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2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2화
시간은 야속하게도 빨리 흘렀다.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3
-카르마(Karma): 0
-시험(Mission): 다음 시험까지 휴식을 취하라.
-제한시간(Time limit): 11시간
“미치겠네.”
초조해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오늘밤 잠이 들면 아레나로 불려가 싸우게 된다.
너무 무섭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열흘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나니 삶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졌다.
엄마, 누나, 현지가 죽은 내 시신을 앞두고 엎드려 우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애간장이 끊어진다.
‘살 거야. 살 수 있어, 김현호.’
억지로 자기최면을 걸며 나는 집을 나섰다. 오늘은 쇼핑을 좀 해야 한다.
가까운 아울렛 쇼핑몰에 이르렀다.
이곳에 온 목적은 두 번째 시험에서 입을 옷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시험을 떠올려 보자. 팬티 한 장만 입은 채 숲 속에서 설쳤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바로 ‘잘 때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 시험에 불려간다는 것이다.
그럼 모든 옷을 전부 갖춰 입고 신발까지 신은 채 잠을 잔다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면 옷과 신발도 중요한 준비 요소라 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난 지금 전투복을 사러 온 것이다.
‘군복이 옷장에 있긴 하지만, 죽어도 그걸 다시 입고 싶진 않으니까.’
만약 두 번째 시험에서 죽는다면 난 군복을 입은 시체로 발견될 것이다. 안 그래도 젊은 나이에 죽은 놈이 군복까지 입고 있으니 얼마나 더 불쌍해 보일까!
신발부터 샀다.
여러 가지 지형에 두루 적합하고 방수 기능도 있는 트레킹화를 골랐다. 가격이 좀 미쳤지만 눈 딱 감고 질렀다.
바지는 주머니가 많이 달린 카고팬츠를 골랐다. 무난한 청바지나 활동하기 편한 트레이닝팬츠를 생각해 봤지만, 역시 주머니가 많다는 이점이 가장 중요했다.
‘아! 장갑이랑 모자도 사볼까?’
장갑은 손 보호에, 모자는 머리 보호에 도움이 된다.
뭐든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죄다 챙겨가는 것이 좋았다.
집에 돌아오니 저녁이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시간밖에 없었다.
빼먹은 것이 없나 점검한 후에 책상에 앉아 종이와 펜을 들고 글을 썼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만에 하나 내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유서였다.
내가 얼마나 가족들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썼다. 간단히 쓰고 싶었는데, 마지막 작별이라는 생각에 글이 자꾸만 길어졌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참을 수가 없어서 입을 막고 조용히 울었다.
유서를 서랍 안에 넣고, 나는 잠들 준비를 했다.
속옷과 양말을 세 겹씩 입었다. 시험이 며칠씩 길어질 수도 있으니까.
새로 사온 바지와 트레킹화, 셔츠와 스웨터를 입고, 그 위에 아웃도어 재킷을 입었다.
‘이러니까 꼭 등산 가는 사람 같군.’
혹시나 싶어서 주머니에 다용도 나이프와 라이터, 작은 망원경, 스마트폰, 그리고 사탕 한 봉지를 쑤셔 넣었다. 손목시계도 착용했다.
‘아마도 이런 물건들은 못 가져가겠지?’
카르마 보상 중에 ‘물건을 아이템화’ 하는 항목도 있었다.
즉, 카르마를 지불하여 아이템으로 만들지 않으면 반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그냥 챙겨봤다. 만에 하나 될지도 모르니까.
‘엄마, 다녀올게.’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
제길…….
너무 긴장돼서 잠이 안 온다.
이것저것 껴입은 탓에 잠자리가 불편한 탓도 있었다. 난 원래 홀랑 벗고 자니까.
“석판 소환.”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3
-카르마(Karma): 0
-시험(Mission): 다음 시험까지 휴식을 취하라.
-제한시간(Time limit): 27분 41초
“지랄, 시간은 잘도 가네.”
나는 나직이 웃었다. 이렇게 삶이 귀중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눈을 뜬 채로 석판에 새겨진 제한시간이 1초씩 변하는 걸 지켜보았다.
