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8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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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80화
제3장 지원군 도착 삼 일 전 (1)
테라인 왕국과 헥토스 왕국의 경계선 중간에 야영을 선택한 레이온 왕자는 병사들의 야영 준비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회의실로 모든 고위급 간부들을 호출해 회의를 하고 있었다.
가장 상석에 앉아 책략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간부들과 회의를 하던 레이온 왕자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질문을 던졌다.
“며칠 내로 도착할 거 같습니까?”
“지금의 기동력으로 보아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다면 서방 경계선까지 나흘 뒤면 도착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나흘.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아주 긴 시간일 수도 있었다.
특히 전쟁터에서 나흘이면 헥토스 왕국처럼 거대한 성도가 함락당하고도 주변정리까지 시작할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 안에 버틸 수 있겠습니까?”
통신구슬과 전서구 모든 것을 사용하여 헥토스 왕국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던 결과, 현재 자신들이 향하고 있는 헥토스 왕국 서방 경계선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책략가가 생각하는 듯이 지도를 빤히 바라보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마스터 막다인 자작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변수까지 포함하면 어떻습니까?”
“……최악의 변수라면.”
레이온 왕자가 거대한 지도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총공격.”
“불가능합니다. 허나 서방 경계선으로 총공격을 시작할 시 막다인 자작을 제외하더라도 최대 여섯 시간입니다.”
“하긴, 사십만 대군이니…….”
한 귀족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중얼거렸지만 회의실에 자리한 귀족들은 그를 바라보며 핀잔을 주는 대신 지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의 말대로 사십만 대군이 얼마나 엄청난 군대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온 왕자가 다시 물었다.
“본진의 출진시간은 언제입니까?”
“삼 일 뒤입니다.”
“도착 시간은?”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서방 경계선이라면 보름입니다.”
“오래 걸리는군…….”
레이온 왕자가 생각하는 듯이 검지로 탁자를 두들겼다.
총사령관이라는 직위는 선봉대 총사령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군 총사령관을 뜻하는 것이기에 뒤늦게 따라올 본대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도 레이온 왕자의 몫이었다.
현재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통해 확인한 결과 서방 경계선의 총 병력은 대략 일만 오천, 적들은 최소 육만이다.
아무리 마스터 헬버튼이 자리하고 정령검사 이레스가 있어 버틸 수 있다고 하여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고, 정말 최악의 상황에 도달하게 되면 왕국을 대표하는 두 무인을 잃을 수도 있었다.
“…….”
생각하는 듯이 연신 탁자를 두들기던 레이온 왕자의 시야로 팔짱을 끼고 인상을 찌푸린 채 지도를 바라보는 그레이즈 공작이 들어왔다.
“공작님.”
“부르셨습니까.”
“함께 움직이는 병력 중 오크들을 먼저 보내면 며칠 내에 도착하겠습니까?”
“……흐음.”
“크흠.”
아무리 그레이즈 가문에서 오크족과 동맹을 맺었다고 하여도 여전히 거부감을 느끼는 귀족들이 있었다.
그레이즈 가문을 제외하고 여전히 테라인 왕국에서는 오크를 이종족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몬스터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몇 귀족들이 오크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무의식적으로 기침을 토하고 신음을 흘렸지만 그레이즈 공작은 그들의 행동에 아랑곳 않고 지도를 빤히 바라보다 대답했다.
“지금 출발하면 내일 이 시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전쟁을 위해 키워진 군마들보다 뛰어난 체력과 몬스터로서 다른 늑대들보다 수배의 신체능력을 가진 다크울프를 타는 오크라이더들이었다.
“최소입니까? 최대입니까?”
“……어디 딴 길로 새지 않는 이상 최소입니다.”
레이온 왕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를 잠시 중단하고 30분간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책략가 레번 남작님과 그레이즈 공작님은 저와 함께 오크족이 야영을 하는 곳에 다녀오겠습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여전히 오크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고 있던 귀족들이 천천히 대답하자 레이온 왕자는 바로 두 사람과 함께 오크들의 야영장소로 향했다.
그레이즈 가문의 병사들은 오크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지만 다른 가문의 병사들이나 왕국군 병사들은 여전히 신뢰를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레이즈 가문의 군대는 최전방에서 막사를 차리고 있었다.
