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31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31화
“귀여워.”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왠지 차지혜는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방금 뭐라고 말씀하신 것 아닌가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녀는 사무적인 어조로 똑 부러지게 잘라 말했다.
“…뭐, 알았어요.”
분명 뭐라고 했는데.
다시 사격자세를 취했다.
개머리판을 밀착시킨 어깨가 조금 불편했다. 생소한 총이라 어색한 듯했다. 쓰다 보면 익숙하겠지.
250미터 표적지를 향해 겨눴다.
어깨에 앉은 실프가 앞발을 뻗어 총구를 미세하게 조정했다.
-냥.
마치 발사하라는 듯한 소리였다. 오케이.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쩌렁쩌렁한 총성! 묵직한 반발력이 어깨를 강타했다.
‘깜짝이야.’
체력보정 초급 4레벨이 아니었다면 반발력 때문에 폼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굉장한 반발력이었다. 적중된 표적지는 뒤로 벌렁 쓰러졌다.
“어떠십니까?”
“반발력이 생각보다 세서 놀랬네요.”
“7.62밀리 탄을 사용합니다. 당연히 군대에서 쓰셨을 5.56밀리보다 위력이 셉니다. 더 쏴보시겠습니까?”
“예.”
“100미터, 150미터, 250미터, 코스별로 표적지가 나타날 겁니다.”
그러면서 차지혜는 벽에 있는 붉은색 버튼을 눌렀다.
삐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격이 시작되었다.
100미터에 검은 표적지가 벌떡 일어났다.
타앙!
탄에 명중되어 넘어가는 표적지.
이어서 250미터 표적지가 나타났다. 뭐, 문제없다.
탕―
어김없이 표적지가 뒤로 넘어갔다.
5발을 모두 쏘자 차지혜는 5발이 꼽혀 있는 탄 클립을 주었다. 아까 배운 대로 탄을 집어넣고서 다시 장전했다.
타앙! 탕! 타앙!
그렇게 얼마나 쐈을까.
찰칵.
응? 이게 뭔 소리야?
뒤를 돌아보니 차지혜가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내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그녀는 살짝 당황한 어조로 말했다.
“저, 정령에 대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많이 수집해두고 싶습니다만, 더 촬영해도 괜찮습니까?”
“예, 얼마든지요.”
그때부터 그녀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실프를 대놓고 찍기 시작했는데, 얼굴표정이 왠지 일전에 카페에서 달콤한 것을 잔뜩 시켰던 것처럼 생기발랄했다.
…실프가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될 걸.
나는 실프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좀 더 귀여운 포즈를 취해볼래?”
-냥.
그때부터 실프는 고양이 모델로 돌변했다.
꼬리로 총구를 휘감아 조준하는가 하면, 코알라처럼 총열에 매달려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찰칵, 찰칵, 촬영 소리가 점점 잦아진다. 좋아하는 걸 보니 나도 뿌듯하군. 고양이 싫어하는 여자는 없지, 암.
그런데 잔뜩 흥분해서 사진을 찍던 차지혜가 문득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뭔데요?”
“굳이 김현호 씨가 총을 쏴야 합니까?”
“…네?”
“김현호 씨가 굳이 총을 잡아야 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어, 그게…….”
나는 그만 멍해졌다.
그러게, 왜 내가 총을 쏴야 하지?
어차피 조준도 실프가 알아서 해주는데. 나는 그냥 어디를 쏠지, 언제 방아쇠를 당길지만 판단할 뿐이었다.
“실프, 네가 한 번 쏴볼래?”
-냥.
실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서 모신나강을 건네받았다.
차지혜가 후다닥 달려와 5발 탄 클립을 건넸다. 근데 왜 두 손으로 공손하게 주는 거야? 실프는 꼬리로 탄 클립을 건네받더니,
철컥, 철컥.
아주 능숙한 동작으로 탄을 넣고 장전한다. 뭐, 뭐야, 베테랑 군인 같아! 역전의 고양이 용사?
“멋져…….”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 차지혜였다.
앙증맞은 두 앞발과 꼬리로 모신나강을 들고 조준하는 실프. 사뭇 진지한 표정인데 그마저도 귀엽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업그레이드판인가!
“시, 시작하겠습니다.”
차지혜는 다시 붉은 버튼을 눌렀다.
150미터의 표적지가 벌떡 일어나자,
타앙!
