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3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3화
첫 번째 시험과 마찬가지로 숲이었다.
“에이 니미, 또 숲이야.”
건달 같은 사내가 투덜거렸다.
다들 주위를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 역시 숲을 둘러보며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숲의 풍경이 낯설지가 않았다.
다들 나서지 않고 주위만 둘러볼 뿐이어서, 하는 수 없이 나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저기, 다들 첫 시험이 레드 에이프였나요?”
“예.”
“맞아요.”
20대 여성과 대학생이 대답했다.
“뭐야, 니들도 그 망할 원숭이랑 싸웠냐?”
건달 같은 사내가 반문했다.
나는 대꾸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초면에 반말을 찍찍 하니 기분이 안 좋았다.
“그때 그 숲이군.”
한 마디도 없던 차가운 30대 사내가 처음으로 말했다. 여성과 대학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여긴 첫 시험 때의 그 숲이었다.
“그럼 이 숲 이 장소에서 레드 에이프 다섯 마리가 죽었군요?”
“그렇게 되네요.”
대학생이 대답했다.
“그럼 이번 시험은 레드 에이프로부터 일주일 동안 살아남는 게 관건 아닐까요?”
내 말에 건달 같은 사내가 피식 웃었다.
“그깟 원숭이 새끼가 뭐 무섭다고. 나타나는 족족이 다 때려죽이면 돼.”
“수십, 수백 마리가 몰려올지도 몰라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자식아?”
오케이.
난 이 아저씨가 아주 싫다.
“원숭이든 영장류든 집단생활을 해요. 레드 에이프가 집단을 이루고 있고 그중 5마리가 여기서 죽었다면, 다른 동료가 복수를 위해 몰려오지 않을까요?”
“…….”
건달 같은 사내가 말문이 막혔고, 나는 계속 말했다.
“아직 추측일 뿐이지만, 아무튼 여기서 가만히 있지 말고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물이랑 식량도 구해야 하고요.”
“맞는 말씀 같아요.”
대학생도 동의했다.
“저도 찬성이요.”
여성도 조심스런 목소리로 찬성했다. 역시 이 두 사람은 협조성이 좋다.
문제는 건달처럼 불량한 이 중년 아저씨와 도통 말수가 없는 차가운 30대 사내였다.
“뭐, 어차피 일주일간 짱 박힐 안전한 곳도 찾아야 하니까.”
무안해진 건달 중년은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도 지가 멋대로 결정 내려 버린다.
저 작자가 갈수록 문제를 일으킬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나는 그 뒤를 따랐고, 다른 이들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에이, 씨발, 담배도 없어.”
건달 중년은 자기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투덜거렸다. 걷다가 투덜투덜, 몇 걸음 걷다가 또 투덜투덜. 건달 중년은 끊임없이 욕지거리를 하며 우리를 불편하게 했다.
‘이 사람들은 다들 카르마 보상으로 뭘 골랐을까?’
그 점이 가장 궁금했다.
어떤 스킬과 무기를 얻었느냐에 따라 전투방식이 달라진다. 모두의 전투방식을 알아야 서로 어떻게 호흡을 맞출지도 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천사가 말했지?’
‘훌륭한 성적을 받은 분들도 있고, 그냥저냥 평범한 분들도 있고, 심히 걱정되는 분도 있죠.’
우리는 모두 5명.
즉, 훌륭한 성적을 거둔 사람이 두 명, 평범한 성적을 거둔 사람이 두 명, 남은 한 명은 성적이 나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마 나쁜 성적을 받은 사람은 20대 여성이겠지. 아무래도 여자니까.
훌륭한 성적을 거둔 2인. 그중 한 명은 분명 나다. 그럼 다른 한 명은 누굴까?
‘대학생은 아닌 것 같지만, 혹시 모르지. 나 같은 놈도 좋은 성적을 거뒀으니까 겉보기로는 모르잖아.’
적어도 저 건달 중년은 아니겠지. 너무 멍청하니까.
한 번 물어볼까? 다들 스킬과 무기가 뭔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난 박고찬이다.”
입을 연 것은 건달 중년이었다.
“강남 밤거리에서 박고찬 하면 모르는 놈이 없지.”
역시 건달이었냐.