두 사람과 함께 그레이즈 가문의 야영지에 도착한 레이온 왕자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며 피식 실소를 흘리고 있었다.
“취익! 취익!”
“그래서…….”
“취익! 빨리 말하라! 취익!”
불침번을 서고 있는 것인지 오크 전사와 두 병사가 모닥불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붙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마치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 같은 느낌을 주었다.
레이온 왕자가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그리고 있을 때 그레이즈 공작이 성큼성큼 걸어가 오크 전사와 두 병사의 머리를 빠르게 쥐어박았다.
퍼버벅!
“불침번 중에 잘하는 짓이다.”
“추, 충!”
“취이익!”
두 병사가 깜짝 놀라 고통도 잊은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건넸지만 오크 전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작은 비명을 지르며 그레이즈 공작을 째려보았다.
“어쭈?”
“취익! 큰 주인!”
“왜?”
“왜 때리는가!”
너무 당당하게 따지는 오크 전사의 모습에 그레이즈 공작이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실소를 흘리며 되물었다.
“불침번이 무엇인줄 알고 잡담이냐?”
“취익! 안다!”
“불침번이 무엇이냐?”
“안 자는 거다!”
퍼어억!
“취이익!”
오크 전사는 다시 한 번 머리를 부여잡은 채 바닥을 뒹굴었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그레이즈 공작이 불침번에 대해 설명을 해주려 할 때 오크 전사가 먼저 큰 소리로 외쳤다.
“취익! 친구들이 알려준 거다! 취익!”
“……친구?”
오크들은 자신의 동료를 가족이라고 부르기에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만약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오크전사가 가리키는 방향에 서 있는 두 병사처럼 함께 전쟁을 치렀던 병사들에게 제한된 이야기였다.
“호오.”
“……크흠.”
그레이즈 공작이 작게 탄성을 내뱉고 두 병사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순간 오크 전사가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키며 다시 소리쳤다.
“취익! 친구들이 그랬다! 취익!”
“뭐라고 그랬느냐?”
“허, 헉. 그, 그것이.”
병사들이 바로 고개를 들어 입을 열려는 순간 이번에도 오크 전사의 외침이 더욱더 빨랐다.
“취익! 두 시간 동안 안 자고 이야기 나누는 거! 취익!”
“…….”
그레이즈 공작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병사들에게 향했고 두 병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땅으로 향하는 순간 작은 웃음을 터트리며 레이온 왕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취익?”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레이온 왕자를 바라보던 오크 전사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을 뵙습니다! 취익!”
오크들에게 이레스는 주인, 그레이즈 공작은 큰 주인, 테라인 국왕은 큰큰 주인, 레이온 왕자는 도련님이었다.
왕자님이라 불리다가 도련님이라 불리는 것이 영 어색했는지 다시 한 번 작은 미소를 그린 레이온 왕자가 오크전사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케르취 족장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취익! 주인이 그랬고 족장이 그랬다. 도련님이 말하는 것은 모든 걸 다 들어주라고! 취익! 기다려라! 도련님!”
오크 전사는 그대로 몸을 돌려 작은 막사로 향했고, 그가 안으로 들어선지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다른 오크들보다 두 배의 몸집을 자랑하는 거대한 오크, 검은갈퀴부족의 족장 케르취가 나타났다.
레이온 왕자의 앞에서 걸음을 멈춘 케르취가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취익! 검은갈퀴부족의 족장 케르취가 도련님을 뵙습니다. 취익!”
다른 오크 전사들보다 더 뛰어난 지능으로 인해 대륙공용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한 케르취였다.
레이온 왕자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받아준 후에 그레이즈 공작에게 시선을 돌리자 케르취의 시선도 자신의 큰 주인에게 돌아갔다.
“지금 오크라이더들은 출발할 수 있느냐?”
“취익? 명령한다면 따를 뿐이다.”
가능하다는 말이라고 볼 수도 있고 억지로 움직인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대답이었지만 그레이즈 공작에게서 빨리 가야 하는 이유를 듣는 순간 케르취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전쟁터로 먼저…….”
