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28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28화
제1장 카이겔 백작가 (3)
소니아왕국의 수도를 기점으로 서북쪽을 책임지는 귀족가가 있다. 그들은 소니아왕국의 창이자, 방패이며 최강의 무력을 갖추고 있는 세력이었다.
소니아왕국의 건국 초기부터 왕국의 수호자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현재는 수장을 잃고, 귀족파의 견제로 인해 세력이 약화되어 예전의 성세를 찾기 힘들게 되었다.
-프로테스영지.
국왕파의 지지세력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오던 카이겔 백작가의 터전이다. 왕국에 있는 3개의 곡창지대 중에 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제1귀족인 마르치니 후작의 가이만영지를 제외하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프로테스영지는 수도 타오란으로 들어가는 서북쪽의 입구로 물류의 유통이 활발한 도시이기도 하다. 예전의 성세를 회복하지는 못했어도 과거에 이룩해 놓은 유산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직까지도 카이겔 백작가는 소니아왕국의 수호가문으로 신망을 받고 있다.
저벅! 저벅!
일남일녀가 프로테스영지로 들어가는 길목에 들어섰다.
청년은 깨끗한 옷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반면에 여인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옷은 넝마가 되어 있고,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청초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의 얼굴이 아니었다면 거지로 봤을 것이다.
“오늘부터 수련은 없다.”
“정…말이요!”
“그렇다.”
부르르르르!
“OH! YES! 그래! 좋아! 아주 좋아!”
에이프런은 좋아서 미칠 것 같았다. 지옥 같은 수련에서 드디어 해방됐다. 온몸이 떨리는 것을 보니 그동안 겪은 수련의 혹독함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절실하게 보여주었다.
‘야호! 이 날을 위해 내가 산 것 같다!’
무진은 일부러 수련을 중지시켰다.
이제부터 카이겔 백작가의 영역인데 굳이 시선을 끌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당장은 카이겔 백작가로 들어가서 인정을 받는 것이 먼저였다.
현재 카이겔 백작가는 두 세력이 권력싸움이 벌이고 있었다. 후계자인 라이더스의 친모 세르비안을 지지하는 세력과, 그동안 백작가의 중책을 맡아 일을 진행했던 페르만 자작 사이의 권력 다툼이었다.
초기에는 세르비안을 지지하는 세력이 월등히 많았다. 그러나 라이더스가 낙마사고로 중상을 입어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세력 간의 균형이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다.
무진은 다크포트가 전해주는 정보를 토대로 카이겔 백작가의 상태를 파악했다. 백작가의 세력구도를 파악한 무진은 신중하게 계획을 진행시켰다.
에이프런을 세력싸움의 구도에 집어넣게 되면 오히려 역으로 두 세력의 견제를 받게 된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독자노선을 구축할 필요는 없다.
무진은 특별하고 참신한 작전을 구상하지 않았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작전이면 충분했다. 알면서도 잡지 않을 수 없으며, 당하지 않을 수 없는 작전이기도 하다.
굳이 작전명을 거론하면 ‘당하는 놈이 바보다’로 세울 수 있겠다.
씨익!
무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무표정한 얼굴 위로 가끔씩 짓는 미소는 에이프런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
‘무슨 또 사악한 생각을 하는 거야!’
저 불길한 미소를 지을 때마다 좋은 일이 생긴 적이 없다. 매번 일이 생길 때마다 무진의 불길한 미소가 마치 예언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지.”
“그러는 게 좋겠네요.”
둘은 테리우드라는 제법 큰 마을에서 하룻밤을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마을의 풍경은 괜찮은 편이다.
1천 년 전 메카닉왕국이 들어서면서 대륙의 양적, 질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선진문물이 세상에 알려지고, 퍼지면서 대륙 전체의 발전을 초래했다.
초기 메카닉왕국은 여러 왕국과 긴밀한 협조를 하면서 문명의 혜택을 나누어주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메카닉왕국의 힘을 부풀리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이제 막 일어서는 신생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후 힘을 키우고, 보다 혁명적인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어떤 왕국도 메카닉왕국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독자적인 힘을 완벽하게 구축한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던 메카닉왕국의 선진문명이 대륙에 퍼지면서 기초적인 생활양식이 바뀌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위생에 대한 생각의 변화였다.
