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4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4화
“저는 김현호라고 하고 얼마 전까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다른 분들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한동안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걷다가 내가 꺼낸 말이었다. 최소한 통성명이라고 해야 할 것 아냐, 이 인간들아.
협조성 좋은 대학생이 답했다.
“저는 이준호라고 해요. 올해 고려대에 갓 입학한 신입생입니다.”
역시 대학생이었군. 어려 보이긴 했지만 스무 살 새내기일 줄이야.
“이혜수…… 회사원이었어요.”
20대 여성의 이름은 이혜수였다. 과거형인 걸 보니 직장을 관둔 모양이다.
박고찬은 아까 자기소개를 지랄로 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30대 사내였다.
하지만 사내가 말 안 한다 해도 우리는 뭐라고 할 생각이 없었다.
“강천성. 무술가. 상해에서 왔다.”
중국에서 온 무술가!
그제야 우리는 강천성이 박고찬을 전혀 겁내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박고찬의 얼굴빛이 더욱 안 좋아졌다. 만약 정말 덤볐으면 험한 꼴을 볼 뻔했으니까.
통성명이 끝난 후에는 다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걸음만 옮겼다.
간간히 대학생 이준호와 나만이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회사원 이혜수는 간간히 우리들의 말에 짧게 대꾸는 했지만, 아무래도 박고찬에게 성추행을 당할 뻔한 일 때문에 충격을 받은 듯 말수가 적었다.
“슬슬 목이 마르네요. 물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준호의 말이었다.
“제가 한번 찾아볼게요. 실프!”
나는 두 번째 시험이 시작되고서 처음으로 실프를 소환했다.
-냐앙.
허공에 나타난 실프가 내 뺨에 얼굴을 비벼왔다.
“어? 그게 뭐예요?”
깜짝 놀란 이준호가 물었다. 이혜수, 박고찬, 강천성도 놀라 이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다.
“카르마 보상으로 얻은 정령술 스킬이에요. 실프라고 바람의 정령이죠.”
“정령술이요? 보조스킬 중에 그런 것도 있었어요?”
“메인스킬이에요.”
내 말에 여러 사람이 반응했다.
“메인스킬이요?!”
“메인스킬이라고?”
“메인스킬?”
이준호, 박고찬, 심지어 강천성까지 놀란 반응이었다.
그동안 말수가 극단적으로 적었던 강천성은 나에게 물었다.
“첫 번째 시험으로 몇 카르마를 받았지?”
“500카르마요.”
“……!”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든 강천성. 보아하니 내가 그보다 성적이 뛰어났던 모양이다.
“구라치는 거 아냐? 네까짓 게 어떻게 500카르마를 받아?”
박고찬이 또 시비를 걸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실력보단 가능성을 평가한 결과라고 하던데요. 아무튼 그걸로 정령술과 소총을 얻었습니다. 못 믿겠으면 한번 보실래요?”
나는 전장식 마법소총과 탄알집 혁대를 소환했다. 탄알집 혁대는 납구슬탄 100발이 추가되어 전보다 더 묵직했다.
“말도 안 되는…….”
박고찬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흥, 이제 알겠지? 난 댁이 우습게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언제고 날 때린 대가를 지불하게 해주마.
“실프, 근처에 물이 있나 찾아봐줘.”
-냥!
실프는 쌩하니 날아갔다.
그사이에 난 다른 이들에게 물었다.
“다른 분들은 카르마 보상으로 무엇을 받으셨어요? 그걸 알아둬야 나중에 싸울 때도 서로 호흡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는 첫 시험 때 270카르마를 받았는데. 배울 수 있는 메인스킬은 전부 400카르마라 못 배웠어요.”
협조성 좋은 이준호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하는 수 없이 보조스킬 중에 ‘체력보정’을 초급 2레벨까지 배웠고, 남은 카르마로 방패를 구입했어요. 보여드릴게요.”
그러면서 이준호는 둥그런 가죽 방패를 소환해 보였다. 무기는 없는 모양이었다.
“체력보정이 뭐죠?”
보조스킬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궁금해져서 물었다.
“말 그대로 체력을 보정해 주는 스킬이에요. 초급 1레벨은 육체를 건강한 성인 남성 수준으로 만들어주고, 2레벨은 운동신경이 뛰어난 육체로 만들어주더라고요.”
이준호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원래 몸이 좀 약해서 그걸 우선 2레벨까지 배웠어요.”
이준호는 비록 키는 작지만 체격은 다부져 보였다. 그런데 그게 운동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체력보정이라는 보조스킬을 배운 덕분인 모양이었다.
“진짜 좋은 스킬이네요. 저도 체력이 별로인데, 혹시 그건 카르마가 얼마나 들었어요?”
“초급 1레벨은 100카르마, 초급 2레벨은 150카르마요.”
그야말로 헬스계의 혁명이다.
나도 볼품없이 마른 몸이 콤플렉스인 사람이다. 근데 보조스킬만 구매하면 운동이 필요 없이 몸짱이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번 시험 끝나면 당장 구입해야겠네.’
