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33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33화
15일이라는 휴식시간을 정말 알뜰살뜰하게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쪼개고 쪼개서 아껴 썼다. 그런데도 시간은 이렇게 빠르게 지나간다.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5
-카르마(Karma): 0
-시험(Mission): 다음 시험까지 휴식을 취하라.
-제한시간(Time limit): 10시간 21분
시험 당일이 되자 한국 아레나 연구소에서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가족에게 친구와 여행 간다고 말해놓고 집을 나섰다.
차량을 타고 군부대 헬기장에서 헬기를 타고 연구소에 도착했다.
연구소의 헬기장은 요란 법석했다.
도착한 헬기가 한 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와 거의 동시에 도착한 헬기에서 세 남녀가 내렸다. 남자 둘과 여자 하나였는데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사이로 보였다.
“아, 귀찮아. 이번 시험은 일주일 안에 끝나는 거면 좋겠는데.”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금발로 염색한 여자가 투덜거렸다.
“지난번 시험은 2개월이 걸렸지? 하룻밤 사이에 60일 늙은 셈인가…….”
왜소하고 순한 인상의 남자가 한숨을 쉬자, 금발 여자가 머리를 싸쥐고 절규한다.
“싫어 싫다고! 나이 먹기 싫어! 30대 되기 싫어!”
음, 확실하군. 나와 동갑이야.
체격이 건장한 남자가 그걸 보며 키득키득 웃는다.
세 남녀를 보고 나는 깨달았다.
‘시험자들이구나!’
우리 팀원을 제외한 다른 시험자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연구소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었는데 말이다.
그들 셋도 나를 발견했다.
“응? 누구?”
금발 여자가 호기심을 드러낸다.
“신참 아냐?”
이건 체격 좋은 남자의 말.
“그야 모르지. 중국에서 영입해 온 베테랑 시험자일지도 몰라.”
“물어보면 되지.”
금발 여자는 거침없이 쪼르르 나에게 다가왔다.
“하이? 넌 누구세요?”
화이트셔츠에 짧은 핫팬츠 아래로 훤히 드러낸 맨다리가 인상적인 여자다. 장난기 넘치면서 예의는 상실한 말투는 고딩 날라리를 연상케 한다.
대뜸 반말인데, 내가 공손하게 나오면 왠지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지?
“니먼 따쟈 하오.”
난 내가 아는 유일한 중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흠칫한 금발녀는 남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진짜다! 진짜로 중국에서 데려왔나 봐.”
“거긴 시험자 대우가 개판이니까 영입하기가 쉽지. 그래도 공안들 감시가 삼엄한데 일부러 빼내왔다면 꽤 실력자라는 뜻인가?”
“너무 속단하지 마. 대만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나를 두고 토론을 벌이는 세 사람.
금발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에게 말을 건다.
“으음, 나이스 투 미츄. 아, 유, 음… 테스터? 매직? 오어 파이팅?”
학력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영어실력.
“워떠 밍뜨 쌰오 와따 팡쯔 쓰.”
나는 아무렇게나 중국말처럼 지껄였다. 금발녀는 당황했다.
“여, 영어로 좀 해주지. 영어 몰라요? 잉글리시! 중국사람 영어 잘한다며?”
자기는 영어를 안다는 듯이 말한다.
“왕 샤오 밍 니떠 링…….”
계속 중국인 놀이를 하며 금발녀를 당황시킬 때였다.
“김현호 씨, 거기서 뭐 하십니까?”
뒤에서 다나까 말투의 사무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차지혜였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중국인 놀이 하고 있었어요.”
금발녀는 내 말에 그만 멍한 표정이 되었다. 두 남자도 덩달아 넋을 잃더니,
“크하하하!”
체격 좋은 남자가 폭소를 터뜨렸다. 순한 인상의 남자도 쿡쿡 웃었다.
“아, 뭐야! 갑자기 중국말 해서 깜짝 놀랐잖아!”
금발녀는 내게 화를 낸다.
“영어로 할 걸 그랬나요?”
“으윽, 분해! 너 뭐야? 시험자야?”
“예.”
“몇 회차?”
“…….”
2회차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신참이라고 우습게 보겠지?
비밀이라고 얼버무리려 할 때였다.
“2회차 시험자 김현호 씨입니다. 인사들 나누시죠.”
