 피하며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 주먹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바람을 짓뭉개는 거대한 굉음이었고 그 이후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군마와 함께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군마와 함께 병사들을 날려버리는 그 모습에 너무 어이가 없어 망한 표정을 짓고 있자 공격을 하던 병사들도 따라하듯이 잠시 주춤거렸다.
“뭐야? 더 안 해?”
잠깐의 주춤이 공격을 멈추게 하자 흑발의 청년, 이레스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기마병들을 바라보며 묻더니 정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안 덤벼?”
“아니, 그 말을 또 왜 합니까!”
실험이라는 명목하에 홀로 기마병들과 전투를 벌이는 이레스의 모습이 너무 신기하여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데인이 깜짝 놀라 외치자 이레스는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끔 쳐다보고는 도발하는 듯이 기마병들에게 고개를 돌리며 비릿한 미소를 그렸다.
“평야의 전사들이 이렇게 약했는지 처음 알았네?”
“크으윽.”
자존심 하나로 먹고 살았고 자존심 하나로 대평야를 지배하며 다른 나라들에게 굴복당하지 않는 독자적인 민족인 그들로서는 이레스의 그 말이 도발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무기를 강하게 쥐어말았고, 군마를 이끌고 앞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도발을 하는 이레스의 뒤로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지만 않았다면 그들은 목숨을 버려서라도 달려 나가 그를 죽이려고 했었다.
“…….”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어떠한 표정도 그리고 있지 않은 청년, 크리스가 기마병들을 쓰윽 훑어보더니 작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테라인 왕국 동방 경계선의 사신으로서 칸을 뵈러 왔습니다.”
“…….”
모두에게 하는 인사로 보였지만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 크리스의 시선은 이레스를 둘러싸고 있는 병사들이 아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선봉대의 사령관인 레이베드에게 향해 있었다.
이미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듯한 그의 눈빛과 미소를 보자 몸을 흠칫 떨고 만 레이베드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말을 이끌어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다그닥. 다그닥.
“…….”
“…….”
레이베드가 말을 이끌고 앞으로 나서면 나설수록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기마병들이 뒤로 물러나며 자리를 넓혀갔고 어느새 두 사람 사이에 군마의 얼굴만 자리할 수 있을 정도로 좁혀졌을 때 이레스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미소를 그렸다.
“조금만 더 다가오면 뒤진다고 생각하고.”
“…….”
사신이라기보다는 용병이라는 느낌이 팍팍 드는 그의 말투에 잠시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레이베드였지만 다시 고개를 돌려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크리스가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입가에 그린 미소를 진하게 만들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선봉대의 사령관이신 레이베드 님을 뵙습니다.”
“칸을 뵈러 왔다고?”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레이베드였지만 크리스는 웃음을 잃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모든 무기와 갑옷을 회수하고 마법과 관련된 물건은 전부 압수를 당하며 안전을 위해 포박을 하겠다.”
레이베드의 말은 길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질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 미친!”
순간적으로 데인이 발끈하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려 하자 크리스가 뒤로 손을 뻗어 움직임을 막은 뒤에 정면을 바라보았다.
데인의 성격도 만만치 않게 거치지만 그보다 더 거친 성격의 사내가 함께하고 있었다.
쉬이익!
“흡!”
하늘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느낀 살기로 인해 레이베드가 무의식적으로 검을 들어 하늘 위로 휘두르려 할 때였다.
탁.
“다시 한 번 말해보지?”
분명 자신의 시야에 자리하고 있었고 병사들을 쓰러트린 인물이기에 주의하고 있었는데 단 한 순간 기척을 놓쳤고, 그는 어느새 말 목 위에 쪼그려 앉아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꿀꺽.”
단 한 번의 방심으로 목이 잘려나갈 수 있었지만 그들이 사신의 자격이라면 꿀릴 것이 없었다.
“모든 무기와 갑옷을 회수하고 마법과 관련된 물건을 전부 압수하겠다고 했고, 칸의 안전을 위해 포박을 하겠다고 했소.”
물론 무의식적으로 반존대를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
어떠한 감정도 깃들어있지 않은 듯한 눈으로 레이베드를 빤히 바라보던 이레스가 피식 실소를 흘리며 검을 회수하자 땅속에서 수십 개의 흙가시가 솟아올라 그의 주위를 포위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여기 있는 인간들 다 죽여도 상관없어.”
“……전쟁을 하자는 것이오?”
“어차피 전쟁을 하고 있는데 무슨 전쟁을 하자는 거냐?”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린 이레스가 무기를 강하게 말아 쥐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병사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냥 가서 전해.”
“…….”
병사들은 입을 다물며 바라보았고 이레스는 천천히 왼손을 들어 검지에 착용되어 있는 반지를 보여주었다.
“동방 경계선의 총사령관이 찾아왔다고 말이야.”
* * *
레이베드와 대치하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레스 일행은 기마민족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본진으로 향할 수가 있었다.
“호오……. 개 크네.”
“그렇군요.”
이레스가 본진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막사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리자 크리스도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에 자리한 막사는 다른 막사보다 두 배는 거대했고 세 배는 길어 보이는 대형 막사였다.
무의식적으로 감탄을 하며 막사 안으로 들어선 세 사람은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동시에 몸을 휘청거렸다.
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엄청난 중압감이 온몸을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크으으윽.”
