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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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32화
제2장 암투(暗鬪) (3)
세르비안은 무진의 무신경에 흥미를 느꼈는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에이프런과 어떤 관계인가요?”
“서로의 목적을 위해 뭉친 관계라고 할 수 있소.”
무진의 무감각한 말투를 들은 자들이 분노를 표출했다. 그들이 알기에 무진은 몰락귀족의 후손이다. 그런 자가 감히 카이겔 백작가의 안주인을 상대로 반 공대를 하고 있었다. 신분의 차이를 감안하면 무례한 일이었다.
“무엄하다!”
“같잖은 놈들이 의외로 잘 짖지.”
“뭐라!”
세르비안의 수족 중에서 가장 강한 인물인 찰튼이 참지 못하고 나서려고 했다. 그의 무력은 익스퍼트 최상급에 이르러 있었다.
세르비안은 기선제압을 위해서 잠시 지켜보았다.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려는 뜻이 분명했다.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서 적당히 타협의 선을 제시할 생각이었다.
찰튼이 나서려고 하자 에이프런이 제지했다.
“그는 나의 사부이자 수호기사다.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게 좋아!”
에이프런의 내부에 숨 쉬고 있는 오러의 파동이 찰튼의 오러와 부딪쳤다. 서로의 영역을 장악하려는 기세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각자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었다.
파팟!
눈으로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이 치열하게 밀고 밀리는 대결을 벌였다. 찰튼은 자신의 기운을 받아넘기는 에이프런의 실력에 놀라는 눈치였다.
분명히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섣불리 이겼다고 단정할 수 없는 간극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고작 스무 살의 나이에 상급에서 최상급에 발을 들였단 말인가!’
찰튼이 최상급에 올라선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의 나이 마흔 살에 이룬 쾌거였다. 대륙의 천재들에 비해서는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자신의 기준을 감안하면 에이프런은 천재 중에 천재로 평가받을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재능과 실력을 차이를 경험한 찰튼은 시기심이 들었다. 찰튼의 눈가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이 이상 성장하면 통제하지 못하는 위험한 존재로 자라날 가능성이 있었다.
찰튼의 기세가 변하자 에이프런이 밀리는 형국이 되었다. 움찔거리며 물러서는 에이프런의 모습에 찰튼은 기회를 잡았다 싶은지 더욱더 강한 기운을 실으려고 했다.
그때였다.
“그만.”
쿠우웅!
찰튼은 심장이 덜컥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어느 누구도 듣지 못했지만 찰튼만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폭발음을 들었다.
무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찰튼의 기운을 완벽하게 밀어내 버린 것이다. 휘청거리며 물러선 찰튼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말을 잊지 못했다.
‘이…럴 수가! 이자는 마스터에 이른 자다!’
찰튼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스터급의 기사는 백작가 내에서도 5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은 백작가를 지탱하는 페가수스기사단에 속해 있다.
백작가에 충성을 맹세한 페가수스기사단의 단장과 부단장, 서열 3위 안에 드는 자들만이 마스터급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세르비안과 페르만 자작이 페가수스기사단을 포섭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세르비안도 눈치를 챘다. 무진이 예상보다 더 강자라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되면 무의미한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손해였다. 여기서 적당히 마무리 짓고, 원래의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이 현명했다.
“나는 네가 백작가의 후계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마.”
“부인의 호의에 감사드려요.”
“우리 함께 뜻을 펼쳐 보자꾸나.”
“카이겔 백작가의 번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어요.”
뜻은 숨긴 채 적당한 협상은 이루어졌다. 어느 것 하나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저 목적을 위해서 당분간 협력을 하는 것뿐이었다.
무진과 에이프런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고 방에서 나갔다.