“취이이익! 오크라이더 전부 기상! 준비하라!”
“…….”
“…….”
역시 전투의 종족, 전쟁터에서 죽는 것을 명예로 여기는 오크족다운 외침이었다.
* * *
히이잉.
다그닥. 다그닥.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어제와는 달리 반란군들은 요새를 포위한 채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요새 동쪽에 전부 모여 있었다.
성벽 위에서 반란군을 바라보던 이레스가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아주 성벽까지 말아먹을 작정인가 보네.”
성문 방향으로 파쇄차를 세로로 일직선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가로로 일직선을 만들고 있었고, 파쇄차를 보호하기 위한 중갑병들이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이레스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데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란이랑 투석기는 뭐냐?”
“히든카드 아닐까요?”
당연하다는 데인의 대답에 이레스가 입맛을 다시며 다시 반란군을 바라보았다.
파쇄차 뒤로 두 대의 투석기와 다섯 대의 정란이 모습을 드러낸 채 성벽을 노려보고 있었다.
먼저 서방 경계선에 입장하여 전략전술을 구성하며 전투를 벌였던 바실리아스도 파쇄차 이야기는 보고했어도 성벽을 뛰어넘는 거대한 크기에 정란이나 장거리에서 성벽 안쪽을 공격할 수 있는 투석기에 대해서 보고한 적은 없었다.
즉,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정란과 투석기는 처음으로 전장에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이레스가 머리를 벅벅 긁고는 헥토스 왕국의 기사 셰인토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투석기나 정란을 상대할 수 있는 공성병기가 있나요?”
“그래도 서방 경계선을 지키는 전투 요새이다 보니 존재는 합니다만…….”
아주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합니다만’을 듣고 인상을 살짝 찌푸린 이레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의 말을 따라했다.
“합니다만?”
“투석기와 정란를 파괴할 수 있는 공성병기는 현재 수리 중입니다.”
“……예?”
수리 중.
한마디로 어딘가 손상이 생겨 고치고 있다는 뜻이다.
셰인토가 난감하다는 듯이 투석기를 바라보며 천천히 대답했다.
“투석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똑같이 투석기를 이용하거나 성벽 위에 고정시켜 사용하는 고정형 발리스타가 필요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현재 요새에는 투석기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했던 발리스타 두 대도…….”
“말 고만 끊고 빨리빨리 대답 좀 하죠?”
“1년간 정비를 하지 않아서…….”
“망가졌군요.”
“예.”
전투요새이기에 갖출 것은 대부분 갖췄지만 솔직하게 발리스타를 사용할 정도의 적들을 상대한 적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발리스타.
거대한 철화살을 날리는 공성병기는 트롤이나 오크 같은 거인형 몬스터나 투석기나 정란 등의 공성병기를 상대할 때 사용하는 공성병기였다.
문제는 제대로 공성병기가 갖춰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오우거와 트롤이 나타나도 수십 마리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화살을 날리고 기사들이 출진하여 직접 사냥했다.
발리스타를 사용할 경우 손쉽게 사냥할 수 있었지만 한번 사용하며 드는 비용이 너무 크다 보니 위에서 너무 뭐라고 하여 사용을 꺼렸던 것이었다.
그 결과, 성도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요새에 자리 잡은 모든 공성병기를 정비할 때 발리스타가 고장이 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셰인토에게 고정되었던 이레스와 데인의 시선이 반란군으로 돌아갔다.
“공성병기가 없다는 거네?”
데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있는 거라고 해봐야 몸뚱이뿐이죠.”
“함정도 있잖아.”
“마스터 하나도 있죠.”
“정령검사 둘.”
무력만 따지면 생각보다 강력한 왕국군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의 상황을 더욱더 자세하게 푸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문제는 적은 육만이라는 거죠.”
“우린 일만 삼천이고.”
“기사도 일백 명은 된다고 하던데요?”
“우리는 수십이고?”
“…….”
“…….”
두 사람은 동시에 침묵을 했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미친.”
“……미친.”
우와아아아!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반란군 내에서 거대한 함성과 함께 적들이 진격을 하기 시작했다.
이레스가 바로 셰인토를 돌아보며 말했다.
“크리스 공자님에게 전해요. 움직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