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37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37화
“인간에게 당했다?”
아버지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무리 내에서 킬킬거리는 남자들의 웃음이 작게 들려왔다.
헬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몇 명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셋이 일순간에 당해 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여기저기 간헐적으로 들리던 웃음이 뚝 멎었다.
이곳에서 헬기를 좋아하는 남자는 없었다. 씨족 내에서 남자란 모두가 서열과 여자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헬기의 강함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런 헬기가 싸워보지도 못하고 형제를 모두 잃은 채 돌아왔다면, 그건 무능을 비웃고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셋이나 죽었는데 상대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니? 무언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 말만으론 부족하군.”
아버지의 말에 헬기는 옆에 놓인 동생의 시신을 가리켰다.
“그래서 동생의 시신을 챙겨왔습니다.”
동생의 시신을 뒤집어 등을 보여주었다.
“작은 무언가가 바람보다 빠르게 날아와 틀어박혔습니다. 인간은 먼 거리에서 상대를 타격하는 이상한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시체를 살펴봐라.”
“예.”
헬기는 동생의 시신을 살폈다. 등에 난 상처 안에 손을 집어넣어 헤집었다. 이윽고 무언가가 헬기의 손에 잡혔다.
그것을 꺼내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찌그러진 작은 금속덩어리였다.
“이런 작은 게 바람보다 빠르게 날아왔다고?”
“그렇습니다, 아버님.”
“위험한 무기를 갖고 있군.”
“확실치는 않지만 정령사도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싸늘한 침묵이 찾아왔다.
헬기 형제를 순식간에 사살한 미지의 무기. 그리고 정령술까지.
이번에 그들의 숲에 발을 들인 인간은 범상치가 않았다.
“일단은 영역에 들어온 인간이 누구이고 몇 명인지는 알아야 할 게 아니냐.”
“아버님, 제가 알아오겠습니다!”
불쑥, 무리 속에서 한 라이칸스로프가 기세 좋게 나섰다.
‘제이슨?’
헬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이슨은 배다른 형제들 중에서 헬기와 가장 경쟁관계에 있는 자였다.
헬기가 낭패를 보고 돌아온 이번 일에 제이슨이 잽싸게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명백히 헬기를 견제하는 처세술이었다.
“그렇게 해라.”
아버지는 누가 이번 일을 맡긴 별로 상관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맡겨주십시오!”
제이슨은 싱글벙글하며 즉시 떠났다. 제이슨과 같은 어머니를 둔 형제들이 우르르 따라 나섰다.
‘좋지 않다.’
헬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버지가 수장으로 군림하는 씨족 내에서 라이칸스로프들은 보통 모계를 중심으로 뭉쳐 파벌을 형성하곤 한다.
지금까지는 아버지의 첫째 아내 마리아의 계통인 헬기 형제들이 득세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헬기를 제외하고 전부 죽고 말았다.
그에 반해 셋째 아내 헤라의 계통인 제이슨 형제들은 무려 일곱 명이었다.
이번 일까지 성공한다면 이를 계기로 제이슨이 씨족 내의 2인자 자리를 차지하려 들지도 몰랐다.
물론 파벌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의 강함이지만, 제이슨은 헬기와 비교해도 힘이 약하지 않았다. 실제로 붙는다면 헬기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라이벌이었던 것.
‘하지만 아직 모른다. 제이슨은 성질이 급하니까 일을 그르칠지도 몰라.’
정찰 정도야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이 잠든 틈에 가시거리까지 접근하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정찰에 성공한 뒤에, 제이슨이 욕심을 부려서 인간들을 공격한다면?
그러다 인간의 반격에 부딪쳐 막대한 피해를 입는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씨족 전체의 입장에서는 동족을 잃는 안 좋은 일이지만, 헬기의 입장에서는 라이벌이 추락하는 최상의 결과였다.
‘제이슨 녀석이 죽기를 바라야겠군.’
헬기는 제이슨이 만용(蠻勇)을 부리기를 기대했다.
***
“큭큭큭, 헬기 녀석 얼굴 일그러지는 거 봤어?”
“똥 씹은 표정이던데.”
제이슨 형제는 키득거렸다.
“인간에게 당하고 돌아오다니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흥, 그동안 실컷 거들먹거리더니 헬기 녀석의 한계가 드러난 거야.”
