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30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30화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상체가 고무처럼 벌떡 튕겨져 올라와 스스로도 놀랐다.
‘아참, 나 이제 복근 있는 남자지. 에헤헤.’
잘 쪼개진 식스팩을 쓰다듬으며 아침부터 히죽히죽 웃는 나였다. 이러다 나르시스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 확인을 위해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유민정^^*: 오빠 일어나셨어요?]
오, 현지 친구 민정이다.
난 답문을 보냈다.
[나: 이제 일어났네요.]
세면과 양치질을 하고 거실로 나왔다. 또 위잉 폰이 진동하기에 확인해 보았다.
[유민정^^*: 어제는 오빠 덕분에 집에 잘 돌아갔어요.]
답장이 빨라서 좋다. 요즘 여자들은 꼭 대답을 일부러 늦게 하던데.
나는 즉각 답변했다.
[나: 별말씀을 제가 택시비를 드린 것도 아니고]
[유민정^^*: ㅋㅋㅋㅋ 부끄러우셨나 보다]
[나: 텅 빈 지갑에 여자 셋이 깔깔거리고,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듯]
[유민정^^*: ㅎㅎㅎㅎ 죄송해요. 아무튼 어제 구해주신 보답으로 제가 밥 살게요]
[나: 사신다고요?]
[유민정^^*: 네 ㅇㅇ]
[나: 제가 돈이 없을 것 같으니까……]
[유민정^^*: 아니에요 ㅋㅋㅋㅋㅋ 그럼 오빠가 사세요.]
[나: 돈이 없어요]
[유민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참을 키득거리며 채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살기?!’
문득 서늘한 한기가 들어 뒤를 돌아보니, 현지가 날 노려보고 있었다.
“하, 학교 안 갔냐?”
“오늘 휴강이야.”
“그래? 그, 근데 뭘 꼬나보니?”
“내놔.”
“…뭘?”
“폰 내놔봐.”
“가족끼리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자.”
“오빠는 내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서 클럽에 쳐들어와서 날 끌고 나왔어?”
“그건 누나가 시켜서 어쩔 수 없었고.”
“에잇, 빨랑 안 내놔!”
현지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내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레드 에이프보다 더 빠르다!
스마트폰 화면의 채팅 기록을 본 현지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엄마! 오빠가 불여시한테 빠졌어!”
가게 나갈 준비를 하는 엄마한테 쏜살같이 달려가 고자질한다. 그만둬!
엄마가 현지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여시? 그게 무슨 소리니?”
“내 친군데 오빠가 홀랑 넘어갔어.”
지 친구더러 불여시라니. 그건 대체 무슨 우정이니?
“어머나.”
엄마는 잔뜩 기대감이 어린 얼굴로 손뼉을 쳤다.
“불여시든 뭐든 아들한테 여자가 생기긴 생겼다는 말이니? 엄마 손주 볼 수 있는 거야?”
“지금 무슨 태평한 소릴 하는 거야! 걔한테 걸리면 오빠 같은 모솔은 들었다 놨다 갖고 놀면서 영혼까지 탈탈 털린단 말이야!”
모솔이라고 하지 마! 나 모솔 아니야! 마, 많이 비슷한 처지이긴 하지만!
“얼마나 털리든 손주만 준다면 엄마는 만족한단다.”
역시 우리 엄마는 남다르다.
“아 진짜 엄마!”
발을 동동 굴리는 현지.
그 틈에 나는 현지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탈환했다.
그리고는 키득거리며 다시 채팅을 쳤다.
[나: 현지가 험담을 하네요. 잘못 걸리면 영혼까지 탈탈 털릴 거래요.]
[유민정^^*: ㅋㅋㅋㅋ웃겨 정말. 근데 오빠 그거 아세요?]
[나: 뭘요?]
[유민정^^*: 꼭 틀린 말은 아니에요.]
[유민정^^*: 보고 싶어서 안달복달하고, 화났을까 봐 조마조마하고, 조금만 잘해줘도 좋아서 잔뜩 들뜨고. 저랑 사귀면 다 그렇게 돼요.]
[나: ;;;]
[유민정^^*: 얼마나 좋으면 그러겠어요?]
얼마나 좋으면…….
