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35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35화
“일단 시험부터 확인하자.”
“네, 형.”
“그래요.”
준호와 혜수가 재깍 대답하고 강천성도 고개를 끄덕인다. 아, 이 협조성. 박고찬이 없어지니까 정말 시작 분위기가 좋다.
“석판 소환.”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5
-카르마(Karma): 0
-시험(Mission): 숲에서 벗어나라.
-제한시간(Time limit): 20일.
“20일?”
혜수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오랫동안 숲을 헤매고 다녀야 하나…….”
준호도 기겁을 한 눈치였다.
아무리 두 번째 시험을 통해 익숙해졌고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지만, 그래도 야생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굉장히 고된 일이었다.
불편한 잠자리, 쌀쌀한 날씨, 해충들 등등. 그런 고단함과 싸우며 20일을 보내야 한다니 다들 질색하는 것은 당연했다. 나도 이제 이놈의 숲이 지겨우니까.
난 일단 리더로서 팀원들을 진정시키기로 했다.
“너무 걱정할 것 없어. 20일은 그냥 제한시간을 넉넉하게 준 거겠지. 숲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20일씩이나 걸리지도 않을 거야.”
“하긴 그건 그래요.”
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아무튼 연구소에서 예상한 대로 숲에서 벗어나는 시험이 나왔으니까 우리도 예정대로 동쪽으로 움직이자.”
그러면서 나는 실프를 소환했다.
-냐앙.
바람으로 이루어진 늘씬한 고양이 형상의 실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꼬리로 내 목을 휘감고 애교를 부리며 반가워한다.
“주변 정찰 좀 해줘.”
-냥.
고개를 끄덕인 실프는 휭하니 날아갔다.
“자, 가자.”
나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오빠, 동쪽으로 가야 하지 않나요?”
혜수가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쪽이 동쪽이야.”
“정말요? 방향을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아, 내가 습득한 보조스킬에 대해 못 들었나 보네.’
나는 100카르마로 습득한 보조스킬 ‘길잡이’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와, 그럼 앞으로 길 잃을 염려는 없겠어요.”
“뭐, 그렇긴 한데 아직은 잘 몰라. 대략적인 방향밖에 모르고, 이 스킬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를 해봐야 하거든.”
물론 보조스킬 길잡이의 효용은 클럽에 놀러간 취업준비생 현지를 잡아오면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그 뒤로 나는 차지혜로부터 길잡이 스킬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길잡이(보조스킬): 목적지의 방향과 위치를 알 수 있는 육감을 얻습니다.
*초급 1레벨: 어렴풋이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100)
길잡이 초급 1레벨의 한계는 이러하다.
첫째, 방향만 알 수 있을 뿐 거리는 모른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지 까마득히 먼 거리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사람이나 물건을 찾는 경우, 내가 실제로 본 적이 있는 대상이어야 한다.
여동생인 현지는 내가 만나본 사람이니 당연히 어느 방향에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 자리에 함께 있는 팀원들이 숲에서 뿔뿔이 흩어져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천안에 사는 다른 시험자’를 찾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불가능하다.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설령 천안의 길거리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해도, ‘천안에 사는 다른 시험자’가 누구인지 내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이상 찾을 수 없다.
TV나 인터넷에서나 본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으니 길잡이 스킬은 발동되지 않는다.
“스킬 레벨을 올리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겠네요?”
혜수가 물었다.
“그렇긴 한데 차지혜 씨가 길잡이는 그냥 초급 1레벨로 충분하대. 그럴 카르마로 다른 스킬을 습득하는 편이 낫대.”
걸음을 옮기면서 가끔씩 실프를 소환해 주변 정찰을 해두었으므로 우리는 별반 긴장감을 느끼지 않았다.
지난번 시험에서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이 숲은 더 이상 낯선 장소가 아니었다. 요 인근에서 출몰하는 레드 에이프 또한 실컷 싸워본 상대라 두렵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동 중에도 서로 잡담을 나누었다.
