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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지존기 130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1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30화

제2장 암투(暗鬪) (1)

 

화려하게 꾸며진 방 안.

곳곳에 치장된 장식도 보통 귀물이 아니었다. 값비싼 고가의 물품으로 꾸며놓은 방의 중심에 거대한 탁자가 자리했다. 탁자에는 각이 진 턱에 매서운 눈을 한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 안에 들린 서신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일단은 살쾡이 같은 년에게도 알려야겠군.”

그가 언급한 여인은 그와는 반대쪽 세력을 이끌고 있다. 지금 당장 그에게 가장 적대시되는 세력이 있다면 바로 그녀일 것이다. 하지만 서신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공동의 적이 찾아오는 것이 된다.

20년 전, 지금과는 달리 그녀와 서로의 속내를 숨긴 채 합심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일을 떠올린 그는 그녀가 반드시 자신의 뜻을 따라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수하를 불렀다.

“서신을 은밀하게 전하고, 뜻을 받아 와라.”

“알겠습니다.”

전달자가 나가고 난 후 그는 탐욕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백작가에 충성을 다했다.

하지만 그가 받은 것은 별로 없었다. 자작이라는 작위는 그의 야망에 비해 너무 작았다. 이제는 새롭게 비상할 시기였다.

그가 바로 카이겔 백작가의 중신이자 현재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페르만 자작이었다. 카이겔 백작이 살아있을 당시만 해도 오른팔 역할을 수행했던 자였다.

오랫동안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비수를 갈고닦았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때가 오기 전까지 묵묵하게 기다렸다.

“아들이 낫기를 바라는 것인가!”

크크크!

세르비안은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있었다. 그녀가 있었기에 아직까지도 라이더스가 죽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페르만 자작은 상관하지 않았다. 라이더스가 일어날 가망성도 없을뿐더러, 설사 일어난다고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미 카이겔 백작가 내 대부분의 세력을 포섭한 상태다. 페가수스기사단만 수중에 넣는다면 카이겔 백작가는 페르만 자작의 것이 된다.

“그때는 너도 내 것이 되겠지!”

세르비안이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그 요염함은 아직도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내의 마음을 빼앗는 기술이 늘어가고 있었다.

아직도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이들은 세르비안의 마수에 걸려 있는 이들일 가능성이 컸다.

* * *

 

비선을 통해 은밀하게 서신이 전달되었다. 대륙정보길드인 인포메드를 통한 정보였다. 소식을 전해 받은 그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 입장에서는 생각지도 않은 변수의 등장이다.

“이년이 살아있었구나!”

잊고 있었던 20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불쾌하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 에이프런을 처 죽이고 싶었지만 요즘 가지고 있던 세력이 썰물 빠지듯이 페르만 자작가로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세력을 지탱하는 것만도 벅찼다.

세르비안으로서는 20년 만에 돌아오는 에이프런을 섣불리 내치지 못했다.

“속셈이 있는 것이냐!”

서신의 내용은 이렇다.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큰어머니라고 부르면 싫어 하실지도 모르니 그냥 백작부인이라고 불러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소식을 전하는 것은 아버님의 부고를 통보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울고불고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을 겁니다.

…중략…

현재 카이겔 백작가는 페르만 자작과 귀족파 세력으로 인해 곤혹을 겪고 있습니다. 안팎으로 힘든 상황에 처한 백작가를 모른 척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저를 태어나게 해준 아버지를 버리는 일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백작부인과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중략…

거래를 원하신다면 답신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시리라 기대하겠습니다.>

서신에 적힌 내용만으로는 무슨 속셈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은 에이프런의 도움이 절실한 상태다. 그녀의 아들 라이더스의 상태가 호전되기 전까지 시간을 벌어야만 한다.

더군다나 세르비안이 거절을 할 경우 에이프런이 페르만 자작과 협조를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세르비안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좋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어주지. 그러나 네년이 무슨 짓을 하든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마! 너도 네 어미와 마찬가지로 지옥의 강을 건너게 될 것이다!”

확실히 그녀는 평범한 여인과 달랐다. 권력을 위해서는 그것이 설혹 금수만도 못한 짓이라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세르비안이 에이프런의 서신을 받고 반나절이 지났을 때 페르만 자작가로부터 서신을 들고 온 자가 있었다.

세르비안은 서신을 읽고 물었다.

“나보고 협력하라고?”