“이 바닥에 20년간 지내면서 내 손에 담가진 놈만 열 명이 넘어. 너희와 달리 난 이런 일에 아주 익숙하지. 그러니까 너희는 그냥 나만 믿고 따르면 되는 거야.”
그렇게 떠들던 박고찬은 문득 뒤따라 걷던 20대 여성의 어깨에 툭하니 손을 얹었다.
“알았지, 아가씨?”
“왜, 왜 이러세요.”
여성은 당황해서 박고찬의 손을 뿌리쳤다.
박고찬은 뻔뻔스럽게도 다시 어깨를 잡고 자신의 품으로 확 끌어당기며 말했다.
“아가씨 마음 다 알아. 이런 일 겪게 돼서 많이 무섭지? 앞으로 내가 안전하게 보호해 줄게. 어때? 고맙지?”
“놔, 놔주세요.”
낯빛이 창백해진 여성은 애처롭게 떨리는 목소리로 저항했다.
대학생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까부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던 박고찬이 슬슬 본색을 드러냈다.
이곳 아레나는 법으로 보호되는 곳이 아니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박고찬은 멋대로 횡포를 부릴 터였다.
그땐 저 여자가 무슨 꼴을 당할지는 안 봐도 뻔했다.
‘안 되겠다.’
나도 저 조폭 노릇 했다는 박고찬이 두려웠지만, 저 꼴을 보고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저 여성과도 앞으로 계속 시험을 함께해야 하고, 지금 나서지 않으면 박고찬의 행패를 인정하는 꼴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박고찬에게서 여성을 떼어내며 말했다.
“저, 불편해하시니까 이러지 마시고…….”
퍼억!
순간 내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왼뺨이 화끈거렸다.
“악!”
털썩 주저앉은 나는 왼뺨을 부여잡고 신음했다.
“이 씨발 새끼가. 지금 누굴 치한 취급이야? 좆같은 새끼가!”
퍽!
박고찬이 내 옆구리를 걷어찼다.
“컥!”
턱 숨이 막혔다. 나는 옆구리를 붙잡고 뒹굴었다.
고통과 함께 억울한 기분이 치밀었다. 내가 왜 이딴 새끼한테 맞아야 하지? 날 자기보다 약자라고 생각하니까 거침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실프를 소환할까? 총으로 겨눠서 위협할까?’
그런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다.
“넌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좆도 아닌 새끼가 입만 살아서 나불나불 아는 체하고.”
박고찬은 이 무리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기선제압을 하는 것이었다. 이 무슨 고딩 일진 같은 얕은 사고방식인가?
그렇게 권력을 잡고 나면 일행을 제 부하처럼 멋대로 다룰 셈이겠지.
“흑흑흑…….”
일이 폭력으로까지 번지자 여성은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 앞에서 형편없이 얻어맞다니! 정말 자존심 상한다. 생각 같아서는 저 나이 헛먹은 건달 자식을 실프를 시켜서 목을 따든 총으로 쏴버리든 하고 싶다.
“싸, 싸우지들 마세요.”
대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청년이 나섰다. 하지만 박고찬의 사나운 눈길과 마주할 뿐이었다.
“넌 뭐야 씨발.”
“저, 저는…….”
“무장.”
박고찬의 오른손에 커다란 장검이 소환되었다. 시퍼런 칼날을 본 대학생이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왜, 왜 그러세요?!”
“이참에 여기서 서열부터 정하자. 나한테 불만 있는 놈 있으면 나와 봐.”
장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여성은 물론이고 대학생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싸워서 서열을 정하자고? 저거 미친놈 아냐?’
좋든 싫든 살아남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동료인데 싸우자니?
생각 같아서는 실프와 마법소총을 소환해서 위협하고 싶었다.
하지만 저놈은 건달이었다.
그렇게 싸움이 일단락된다 해도, 내게 원한을 품고 어떤 식으로 보복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저 인간 머릿속엔 함께 있는 여성을 갖고 놀고 싶은 생각이 가득할 테고 말이다. 성욕에 눈 돌아간 인간은 이성을 상실해 버리니까.
우리를 충분히 제압했다고 생각했는지, 박고찬은 이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30대 사내에게 눈길을 돌렸다.
“어이 형씨.”
“…….”
30대 사내는 대꾸가 없었다. 하지만 미동도 없는 무표정. 박고찬을 전혀 겁내는 눈치가 아니었다.