차지혜! 이 배려 없는 여자가!
예상대로 금발녀는 눈이 가늘어졌다.
“흐응, 2회차?”
“그러는 댁은?”
“호호, 이 누나는 19회차란다.”
19회차?!
나는 흠칫 놀랐다.
19차례의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면 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호호, 놀랬니? 이 누나한테 많이 배우고 싶지?”
“배울 점이 많을 겁니다. 이분들은 19차례의 시험 중 14차례를 클리어 한 베테랑입니다.”
차지혜의 설명에 이번에는 내 눈빛이 가늘어졌다.
“그러니까 5번은 실패했군요?”
“그, 그런데? 모든 시험을 전부 실패 없이 클리어 한 시험자가 있을 것 같아?”
모든 시험에서 성공할 수는 없다?
그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우리 팀의 혜수도 첫 시험은 실패했다. 하지만 안 죽고 이렇게 살아 있다. 페널티로 주어지는 마이너스 카르마만 감당할 수 있으면 된다.
“실패 시의 페널티는 어떤가요? 감당할 만한가요?”
금발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시험에 성공하면 카르마를 주듯이 실패하면 카르마를 뺏어가.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고 의지를 가졌느냐를 정확하게 평가돼서 말이야.”
“시험 실패가 꼭 죽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네요.”
“그래, 두려운 건 죽음이지. 너희는 이제 3회차를 앞둔 거지?”
“예.”
“컨디션 떨어지게 괜한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조심하도록 해. 우린 2회차, 3회차에서 동료를 한 명씩 잃었어. 2, 3회차 징크스지.”
징크스?
그 말에 가슴이 오싹해진다.
우리도 2회차에서 한 명이 죽었다. 내가 죽이긴 했지만 아무튼 죽은 건 죽은 거다.
이게 징크스라고?
그럼 다음 시험에서도…….
“징크스랄 것도 없습니다.”
차지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직 미숙한 2, 3회차에 사상자가 나오는 건 상식적으로 당연합니다. 하지만 김현호 씨 팀의 경우 여느 팀의 2, 3회차 때와 비교해도 질적으로 매우 우수하므로 문제없습니다.”
“헤에, 그래? 지혜 언니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제법 가능성이 있나 봐?”
언니?
“30대였어요?”
“그렇습니다만?”
내 물음에 차지혜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헉, 화난 얼굴은 처음 본다.
“도, 동안이시네요. 지혜 씨 쪽이 한참 동생인 줄 알았는데.”
그 말에 차지혜의 얼굴이 풀렸지만, 이번에는 금발녀가 발끈했다.
“죽고 싶냐!”
“사실을 말하긴 했지.”
“아레나에서 시험을 보낸 시간을 감안하면 이제 비슷비슷한 거 아냐?”
두 남자의 말에 금발녀는 이글이글 폭발직전이었다.
차지혜가 냉큼 끼어들었다.
“서로 통성명을 하시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아레나에서 만나 함께 시험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흥, 난 유지수야. 29살이고.”
금발녀는 유지수.
“차진혁. 33세다.”
체격 좋은 남자는 차진혁.
“이지용. 나도 33세.”
작고 순한 인상의 남자는 이지용.
금발녀 유지수가 덧붙였다.
“참고로 내가 팀의 리더야. 얘들은 내 첩들이라 할 수 있지. 깔깔깔.”
“닥쳐라.”
“오해 살 만한 말은 하지 마.”
두 남자가 즉각 반발한다.
이 여자 정말 예의범절이 막장이군. 연상한테 얘들이라니. 차진혁은 한 성격 할 것 같은데 용인하는 걸 보면 이미 포기한 지 오래인 듯했다.
“김현호라고 하고 29세입니다.”
“응? 나랑 동갑이네.”
“아레나에서 보낸 시간까지 합하면 제가 동생이죠.”
“닥쳐.”
금방 정색하는 유지수였다.
***
연구소 지하 1층에 시험자 대기실이라는 장소가 있었다.
넓은 홀이 있고, 복도에 작은 침실이 고시원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고, 반대편에는 캐비닛이 모여 있었다.
“오빠.”
“형!”
혜수와 준호가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두 사람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너희들 괜찮아?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강도 높은 훈련으로 몸에 무리가 생긴 탓입니다. 시험의 문을 통과하면 완쾌되니 염려 마십시오.”