가장 무력이 약한 크리스가 먼저 신음을 흘렸고 이레스와 데인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왕좌와 비슷한 거대한 의자에 2m는 넘어 보이는 체구의 사내가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칸이라…….’
전생에서 기마민족의 왕을 만난 적은 없었다.
그와 직접 대면할 일도 없었고 전투를 벌인다고 해도 그의 병사들과 전투를 벌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들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역시 대륙의 소문과 마찬가지로 가장 뛰어난 무력을 지녀야만 칸이라는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총사령관이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막사 안을 울리는 칸의 목소리에 이레스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자 그가 작은 미소를 그리며 말을 마쳤다.
“약하군.”
쿠구궁.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몸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더욱더 강해졌지만 이레스는 오히려 억지 미소를 그리며 반박했다.
“그렇습니까?”
쉬이익!
막사 안을 뒤흔들 정도의 거대한 광풍이 불어오기 시작했고 그런 이레스의 행동에도 칸은 오히려 입가에 그린 미소를 진하게 만들었다.
“마스터라는 경지는 어디서 주워 먹어서 생긴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죠. 하지만 마스터가 아닌 이들은…….”
쉬쉬쉭!
거대한 광풍이 마치 불어오지 않았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막사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의 앞으로 바람의 화살 수십 개가 나타났다.
“죽이는 것은 간단하죠.”
“크큭.”
작게 웃음을 터트린 칸이 다시 반박을 했다.
“사람을 건드릴 때도 실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가 보군.”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 주위에 약한 놈들이 있으면 달라지죠.”
미소를 그리며 반박을 했다. 하지만 주위에서 느껴지는 것은 바람의 화살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들려오는 공간을 찢는 듯한 소음이었다.
칸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고 이레스는 그 모습을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입가에 그린 미소를 지웠다.
슈우욱.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막사를 가득 채우고 있던 바람의 화살이 사라졌고, 칸은 눈가를 살짝 좁힌 채로 바라보다 다시 한 번 실소를 흘렸다.
쉬이익.
작은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사라졌다.
털썩.
탁!
“헉……. 헉…….”
“헉……. 헉…….”
갑작스레 몸을 짓누르고 있던 중압감이 사라지자 크리스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이 털썩 주저앉았고, 데인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검집 채로 떼어내 땅을 짚고 섰다.
그나마 세 사람 중 가장 정상적인 인물은 정령술과 검술의 경지가 가장 뛰어난 이레스였지만, 그도 마스터의 중압감을 완벽하게 이겨내지 못한 것인지 살짝살짝 휘청거린 후에야 몸의 중심을 잡을 수가 있었다.
“…….”
바람의 화살이 사라지고 마나를 통한 중압감이 없어짐과 동시에 두 사람 사이에 신경전이 시작된 듯이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마나를 통한 중압감이 몰려오지도 않고 죽음을 몰고 오는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은 모두를 긴장시킬 정도의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도 통하지 않는 인물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다리의 힘이 풀려서 이대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동방 경계선에서 온 테라인 왕국에 사신 멕케인 더 크리스라고 합니다.”
중압감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던 크리스였다.
“…….”
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크리스에게 돌아갔다.
마치 얼굴에 ‘나는 사신의 자격으로 온 사람이다.’라고 써놓은 것처럼 너무 당당한 그 모습이 전에 왔던 두려움에 벌벌 떨었던 사신과 비교를 하게 만들었는지 칸이 작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전에 왔던 사신이 어떻게 됐는지 듣고 온 것이겠지?”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세 명이서 왔다?”
크리스가 작은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절반은 데려갈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크크큭. 자네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무언의 대답을 했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자신의 믿음을 증명시켜줄 인물이 옆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의 시선이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레스에게 향하자 칸이 웃음을 터트리며 팔 거치대를 두들겼다.
탕!
“절반은 먼저 죽이고, 그 이후 나의 땅은 피로 물들이겠다는 것이군.”
정령술.
그것도 땅과 바람의 정령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인물은 테라인 왕국, 아니 대륙 전체를 뒤져봐도 그레이즈 가문의 소가주인 이레스밖에 없었다.
분명 소문과 진실이었기에 헥토스 왕국에서 대마법사의 실드를 깨부쉈던 그의 무력이라면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공격을 막아낼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막사에 있는 부하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가 있었다.
죽일 수 있다고 해도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마스터의 경지는 만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가 않았다.
그를 죽인다면 전에 왔던 사신의 목숨을 앗아간 것과는 다르게 테라인 왕국과 제대로 된 전면전을 펼쳐야 할 수도 있었다.
그레이즈 가문은 테라인 왕국을 대표하는 귀족가문이자 마스터 경지의 무인을 둘이나 보유한 가문이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는 대답 대신 입가에 그린 미소를 진하게 만들며 바라보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칸에게 물었다.
“테라인 왕국에서는 대평야의 주인인 칸님이 전쟁을 중재만 해주신다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라…….”
고민하는 듯이 작게 중얼거린 칸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대답을 했다.
“그레이즈 공작의 목을 가져오면 돌아가주지.”
“불가합니다.”
“그럼 멕케인 공작은 어떤가?”
“당연히 불가입니다.”
“흐음.”
다시 생각을 하는 듯이 턱을 쓰다듬던 칸이 다시 말했다.
“데우스 왕자를 데려오게.”
“그것도 불가합니다.”
크리스가 입가에 그린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똑같은 말을 반복했고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칸이 입가에 그린 미소를 진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