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22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22화
제4장 동행 (5)
멈칫!
무진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앞을 보지 않고 가던 에이프런은 무진의 등에 부딪쳤다.
“뭐야? 왜 갑자기 멈추고 그래!”
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신속하고, 가벼운 움직임이라.’
전형적인 살수들의 행동이었다. 누군가를 노리기 위해서 접근하고 있었다.
아직 인가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변에 암살대상이 없는 이상 목표물은 무진과 에이프런이 될 수밖에 없다.
‘나를 노리지는 않는 것 같군.’
무진은 세상에 나온 적이 없다. 지그프리트의 레어에서 이제 막 대륙 여정을 시작한 상태다. 그렇다면 놈들이 노리는 것은 에이프런일 것이다.
무진이 에이프런을 바라보았다.
“왜…그래?”
갑자기 무진이 진지하게 바라보자 에이프런은 당혹스러웠다. 자신의 막강한 유혹에도 넘어오지 않던 놈이 갑작스럽게 반응하자 순간 놀란 것이다.
‘흥! 그러면 그렇지!’
그에 반해 무진은 살수들의 실력과 에이프런의 실력을 가늠해 보고 있었다.
‘얼추 비슷하군.’
무진은 이 세상의 살수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여주는지 궁금했다. 굳이 실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좋은 실험재료가 알아서 찾아오고 있었다. 무진으로서는 대환영이었다.
“네가 해야겠다.”
“뭐라고? 내가 그래도 명색이 여잔데! 어떻게 나보고 하라고 하냐!”
“빨리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나를 너무 쉽게 보지 마! 나 쉬운 여자 아니다!”
에이프런은 끊임없이 오해하고 있었다. 무진이 이상한 것을 요구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럼 알아서 해라.”
무진은 주변에 선을 긋고, 지형지물을 일정한 방위에 따라서 위치시켰다. 에이프런은 무진이 스킨십을 요구하는 줄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젠장! 자꾸 바보 되네! 그런데 뭐 하는 거야?’
방위를 점하고 무언가를 설치하는 것은 흡사 마법진을 그리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왜 난데없이 마법진을 설치하느냐였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갈 길이 먼데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럼 수고해라.”
“뭔 소리야?”
“이제는 느껴질 텐데.”
“어?”
그러고 보니 은밀하게 다가오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에이프런은 오러를 집중해서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사방을 조여오는 심상치 않은 존재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고도의 수련을 받은 어쌔신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 너 어떻게 알았냐?”
탐색마법을 펼친 것도 아닌데, 오러를 수련한 자신보다 먼저 무진이 알았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어 보려고 할 때 무진은 시야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너…설마!”
“왜 그러지.”
“나만 빼놓고 숨겠다는 거야?”
“나는 아직 세상에 나온 적이 없다. 결론적으로 이곳에서 누군가를 노린다면 너일 가능성이 크지. 그럼 설명이 됐나.”
사사삭!
무진의 신형이 주변 자연에 동화되어 사라졌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무진으로 인해 에이프런은 황당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신경질을 냈다.
“설명 안 됐다! 이놈아! 그게 무슨 설명이야!”
묵묵부답.
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에이프런은 혼자서 방방 뛰다가 더 이상 무진을 탓하고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무진과 말싸움 하다가 놈들이 근처까지 접근하는 것을 잊고 만 것이다. 이제는 빠져나갈 방법도 많지 않았다.
“젠장! 어떻게 자기만 혼자 숨냐!”
연약한 여인을 두고 혼자 숨어 버린 무진에게 세상에서 가장 심한 욕을 해주었다.
“에이! 무진 같은 놈!”
현재 에이프런이 생각하는 가장 심한 욕은 ‘무진 같은 놈’이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던 놈들이 정말로 자신을 노리고 왔다면 물러설 수만은 없었다. 그녀도 어느 정도는 대충 눈치를 채고 있었다.
‘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단 말이지.’
가족이지만 볼 수 없었던 시절을 보내온 그녀였다. 왕국 내의 사정이 불안정해서 언제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몰랐다.
그녀는 평범한 생활을 하라는 뜻에서 어린 시절부터 따로 떨어져 유학생활을 해왔다. 일이 심각하게 변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끝까지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슈슈슈슈슈슉!
