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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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79화
제2장 기마민족의 최후 (2)
노인이 천천히 롱소드를 빼내며 입을 열었다.
“……수호자들은?”
“전부 죽였습니다.”
칸의 수호자, 뛰어난 책략가였던 바다의 눈조차 그들의 공격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거래가 성사됨과 동시에 테라인 왕국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거래를 한 자들, 유실리안 제국이 그 순간 대평야를 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었다.
자신들이 알고 있듯이 대평야는 정복을 하고 운영을 할 만큼 커다란 메리트가 존재하지 않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군마와 기마민족 병사들의 시체가 대평야 위에 널려있었고 그 위로 철갑옷을 착용한 병사와 기사들이 살아있는 자들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시체 위에 창을 찔러 넣고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푹! 푹!
잔인한 행동이었지만 그것조차 전쟁에서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였기에 물끄러미 병사들의 작업을 바라보던 노인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이대로 헥토스 왕국으로 향하면 되는 것인가?”
“현재 헥토스 왕국에 대마법사가 북방 경계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번거롭지만 동방 경계선까지 돌아가야 합니다.”
기마민족을 없앴다.
어떠한 메리트도 없이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땅덩어리였지만 쓸 만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숲도 산도 존재하지 않아 대군이 움직이기 편한 땅이라는 것이었다.
“……귀찮군.”
“페이른 후작의 명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노인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리자 기사가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페이른 후작.
그는 기마민족과 제대로 된 거래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기마민족이 거래를 이행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테라인 왕국으로 향하는 순간 페이른 후작은 은밀하게 제국의 두 마스터와 그들이 육성시킨 일천에 정예기사, 사만의 정예병사를 대평야로 향하게 했다.
쓸모없는 땅덩어리에 불과한 대평야였지만 군사를 움직이기에는 아주 편한 땅덩어리였기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기마민족도 처리하고 빠른 속도로 헥토스 왕국에 지원군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물론 평범하게 공격했다면 분명 칸에게 사신이 도착했겠지만 페이른 후작은 두 마스터에게 말했다.
기마민족을 공격하기 전 한 마스터는 오백의 기사와 이천의 기마병을 이끌고 테라인 왕국으로 향하는 길을 봉쇄하고, 나머지 오백의 기사는 한 부족을 공격할 시 그 주위를 포위하고 다른 마스터가 홀로 전멸시키라고 말이다.
부족 단위로 이루어져 있는 기마민족이었기에 십오만의 병력은 실제 기마민족 병력의 팔 할에 해당되는 병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런 병력이 사라졌으니 마스터를 막을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심지어 기마민족은 마법사가 없었다.
당연히 통신 구슬을 통해 다른 부족하고 연락할 수 없었고, 오로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신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마스터가 마을을 공격하면 오백의 기사들이 마을을 둘러싼 채로 그 누구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각개격파.
허나 적들은 알 수도 없는 은밀한 각개격파는 칸이 돌아오기 정확히 이틀 전에 끝이 났고, 칸이 돌아오는 순간 칸이 지배하고 있던 대부족의 주위를 둘러싼 채 동시에 공격을 시켜 칸의 군대도 전멸시켰다.
오로지 대군을 움직일 수 있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
오로지 헥토스 왕국을 지배하기 위해.
유실리안 제국은 기마민족을 대륙에서 지워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단 사만의 병력으로 가장 난폭한 맹수라 불린 기마민족을 지워버렸다.
* * *
“퇴각이라니!”
쾅!
쨍그랑!
“꺄악!”
거대한 막사에서 시녀들의 시중을 받아 식사를 하던 중년의 사내, 칼렉 백작이 기사의 보고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지르자 거대한 탁자 위에 자리하고 있던 수십 개의 음식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소, 송구합니다!”
기사는 양쪽 무릎을 꿇은 채 다시 용서를 구했고 눈을 부릅뜬 채 기사를 바라보던 칼렉 백작은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만도 안 되는 적들이다! 그런데 퇴각을 해? 그것도 성문을 뚫어놓고!”
“가, 갑작스레 나타난 기사들로 인해.”
“헨들릭스 공작이 요새를 떠났다는 보고를 받는 것과 동시에 공격했다! 마스터 무인도 없는 그딴 곳에서 기사가 나타났다고 퇴각을 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것도 아이언 나이트가 포함된 군대가!”
요새 안쪽까지의 정보를 얻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그 바깥에 정찰병을 보내 감시를 하게 하였고, 헨들릭스 공작이 갑작스레 요새를 떠났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총 병력의 절반이나 되는 병력을 출진시켰다.