그 한마디에 심장에 비수가 꽂힌 것처럼 나는 움찔했다.
[유민정^^*: 오빠도 한번 그렇게 돼볼래요?]
‘커헉!’
직격탄. 직구 한복판 스트레이트. 너무 당황한 나머지 뭐라고 대꾸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그런데 그때였다.
[알림: 현지님이 당신을 채팅방에 초대하셨습니다.]
[알림: 현지님이 ‘유민정^^*’님을 채팅방에 초대하셨습니다.]
현지가 우리를 단체채팅방에 초대했다.
[현지: 민정이 너]
[유민정^^*: 왱^^?]
[현지: 지난번에 클럽에서 광질할 때 동영상 찍었는데 한 번 다 같이 관람 ㅇㅋ?]
[유민정^^*: 허걱;;]
[현지: 그때 장난 아니었지?]
[유민정^^*: 미안해 ㅠㅠ]
[현지: 위에 하나 벗고 봉춤 추고]
[유민정^^*: 내가 잘못했어!;;;]
[현지: 까불지 마라]
[유민정^^*: ㅠㅠ]
대체 무슨 동영상일까. 얼마나 미친 듯이 놀았기에?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이 됐지만, 그렇게 채팅은 끝나버렸다. 이렇게 유민정과의 짧은 썸도 끝나는가 싶었다.
위잉.
짧은 진동.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유민정^^*: 오빠 아직 대답 안 한 거 알죠? 기다릴게요. 쉿, 현지한텐 비밀!]
헐, 현지가 난리 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현지의 경고에 굴복했나 싶었는데, 시치미를 뚝 떼고 곧바로 내게 메시지를 또 보낸 것. 거리낌 없이 들이대는 육식녀의 포스가 느껴졌다.
한참 후에 나는 답장을 날렸다.
[나: 보고 싶네요]
[유민정^^*: 저요?]
[나: 봉춤]
[유민정^^*: ㅋㅋㅋ]
[나: ㅋㅋㅋㅋㅋ]
아, 재미있네. 이런 것도. 덕분에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좋은 육체를 얻었지만 나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등산을 다녀왔다. 몸이 게으르면 정신도 게을러지기 때문에 꾸준히 운동을 할 생각이었다.
‘강천성 같은 사람도 있는데.’
자신의 순수한 노력으로 체력보정 초급 5레벨 수준으로 몸을 단련한 무술가.
지금 내 몸도 대단한데 강천성은 대체 평생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단 말인가?
그런 사람이 나를 리더로 인정해 줬다. 그러니 나는 리더로서 최소한 그 앞에서 한심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내가 노력으로 얻은 힘도 아니니까 더욱 노력해야지.’
등산을 다녀오니 기분이 한결 좋았다. 전혀 힘들이지 않고 정상을 찍고 내려왔다. 그냥 산책 다녀온 기분이었다.
‘그래도 힘들 때까지 운동해야지.’
힘든 상황에서 참고 움직이려면, 힘들게 운동을 하면서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딱히 아는 운동이 없어서 팔굽혀펴기만 계속하며 시간을 보낼 때였다.
차지혜로부터 전화가 왔다.
-안녕하셨습니까, 차지혜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바뀐 몸은 적응이 되십니까?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려고요. 등산 마치고 운동 중이에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휴식은 좋지만 운동은 꾸준히 해주십시오.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김현호 씨의 200카르마를 어떻게 써야 할지 결론이 나왔습니다.
“아, 전에 무슨 실험을 해야 한다고 하셨죠?”
-예, 실험은 성공했습니다. 딱 200카르마로 아이템화 할 수 있는 소총을 찾았습니다.
“소총? 아이템화?”
-총기류는 카르마 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지구의 물건이 성능이나 품질이 월등합니다.
“하긴, 제가 갖고 있는 마법소총도 유효사거리가 60미터밖에 안 되니…….”
-내일 연구소에 오셔서 무기를 시험해 보시고 결정하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데리러 와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차량과 헬기로 모실 겁니다. 연구소 위치는 보안사항이라 직접 찾아오실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봬요.”
-예.
나는 통화를 종료했다.
소총이라…….
현재 내가 가진 전장식 마법소총은 유효사거리가 60미터밖에 안 되고,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일일이 총알을 총구에 넣어 장전해야 한다.