주로 내 길잡이 스킬에 대한 이야기였으므로 아주 쓸모없는 대화는 아니었다.
“그럼 이런 건 어때요?”
준호가 뜬금없이 땅에서 작은 돌멩이를 주워들었다.
“잘 보세요.”
준호는 두 주먹을 내게 내밀어보였다.
“그 돌멩이가 어느 손에 있는지 맞춰보세요.”
나는 유심히 준호의 두 주먹을 바라보았지만 딱히 느낌이 오지는 않았다.
“모르겠는데.”
“에이, 이건 안 되나 보네요.”
준호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를 보여주었다.
실프를 시켜서 정찰을 해보니 이 일대에는 레드 에이프만 간간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충돌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겠지.’
이미 한 번 우리에게 우두머리까지 잃을 정도로 크게 대였던 놈들이다. 우리가 다시 나타났음을 알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최대한 마주치지 말고 빨리 놈들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편이 이롭다.
하루는 별 탈 없이 흘러갔다.
수시로 실프를 소환해 주변을 살펴서 충돌을 피했다.
오늘 만난 가장 위험한 적이라고 해봐야, 나무에서 뚝 떨어진 뱀밖에 없었다. 뱀은 출현하자마자 마침 소환되어 있던 실프에게 대가리가 잘려 버렸다.
준호와 혜수는 무척 꺼림칙해했지만, 강천성의 의견에 따라 잘 손질해서 구워먹었다. 역시 중국인이라서 그런가? 가리는 음식이 없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닥불에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문득 준호가 복통을 호소했다.
“아, 왜 이렇게 배가 아프지?”
“뭐 잘못 먹었어?”
“입에 댄 거라곤 뱀 고기밖에 없어요, 형.”
윗배를 문지르며 인상을 찡그리는 준호. 아무래도 뱀 고기가 몸에 안 맞아 탈이 난 모양이었다.
“잠깐만요.”
혜수가 아이템백에서 작은 알약을 꺼냈다.
“소화제야.”
“고마워요, 누나.”
준호는 혜수가 준 소화제를 먹었다.
혜수가 챙겨온 응급용품 중에 소화제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야생에서 생활하면 먹는 문제로 탈이 날 수도 있으니까.
“미안하군.”
보기 드문 강천성의 사과. 자기 때문에 뱀 고기를 먹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에요, 맛은 있더라고요.”
“준호는 오늘 불침번 서지 말고 일찍 쉬어.”
“네, 형.”
준호는 먼저 잠들었고, 우리는 불침번을 정한 후에 잠을 청했다.
다행히 소화제가 들었는지 잠을 자고 있는 준호의 얼굴빛은 괜찮아 보였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첫날이 지나갔다.
***
“저 때문에 죄송해요.”
다음 날 아침, 준호가 모두에게 사과를 해왔다. 배탈 때문에 불침번을 빠져서 미안한 모양이었다.
“괜찮아. 이제 아픈 건 없고?”
“예.”
“다행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출발하자.”
아침식사는 나와 혜수가 함께 준비했다. 나는 실프를 시켜 가장 만만한 토끼를 사냥했고, 혜수는 산딸기와 귤처럼 생긴 과일과 나물을 늘어놓았다.
“누나, 그 과일이랑 식물 먹어도 되는 거예요?”
“응, 확실하게 배웠으니까 걱정 마.”
혜수는 검술 훈련과 응급처치는 물론이고 식용 과일·식물을 구분하는 법도 배웠다고 했다.
약한 만큼 누구보다도 열심히 훈련에 임했는데 그 성과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어제도 하루 종일 걸었는데 크게 지친 기색이 없었지.’
지난번 2회차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을 한 혜수였다. 앞으로도 계속 짐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했다.
가장 체력이 약한 혜수도 체력보정 초급 1레벨로 건강한 성인 남성 수준이 되었기 때문에 행군에 무리가 없었다.
실프의 정찰로 레드 에이프와 충돌을 피하며 반나절 내내 걸었다.
다시 광활한 숲에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냥!
