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8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8화
“우리가 걸을 때 그놈들은 뛰어다녔기 때문이겠죠.”
“이런 썅,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이 굼벵이 같은 년아!”
“제, 제가 뭘요……!”
박고찬은 또다시 이혜수에게 겁박을 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도 저런 태도라니, 이젠 습관이 된 모양이었다.
난 둘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이럴 때가 아니라 어서 움직여야 해요. 다행히 놈들은 아직 우리 흔적을 못 찾았어요. 그러니까 뿔뿔이 흩어져서 이 일대를 다 뒤지고 있죠.”
“형, 그럼 이제 어떡하죠?”
준호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왜 그걸 자꾸 나한테 물어? 나도 미치겠는데!
떨리는 마음을 애써 잡으며 내가 말했다.
“좀 더 빨리 이동해야지. 놈들은 안 만나게 잘 피해 다니고, 어쩔 수 없을 땐 싸워서 길을 뚫어야지.”
“으슥한 데를 찾아서 짱 박혀 있는 게 낫지 않냐?”
박고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곧 우리 흔적이 발견될 거예요. 그때부턴 우리가 어디로 향했는지도 다 들킬 텐데, 그전에 포위망을 뚫고 벗어나야죠.”
“흔적이 발견된다고? 얌마, 대체 넌 무슨 근거로…….”
“아까 생선 구워 먹었잖아요!”
“……!”
박고찬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불 피우고 생선 구워먹은 흔적을 레드 에이프들이 발견 못할 까보냐? 시간문제다! 그게 발견되면 이 일대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녀석들이 우리를 향해 모여든다. 그전에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한다.
“실프, 놈들이 없는 방향을 가르쳐 줘.”
-냐앙.
실프는 앞발로 약간 왼쪽 전방을 가리켰다.
“가죠!”
내 말에 일행이 걷기 시작했다. 긴박한 상황이니만큼 일행의 걸음걸이는 아까보다 더 빨라졌다.
이동속도가 빨라질수록 이혜수는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따라오는 눈치였다. 아까 박고찬에게 대놓고 욕먹은 것도 있어서 더욱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더 눈치가 보일까 봐 괜찮으냐고 한마디 말을 건넬 수조차 없었다. 동료끼리도 서로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분위기……. 나는 이게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그건 나중에 해결할 문제. 일단은 지금의 위기를 탈출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동 중에 실프를 소환해제하고 다시 소환하기를 반복했다. 전투를 대비해서 소환 시간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실프를 소환하고 있어도 소환해제 시켜놓아도 불안했다.
실프가 가르쳐 주는 대로 방향을 수시로 바꿔가며 이동했다.
이리저리 레드 에이프와 맞닥뜨리는 것을 최대한 피하며 이동하기를 한 시간. 그동안 레드 에이프도 서서히 수색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하긴, 여긴 놈들 앞마당이니까.’
수색망이 서서히 좁혀지니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렀다.
-냥!
다시 소환된 실프가 정찰을 다녀와서 레드 에이프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전방 312미터 앞, 레드 에이프 25마리.
“싸워야겠네요.”
일행은 무기를 소환하며 싸울 준비를 했다. 나무창을 양손에 꼭 쥐고 떨고 있는 이혜수가 가장 걱정되었다.
“준호야. 혜수 씨를 잘 보호해 줘.”
“예, 형.”
강천성은 전방에서 혼자 활약하고, 준호와 박고찬은 이혜수를 보호하며 호흡 맞춰 방어. 그리고 나는 뒤에서 지원사격. 그게 내 머릿속에 든 구상이었다.
우리는 긴장감을 갖고 전방으로 향했다.
“실프. 55미터 이내로 접근하면 알려줘.”
-냥!
내 전장식 마법소총의 유효사거리는 60미터. 아예 이쪽에서 먼저 사격으로 선공을 가할 생각이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일행의 걸음이 느려졌다. 그리고…….
-냐앙!
실프가 신호를 보냈다.
탄알집에서 납구슬탄 한 주먹을 꺼냈다. 한 발을 총구에 넣고 전방을 향해 조준, 방아쇠를 당겼다.
발사 순간, 실프가 앞발로 총구를 움직였다.
투웅!
멀리서 한 놈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키에엑!”
“끼익!”
놀라 요란을 떠는 레드 에이프들.
나는 걸음을 옮기면서 계속 사격을 했다. 따로 사격자세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냥 쏘면 실프가 알아서 조준해 주니까.