사람들은 기본적인 설비만 제대로 갖추어도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초설비에 들어가는 돈이 상당하지만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안 제국과 왕국은 앞 다투어 위생설비를 마련했다.
무진과 에이프런은 마을에서 가장 비싼 여관에 들어 여장을 풀었다. 여관은 깨끗하고, 화려하며 제법 규모가 컸다.
에이프런은 목욕이 절실했다.
찌는 듯한 한낮의 더위 속에서 혹독한 수련을 해보면 알 것이다. 끈적끈적한 땀이 그대로 말라서 옷과 붙어 버린다.
에이프런의 옷은 소금기로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피부를 덮고 있는 땀과 노폐물을 처리해야만 백옥 같은 피부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정받은 방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좋아!’
기사수련을 해서 그런지 그녀의 몸은 탱글탱글했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그녀의 가슴은 가히 제국의 황제를 놀라게 할 정도로 풍만했다.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매력적인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만족하는 편이다. E컵에 해당하는 그녀와 견줄 수 있는 여인은 많지 않았다. 크다고 해서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늘어진 가슴은 큰 게 아니라 나이 먹었다는 증거일 뿐이었다.
에이프런의 몸은 탄력 그 자체였다. 만지면 바로 튕겨 나올 것처럼 아름답다. 잘 만들어 놓은 질 좋은 젤리를 연상시킨다.
그녀는 거울을 보면 자신의 미모를 한껏 과시하다 표정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왜 내 미모가 안 먹히는 거야!”
몸을 구석구석 씻으면서 에이프런은 불만을 터뜨렸다.
청초한 얼굴에 유약을 바른 듯이 반짝거리는 피부, 탄력 넘치는 가슴은 뭇 사내들의 이상향이었다.
그런데 무진 앞에서는 그런 것들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어떻게 된 사내가 표정 변화조차 없는지 감정 없는 인형과 같았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예전부터 좋아하는 여인을 괴롭히는 것이 사내들의 좋아한다는 표현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무진은 에이프런을 좋아하다 못한 환장했다는 뜻이 된다. 아주 혹독할 정도로 괴롭히고 있으니 말이다.
“이건 좀 아니네!”
여인을 괴롭히는 것을 변태적으로 좋아하는 사내놈들도 있다고 했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무진은 언제는 옳았다.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에이프런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최상급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러를 통제하는 능력이 엄청나게 발달했다.
이 상태로 조금만 더 지나면 경계를 허물고, 마스터에 올라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니 가학적 변태도 아니다.
사실 이제는 무진보다 강해지겠다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무진의 실력은 마스터급은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무진의 무력과 세력이라면 일국의 왕이 되어도 부족하지 않다.
그런 무진이 왜 자신을 데리고 다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머리를 굴려봐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모르겠다! 목욕이나 하자.”
박! 박!
천하를 뒤집어 버릴 수 있는 미인이라도 때는 있기 마련이다. 수련 중에 흘린 땀이 먼지와 결합하여 그녀의 방한복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몸에서 스파게티 뽑아내기 놀이를 즐겼다. 쏟아낸 때가 수북이 쌓이는 동안 체력도 점점 고갈되었고, 몸은 나른해졌다. 저절로 노래 한 곡조가 생각이 났다.
“블~루(청)~ 마운~틴(산리)~ 인! 클린워터(벽계수)~!”
꽉 막힌 욕실이 울리면서 음유시인 뺨치는 노랫가락이 터져 나왔다.
묵은 때를 벗긴 그녀는 산뜻하게 머리카락을 털어 내며 여신 포스를 마음껏 발산했다. 빛에 반사된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주장하지 않아도 여신이라고 불릴 만했다.
에이프런이 목욕을 하고 나가자 방 안의 탁자 위에 옷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여관의 종업원에게 옷을 부탁했었다.
에이프런은 검술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모, 학식, 교양, 춤 등 다방면에서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그래야 여러 곳에 걸치고 살아도 굶어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한 우물만 파다가는 그대로 추락하는 수가 있었다.