제이슨은 헬기의 험담을 실컷 했고 형제들이 찬동했다.
아버지의 씨족 통치가 벌써 26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지배하에서 유서 깊은 실버 씨족은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씨족의 팽창이었다.
씨족 사상 아버지처럼 강력한 라이칸스로프는 없었다. 누구도 아버지에게 도전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씨족 내의 불필요한 서열 다툼도 금지시켜 버렸다.
도전도 서열싸움도 일어나지 않으니 남자의 사망률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그 탓에 씨족의 구성원이 증가했다.
게다가 아버지는 사냥을 하지 않고도 식량을 풍부하게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은 일대 혁신이었다. 힘들게 영역을 누비며 사냥감을 찾지 않아도 손쉽게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먹을 것이 풍부해지자 씨족은 마음껏 번성하였다. 20여 명에 불과했던 씨족이 지금은 백여 명을 훌쩍 넘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이상한 통치방침에 씨족 내에 불만이 컸지만, 이제는 모두가 아버지를 칭송했다. 실버 씨족의 번성을 가져다주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불만세력 역시 존재했다.
바로 제이슨 형제가 대표적이었다.
‘라이칸스로프는 무조건 힘이야! 힘으로 서열이 정해져야 해. 아버지에게 알랑방귀를 잘 뀐다고 서열이 높아지는 꼴이라니, 이건 크게 잘못됐어!’
제이슨은 헬기에게 유감이 많았다.
자신의 힘이 헬기에게 뒤떨어진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헬기는 잔머리가 잘 돌아가서 아버지가 시킨 일을 말끔하게 처리했고, 머리가 둔한 제이슨은 그러지 못했다. 때문에 씨족 내의 입지는 헬기를 따를 수가 없었다.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지금이 기회야.’
아버지의 통치방식을 잘못됐다.
씨족의 숫자는 많아졌지만 남자들은 용맹을 잃고 나약해졌다.
예전처럼 사냥으로 먹고 살지를 않으니 감이 떨어져서 인간 따위에게 당한 것이다.
제이슨은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 해. 내가 그렇게 만든다.’
물론 아버지에게 도전할 생각은 없었다. 너무 강하니까.
하지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헬기만 눌러버리면 된다.
제 아무리 괴물 같은 아버지도 세월이 흐르면 노쇠할 테니 말이다! 헬기만 찍어 누르면 다음 수장은 자신이었다.
“감히 우리 영역을 침범한 인간들을 모조리 처치하자.”
“뭐?”
“처치하자고?”
제이슨의 폭탄선언에 형제들은 깜짝 놀랐다.
“제이슨, 우리가 명령받은 것은 정찰이야. 아버님께서는 싸우라고 하지 않으셨어.”
“맞아.”
“그리고 이상한 무기를 가진 심상치 않은 인간들이야. 섣불리 덤볐다가 거꾸로 우리가 당하면 어떡해?”
“그 헬기 형제들도 당했다고.”
“헬기 형제가 뭐?”
갑자기 제이슨이 으르렁거리자 형제들은 움찔 놀랐다. 제이슨이 불같이 노하였다.
“헬기 형제가 못했으니 우리도 못할 거다 그거냐?!”
“아, 아니, 내 말은…….”
“이 겁쟁이 놈이!”
“케엑……! 켁……!”
제이슨은 한 동생의 모가지를 틀어쥐었다.
“잘 들어! 헬기 형제를 무참히 사살한 인간 놈들을 우리가 전부 사냥할 거다. 그렇게 대성공을 거두고 돌아가면 헬기 따위를 믿고 계셨던 아버님도 생각이 조금은 바뀌시겠지. 우리 씨족이 번영을 얻은 대신 너무 나약해졌다는 것을 깨달으실 거야!”
“케엑……! 아, 알았으니……!”
제이슨은 동생을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앞장섰다.
“가자. 일단은 인간이 어디에 있는지 냄새를 추적해 봐야지.”
***
‘이대로는 안 되겠다.’
불안해서 잠을 거의 못 잔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낮과 밤을 바꾸자.”
팀원들에게 내가 제안했다.
다들 어리둥절하기에 내가 이어서 설명을 했다.