타앙!
“켁!”
한 발을 쏠 때마다 비명 소리가 들렸다.
두 발, 세 발, 네 발…….
5마리를 쏴 죽였을 때, 마침내 레드 에이프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달려들었다.
“하-!”
이쪽에서는 강천성이 놈들을 향해 정면으로 뛰쳐나갔다.
준호와 박고찬은 감히 흉내 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방어를 할 뿐이었다.
나는 계속 사격해서 2마리를 더 죽였다.
투웅!
“끽!”
퉁- 퍽!
묵직한 소총의 반발이 느껴질 때마다 한 놈씩 머리나 목이 터지는 모습은 더 이상 끔찍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침내 교전이 시작되었다.
강천성을 향해 레드 에이프들이 정면과 좌우에서 덤벼들었다. 그 순간,
퍼퍼퍼퍼퍽!
강천성의 두 주먹이 눈으로 보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레드 에이프들이 펀치에 맞고 무더기로 나가 떨어졌다. 경이로운 위력! 저게 번자권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 나무 위에서 한 놈이 떨어지며 강천성을 덮쳤다.
“위험……!”
내가 뭐라고 경고하려는 순간 강천성은 반사적으로 대응했다.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물구나무를 서며 레드 에이프의 머리통을 걷어찬 것!
빠각!
“끼엑!”
목뼈가 비틀리며 레드 에이프는 공중에서 즉사했다.
다시 자세를 바로 잡으려는 순간에 레드 에이프가 더 덮쳤다.
강천성은 땅에 납작 누운 자세에서 한 놈의 다리를 붙잡아 쓰러뜨리고, 두 발로 힘껏 복부를 걷어차며 던져 버렸다. 날아간 레드 에이프가 다른 무리와 뒤얽혀 우수수 쓰러졌다.
몸을 튕기며 단숨에 일어선 강천성은 다시 소나기 펀치로 맹활약을 떨쳤다. 저 사람은 정말인지 천하무적인 것 같았다.
놈들은 강천성은 당해내기 힘들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레드 에이프들이 강천성을 피하고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오, 온다!”
준호가 바짝 긴장하며 방패를 들어올렸다.
“씨발, 와 봐!”
기세 좋게 고함만 지를 뿐,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는 박고찬.
“흐흐흑……!”
양손에 쥔 나무창이 무색하게 울음을 터뜨리는 이혜수.
‘제길!’
놈들이 지척까지 다가오자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납구슬탄을 총구에 집어넣어 장전해야 하는 전장식 방식이 지금처럼 불편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투웅- 퍽!
“끽!”
한 놈이 머리통이 터지며 죽었다.
다시 한 발 장전, 발사.
퉁- 파악!
“켁!”
심장에 맞아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간 레드 에이프.
박고찬과 준호는 곧 레드 에이프에게 둘러싸여 치열하게 난투를 벌여야 했다.
방패를 든 준호는 그래도 버텼지만, 장검을 서툴게 휘두르는 박고찬은 위태로워 보였다. 두 사람의 뒤에서 나무창을 찌르는 시늉을 하는 이혜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실프! 목을 베어버려!”
-냐앙!
쏜살같이 날아간 실프가 바람의 칼날을 휘둘러 3마리를 일격에 베어버렸다.
“키에에엑!”
한 마리가 나를 향해 주먹도끼를 휘둘렀다.
“큭!”
난 놀라 뒤로 물러나 피했다. 가까이서 공격받고 있어서 총알을 다시 장전할 틈이 없었다. 왼쪽에서도, 뒤에서도 레드 에이프가 접근하자, 난 황급히 소리쳤다.
“실프!”
-냥!
실프는 내게 돌아와 바람의 칼날을 휘둘렀다.
촤촤ㅤㅊㅘㄱ-
목에서 피를 쏟는 3마리의 레드 에이프.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한숨 돌릴 틈이 없었다.
“꺄아악!”
이혜수가 공격을 받고 넘어진 것이다.
“혜수 씨!”
나는 급한 김에 달려가 레드 에이프를 마법소총의 개머리판으로 후려갈겼다.
뻑!
“끼엑!”
머리를 얻어맞고 비틀대는 레드 에이프.
계속해서 놈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도대체가 총알을 장전할 틈이 없다!
“저리 꺼져, 씨발!”
난 버럭 소리 지르며 개머리판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퍽!