실프는 거침없이 쏴버렸다.
100미터, 250미터, 250미터, 150미터. 표적지가 일어서는 족족이 쏴 맞추는 실프. 5발을 전부 쏘자 차지혜가 건네준 탄 클립을 다시 신속하게 갈아 끼우고 또 쐈다.
타앙!
250미터 표적지가 벌렁 쓰러진다. 무지막지하게 신속했다. 사격속도나 재장전속도나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시모 하이하 같습니다.”
차지혜는 황홀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차지혜.
“그게 누구예요?”
“약 100일간 542명을 저격한 핀란드 저격수입니다. 시모 하이하의 총도 모신나강이었습니다.”
“아, 그러세요.”
저 귀여운 실프를 보고 그런 괴물 저격수를 떠올리다니, 이 여자 감성은 정상인가.
하지만 그럴 만도 한 게, 실프는 최강의 소총수였다. 조금의 딜레이도 없이 척척 표적을 쏴 맞추고, 한 번도 빗나가지 않는다!
-냥?
나를 돌아보며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는 실프. 계속해야 하냐고 묻는 얼굴이었다.
찰칵, 찰칵, 시끄럽다. 카메라 소리.
“실프 그만하고 이리 와.”
-냥!
실프는 총을 나에게 돌려주고 어깨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차지혜의 얼굴에 아쉬운 기색이 잠시 스쳤다.
원래의 딱딱한 무표정으로 돌아온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정령술의 소모는 어떻습니까?”
“음, 글쎄요. 확인해 볼게요.”
나는 석판을 소환해 실프의 소환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 보았다.
“제가 사격하는 것보다는 힘의 소모가 많네요. 총을 들고 있어야 하고, 사격의 반동도 제어해야 하니까 그런가 봐요. 하지만 딱히 큰 차이가 없어요.”
“그럼 역시 김현호 씨는 필요… 아니, 김현호 씨가 사격을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방금 저더러 필요 없다고 말할 뻔했죠?”
“아닙니다.”
“그랬잖아요.”
“아닙니다.”
“…그렇다 치죠. 그런데 실프가 총을 잡으면 전 싸울 때 뭘 해야 하죠?”
그 물음에 차지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왜 아무 말도 없으세요?”
“흠흠, 김현호 씨는 옆에서 총알을 들고 있다가 건네주는 역할을 맡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뭡니까!”
나는 발끈하고 말았다.
“무슨 문제라도?”
“제가 실프 따까리입니까?!”
“실프를 소환하신 장본인인데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너, 너무 초라하잖습니까!”
실프가 사수고 내가 부사수라니? 실프가 총 쏠 때 옆에서 총알을 들고 있는 역할이라니! 백발백중의 사격수였던 나의 포스가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보기에 초라하면 좀 어떻습니까?”
“초라해 보인다는 건 인정하시는군요?”
“아닙니다.”
“맞잖아요.”
“아닙니다.”
낯짝이 굉장히 두꺼운 차지혜였다.
“싸울 때 김현호 씨가 자유롭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입니다.”
“예?”
“시모, 아니, 실프가 사격을 할 때 김현호 씨는 동료들과 함께 접근해 온 적과 싸울 수 있는 겁니다. 김현호 씨는 체력보정 스킬을 초급 4레벨까지 습득하셨잖습니까.”
이 여자, 방금 실프를 시모 하이하라고 부르려고 했지?
“저한테 모신나강 말고도 마법소총이 있는데, 그걸 사용하면 되지 않나요?”
“그 점에 대해서도 드릴 말씀이 있는데, 일단은 다른 팀원과 함께 브리핑을 하시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강천성, 준호, 혜수 모두 이곳에 있었지.
“그러죠.”
***
“현호 오빠!”
“형!”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니 혜수와 준호가 날 반갑게 맞이했다.
“잘 지냈어? 훈련은 받을 만하고?”
“아, 진짜 빡세요.”
“그래? 혜수는? 응? 혜수야?”
혜수의 표정이 극히 어두워져 있었다.
“괜찮은 거니?”
“몸이…….”
“응? 몸이 왜?”
“몸이 혹사돼서 상할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어요. 상한 몸은 시험의 문을 통과하면 된다고…….”
좋은 생각이군.
시험의 문을 통과하면 몸이 깨끗하게 회복된다.