멋진 몸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라, 체력은 정말 중요한 요소이니 말이다.
“이런 씨발, 나는 250카르마를 받았는데. 내가 저놈만도 못하다는 거야?”
박고찬이 욕설과 함께 짜증을 냈다. 뜨끔한 이준호는 움츠러들었다.
“난 체력보정 초급 3레벨이랑 장검을 얻었다.”
“3레벨?”
“내가 니들하고 같은 줄 알아? 난 원래 체력이 좋았어, 새끼들아.”
‘그렇구나.’
박고찬은 본래부터가 체력보정 초급 2레벨에 해당하는 육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3레벨부터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내가 건강한 성인 남성 수준의 육체라면 2레벨부터 배울 수 있겠어.’
좋은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이혜수 차례였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100카르마로 체력보정 초급 1레벨을 배웠어요. 그것 말고는 없어요. 죄송해요…….”
“흐흐, 괜찮아 아가씨. 내가 지켜준다니까 그러네.”
박고찬의 음흉한 말에 이혜수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냐아앙.
때마침 실프가 돌아왔다.
“물은 찾았니?”
-냥!
실프는 왼쪽 방향을 가리키더니, 초고속으로 비행하며 숫자 ‘293’을 그렸다.
“고마워. 있다가 다시 부를게.”
난 실프를 소환해제하고 일행에게 말했다.
“300미터 떨어진 곳에 물이 있대요.”
우리는 실프가 가르쳐 준 방향으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나는 강천성에게도 물었다.
“보상으로 뭘 택하셨어요?”
“400카르마. 오러 컨트롤 초급 1레벨.”
400카르마라. 나보다 낮군.
대충 첫 시험에서 어떻게 싸웠을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숨어 있던 레드 에이프가 기습하지만 강천성은 무술가답게 재빨리 피해내고 반격해서 피떡으로 만들었겠지.
아무튼 메인스킬 오러 컨트롤은 무술가인 그에게 딱 적합해 보였다.
그런데 강천성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은 초급 4레벨이다.”
“예?”
“카르마 없이도 수련을 통해 레벨을 올릴 수 있더군.”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었다.
스킬을 카르마 없이도 훈련으로 레벨을 올릴 수가 있는 것이었다니!
‘어라? 그런데 오러 컨트롤을 수련할 시간이 11일밖에 없었을 텐데?’
의문이 들어서 강천성에게 물었다.
“11일 만에 3레벨로 올리신 건가요?”
“오러 컨트롤은 내가권의 원리와 흡사한 면이 많더군. 난 팔괘장을 번자권과 함께 평생 수련해 왔다.”
나는 그만 강천성의 대단함에 질려 버렸다.
한마디로 그는 오러만 없었지 처음부터 초급 4레벨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도무지 이제 막 첫 번째 시험을 마친 시험자라고 생각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대체 얼마나 강할지 싸우는 걸 보고 싶다.
아무튼 대충 우리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난 원거리에서 총을 쏘고, 세 남자는 앞에서 싸우며 이혜수를 보호한다.
‘결국 이혜수가 문제네. 체력보정 초급 1레벨 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그나마 체력은 건강한 성인 남성 수준이 되었으니 나랑 비슷하거나 나보다 나으려나?’
이준호도 방패밖에 없었으니, 무기를 구해야 할 듯했다.
‘나무를 깎아서 창을 두 자루 만들면 그럭저럭 쓸 수 있겠지?’
싸울 상대가 내 추측대로 레드 에이프라면 나무창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졸졸 흐르는 개울가에 도착했다.
물을 마시던 산토끼 한 마리가 후다닥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실프!”
-냥?
실프가 소환되었다.
“토끼를 잡아!”
-냐앙!
실프는 수풀 속으로 자취를 감춘 토끼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잠시 후, 실프는 토끼의 뒷목을 입에 물고 나타났다. 토끼는 실프에게 물려 둥실 허공에 뜬 채 버둥거렸다.
일단은 두 귀를 잡아서 토끼를 포획했다. 그리고 실프에게 물었다.
“바람을 칼날처럼 날카롭게 써서 토끼의 경동맥을 자를 수 있지?”
-냐앙.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토끼를 들고 개울로 다가갔다. 개울 위에 토끼를 들고서 실프에게 말했다.
“해.”
-냥!
실프는 바람의 칼날로 토끼의 목을 베었다.
촤악!
토끼의 목에서 피가 철철 쏟아졌다. 개울이 순간 붉게 물들었다.
숨을 거두고 축 늘어진 토끼. 나는 뒷다리를 잡고 거꾸로 들어 올려 피가 전부 개울로 쏟아지게 했다.
“오, 쓸 만한데?”
박고찬이 가볍게 감탄했다.
거기까진 좋은데 쓸데없는 말을 덧붙인다.
“앞으로 식량은 네가 담당해라.”
내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근데 저 깡패 새끼가 어디다 대고 명령질이야?’
가뜩이나 박고찬에게는 얻어맞은 게 있어서 앙금이 있었다. 생각 같아선 저 인간 목도 따버리고 싶었다.
‘두고 보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