27분이 지나는 건 순식간. 어느새 최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5초, 4초, 3초, 2초, 1초…….
0으로 바뀜과 동시에 나는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역시 예상대로 시간이 되면 저절로 잠이 들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
“어서 오세요! 저를 다시 보니까 반갑죠?”
아기 천사는 여전히 깐죽거리며 나를 반겼다.
“팬티 좀 입으면 더 반갑겠다. 뭐 자랑스러운 번데기라고 대놓고 덜렁거려?”
“에이, 제가 나름 특혜도 드렸는데 얼굴 보자마자 독설이세요? 섭섭하네요.”
“특혜?”
“시험에 대한 열의가 돋보이는 준비성이 마음에 들어서 특별히 서비스를 해줬다고요.”
“무슨 서비스?”
“한번 스스로를 살펴보세요.”
그제야 나는 내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일단 트레킹화부터 장갑, 모자까지 전부 잘 때 입었던 차림 그대로였다.
“역시 잘 때 입은 옷차림 그대로 오는 거였군.”
“맞아요. 입고 있는 의류와 신발까지는 허용돼요. 다른 건 안 되죠.”
그러고 보니 손목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주머니를 살펴보니 챙겨 넣었던 라이터와 다용도 나이프 등은 없었다. 다만, 카고팬츠 안에 넣었던 사탕 한 봉지는 있었다.
“서비스는 사탕 한 봉지냐?”
“네, 이번만 특별히 허용한 거예요. 고맙죠?”
“졸라 고맙다. 하나 주랴?”
“네.”
아기 천사는 두 손을 내밀었다. 나는 사탕봉지를 뜯어 하나를 주었다.
“어때? 이만하면 내 준비성은 그럭저럭 백점 만점이지?”
“98점 드릴게요. 혼자서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셨네요.”
“부족한 2%는 뭔데?”
“뭘까요?”
이 새끼가…….
아기 천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맞추면 2카르마 드릴게요. 자, 제한시간 60초! 시~ 작!”
갑작스런 퀴즈에 나는 깜짝 놀랐다. 2카르마라면 납구슬탄 100발 값이었다.
뭐지?
내가 뭘 빼먹었지?
나는 열심히 고민했다. 머리를 쥐어짜도 달리 떠오르는 답이 없었다.
‘가만, 저 녀석이 방금 말했지? 혼자서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렇다면?’
순간 정답이 뇌리에 떠올랐다.
“이런 지랄이 있나!”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스스로의 멍청함에 화가 난 탓이었다.
“알아내셨나요?”
나는 이를 갈며 대꾸했다.
“…다른 시험자를 만나보지 못했어.”
“정답! 시험자 김현호에게 2카르마가 주어집니다. 좋겠네요?”
“좋긴 뭐가 좋아!”
너무나도 중요한 부분을 나는 놓치고 말았다. 충분히 힌트가 있었는데도!
‘다시 말하지만 첫 시험에서 시험자 김현호는 손꼽힐 정도의 성적을 거두셨다고요.’
‘보통은 시험자 김현호처럼 하지 못해요.’
나와 같은 시험자들이 또 있다는 것을 아기 천사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난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바로, 다른 시험자를 찾아서 직접 만나 여러 가지 정보와 조언을 받는 일이었다.
“잠깐, 그럼 시험이나 아레나에 대해 떠들고 다녀도 상관없는 거야?”
“상관없는데요. 실프로 묘기를 부려서 유튜브 스타가 되셔도 상관 안 해요.”
“…….”
얼굴이 절로 찡그려진 내게 아기 천사가 어깨를 토닥였다.
“에헤이, 그래도 2카르마 공짜로 얻었잖아요? 사탕 한 봉지도 챙겼고.”
“2카르마 지금 쓸 수 있어?”
“그러세요.”
나는 석판을 소환해서 카르마 보상으로 납구슬탄 100발을 구매했다. 총알이 더 확보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 그럼 준비가 끝나셨다면 본격적으로 두 번째 시험에 대해 알아볼까요?”
