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5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5화
머리 하나에 팔다리가 한 쌍씩.
이목구비와 직립보행.
구부정한 허리, 유난히 긴 팔, 온몸을 덮은 붉은 털.
“유인원?”
그랬다.
레드 에이프의 정체는 유인원(類人猿)이었다. 인간과 원숭이를 반씩 섞어놓은 인류 조상 같은 거 말이다.
인간보다는 원숭이에 더 가까운 생김새였지만, 얼굴 표정으로 놀라움과 아픔이란 감정을 표현하는 특징까지 인간과 유사했다.
‘저걸 처치하라고?’
닭 한 마리 못 잡는 나다.
그리고 차라리 동물이 낫지, 저건 인간과 유사한 놈이었다.
“키룩! 끼루룩!”
녀석은 나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화난 얼굴에 날 죽일 생각이 가득해 보인다.
녀석의 오른손에 끝이 뾰족한 돌덩이가 쥐어진 게 보였다.
‘저건 주먹도끼잖아?’
이런 젠장.
뗀석기 무기를 만들 정도의 지능도 있는 모양이었다.
‘저걸로 맞으면 골로 간다!’
시발, 괜히 망설였다. 기습에 성공했을 때 달려들어 저것부터 뺏었어야 했는데!
“끼루룩!”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날 위협하는 레드 에이프.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그건 명백한 실수였다.
내가 물러서자 놈은 자신감을 얻었다.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녀석의 덩치는 기껏해야 150센티미터 정도. 팔다리도 가늘어서 그다지 완력이 세 보이지 않는다.
‘나도 뭔가 무기를 하나…….’
던질 돌멩이 없나 하고 땅을 잠깐 내려다볼 때였다.
“키룩!”
잠깐 시선을 딴 데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레드 에이프가 덤벼들었다.
“헉!”
놀란 나는 저도 모르게 왼팔로 막았다. 주먹도끼가 팔뚝을 찍었다.
퍼억!
“아아악!”
내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졌다. 왼팔 근육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눈물이 쏟아진다.
“이 새끼가!”
나 역시 화가 나서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했다.
잽싸게 주먹도끼를 쥔 녀석의 오른 손목을 붙잡았다.
꽉 쥐고 비틀자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주먹도끼를 떨어뜨렸다.
‘됐다!’
힘은 내가 더 세다. 무기만 없으면 내가 유리한…….
부욱!
“악!”
주먹도끼만 무기가 아니었다.
녀석의 손톱 또한 날카로운 무기가 된다는 것을 나는 왼뺨으로 느꼈다.
그나마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덕에 이 정도로 그쳤지, 하마터면 눈을 당할 뻔했다.
하지만 한숨 돌릴 틈이 없었다.
손톱에 이어 송곳니 또한 녀석의 무기였다. 그걸 증명하듯 레드 에이프는 내 왼쪽 어깨를 힘껏 깨물었다.
콰직!
“크악! 놔 씨발!”
비명을 지르며 나는 녀석을 떼어내기 위해 몸을 흔들고 주먹으로 후려쳤다.
녀석은 악착같이 내게 매달려 이빨을 더 깊이 박아 넣었다.
녀석의 송곳니는 길고 날카로웠다. 진화하면 흡혈귀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며 나는 패닉에 빠졌다.
덩치가 작아서 얕봤는데, 이제 보니 전혀 내가 유리한 싸움이 아니었다.
아마도 이런 싸움을 여러 차례 겪었을 레프 에이프에 비해, 나는 평생 싸움 한 번 안 해본 일반인이었다.
할퀴어진 뺨과 깨물린 어깨에서 피가 계속 철철 흘렀다.
‘이러다 죽겠어!’
공포를 느낀 나는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득 나뭇가지에 얽힌 넝쿨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저거다 싶었다.
한줄기 희망을 발견한 나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런 내게 매달린 채 녀석은 여전히 내 어깨를 깨무는 데 정신 팔려 있었다. 꿀꺽, 꿀꺽, 녀석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걸 보니 소름이 끼쳤다.
징그러운 새끼!
이 자식은 지금 내 피를 빨아먹는 데 정신 팔려 있는 것이다.
녀석을 왼팔로 끌어안고, 오른손으로 나뭇가지에 얽힌 넝쿨을 풀어헤쳤다.
그제야 녀석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날렵하게 넝쿨로 녀석의 목을 휘감았다.
“키룩?!”
비로소 완강히 저항하는 레드 에이프.
난 오른손에 쥔 넝쿨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넝쿨이 녀석의 목을 강하게 조였다.
“끼룩……!”
“죽어 개새꺄!”
내가 죽을 판이었기에 나는 미친 듯이 넝쿨을 잡아당겨 녀석의 목을 졸랐다.
안색이 창백해진 레드 에이프. 격렬한 몸부림도 점차 약해진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녀석은 눈이 뒤집힌 채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제야 광기에서 벗어난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으악!”
넝쿨을 놓고 물러났다.
쿠웅!
레드 에이프의 시체가 땅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시체를 바라보았다.
‘이게 정말 내가 한 짓이란 말이야?’
격렬하게 움직이던 살아 있는 동물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다.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내가 저렇게 만들었다.
안전과 평범함을 좌우명 삼아 한심하지만 평화로운 삶을 살아온 나였다.
그런 나에게도 이런 폭력성이 존재했다니 스스로도 믿겨지지 않았다.
‘젠장.’
