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40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40화
“어찌 되었느냐?”
아버지가 물었다.
급히 다녀오느라 지친 헬기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아버님.”
그 말에 모여 있던 라이칸스로프들이 크게 동요했다.
“아아악! 안 돼!”
한 라이칸스로프 여자가 주저앉아 비명을 토했다. 그녀는 바로 제이슨 형제의 어미인 셋째 아내 헤라였다.
아들 일곱이 모두, 그것도 가장 기대를 걸고 있던 제이슨마저 죽었다는 소식에 헤라는 큰 충격을 받고 오열했다.
“거짓말이야! 제이슨은? 제이슨도 죽었다고? 네가 봤어?”
“제이슨의 시체를 봤습니다. 그 인간의 무기에 머리를 맞아 즉사한 모습이었습니다.”
헬기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헤라는 머리를 싸쥐고 비명을 질렀다.
그때였다.
“닥쳐.”
아버지의 낮음 음성이 울려 퍼졌다.
헤라의 울음이 뚝 멎었다. 그녀는 겁먹은 얼굴로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또 낳으면 돼. 정신 사나우니 꺼져 있어.”
“흐흐흑.”
헤라는 서럽게 훌쩍거리며 무리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으로 사라졌다.
아버지는 다시 헬기를 응시했다.
“놈들은 어디로 갔느냐?”
“서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대로 가면 내일쯤이면 인간의 마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 마을 말이지.”
아버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자신의 아들을 열 명이나 죽인 건방진 인간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고민했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평소대로 처리한다.”
“평소대로요?”
헬기가 되물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을로 가게 놔둬라.”
***
밤새 걷다 보니 어느덧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형, 저기 좀 봐요!”
문득 준호가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안개가 뿌옇게 껴서 전방 멀리에 뭐가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준호의 말에 자세히 응시하니 정말로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마을?”
그랬다.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화전으로 일군 밭은 물론 소나 돼지를 모아놓은 목장도 보였다.
라이칸스로프가 서식하는 이 숲에 사람이 사는 마을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이제 살았어요!”
“사람이 살고 있으니 이제 숲을 벗어났나 봐요!”
준호와 혜수가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나는 미심쩍은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라이칸스로프들의 영역과 이렇게 가까운데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다고? 뭔가 이상한데.”
“저기 봐요, 오빠. 마을 담장이 굉장히 높아요. 라이칸스로프를 막으려고 저렇게 만들어놓은 게 아닐까요?”
혜수의 말대로 마을은 성벽처럼 목책이 둘러져 있었다.
“…일단 가보자. 혹시 그냥 평범한 마을이 아니라 산적 같은 놈들의 아지트일 수도 있으니까 각별히 주의하고.”
“네.”
“알았어요.”
이곳 아레나의 세계를 21세기 현대 지구와 똑같이 봐서는 안 된다.
듣기로 아레나의 인류사회는 현대보다 훨씬 치안이 뒤떨어져 있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이 단체로 강도로 돌변해 우리를 털어먹으려 할지 누가 안단 말인가?
조심스럽게 마을로 접근했다.
마을은 빈틈없이 목책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신중하기로 했다.
“실프.”
-냥?
실프가 허공에 나타나 내 머리 위에 사뿐히 섰다.
“마을 내부를 살펴줘.”
-냥!
실프는 바람이 되어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마을을 둘러보고 돌아온 실프에게 내가 물었다.
“사람이 살고 있니?”
-냥.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명이나?”
실프는 땅바닥에 숫자 234를 적었다.
인구 2백 정도라면 작은 마을이지만, 이런 위험한 숲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었다.
“다들 잠들어 있니?”
이번에는 숫자 28을 적었다. 28명 정도가 깨어 있다는 뜻이리라.
“내가 앞장서겠다.”
강천성이 나섰다.
“예, 부탁할게요.”
강천성은 앞장서서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우리가 줄줄이 따랐다.
마을 안의 풍경은 평범했다.