“댁은 어때? 나한테 불만 있어?”
“…….”
“씨발, 대답 안 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무런 대꾸도,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30대 사내. 박고찬도 이제 자존심상 물러날 수가 없게 되었다.
박고찬이 사내에게 다가가 바짝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왜 대답이 없어? 벙어리야? 쫄았어? 대답을 못하겠으면 고개라도 끄덕여 보란 말이야.”
고개만 끄덕이면 굴복한 것으로 간주하고 넘어가겠다는 통첩이다. 박고찬도 정말 싸움까지 벌이고 싶지는 않은 거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쉭!
사내의 오른손이 번개같이 움직여 박고찬의 얼굴을 덮었다. 검지와 중지가 박고찬의 두 눈두덩에 얹어져 있었다.
“왁, 씨발 뭐야!”
화들짝 놀란 박고찬이 허둥지둥 손을 뿌리치며 물러났다.
“손가락으로 눈알을 후벼 파는 건 아주 쉽지.”
마침내 열린 사내의 무거운 입에서 스산한 말이 흘러나왔다.
딱딱하게 안색이 굳은 박고찬에게 사내가 말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가능하다. 손가락 다섯 개 중 하나는 필히 눈을 찌를 테니까. 하지만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지.”
사내의 어눌한 어투와 강한 억양은 중국인이나 조선족의 그것이었다.
“난 어떨 것 같나? 사람 해치는 데 망설임이 있는 인간 같나?”
“씨, 씨발, 뭐라는 거야, 조선족 새끼가.”
말투는 여전히 험악하지만 아까보다 목소리가 작아진 박고찬.
“서열을 정하자고 했나?”
“그, 그렇다면?”
떨리기 시작하는 박고찬의 목소리.
사내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덤벼.”
“이, 이 새끼가! 이거 안 보이냐? 장난 같아?”
박고찬은 다시 한 번 장검을 들어 보이며 위협했다.
“보여. 그러니까 덤비라고.”
“이 씨발 놈이……!”
일촉즉발의 긴장감!
“저, 저기,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학생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놔둬 봐요.”
“네?”
“안 덤빌 거예요.”
난 박고찬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런 인간은 자기가 다칠 것 같으면 안 싸워요. 그래서 위협만 하는 거죠.”
학창시절의 양아치들 생리와 비슷하다. 꼭 아무 저항도 못하는 약자만 골라서 괴롭히지 않은가. 맞서 싸울 용기가 있는 학생은 안 건드린다.
건달도 경찰에 신고하고 악쓰며 덤비는 일반인은 안 건드린다. 쉽게 겁먹고 저항 못하는 사람만 타깃으로 골라서 피를 빨아먹는다.
“아오, 확 죽일 수도 없고. 운 좋은 줄 알아라.”
예상대로 박고찬은 장검을 내리고 먼저 물러섰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되나 싶었다. 그런데,
“덤비라고 했다.”
다시 울려 퍼지는 사내의 말.
놀란 박고찬이 뒤돌아보았다.
내 착각인가? 사내의 눈빛에서 스산한 기운이 흐르는 것 같았다.
“이 새끼가, 진짜 해보자는 거야!”
“스스로 내뱉은 말에는 책임을 져야지?”
박고찬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마 머릿속에 ‘잘못 건드렸다’는 메아리가 울려 퍼지고 있겠지.
“어이, 지금 우리끼리 싸울 수도 없고, 일단은 여기까지 하지?”
박고찬은 겁먹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말했다.
“열을 세겠다.”
사내가 말했다.
“안 덤비면 눈알을 하나 뽑아버린다. 난 자기 말에 책임을 안 지는 놈이 가장 싫어.”
“이, 이봐, 여기까지 하자고 했잖아!”
“하나, 둘, 셋, 넷…….”
열을 향해 달려갈수록 박고찬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지켜보는 우리도 알 수 있었다.
건달 박고찬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무서운 사람은 저 사내였다.
“…아홉, 열.”
끝내 덤비지 못한 박고찬. 쥐고 있는 장검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사내가 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다.”
그러면서 사내는 등을 돌렸다.
지옥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박고찬의 얼굴은 멍해졌다.
‘저 사람이다!’
나 말고 높은 성적을 거둔 또 한 사람.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