세르비안의 입장에서는 에이프런보다 페르만 자작이 더 위험했다. 사실 라이더스의 사고도 어쩌면 페르만 자작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나를 이용해서 그년을 견제하고, 백작가를 집어삼키겠다고? 어림도 없지!’

세르비안은 당장 거절하지 않았다. 곧바로 거절해 버리면 페르만 자작이 에이프런을 죽여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간을 벌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져 버린다.

어차피 세르비안은 페르만 자작을 믿지 않는다. 페르만 자작도 세르비안을 믿지 않을 것이다.

“협조하겠다고 전해라.”

“백작부인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세르비안은 의심을 못하게 하는 선에서 먼저 손을 쓰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어차피 에이프런을 포섭하고, 그 주변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페르만 자작이 나서는 것보다는 자신이 나서는 것이 현명했다.

에이프런을 안전하게 확보한 후에 시기를 맞춰 공표하면 돌아섰던 세력을 다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후에 힘을 잃은 페르만 자작이 발악해서 에이프런에게 살수를 쓴다면 용인할 생각이 있었다.

‘너구리 같은 놈과 주제도 모르는 병아리 같은 년을 한꺼번에 처리해 주지!’

* * *

 

무진과 에이프런은 시간을 끌지 않고 카이겔 백작가로 향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주변에서 무진과 에이프런을 탐색하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일부러 적당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택하면서 이동했기에 위험한 수작을 부리는 놈들은 없었다. 너무 사람들이 많으면 그 속에 숨어 있는 자들이 암수를 쓸 수도 있다.

무진과 에이프런의 실력이라면 살수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막아낼 수 있지만 굳이 실력을 드러낼 빌미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 주변에 보는 이들이 많았다.

에이프런의 진정한 실력이 드러나면 귀족파에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제거하려고 할 것이다.

무진은 카이겔 백작가로 들어가기 바로 전 마을에서 인포메드에 들렀다.

인포메드는 대륙 제일의 정보집단이다. 대륙의 제국과 왕국에 수천 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처리하는 정보는 대륙의 어느 정보력보다 확실했다. 과장해서 말하면 그 전날 황제가 누구와 잠자리를 가졌는지 하루면 알 수 있는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포메드는 서신의 내용과 위험요소, 돈에 의해서 등급이 매겨지는데, 총 5단계로 되어 있으며 각 단계마다 정보의 신뢰성과 정확성, 안전성이 높아진다.

선택된 자료는 2등급으로 인포메드의 2등급 정보라면 믿을 수 있었다.

“협조하겠다고 하는군.”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그럼 가볼까.”

서신에는 카이겔 백작가로 들어가기 전에 비밀 장소로 오라고 적혀 있었다. 페르만 자작의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려는 세르비안이었다.

에이프런이 세르비안에게 곧바로 가면 페르만 자작이 제의를 거절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되도록 시간을 벌고, 견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무진과 에이프런은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술집에 들러서 기다리고 있던 세르비안의 수족을 만났다.

그는 날카로운 눈매에 다부진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헐렁한 옷을 입고 있어 몸 안을 확실하게 볼 수는 없으나 소매 사이로 보이는 팔의 근육을 볼 때 제법 수련을 한 자였다.

그가 자신을 먼저 소개했다. 접선 자에 대한 이름은 인포메드의 서신에 적혀 있었다.

“알리스타라고 합니다.”

“에이프런이다.”

알리스타는 에이프런의 얼굴을 확인하고 놀랐다. 미모로 따지면 세르비안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내들은 에이프런을 보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세르비안의 수족이다. 에이프런의 미모에 혹해서 해야 될 일을 잊지는 않았다.

“문장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꽤 무례하네.”

“확인을 해야 합니다.”

알리스타는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한다는 듯이 위협적인 어조로 에이프런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기에 에이프런은 검술을 익히지 않은 연약한 여인이었다. 잘만 하면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곧바로 수정해야 했다.

슈우우욱!

“크윽!”

검조차 잡은 적 없을 것 같았던 에이프런의 연약한 손이 알리스타의 목을 움켜쥐었다. 에이프런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알리스타는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알리스타는 오러를 중급까지 수련한 인물이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다고는 해도 이토록 순식간에 제압을 당할 정도는 아니다.

‘최…소한 상급 이상이다!’

여인의 몸으로 오러익스퍼트 상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대단했다. 나이를 감안하면 오러마스터가 되고도 남는 재능을 타고났다.