나무로 지은 조악한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
마을 정문으로 들어왔을 때, 마을 광장쯤으로 보이는 공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공터 한가운데는 우물이 있는데, 우물물을 깃던 아줌마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우릴 바라보았다.
“누, 누구시죠?”
아줌마가 물었다.
간밤에 죽인 라이칸스로프와 똑같은 언어였다. 러시아어와 약간 억양이 비슷했는데, 이번에도 나는 그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형, 형도 알아들었어요?”
준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시험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혜수의 말이 옳았다.
원활한 시험 진행을 위하여 아레나의 모든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시험자에게 주었다고 봐야 옳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현상은 설명이 안 된다.
“저, 저기…….”
아줌마는 겁먹은 얼굴로 다시 한 번 말을 건넨다.
내가 나서서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놀랍게도 내 입에서도 한국말이 아닌 아줌마와 똑같은 언어가 흘러 나왔다. 다른 팀원들도 놀란 눈치였다.
“당신들은 누구시죠?”
“저희는 여행자입니다. 길을 잘못 들어 숲을 헤매다가 이 마을을 발견하고 왔습니다.”
“여행자라고요? 이 숲을요?”
“예.”
아줌마는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하기야 레드 에이프와 라이칸스로프가 득시글거리는 이 숲을 헤매는 여행자라니 쉽게 믿을 리가 없었다.
나는 부연설명을 했다.
“예, 숲을 헤매다가 라이칸스로프의 공격을 받아서 꽤나 고생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아줌마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라, 라이칸스로프에게요?”
면밀히 관찰해보니 아줌마는 ‘라이칸스로프’라는 말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라이칸스로프를 무서워하는 것 같네. 일단 강하게 나가볼까?’
내가 말했다.
“열 마리가 한꺼번에 덤벼들기에 모두 처치해 버렸죠. 우리는 꽤 강하거든요.”
깜짝 놀란 아줌마에게 내가 이어서 말했다.
“이 마을의 책임자 되시는 분과 만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며칠만 머물도록 허락을 받고 싶습니다. 라이칸스로프들은 우리를 두려워하니 놈들이 우릴 뒤쫓아 이곳을 습격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말에 아줌마는 도리어 더 무서워하는 표정이었다.
“자, 잠시만 기다려요! 촌장님을 모셔올 테니.”
아줌마는 부리나케 어디론가 달려갔다.
“형, 그렇게 허풍 떨어도 돼요?”
준호가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한 번 반응을 보려고 떠봤어.”
“그래서 어땠어요?”
혜수가 물었다.
“…좀 이상해.”
“네?”
“이 마을은 좀 이상해. 수상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더 자세히 말해봐라.”
강천성이 말했다.
내가 답했다.
“라이칸스로프가 출몰하는 숲에 떡하니 마을이 있는 것도 이상한데, 목책의 문은 열려 있고 지키는 사람들도 없어요.”
“아……!”
“정말이네요.”
그제야 준호와 혜수, 강천성도 마을을 둘러보며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아까 그 아줌마 반응 봤지? 우리가 라이칸스로프 열 마리를 죽였고 놈들이 우릴 두려워한다고 말하니까 오히려 더 겁먹는 거.”
“혹시 라이칸스로프가 마을 주민으로 변신한 게 아닐까요?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혜수가 의견을 제기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실프는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어. 실프, 그렇지?”
-냐앙.
실프는 꼬리로 내 목을 휘감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칸스로프가 변신한 게 아니라 사람이 확실하니?”
혜수가 물었다.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프가 저렇게 확신하니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이 마을엔 밭이나 목장도 있었다. 라이칸스로프가 농사와 목축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잠시 후, 마을 사내들 십여 명이 우르르 나타났다.
“자네들이 그 여행자인가?”
지팡이를 짚고 있는 허연 수염의 노인이 물었다.
내가 답했다.
“그렇습니다.”
“난 이 마을 촌장 레빌이라고 하네.”