찜찜한 기분을 떨쳐 버리기 위하여, 나는 석판을 소환했다.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3
-카르마(Karma): +500
-시험(Mission): 레드 에이프를 처치하라.(달성)
-제한시간(Time limit): -
석판의 바뀐 지표는 내가 시험을 클리어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윽고,
파앗!
하고 눈앞에서 불쑥 낡은 문짝이 솟아났다. 시험의 문이었다.
끼익―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지쳤다. 쉬고 싶어.
***
뿌우― 뿌우―
“축하해요! 와우, 엄청난 성적을 거두셨네요!”
아기 천사는 날파리처럼 날아다니며, 어디서 구했는지 작은 나팔을 요란하게 불어댔다.
축하한다고?
내가 지금 네 장난에 장단 맞출 기분인 줄 알아?
“시끄러워!”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아기 천사는 나팔을 입에서 떼고 날 빤히 바라보았다.
“어라, 화난 거예요?”
‘젠장.’
난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 눌러 참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기 천사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인간과 유사한 동물을 살해하셔서 기분이 불편하죠? 뭐, 어떡하겠어요. 익숙해지셔야죠.”
“이 지랄 같은 기분에 익숙해지라고? 네 눈에는 내가 그럴 수 있는 인간으로 보이냐!”
“네, 그렇게 보이는데요.”
천사의 대답에 도리어 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기 천사가 말했다.
“레드 에이프가 식인종이라는 걸 눈치채셨죠?”
“…당연하지.”
날 미행하며 호시탐탐 공격 기회를 노린 건 사냥을 위해서였겠지. 그리고 내 어깨를 깨물어 피를 열심히 빨아먹던 그 징그러운 모습…….
놈의 눈빛에 서린 광기는 바로 식욕이었다.
“죽이지 않았으면 시험자 김현호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겠죠. 자연의 법칙처럼 당연한 싸움이었어요. 누가 먹이사슬의 포식자를 지탄하던가요? 포식자에게 맞서는 것을 죄라고 하던가요?”
“나도 알아.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는다고!”
나는 부르르 떨며 말했다.
“다만 내게 그런 폭력성이 있었다는 게 두려울 뿐이야.”
“아레나에서 시험을 치르는 동안에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요. 시험자 김현호는 앞으로도 생존을 위해 폭력을 수단으로 삼아야 해요.”
“…….”
“에이, 그보다 좀 기뻐해 보세요. 첫 시험에서 3클래스에 500카르마라고요. 이게 얼마나 대단한 성적인 줄 아세요?”
“대단한 성적은 개뿔! 내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어라?”
말하다 말고 나는 깜짝 놀랐다.
온몸의 상처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주먹도끼에 맞은 팔뚝도 깨물린 어깨도 모두 말끔했다.
“시험의 문을 통과하면 모든 상처와 병이 말끔히 치유돼요.”
“거 참 편리하네.”
“당연하죠. 시험자 김현호의 심장질환도 시험의 문을 통과하면서 사라졌는데.”
“진짜?”
“네, 이제 심장질환으로 죽을 염려는 안 해도 되요. 기쁘죠?”
“어, 더럽게 기쁘다. 이제 시험 치르다 뒈지지 않는 한 죽을 염려는 없겠네. 와, 기뻐라. 천년만년 살 것 같아.”
“에이, 또 그러신다. 그만 비아냥거리고 들어보세요. 다시 말하지만 첫 시험에서 시험자 김현호는 손꼽힐 정도의 성적을 거두셨다고요.”
“내가 뭘 그렇게 잘한 거야? 간신히 목숨 건졌는데.”
“레드 에이프에게 고전한 건 폭력에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죠. 전문적인 훈련과 지식은 앞으로 얼마든지 쌓을 수 있어요. 높은 평가를 받은 건 시험자 김현호의 판단력이에요.”
“판단력?”
“네, 주어진 모든 힌트를 캐치하고 레드 에이프가 숨어서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6분도 안 걸렸어요. 보통은 시험자 김현호처럼 하지 못해요.”
저렇게 들으니 갑자기 내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네 말대로 내가 그렇게 대단한 놈이라면, 대체 왜 공무원 시험은 계속 떨어진 거야?”
“시험자 김현호의 판단력은 위기를 느껴야 발휘돼요. 즉!”
아기 천사가 말을 이었다.
“아직 배를 안 굶어봐서 정신을 못 차린 거죠. 공부 안 하면 죽는다고 협박이라도 받았다면 진즉에 합격했을 걸요?”
“…….”
정론이라 할 말이 없었다.
“석판을 확인해 보세요.”
“석판 소환.”
나는 석판을 소환했다.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3
-카르마(Karma): +500
-시험(Mission): 다음 시험까지 휴식을 취하라.
-제한시간(Time limit): 11일
내용이 또 바뀌었다. 그리고 11일이라는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내 죽음이 11일 보류된 셈이었다.
“현실세계로 돌아가시면 오전 11시에 잠에서 깨어날 거예요. 그래도 모든 게 꿈이었다고 착각하시면 곤란해요.”
“보상은? 카르마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서?”
“현실세계에서 석판을 소환해 보시면 보상받는 방법을 알게 돼요.”
“현실에서도 석판을 소환할 수 있어?”
“네, 어차피 석판은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요.”
“알았어.”
아기 천사는 앙증맞은 손을 내게 흔들어보였다.
“자, 그럼 즐거운 휴식 시간 되세요.”
딱―
아기 천사가 손가락을 튕기자, 또 시험의 문이 솟아났다.
나는 문을 열고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