실프가 문득 정찰하다가 돌아와 날카롭게 소리쳤다.
“적이야?”
-냐앙!
고개를 끄덕이는 실프.
“이쪽으로 오는 중이니?”
이번에는 고개를 젓는다.
그런데 실프의 태도가 평소 같지 않았다. 먹이를 찾아 영역을 배회하던 레드 에이프를 발견했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레드 에이프가 아니라 다른 놈들이니?”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
“뭔가가 빠르게 지나간 것 같은데.”
한 명이 말했다.
다른 이들도 맞장구쳤다.
“나도 느꼈어. 흐릿한 어떤 형체였어.”
“너희도? 기분 탓인 줄 알았는데.”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 숲.
네 명의 인영(人影)이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소리도 냄새도 없었는데 희한하군.”
“그러게. 그럴 수가 있나?”
“우리 영역에서 처음 보는 생물이야.”
그런데 그때였다.
“멍청이들.”
그들 중 가장 덩치가 커다란 인영이 입을 열었다.
“냄새도 소리도 없는 생물이 있을 까보냐.”
다른 셋은 말을 멈추고 주목했다.
말이 이어진다.
“아마도 그건 정령이다.”
“정령?”
“그게 정말이야 형?”
놀란 동생들에게 형이라는 자가 말했다.
“옛날에 할아버님께서 살아계실 적에 들은 적이 있다. 이 세상에는 정령이라는 놈이 있는데 살아 있지 않은데 살아 있는 것이라고 하시더군.”
“할아버님께서는 정령을 보셨대?”
“먼 옛날, 할아버님께서 우리 씨족에서 한 번 추방당하셨을 때 서쪽으로 녹색산맥을 넘으려 하셨다고 했다.”
“녹색산맥?”
“윽, 거기는…….”
동생들의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
“전부 죽고 할아버님만 살아남아 이곳에 돌아오셨지. 그때 정령을 보셨다더군.”
“당연히 다 죽었겠지. 할아버님께서 목숨을 건지신 것만도 행운이야.”
“거긴 엘프들의 영역이니까!”
세 동생의 얼굴에 긴장감이 일었다. 그들은 형을 보며 물었다.
“그럼 혹시 아까 그 정령도 엘프의 것일까?”
“엘프가 우리 영역을 침범한 것이면 큰일이잖아!”
“아버님께 고해바쳐야 해!”
“호들갑 떨지 마라!”
형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세 명의 동생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형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아직 무엇 하나 확인된 것 없는데 고해바쳐서 뭘 어쩔 거냐? 아버님께 겁쟁이들로 여겨지고 싶으냐?”
“아, 아니.”
“그건 아니지.”
“우린 겁쟁이가 아니야.”
‘아버님’이 언급되자 호들갑을 떨던 동생들의 태도가 다시 진중해졌다. 그들에게 아버지는 아주 특별한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직접 확인해 보자. 엘프만이 정령을 다루는 건 아니라고 들었다. 엘프의 친구가 되어 정령술을 배운 인간도 아주 드물게 있다고 할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형이 말을 이었다.
“엘프면 건드리지 말고 아버님께 말씀드린다. 그리고 인간이면… 그동안 우리의 영역에 발을 들인 인간들과 똑같이 만들어줘야지.”
“알았어.”
“형 말이 옳아.”
동생들은 형에게 찬동했다.
밤하늘의 달빛이 빽빽한 활엽수 사이로 내려와 네 명의 인영을 비추었다.
달빛에 드러난 그들의 모습은, 은빛 털로 덮인 직립보행의 맹수였다.
“가자!”
형이 앞장서서 달리자 동생들도 곧바로 뒤따랐다.
“크르릉!”
“크르르르!”
달리기 시작하자 그들은 야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탄력 넘치는 두 다리로 대지를 박차고 양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네 발 짐승처럼 달렸다.
광채가 흐르는 눈에서 살기가 일렁였다. 피를 원하는 굶주린 맹수들의 눈빛이었다.
네 명의 라이칸스로프 형제는 그렇게 적을 찾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