세르비안은 무진과 에이프런이 나가는 것을 본 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에이프런은 실력만큼이나 평범하지 않았다. 방심하면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신중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그보다 무진이라는 놈을 우리 쪽으로 포섭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에이프런보다 위험한 존재임과 동시에 매력적인 존재였다. 몰락귀족의 후손이라면 몰락한 가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세르비안이 보기에 무진은 에이프런을 보좌하면서 후광을 얻으려고 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렇다면 적당한 지위를 보장해 준다는 약속을 해주면 넘어올지도 모른다.
에이프런에게 무진이 없으면 별거 아닐 것이다. 재능이 있다고 해도 찰튼을 비롯한 기사들이 있는 이상 어림도 없는 일이다.
씨크릿 룸으로 들어온 무진과 에이프런은 방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세르비안과의 신경전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상대의 전력을 탐색하기 위해서 그 정도도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연기가 제법이더군.”
“별것도 아닌 놈이 멋모르고 기고만장할 수도 있겠네요. 그보다 왜 실력을 드러낸 거예요?”
“그래야 내게 손을 내밀지.”
“설마 손을 잡게요?”
“못 잡을 것도 없지.”
“배신이에요!”
“믿고 있는 자에게 당할수록 뼈아프지.”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는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오늘이 지나면 네 정체는 카이겔 백작가 전체가 알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세력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겠지. 그 전에 너는 그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물론이에요. 그런데 몰래 나갈 수는 있는 건가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어떻게요?”
“마법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러네요.”
주변에 세르비안이 심어 놓은 감시의 눈길이 머물고 있었다. 에이프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자들이었다. 에이프런이 방을 나서면 곧바로 세르비안의 귀로 들어가게 된다.
또한 에이프런의 정체가 공개되면 페르만 자작의 감시자들까지 주변에 깔리게 될 것이다. 행동반경의 제한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무진은 기사일 뿐만 아니라 마법사다. 물론 에이프런은 고서클 마법사 겸업 오러마스터인 줄 알았지만 말이다.
무진의 예상 대로였다.
새로운 후계자의 등장에 카이겔 백작가가 소란스러워졌다. 뜻하지 않은 후계자의 등장이었다.
백작가의 가신들이 소집되어 그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 분주해졌다. 에이프런은 백작가의 회의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어 자신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알렸다.
카이겔 백작가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확실한 증거와 더불어 세르비안의 전폭적 지지가 맞물리자 에이프런은 카이겔 백작의 피를 이어받은 정통 후계자임이 증명되었다.
* * *
파아아앙!
거칠게 서탁을 쳤다.
회의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페르만 자작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완벽하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말았다. 설마 이런 식으로 일이 꼬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에이프런과 세르비안은 견원지간의 관계다. 서로 으르렁대도 이상하지 않은 원수였다. 그런데 회의장 안에 에이프런과 세르비안이 같이 나타났다.
“건방진 년들! 감히 나를 물 먹여!”
어린 계집에게 농락당했다는 것이 페르만 자작의 심기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화를 낸다고 해서 엎어진 물을 다시 주어 담을 수는 없다. 한시라도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네이마!”
“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다.”
“알겠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되도록 피해 없이 카이겔 백작가를 손아귀에 쥐려고 했건만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페르만 자작은 회의장 안에 있던 귀족들 중에서 자신의 손을 들어주던 이들 몇몇이 갈등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정식 후계자가 나타난 이상 에이프런을 따를 가능성이 있었다.
‘될 수 있으면 그의 손을 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페르만 자작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었다. 백작가의 가신으로서의 탈을 벗어 던진 이상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을뿐더러 갈 생각도 없다.
세르비안의 진영은 바쁘게 움직였다. 동요하고 있는 귀족들을 진정시키고, 그들을 포섭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귀족들은 정식 후계자의 등장에 갈등했다. 그동안의 일을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에이프런과 세르비안의 제안에 귀족들은 넘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쉽게 넘어오는 배경은 페가수스기사단 때문이다. 만약 페가수스기사단이 에이프런을 인정하게 되면 그 후에는 세력싸움이 되지 않는다.