에이프런을 향해 날카롭고 예리한 비도가 날아왔다. 30개나 되는 비도는 에이프런의 피할 곳을 차단하고 있었다. 에이프런은 지체하지 않고 검을 뽑았다.
“날 물로 보지 마!”
-엘리언소드-제4절초-윈드월(풍벽)
타타타타타타탕!
삽시간에 바람의 검이 사방으로 휘둘러졌다. 엘리언소드는 오러나이트아카데미의 5대 검법에 속하는 바람계열의 검법이다.
에이프런이 가족과 떨어진 순간부터 다녔던 곳이 오러나이트아카데미였다. 오러나이트아카데미는 신분을 뛰어넘어 기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아카데미를 다니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들며, 오러를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지 않는 이상 상승의 경지로 다가갈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오러나이트아카데미의 5대 검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오러익스퍼트중급 이상이 되어야 한다.
비도술이 막히자 어쌔신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10명으로 구성된 그들은 전부 복면을 하고 있었다.
“쳐라.”
사사사사삭!
어쌔신들은 무게가 가볍고, 검끝이 예리한 검을 사용한다. 베는 것보다는 찌르는 것을 위주로 하기 때문이다. 신속하고, 빠른 신형이 에이프런의 전후좌우를 조여 들어왔다. 날카로운 기세가 보통 이상이었다.
어쌔신들은 일반적인 어쌔신들하고 차원이 달랐다. 모두 오러익스퍼트급의 오러를 지니고 있는 특급어쌔신들이었다.
전방에서 에이프런의 시야를 어지럽히고, 기습적으로 아래서 솟아오르듯이 공격을 가하는 어쌔신들이었다.
파팟!
뜨끔한 기세를 느낀 에이프런이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방향을 바꾸었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했다가는 평소 그녀가 즐겨 먹는 꼬치구이가 돼 버렸을 것이다. 꼬치구이가 술안주로는 최고이기는 했다.
어쌔신들을 이끄는 헬1호는 에이프런의 민첩한 움직임에 경각심을 가졌다.
‘계집년이 만만치가 않구나!’
어설프게 공격했다가는 도리어 당할 수도 있었다. 설마 여자의 몸으로 오러익스퍼트 상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예상 못했다.
들려온 정보에 의하여 그녀는 중급을 간신히 넘은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자신의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에이프런의 용의주도함과 신중함, 출중한 실력까지 감안하면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렇다 해도 마스터가 아닌 이상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헬워리어로 불리는 어쌔신 길드의 특급 어쌔신이다. 특급으로 분류되는 실력과 은밀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헬워리어는 섣불리 공격하지 않으면서 힘을 빼놓는 작전으로 바꾸었다.
에이프런도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대결을 그녀도 몇 번이나 경험한 적이 있었다. 때론 경험은 실력보다 중요한 장점이 된다. 헤프게 보였던 그녀도 전투가 벌어지자 얼음의 여신이 되었다.
‘내 힘을 빼놓겠다, 이거지.’
단숨에 승부를 보기에는 헬워리어의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녀로서도 쉽사리 방어진을 뚫고 나가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승부수를 띄우기로 결정했다.
-엘리언소드-제6절초-스톰임팩트(폭풍파)
엘리언소드의 가장 강력한 절초 중에 하나를 뿌렸다. 에이프런의 신형이 바람이 되어 정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전방을 가로막던 헬워리어 2명이 가공한 오러를 품은 에이프런의 검격에 튕겨져 나갔다.
퍼어어엉!
직선적인 공격은 힘이 강하다. 대신 정면으로 뻗어나가는 반발력이 만만치 않기에 수비가 허술해진다. 등이 무방비가 되어 버린 에이프런이었다.
그걸 놓치지 않은 헬1호가 찌르고 들어왔다. 상대의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한 일격이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에이프런은 전력을 다해 반 회전을 했다. 근육을 비틀어야만 하는 상황이라 상당한 무리를 감수해야 했다.
휘리리릭!
타앙!
10센티미터의 간격을 두고 에이프런의 검격이 헬1호의 검격을 간신히 쳐냈다. 그러나 헬1호에 실린 검격의 위력이 예상보다 강했다. 반 회전시 발의 균형이 흐트러진 상황이라 힘을 온전히 실지 못한 에이프런이었다.