차지혜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팔다리가 잘 안 움직여요. 차라리 얼른 시험 보러 가고 싶어요.”
준호가 울상이 되었다. 혜수도 동의하는지 애처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한편, 나와 함께 들어온 유지수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각자의 캐비닛으로 갔다. 캐비닛에서 여러 가지 옷가지를 꺼내 들고는 침실로 들어간다.
묵묵히 할 행동을 하는 모습이 상당히 익숙해 보였다. 하긴 그들은 19회차의 베테랑이니까.
잠시 후 그들은 옷을 다 갈아입고 나왔는데, 그 모습이 대단히 독특했다.
“왜? 반했어?”
유지수가 나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뇨. 꼴이 그게 뭐예요?”
“별수 없어. 아레나에서 지구의 옷을 입고 다니면 눈에 띠잖아. 아레나에서 흔히들 입는 복장을 갖춰야지. 안에는 배틀 슈트를 입고.”
세 사람은 마치 르네상스 시기의 근세유럽풍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가죽부츠, 장갑, 후드 달린 망토까지 유럽의 민속촌에서 뛰쳐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신기하게 쳐다볼 것 없어. 너희도 이렇게 입어야 하거든?”
그제야 나는 캐비닛에 시선을 돌렸다. 캐비닛 중에 우리의 이름이 쓰인 것도 있었다.
“우리도 미리 갈아입을까? 배틀 슈트나 옷에 익숙해져야 하니까.”
“네, 그래요.”
결국 우리 팀도 옷을 갈아입었다. 각자의 이름이 적힌 캐비닛에는 배틀 슈트나 아레나 복식의 옷가지, 신발 등이 각자에게 딱 맞는 사이즈로 준비되어 있었다.
침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는데 속옷 위에 바로 입은 배틀 슈트는 슈퍼맨의 옷을 생각나게 했다. 놀라울 정도로 신축성이 좋아서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보온성도 좋아 노숙을 해도 춥지 않을 듯했다.
‘대단한 옷이네. 도검류에도 잘 뚫리지 않는다고 했지?’
몸에 딱 맞는 배틀 슈트를 보던 나는 내 우아한 몸매가 다시 감탄하는 시간도 잠시 가졌다.
그 위로 천 재질의 셔츠와 끈으로 허리를 조이는 바지를 입고 부츠를 신었다. 후드가 달린 망토도 걸치니 영락없이 코스프레를 한 꼴이었다.
‘좀 쪽팔린데.’
다 입고 밖으로 나오니 팀원들도 다 갈아입은 상태였다. 준호와 혜수도 스스로의 복장에 부끄러워하는 눈치였다. 쿨한 강천성만이 아무렇지 않아 했다.
“왜 망토까지 챙겨준 걸까요? 치렁치렁하고 좀 불편한데.”
준호의 의문에 유지수 팀의 이지용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노숙을 할 때 이불 대신 쓸 수도 있고, 싸울 땐 갑옷 같은 효과도 있어. 아레나 세계에서는 여행자의 필수품이니 어서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아…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별소리를. 아, 내가 더 연상 같아서 말을 편히 했는데 괜찮지?”
“물론이죠. 전 이준호라고 하고 아직 스무 살입니다.”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네. 난 이지용이라고 해. 이쪽은 유지수와 차진혁.”
그렇게 우리는 유지수 팀과 서로 통성명을 했다.
아직 시험까지 9시간 넘게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문득 차진혁이 말했다.
“그쪽, 강천성이라고 했던가?”
“그렇다.”
“제법 범상치 않은 오러가 느껴지는데, 댁도 정말 2회차야?”
“느껴진다?”
“아, 모르지 아직? 오러 컨트롤 초급 6레벨이 되면 타인의 오러를 감지할 수 있게 돼. 레벨이 올라갈수록 감지능력이 발달하지.”
“그런가.”
“근데 2회차라면 오러 컨트롤을 익혔어도 이제 겨우 초급 1레벨일 텐데, 댁 오러량은 좀 이상한데?”
“초급 5레벨이다.”
그 말에는 나도 놀랐다.
얼마 전까지는 4레벨이었던 강천성이었다. 그 새 레벨이 또 올랐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