에이프런은 될 수 있으면 세르비안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았다. 적당한 선에서 빠져주어 세르비안이 주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에이프런이 세르비안의 신뢰를 얻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다.
세르비안도 처음에는 의심을 가졌지만 점차적으로 에이프런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풀기 시작했다. 세르비안도 에이프런과의 관계를 조율할 필요가 있었다. 귀족들의 눈에는 에이프런과의 관계가 아무 이상 없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경계를 완전히 풀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의 자율권을 보장해 주며 적정 선을 유지했다.
* * *
달이 구름에 가려 짙은 어둠이 대지에 내리 깔리는 시각.
한여름의 더운 날씨가 지속되자 비구름이 갑작스럽게 형성되었다. 비구름이 하늘을 덮는 시간을 보니, 2시간 후에는 폭포수 같은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사사사삭!
인적이 드문 산길을 따라 누군가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척이나 빠르며 경쾌했다. 밤 고양이처럼 발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호리호리한 날렵한 신형이 산의 중턱으로 올라갔다. 중턱에는 제법 넓은 공터가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공터의 사각 지역에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본 신형이 멈추어 섰다. 밤의 어둠 속에서 서로를 보기는 힘들다. 다만 그들은 어둠이라는 제약에 상관없이 상대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뿐이다.
날렵한 신형을 지닌 자가 입을 열었다. 뜻하지 않게도 목소리는 여인이었다. 그에 답하는 이는 강직한 인상에 탄탄한 육체를 지닌 중년인이었다. 눈빛에 서린 강인함은 강철보다도 단단해 보였다.
“이제야 보게 되네요.”
“이 밤중에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이오?”
에이프런은 중년인의 딱딱한 질문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이미 어느 정도는 상대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돌려서 말하지 않고 용건을 직설적으로 풀어놓았다. 중년인은 말로 설득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인정을 받고 싶어서요.”
“퇴물에 불과한 노인의 인정을 받아서 무엇 하시겠소.”
에이프런을 상대하는 중년인 역시 만만치 않았다.
중년인은 카이겔 백작가 내에서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겉으로는 사십대를 넘어 보이지 않는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육십이 넘은 노인이었다.
그는 카이겔 백작가를 지탱하는 기둥이자 페가수스기사단의 단장인 사무엘이다. 카이겔 백작에 버금가는 강자이며, 오러마스터이기도 했다.
“사무엘 단장이 퇴물이라면 다른 자들은 다 썩어 버린 고목에 불과하겠네요.”
“하하하하하!”
호쾌한 웃음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을 진동시켰다.
“소신이 비록 늙었어도 인정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오!”
“그건 두고 봐야지요.”
“어디 그럼 후계자의 실력을 봅시다!”
“그럼 갈게요!”
사무엘이 얼마든지 들어와 보라는 뜻을 내비쳤다. 얼핏 보면 방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무엘은 전장을 겪은 백전노장이었다. 작은 방심이 큰 화를 불러온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오랜 시간 전장을 겪지 않았어도 경험은 남아 있었다. 이런 장소에 자신을 불러내고, 혼자서 왔을 정도면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소리가 되었다.
‘대담성과 결단력은 인정하지.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서는 백작가를 이끌어 갈 수 없다.’
사분오열되고 있는 백작가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강해야 했다. 어설픈 실력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슈슈슈슈슉!
에이프런은 시작부터 전력을 다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섣부른 도발은 어리석은 짓이다. 진심이 담긴 전력만이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경쾌한 스텝과 함께 힘이 실린 검력을 분출했다.
에이프런은 엘리언소드의 강력한 절초 대신에 기본 검식을 철저하게 따랐다.
절초는 아무 때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시기와 흐름을 타야 한다. 검과 검의 사정권 내에 들어선 이상 상대의 호흡에 따라 검의 운용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에이프런의 검초는 절기를 사용할 틈을 확보하기 위한 사전준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