“아악!”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놈이 던진 돌멩이에 왼쪽 어깨를 맞았다. 머리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안 되겠다!’
난 아직도 주저앉아 있는 이혜수를 한 팔로 와락 끌어안았다.
“실프! 우릴 띄워!”
-냥!
순간 강한 풍압이 덮쳤다. 강한 바람에 휩쓸려 나와 이혜수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꺄아악!”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는 이혜수.
“나무 위로!”
내 지시대로 실프는 우리를 바로 옆의 큰 나무 위에 착지시켜주었다.
“꽉 잡고 있어요!”
이혜수에게 소리친 뒤, 재빨리 납구슬탄을 꺼내 장전했다. 됐다!
나는 준호와 박고찬을 공격하는 레드 에이프에게 사격을 가했다.
투웅- 퍼억!
정수리가 터지며 즉사하는 레드 에이프.
계속해서 신속하게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째 죽였을 때, 몇 마리가 나무를 타고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제길, 원숭이 같은 생김새답게 나무를 기막히게 잘 탄다.
“혜수 씨! 놈들을 막아요! 나무창으로 찔러요!”
“아아악!”
이혜수는 패닉에 차 비명을 지르며 나무창을 마구 찔렀다.
올라오던 놈들이 놀라 주춤했지만, 이윽고 다른 나뭇가지로 날렵하게 옮겨가며 계속 접근해 왔다.
그 틈에 한 발 장전을 마친 나는 한 놈을 향해 쐈다.
퉁- 퍽!
“끼엑!”
녀석은 목에서 피를 뿌리며 추락했다.
하지만 다른 두 놈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었다. 다시 장전할 틈이 없었다.
나는 다시 이혜수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실프! 받아줘!”
난 이혜수와 함께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착지하는 순간, 바람의 힘이 가볍게 우리를 받아주었다. 안전하게 내려온 나는 이혜수를 내려놓고 개머리판으로 다시 한 놈을 후려쳤다.
“으악!”
준호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돌아보니 나무창을 놓치고 뒷걸음질을 치는 준호의 모습이 보였다. 준호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던진 돌멩이에 맞은 모양이었다.
“실프, 칼날!”
그 순간, 실프가 사방으로 바람의 칼날을 마구 휘둘렀다.
촤촤촤촤악-!
“껙!”
“크엑!”
“키이익!”
순식간에 우릴 괴롭히던 레드 에이프 3마리가 쓰러졌다.
때맞춰서 앞에서 홀로 활약하던 강천성이 우리를 돕기 위해 돌아왔다.
강천성이 합류하자 남은 레드 에이프들이 쉬이 덤비지 못하고 주춤했다.
‘이때다!’
난 즉시 한 발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투웅- 퍽!
한 놈이 쓰러져 죽었다.
남은 레드 에이프의 숫자는 불과 4마리뿐이었다.
“끼에에엑!”
“키에엑!”
놈들을 겁에 질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끝났다…….”
나는 안도감이 밀려와 도망치는 놈들의 뒤통수에 총을 쏠 생각도 들지 않았다.
탈진한 준호는 털썩 주저앉았고, 박고찬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혜수는 넋이 나간 듯 멍한 얼굴이었다.
유일하게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강천성은 두 주먹과 몸에 피가 잔뜩 물들어 있었다. 아마 레드 에이프의 피일 것이다.
가만, 내가 실프의 힘을 얼마나 썼지?
“석판 소환, 스킬 확인.”
-정령술(메인스킬): 현재 바람의 하급 정령 실프를 소환 중입니다.
*초급 1레벨: 2시간 소환 가능.(남은 시간 24분) 소환 시간이 만료되면 10시간 뒤에 재소환 가능합니다.
‘고작 24분이라니!’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하기야, 바람의 칼날도 많이 썼고 실프의 힘으로 나무로 올라가고 다시 내려오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전투가 또 벌어지면 승산이 없었다.
“실프의 소환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어서 출발하죠!”
도망친 놈들이 무리를 이끌고 돌아올 것이었다.
우리는 쉴 틈도 없이 움직여야 했다. 거의 뛰다시피 하며 달아났다.
숲 여기저기에서 레드 에이프의 고함 소리가 무섭게 울려 퍼졌다. 우리를 발견했다는 신호를 동료들에게 보내는 듯했다.
그 소리에 우리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보다 더 빨리 달렸다.
문득, 여긴 지옥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