때문에 아주 강도 높은 훈련을 마음 놓고 시킬 수 있다. 무능력한 혜수가 단시일 내에 쓸모 있게 되려면 어쩔 수 없었다.
“힘들겠다. 그래도 네가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잖아.”
“알아요. 참고 버틸 거예요.”
혜수는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언제까지나 보호받을 수만은 없잖아요. 저도 현호 오빠한테 힘이 되고 싶어요.”
그 순간 하마터면 혜수를 끌어안을 뻔했다. 간신히 참았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며 차지혜가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차지혜의 무표정한 얼굴은 오늘따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냥.
그녀의 머리 위에 얹어져 있는 실프.
실프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실프더러 함께 있으라고 지시해 둔 것이다. 예상대로 그녀는 실프 때문에 잔뜩 들뜬 모습이었다.
“좀 늦으셨네요?”
“챙길 게 많았습니다.”
“실프랑 놀다 오신 거예요?”
슬쩍 찔러봤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화들짝 놀라 더듬거리는 차지혜.
‘놀다왔구나.’
신나게 실프랑 셀카 찍었겠지.
“흠흠, 아무튼 지금부터 중요한 브리핑을 할 테니 주목해 주십시오.”
그녀는 가져온 노트북을 켜고 연결된 프로젝터로 화면을 띄웠다.
커다란 지도가 화면에 나타났다.
손으로 제작된 축적과 비례가 부정확한 옛날식 지도로 보였다.
“이것이 아레나입니다.”
‘저게?’
우리는 놀라서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긴, 아레나에는 인공위성이 없으니 지도가 저렇게 조잡할 수밖에 없겠군. 시험자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제작한 지도일 테니까.
“지도의 남서쪽 끝에 있는 숲이 보이십니까?”
큰 땅덩어리의 남서쪽 끝부분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저 숲이 여러분이 계시는 장소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죠?”
“현재까지 밝혀진 레드 에이프 서식지는 두 군데가 있는데, 그중 여러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큰 숲은 저곳이 유력합니다.”
“1, 2회차는 저기서 했다고 치고, 3회차도 저 숲에서 하게 될까요?”
준호의 질문이었다.
차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시작 지점은 언제나 지난 회차의 종료 지점입니다.”
“그럼 계속 그 숲에서 시험을 치르겠네요?”
준호의 물음에 이번에는 고개를 젓는 차지혜였다.
“이것을 봐주십시오.”
화면이 바뀌었다.
[전 세계 시험자의 공통된 시험의 경향
1회차: 시험자의 자질 테스트. 인적 없는 야생에서 주로 시작됨.
2회차: 동료와 함께 팀워크 테스트.
3,4회차: 야생에서 벗어나 아레나 현지인의 사회로 진입.]
“전 세계 관련 기관이 공유하는 데이터를 토대로 산출한 경향성입니다. 이것을 보아, 여러분의 3회차 시험은 숲에서 벗어나는 것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3회차 시험을 미리 추측할 수 있다니. 마치 수능기출문제를 보는 것 같다. 이것이 국가기관의 지원을 받는 장점이구나.
“다음 페이지를 보시면 더 구체적인 사항을 알 수 있습니다.”
화면이 전환되자, 아레나 전체 지도 중 남서부 숲이 확대되었다.
숲이 지역별로 따로 표기가 되어 있었다.
[아레나 남서부 숲지대
숲 중심부: 레드 에이프 서식지
숲 동부: 라이칸스로프 출몰지역
숲 서부: 불명
숲 남부: 불명
숲 북부: 트롤 출몰지역]
“여러분은 숲 중심부에 있고, 숲을 벗어나려면 동쪽과 북쪽 둘 중 한 방향을 택해야 합니다.”
“라이칸스로프냐 트롤이냐 선택해야 하네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동쪽으로 라이칸스로프의 출몰지역을 통과하시길 권장합니다.”
“어째서죠?”
“김현호 씨는 소총을 잘 활용하시지만, 총기류는 손쉽게 큰 위력을 얻을 수 있는 만큼 한계도 뚜렷합니다. 앞으로 총으로 상대할 수 없는 적을 만날 텐데, 트롤도 그중 하나입니다.”
“…라이칸스로프가 낫겠네요.”
총이 안 통하면 우리 중 누구의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우리 팀의 가장 강력한 공격수단은 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