균형을 잃으면 방향을 찾기 어려워진다. 뛰어난 방향감각을 가진 자도 쉽사리 회복하기 힘들다. 에이프런은 후방에서 또다시 찌르고 들어오는 헬워리어의 검격을 느꼈다.
당황하기 쉬운 어려운 상황에서도 에이프런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 헬1호의 검격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더욱더 빠른 회전을 했다. 그와 동시에 엘리언소드의 가장 적절한 절초를 뿌렸다.
-엘리언소드-제5절초-토네이도스피어(나선격)
파파파팟!
“크아아앗!”
오랜 시간 정련한 검의 날카로움이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 중심에 선 3명의 헬워리어들이 맥을 못 추고 쓰러졌다. 에이프런이 그 순간 반격을 가할 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찰나의 순간에 보여준 놀라운 임기응변이었다. 그 모습을 환영진 속에서 지켜보고 있는 무진은 에이프런의 타고난 재능과 전투적인 감각을 칭찬했다.
“제법이군.”
무진은 에이프런과 어쌔신들과의 대련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었다. 에이프런의 위기를 걱정하는 얼굴이 전혀 아니었다. 다만 무엇 때문에 에이프런을 노리고 있는지 궁금하긴 했다.
무진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애초부터 에이프런에게 큰 관심은 없었던 무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과 달랐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흥미롭군.’
무진의 흥미를 자극한 헬워리어들이었다. 그것이 뜻하는 의미를 아직까지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타타타탕!
검격과 검격이 부딪치며 간격이 벌어졌다 다시 좁혀지고 있었다. 위기는 아직 해소된 것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오러를 끌어올렸던 에이프런은 상당한 무리를 하고 있었다. 헬워리어의 절반을 무력화시켰지만 그것으로 인해 에이프런의 오러와 체력이 급격히 소모됐다.
헬워리어들도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계집의 능력이 상급을 넘어선다!’
기사의 실력은 오러뿐만 아니라 전투에 대한 감각도 중요하다. 에이프런은 타고난 기사였다. 쉽지 않은 상대를 만났다는 것을 헬1호는 직감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타고난 순발력으로 막아내고는 있지만 지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조금 더 몰아붙인다면 승부를 끝낼 수 있었다.
헬1호가 수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적을 몰아붙이면서 승부를 결정 짓는 수법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러자 헬워리어들이 방향을 바꾸며 바람을 등지며 섰다. 그 순간부터 지속적으로 에이프런을 몰아붙였다.
슈슈슈슉! 카카카캉!
작고 날카로운 암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에이프런은 암기를 막아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을 어지럽히는 암격이 있은 후에 이어지는 살인적인 검격으로 충격이 누적되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 똥물에 빠져 뒈질 놈!’
에이프런은 위기상황에서도 무진이 도와주지 않자 야속하게 느껴졌다.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됐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대륙제일의 미녀라면 목숨을 바치는 것도 영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응?”
밀리고 있던 에이프런은 오러의 운용이 조금씩 늦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러는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한다. 도중에 막히거나 운용이 되지 않으면 오러의 사용이 무뎌지거나 불가능해진다.
“독?”
호흡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에이프런은 놈들이 독을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력한 독은 아닐 것이다. 오러를 수련한 자를 일시에 죽일 정도라면 독을 뿌리는 즉시 깨달았을 것이 분명했다.
또한 에이프런과 헬워리어는 근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놈들도 독을 마실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놈들이 익숙한 독을 뿌렸을 것이다. 자신들은 만성이 된 독이기에 장애가 없지만 에이프런은 독을 몰아내기 위해서 오러를 운용해야만 한다.
타앙!
심장을 찌르고 들어오는 헬1호의 검격을 간발의 차이로 막아낸 에이프런은 휘청거리며 물러서야 했다. 오러의 운용이 점차적으로 막히면서 검로의 궤적이 흔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져 가는 상황이라 에이프런은 조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 섰다.
‘젠…장! 어쩔 수 없는 건가!’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던 비장의 무기가 에이프런에게 있었다. 아카데미 생활에서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한 번이라도 사용하면 비밀무기가 될 수 없다. 만약 사용하게 되면 본 이들 전부를 죽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