“마, 마스터는 존재했습니다!”
칼렉 백작이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할 정도로 흥분하기 전에 말해야 한다는 듯이 바로 반응을 하며 대답했지만 팔만의 병력 중 이만의 병력을 잃은 칼렉 백작에게 그의 말을 들리지가 않았다.
쨍그랑!
탁자 위에 놓인 접시를 기사에게 던진 칼렉 백작이 눈을 부릅뜬 채로 다시 소리쳤다.
“언제 헨들릭스 공작이 돌아올지 모른다! 내일! 총공격을 감행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준비하라!”
“……”
기사는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직접 본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도망치던 병사들에게 들은 결과 분명 요새에는 마스터가 존재했다.
마스터 한 사람이 전장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던 기사였기에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은 오히려 칼렉 백작의 신경을 건드리는 행동이었다.
“대답!”
“……명을 받들겠습니다.”
“내일이다! 내일! 아침 일찍 공격할 것이니 준비하라!”
* * *
헥스 공작을 지원하기 위해 유실리안 제국군이 기마민족을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칼렉 백작이 총공격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이레스는 회의실을 빠져나와 동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사 알켄트에게 칼렉 백작의 성격을 들은 결과 크리스는 내일 전투에서 총공격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아무리 마스터가 존재하고 정령검사가 자리하고 있어도 성문도 파괴된 지금 육만의 병력을 막아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레스는 손을 들어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성문만 보수한다면 가능한 건가요?”
이레스의 질문에 크리스는 잠시 생각을 하다 대답했다.
“보수라기보다는 다시 성문을 제작해야 하지만 일단 성문이 있다면 공성전이 유리하게 진행됩니다.”
저벅저벅.
“……저 도련님?”
“왜?”
동문으로 걸음을 옮기던 이레스는 회의 진행 도중에 크리스에게 양해를 구하고 끌고 나온 반데크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반데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이마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까?”
“성문을 만들러.”
“……예?”
당황한 듯이 되묻는 반데크였지만 이레스는 작게 미소를 그려준 후에 계속해서 걸음을 옮겨 서방 경계선 요새 동쪽 성문 앞에 도착했다.
“벌써 일하고 있네?”
성문을 다시 복구하기에는 완전히 파괴되었기에 한 기사의 명령을 따라 병사들이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성문 파편을 옮겨 성문이 자리하던 곳에 산을 쌓고 있었다.
이레스가 병사들을 빤히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옮겨 돌아다니며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응원하는 기사에게 다가갔다.
“저기…….”
“응? 아……. 이레스 공자님을 뵙습니다.”
회의에 참가하지 못한 젊은 청년기사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불을 조종하고 바람을 조종하고 땅을 조종하여 반란군을 물리치던 이레스는 이미 서방 경계선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이레스는 고개를 살짝 숙여 기사의 인사를 받아주고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성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죄송하지만 잠시 병사들을 물러주시겠습니까?”
“어떤 병사들을 말씀하시는 건지?”
성벽 위에서 장애물을 설치하는 병사들도 있고 성문 보수를 위해 이리저리도 돌아다니는 병사들도 있었다.
정확히 어떤 병사들을 물러달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던 기사가 질문하자 이레스는 성문 쪽 병사들을 가리켰다.
내일 당장 적들이 공격할 수도 있고 오늘 저녁에 야습을 할 수도 있는데 성문 보수를 위해 일을 하고 있는 병사들을 잠시 물러달라는 이레스의 부탁이 의아했던 기사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이니 오랫동안 물릴 수는 없습니다.”
이레스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기사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뒤로 물러나자 반데크와 함께 성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 위까지 쌓여있는 성문 파편을 넘어 성 밖으로 넘어간 이레스가 걸음을 멈추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투석기까지는 불러들이기 힘들었는지 성벽 외곽은 생각보다 깨끗했지만 성벽 아래는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시체를 거두고 빠르게 화장을 하고 그들의 무구를 별도로 보관하였지만 죽으면서 쏟아낸 피는 갈색을 띠고 있던 땅을 붉은 땅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노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순간 작은 지진과 함께 땅의 정령 노엔이 나타났고 그와 동시에 반데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흙을 쌓아 성벽을 만드시려고요?”
“응.”
쿠구궁.
이레스의 대답과 동시에 성벽 바깥으로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며 흙으로 파도가 성문을 향해 빨려 들어가 이미 쌓여있던 성문 파편을 집어삼키며 성문이 자리하던 장소를 가득 메웠다.
컨트롤보다는 힘으로 밀어붙인 것이었는데, 흙으로 된 성문은 성문 외곽까지 울룩불룩 튀어나왔지만 이레스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성벽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기다가 물 부어.”