그런데 지구의 소총이라면?
실프로 인해 명중률 100%를 자랑하는 나에게 유효사거리가 500미터는 족히 되는 소총이 주어진다면?
‘정말 천하무적이 되겠는데?’
실프로 주변 1킬로미터를 꼼꼼히 정찰하고, 사거리에 들어올 때마다 족족이 쏴 죽인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일이었다.
***
다음 날, 차량과 헬기로 서해안의 외딴섬에 위치한 한국 아레나 연구소에 도착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차지혜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안내를 했다. 뭐랄까, 조금 들뜬 모습이었다. 어서 성과를 내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5층으로 내려갔다.
도착한 지하 5층은 사격장이었다.
‘넓다!’
웬만한 학교 운동장보다도 넓은 거대한 지하 공간! 표적들이 나열된 곳에는 각각 표지판에 50미터, 100미터, 250미터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굉장히 넓네요.”
“소총 사격 훈련을 염두에 둔 사격장이니 당연합니다.”
차지혜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여전히 말투가 다나까다. 저러다 평생 군바리 티 못 벗지 싶었다.
“먼저 이 총을 봐주십시오.”
차지혜는 무기고라고 쓰여 있는 창고에 들어가 소총 두 자루를 꺼내왔다. 그중 한 자루를 내게 보여주었다.
개머리판이 나무로 된 굉장히 클래식한 소총이었다.
“전쟁 영화에서 많이 본 듯한 총인데요.”
“당연합니다. m1891, 모신나강이라고 불리는 19세기 말에 개발된 소총입니다.”
“모신나강?”
나는 건네받은 모신나강을 이리저리 살폈다.
길이가 1.2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고, 탄창이 보이지 않았다. 고전적인 멋이 살아 있는 디자인이라 마치 내가 전쟁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 묵직한 무게감이라니. 이건 자체로 훌륭한 둔기가 될 것 같았다.
“탄창은요?”
“5발이 탄창이 총 안에 내장되어 있고, 볼트액션식입니다.”
총기류에 대해 간단히 살펴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다. 볼트액션은 한 발 쏠 때마다 볼트를 당겨 탄피를 빼야 하는 방식을 뜻한다.
“전장식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반자동은 없나요? 근접전에서 힘들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총이 현존하는 소총 중 가장 카르마가 적게 듭니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이게 200카르마라는 거죠?”
“아니, 300카르마입니다.”
“예? 그럼 이걸 왜 보여주신 거예요?”
“저희는 300카르마에 해당되는 모신나강의 값어치를 200카르마 이하로 낮추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런 게 가능해요?”
“물론입니다. 실험은 성공했고, 이게 바로 200카르마짜리 모신나강입니다.”
차지혜는 들고 있던 다른 소총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똑같은 모신나강이었다.
‘딱히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한 번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하고 사격 자세를 취해보았다. 그리고 250미터 거리에 있는 표적지를 향해 조준을…….
‘어라?’
그제야 나는 뭐가 달라졌는지 깨달았다.
“조준을 할 수 없네요.”
“가늠쇠와 가늠자를 제거했으니 당연합니다.”
그랬다.
가늠쇠·가늠자가 없었다. 이런 걸로 제대로 사격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보통의 경우는.
“제대로 조준할 수 없는 소총은 값어치가 크게 떨어집니다. 김현호 씨에겐 조준이 필요 없지만 말입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그제야 나는 감탄을 했다.
그냥 말만 연구소가 아니었다.
이런 아이디어까지 생각해 내다니, 제대로 시험자의 생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모신나강라면 200카르마로 아이템화 할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번 총기의 성능을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그러죠.”
그녀는 탄환 5발이 꽂힌 클립을 내게 건네주었다.
난 그걸 받고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가르쳐 주세요. 하나도 모르겠네요.”
“개발된 지 100년도 넘은 총이니 당연합니다.”
나는 그녀가 가르쳐 주는 대로 총알을 장전하고 사격자세를 취했다.
“실프.”
-냐앙!
실프가 휙 하니 나타나 내 어깨에 사뿐히 앉았다.
정령을 처음 본 차지혜는 신기한 얼굴로 실프에게 넋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