레빌? 이상한 이름이군. 아레나 세계에서는 이게 흔한 이름일까?
“저희는 그냥 이곳저곳 떠도는 여행자입니다. 딱 하루만 이 마을에서 머물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라이칸스로프와 싸웠다고?”
“예, 그런 놈들 쯤이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허, 대단하구먼. 그렇지 않아도 우리 마을은 그놈들에게 많은 괴롭힘을 받는다네. 자네들 같은 듬직한 이들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감사합니다.”
“빈집이 있으니 자네들이 며칠 묵기에 큰 지장이 없을 걸세. 내가 안내해 줄 테니 따라오게나.”
“예.”
“자자, 내게 맡기고 다들 일들 보게.”
촌장은 함께 나온 건장한 사내들 십여 명을 해산시켰다.
사내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우리는 촌장 레빌의 안내를 받아 마을을 걸었다.
“이상하지?”
촌장은 뜬금없이 물었다.
“뭐가 말이죠?”
“이런 곳에 마을이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아, 예. 확실히 이상했습니다. 이런 위험한 숲에 마을이 있으니까요.”
“허허허, 확실히 숲에 나타나는 짐승들이나 괴물들은 위험하지.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세금일세.”
촌장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살인적인 세금처럼 무서운 게 없지. 무자비한 영주보다는 차라리 라이칸스로프가 낫네. 이 마을 주민들 모두 영주의 폭정을 피해 달아나 숨어든 사람들이지.”
“많이 고생하셨겠네요.”
“말해 뭐하겠나. 화전으로 밭 일구랴 소 돼지 키우랴 라이칸스로프들과 싸우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마지막 말만 거짓말이군.’
나는 분석 끝에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폭정을 피해 숨어든 사람들이 형성한 마을인 건 사실 같다.
하지만 라이칸스로프와 맞서 싸운다는 것에는 의문이었다.
아까 촌장과 함께 나타난 사내들을 쭉 살펴보았는데, 제대로 무장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디 한 번 지켜보자.’
레빌이라는 이 촌장 늙은이가 대체 무슨 의도를 품고 있는지 알아야겠다.
내 생각엔 라이칸스로프들과 모종의 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마을의 정체와 우리에게 거짓말 하는 이유를 알아야겠다.
“자, 이곳일세. 꽤 쓸 만하지?”
촌장은 나무판자로 이어 만든 조잡한 집을 보여주었다. 뭐, 그래도 땅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촌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만 하게.”
촌장은 흐뭇하게 웃고는 떠났다.
우리끼리 남게 되자 혜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빠, 여기서 지내도 괜찮은 거예요? 오빠 말대로 이 마을은 좀 느낌이 이상해요.”
“저도 아까 형 말 듣고 나니까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우리 그냥 이런 마을에 머물지 말고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혜수와 준호는 이 마을을 꺼림칙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강천성도 말은 없지만 같은 생각이리라.
내가 말했다.
“너희들 말대로 이 마을은 수상해. 하지만 우린 이 마을에서 머물러야 해.”
다들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왜냐고 묻는 표정들이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가 이 마을을 그냥 지나치고 계속 갈 길을 간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를 쫓아오는 라이칸스로프를 따돌릴 수 있을까?”
“…….”
“…안 되겠죠. 그놈들이 우리보다 훨씬 빠르니까요.”
그래.
내 결론도 그렇다.
“그럼 생각해 봐. 우리는 이동속도로 라이칸스로프를 따돌릴 수 없고, 공격받는 족족 맞서 싸우는 것도 무리야. 놈들도 바보가 아니니 이제 방심하지 않고 다수로 덤벼들 테니까.”
모신나강이 마구 휘갈길 수 있는 자동소총도 아니고, 총알도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불가능한 시험을 우리에게 줬을 리가 없어. 어딘가에 분명히 시험을 클리어할 수 있는 힌트가 있고, 난 그게 이 마을에 있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