종업원의 센스가 제법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문양에 딱 맞는 옷을 구해왔다. 초일류 종업원의 자질이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에이프런은 옷을 걸치고 무진의 방으로 향했다.
여인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언제인가!
바로 목욕하고 난 직후다. 약간의 물기를 머금은 여인은 사내의 욕망을 자극한다. 방 안을 비추는 빛의 구도를 정확히 계산해 넣은 에이프런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이다.
보통 이런 걸 하기 전에 사내들을 게임 오버시켰지만 무진은 절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 허점을 노출시키면 안 된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무진의 마음을 얻어 금제를 푸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 방에 뻑 가는 것 아냐!’
지금까지는 제복을 입고 있어서 자신의 미모가 제대로 발산되지 못했다는 가정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야말로 본 모습의 화려한 비상을 보여줄 때였다.
똑! 똑!
예의를 갖춘 여인의 기본적인 상식인 노크를 했다.
사실 여인이 혼자 사내의 방을 찾는 것이 무척이나 예의 바르다고 하기에는 시대상에 비쳐볼 때 엄청나게 진보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에이프런은 언제나 앞서가는 여인의 표상이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그녀는 그녀만의 생각과 이념을 통찰시키는 고집과 집념이 있었다.
일단 마음먹으면 뒤돌아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것만은 무진과 비슷하다 못해 판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응?”
두드렸는데 가타부타 반응이 없다. 작은 풀벌레가 우는 소리조차 파악할 수 있는 무진이 노크소리를 못 들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이라는 것이 있기에 조금 더 힘을 주어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그래도 반응이 없자.
파아아앙! 파아아앙!
꽤 많은 힘을 주었다. 여기서 더 힘을 주면 문이 부서질지도 몰랐다. 잠자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전부 깨우고도 남는 소음이었다.
그때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1층의 여 종업원이 후다닥 뛰어올라왔다. 3층으로 되어 있는 여관에서 1층까지 들렸다면 다 들렸다는 소리가 된다.
“무슨 일이죠?”
“반응이 없잖아!”
“그분은 지금 식당에서 식사하시는데요.”
“뭐라고!”
에이프런은 무진이 자신을 빼놓고 식사하러 내려갔다는 것에 울화통이 터졌다. 혼자서 괜한 짓을 한 우스운 꼴이 된 것 아닌가!
그것도 그렇지만 1층에 있었던 종업원이 들었을 정도면 당연히 무진도 들었을 것이다.
“발…광하시지 말고 내려오시래요.”
부글! 부글!
에이프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좋은 말 놔두고 발광이라니! 아이! 쪽팔려! 도대체 얘가 날 어떻게 보겠어!’
여 종업원은 사려가 깊은 소녀였다. 사실 무진이 그녀에게 한 말 중에 ‘지랄’이라는 단어를 제외하는 상냥함을 보였다. 그 단어까지 사용했다면 에이프런은 거품을 물었을지도 모른다.
‘제 성의예요.’
뜻 모를 미소를 짓는 소녀였다.
에이프런은 열을 식히고, 소녀의 안내에 따라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은 반 정도가 차 있었다. 에이프런이 들어서자 식당 안에 있는 사내는 물론 여인들까지 쳐다보았다.
‘우와! 저런 미인은 처음 본다!’
‘미의 여신이신 그리안님이 아니신가!’
‘흥! 꼬리 99개 달린 폭시다!’
‘마법성형 하면 나도 저 정도는 된다!’
사내와 여인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달랐다. 사내들은 눈이 반쯤 풀린 채로 침을 흘렸고, 여인들은 질투와 시샘의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에이프런은 사람들의 시선과 시샘을 당연하게 받아들었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라서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만인의 여신답게 화려한 퍼포먼스를 쏟아내었다. 자랑하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사내들의 시선을 완전히 제압해 버리는 포스를 지니고 있었다.
‘훗! 먹잇감들이 잘도 걸려드는군. 하지만 영양가 없는 먹잇감은 필요 없지!’
정작 중요한 목적 대상자는 창가 옆 식탁에서 조용히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