“라이칸스로프는 야행성이니 어두운 밤에 습격해 올 가능성이 높아. 특히 밤에는 우리가 잠든 시각이고 시야도 어두우니까.”
“잠을 낮에 자자는 것이군.”
강천성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장 밝은 시간에 잠을 자면 불침번을 설 때도 밤보다는 경계에 유리해지죠. 어두운 밤에는 실프를 수시로 소환하며 이동하고요.”
“좋은 생각이에요.”
“저도 찬성이요.”
혜수와 준호가 찬성했다.
강천성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내 생각에 동의했다.
우리는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이동을 하다가 해가 중천에 떴을 즈음에 잠을 자기로 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망토를 덮고 잠들었는데, 다들 불안해서 잠을 제대로 못잔 터라 한낮임에도 쉽사리 잠들었다.
모닥불을 피울 필요가 없어서 일석이조였다. 모닥불의 불빛으로 라이칸스로프의 이목을 끌 일도 없는 것이다.
대신 해가 저물자 어려운 행군이 시작되었다. 시야가 잘 보이지 않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이동해야 했다.
나는 고민 끝에 강천성을 앞세웠다. 체력보정 중급 1레벨에 오러컨트롤도 초급 5레벨이나 되는 강천성은 우리 중에 신체감각이 월등해서 밤에도 예민한 오감으로 능히 잘 다녔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준호와 혜수가 뒤따랐고 나는 맨 뒤에 자리 잡았다.
강천성은 바위나 돌출된 나무뿌리 등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에게 경고해 주면서 곧잘 역할을 수행했다.
나는 수시로 실프를 소환해 주변 1.2킬로미터 이내를 정찰했다.
‘이대로 넘어갈 리가 없지. 분명히 복수하러 올 거야.’
소총 때문에 겁먹어서 못 덤빌 정도로 쉬운 상대일 리가 없다. 시험이 그렇게 쉬울 리가 있겠는가?
‘어젯밤에는 놈들의 습격이 없었어. 우리를 경계하고 있다는 증거야. 신중하게 다루겠다는 생각이겠지.’
정확히는 내가 가진 총의 위력을 경계하는 것이겠지. 그런 무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테니 상당히 놀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은 대규모의 습격은 없다.
‘일단은 정탐을 하겠지.’
늑대는 상당히 지능적인 동물이고, 하물며 라이칸스로프는 인간에 필적한 지능을 지녔다고 했다.
일단은 몇 명만 정탐을 보내 우리를 살펴보려 할 것이다.
우리가 모두 몇 명이며, 우리가 가진 이상한 원거리 무기는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하려 할 것이다.
원거리 무기, 즉 모신나강의 사정거리도 알고 싶어 할 테고. 공격은 그 점을 충분히 파악한 다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정보를 쉽사리 주어서는 안 된다.
놈들의 정탐을 방해하고 교란시켜야 한다.
‘좋아.’
나는 한 가지 꾀를 떠올렸다.
“실프.”
-냐앙?
“우리의 체취를 지울 수 있는 독한 냄새를 가진 풀이나 열매가 이 근처에 있니?”
-냥!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져와줘.”
실프는 휙 하니 날아갔다.
5분쯤 지났을까?
실프는 쑥처럼 생긴 풀 한 무거기를 뽑아왔다. 코에 가까이 가져가 냄새를 맡아보니 독한 풀냄새가 올라왔다.
‘이거면 되겠다.’
나는 구상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실프, 20분 동안 우리의 체취를 지워줄래? 우리가 지나간 자리에 체취가 남아있지 않게 하면 돼.”
-냥.
실프를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실프가 뽑아온 풀을 나눠주었다.
“20분 뒤에 이걸 빻아서 옷에 바르도록 해.”
“어쩌시게요?”
혜수가 물음에 내가 답했다.
“놈들은 냄새를 통해 우리를 추적하고 있을 거야. 우리가 몇 명인지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지를 우리가 남긴 체취를 통해 파악하겠지.”
“냄새를 없애서 따돌리려고요?”
준호가 물었다.
“따돌리는 건 불가능해. 다만 우리 냄새가 사라지면 놈들이 혼란을 느낄 거야.”
나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후각으로는 파악하기 힘드니까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접근하겠지. 그때 전부 잡아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