알리스타는 에이프런의 손목 안쪽에 그려진 문장을 보았다. 카이겔 백작가를 상징하는 독특한 문양이었다.

카이겔 백작가는 후손이 태어나면 가문의 가주만이 지니고 있는 특수한 약물과 마법아이템을 통해 문장을 새기도록 되어 있다. 약물과 마법아이템은 카이겔 백작가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에게만 문장이 나타난다.

에이프런이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전달자에 불과한 놈이 예의가 없기는 해도 죽일 수는 없다. 조무래기를 죽인다고 에이프런의 화가 풀리지도 않을뿐더러, 아직 원하는 목적물을 얻지도 못했다.

“허억! 허억!”

에이프런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알리스타는 식은땀이 흘렀다. 잘못했으면 그대로 죽은 자의 강으로 넘어갈 뻔했다. 알리스타는 겉으로 보이는 외형이 전부가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됐지.”

“그…렇습니다!”

“주제를 모르면 어떻게 되는지 마음속에 새기는 게 좋을 거야.”

“알…겠습니다!”

에이프런의 스산한 살기에 알리스타는 두려움을 느꼈다. 절대로 평범한 여인이 아니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살아 생전의 카이겔 백작을 보는 것 같았다. 카이겔 백작가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다웠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성장할지 알리스타도 짐작하지 못할 정도였다. 훗날 세르비안조차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럼 가자.”

“하지만 저자의 신분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그…럴 수 없습니다!”

에이프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리스타를 위해서 한 말이건만 아직도 주제를 모르고 있었다.

“그럼 맘대로 해라.”

알리스타가 무진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다가갔다. 무진의 외형은 호리호리한 편이다. 불필요한 근육이나 군살이 없는 체형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약해 보이기까지 했다.

“신분을 밝혀라.”

“기르는 개 주제에 반말이라.”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귀찮지만 할 수 없지.”

무진의 손아귀에 어느새 훈계 교육봉(무자비한 악마봉)이 소환되었다. 깜짝 놀란 알리스타가 반응하기도 전에 악마봉이 휘둘러졌다. 무진은 얼굴만 빼고 몸 구석구석을 적절하게 만져주었다.

퍼퍼퍽!

“크아아앗!”

파아앗!

“아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누구도 듣지 못했다. 무진이 기막(氣膜)을 쳐서 소리를 차단해 버린 것이다.

전후좌우 막힘없이 이어지는 악마봉의 궤도에 의해서 알리스타의 몸이 나뭇잎처럼 흔들거렸다. 몸에서 가장 아픈 부위만을 때리고 있었다.

알리스타는 죽는 것보다 더 지독한 고통 속에 시달렸다. 보고 있는 에이프런마저 인상을 구겼다. 속으로 구토가 올라오기까지 했다.

‘저렇게 맞으면 정말 아프겠다!’

한참을 구타하던 무진이 발로 알리스타의 몸의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퍼렇게 부풀어 오른 몸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턱을 맞는 순간 기절했던 알리스타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붓기와 멍이 가라앉기는 했지만 고통은 선명하게 남아 정신에 각인이 되었다.

무진이 물었다.

“더 알고 싶나.”

“아…닙니다! 하나도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모른 척 살게 해주십시오!”

절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무진은 굉장히 오버하는 알리스타를 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니 알려주지. 나는 무진이라고 한다.”

울컥!

알리스타는 대수롭지 않게 신분을 밝히는 무진으로 인해 울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더군다나 무진은 마치 선심을 쓰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럴 거면서 왜 때린 거야!’

“불만인가.”

‘허억!’

생각을 읽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무진에게 공포를 느낀 알리스타였다. 하마터면 놀라서 심장마비 걸릴 뻔했다.

사실 무진이 알리스타를 구타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에이프런이 세력 하나 없이 혼자라면 세르비안이 얕볼 수가 있었다.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도록 신변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약간의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그 대상이 된 알리스타가 재수 없을 뿐이다. 누가 왔어도 마찬가지였을 테니 말이다.

“생각보다 겁이 많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까불었나.”

“아…닙니다!”

“줏대가 없군.”

“그…게!”

‘나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닌데!’

알리스타는 세르비안의 심복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로 분류된다. 냉철한 상황판단과 제법 뛰어난 실력까지 갖추고 있다. 은밀하게 일을 진행시키는 자 중에서는 알리스타만 존재도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무진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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