“전처럼 아무것도 안 가르쳐 주고 그냥 떨어뜨려 놓는 거 아니었냐?”
“헤헤, 물론 저도 시험자 김현호가 똥줄 타게 고민하는 걸 좋아하죠.”
주먹이 운다.
카르마 보상으로 저 녀석 싸대기 한 대만 때릴 수 있을까?
“제 싸대기는 비싸요.”
“…….”
아기 천사는 내 생각을 읽었다.
“아무튼 첫 번째 시험은 그냥 워밍업이었고, 두 번째 시험부터가 본론이에요.”
본론으로 돌아오자 나는 긴장하며 아기 천사의 말에 집중했다. 한 마디도 놓쳐선 안 된다. 스쳐 지나간 한 마디가 힌트가 될지도 모르니까.
“이제부터는 다른 시험자와 함께 시험을 수행할 거예요.”
“다른 시험자?”
그래서 그런 퀴즈를 낸 거였군.
“몇 명인데?”
“시험자 김현호 외에 4명이요.”
“어떤 사람들이야?”
“직접 보세요. 옆에 있잖아요.”
“응? 옆에 누가 있다는… 헉!”
나는 화들짝 놀랐다. 뿐만 아니라,
“꺅!”
“왁! 씨발 뭐야!”
“우앗?!”
“……!”
주변에 있던 다른 네 사람도 놀라 자지러졌다. 나와 천사밖에 없던 공간에 갑자기 네 사람이 더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트레이닝복에 운동화를 신은 20대 여성.
40대쯤 되어 보이는 험한 인상의 몸집 큰 중년 사내.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청년.
그리고 30대 중반쯤 된 차가운 인상의 사내까지.
4인을 쭉 둘러본 나는 다시 아기 천사를 바라보았다.
아기 천사는 손뼉을 짝짝 쳤다.
“자자, 주목하세요. 여러분은 모두 막 첫 시험을 마친 시험자들이에요. 훌륭한 성적을 받은 분들도 있고, 그냥저냥 평범한 분들도 있고, 심히 걱정되는 분도 있죠. 아무튼 앞으로 여러분은 함께 시험을 치러야 하니 잘들 해보세요.”
그러면서 손가락을 딱 튕기니, 시험의 문이 나타났다.
“야, 이 쥐방울 참새 새끼야! 시험에 대해서도 좀 설명을 해야 할 거 아냐!”
험한 인상의 40대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기 천사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싫은데요?”
“아니, 근데 이 싸가지 없는 새끼는……!”
“또 벼락 맞을래요?”
비로소 흠칫하는 인상 험한 사내. 저 아저씨도 벼락 맞아봤구나.
그런데 말투가 험악하고 거침없는 태도를 보니 어쩐지 건달 같은 느낌이 풍긴다. 인상도 그렇고 어울리기 좋은 성격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괜찮을까? 저런 사람이랑 한 팀으로 잘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20대 여성도, 대학생 청년도 긴장한 눈으로 인상 험한 중년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30대 사내만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차가운 무표정을 유지할 따름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라 일단 시험이 뭔지 확인해야지.
“석판 소환.”
나는 석판을 소환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비로소 나를 따라 ‘석판 소환’이라고 외쳤다. 정말로 타인의 석판은 보이지 않았다.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3
-카르마(Karma): 0
-시험(Mission): 제한시간까지 생존하라.
-제한시간(Time limit): 7일
“이, 일주일?”
“생존?”
여성과 대학생이 화들짝 놀랐다.
“어이 참새! 그냥 목숨이 일주일 붙어 있기만 하면 되는 거냐?”
건달 같은 사내가 아기 천사에게 물었다. 아기 천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귀찮으니까 어서들 가세요. 벼락 때립니다. 하나, 둘, 셋, 넷…….”
“에이 씨발! 가면 되잖아, 가면!”
건달 같은 사내는 벼락이 무섭긴 했는지 가장 먼저 시험의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 뒤를 따라 우리도 차례로 시험의 문을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