“네?”
감탄을 하며 흙으로 만들어진 성문을 바라보던 반데크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성벽 주변을 둘러보았다.
“……엄청나네요.”
땅의 정령이 흙을 조종할 수 있다고 하여도, 일단 바람의 정령이 세상에 떠도는 바람에 정령력을 부여해 조종하는 것처럼 흙이 필요했는데, 이레스는 한 범위를 지정해 흙을 퍼내는 것이 아니라 성벽 주위로 거대한 수십 개의 구멍을 만들어 분할해서 흙을 떼어냈다.
흙의 성문을 만들며 성벽 주위에만 만들어진 구멍이 수십 개였다.
저 안에다가 물을 채워 넣게 되면 적들의 발목을 묶을 수 있는 함정으로 바뀌게 된다.
반데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걸어가 구멍 안을 바라보았을 때 또 감탄을 하고 말았다.
“적들의 움직임을 막는 게 전부가 아니었네…….”
구멍 안에는 언제 만든 것인지 흙으로 만들어진 가시 수십 개가 구멍 위까지 솟아있었다. 물론 구멍 안에 물을 채워 넣는다면 부력으로 인해 사람이 떠오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쟁 상황이다.
모두가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으며 구멍으로 한 사람이 떨어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수십, 수백 명이 떨어질 수도 있다.
갑옷으로 인해 무거워진 몸으로 물에 들어가면 아무리 수영을 할 수 있는 병사라고 하여도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물론 살고자 하는 의지로 인해 발버둥을 치면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만 먼저 물속에 가라앉은 병사 위로 또 다른 병사가 빠진다면 먼저 떨어진 병사는 버티고 싶어도 동료의 무게로 인해 가라앉으며 사망하고 만다.
거기다가 구멍 안에 만들어진 흙가시는 구멍의 크기 절반에 해당되는 길이의 흙가시였다.
물이 채워져 있다고 하여도 갑옷으로 인해 몸이 무거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빠르게 가라앉으며 흙가시에 부상을 입고, 그 위로 또 다른 병사가 함정에 빠지면 먼저 들어서 있던 병사는 사망하게 된다.
흙가시가 갑옷을 이길 정도로 단단해야 했지만 그것은 상관없었다.
흙을 조종하여 흙가시를 생성하던 도중 흙과 함께 딸려오던 돌덩어리를 날카롭게 갈아 흙가시 끝에 매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갑옷을 이기지 못해도 충격은 줄 수 있다.
전쟁이기에 가능한 잔인한 함정이었다.
잠시 감탄하던 반데크는 이내 정신을 차리듯 고개를 좌우로 한번 흔들더니 바로 라크를 소환하여 이레스가 만든 구멍에 물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우와…….”
“저게 정령술인가 봐.”
성벽 위에서 병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두 사람 귀에 파고들었지만 이미 석양이 지고 주위가 어둠에 둘러싸이기 시작하여 반데크도, 이레스도 그들의 수군거림을 무시하고 작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쿠구궁.
촤악!
구멍이 만들어지면 그 안에 물이 채워진다. 그렇게 수십 번의 반복을 통해 동쪽 성벽의 수십 개의 구멍이 만들어지자 이레스는 고개를 돌려 적진을 바라보았다.
“뭔가가 부족한데…….”
작게 중얼거리며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리던 이레스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작게 미소를 그리며 성벽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기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혹시 기름 있나요?”
“……기름이요?”
이레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다시 한 번 주위에 구멍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만들었던 원 모양의 구멍이 아닌 미로처럼 길게 이어진 통로와도 같은 구멍이었다.
“……아!”
헥토스 왕국도 기마민족이 노리는 약탈하는 장소 중에 하나였기에 서방 경계선에서 근무하는 기사들은 전쟁경험이 많았다.
미로처럼 길게 이어진 구멍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깨달은 기사가 고개를 돌려 병사들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빨리 기름을 가지고 오너라.”
“옛!”
기사들이 전쟁경험이 많으니 함께 근무하는 병사들도 전쟁경험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 병사가 대답과 동시에 성벽 아래로 내려가자 기사는 감탄하는 듯이 구멍 앞에 만들어진 기다란 미로 구멍을 바라보다 이레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다른 성문도 해주시는 겁니까?”
“…….”
이레스가 바로 대답을 하는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석양이 지고 사방이 어둠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은 아니었고 횃불만 있다면 손쉽게 작업이 가능할 옅은 어둠이었다.
다시 기사에게 시선을 돌린 이레스가 작은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준비만 해두라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