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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57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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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57화


비빔밥, 무생채, 육원전 등, 민정은 자기가 만든 갖가지 요리를 식탁에 펼쳤다.
“어머, 어머 대박! 이거 진짜 네가 만든 거야?”
“배운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이 정도 하는 거야? 난 라면밖에 못 끓이는데.”
현지와 지현이 감탄을 한다.
아니 뭐, 감탄을 할 만한 요리는 아니었다. 민정이 요리를 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거지.
민정은 나를 보며 예쁘게 웃어보였다.
“어때요? 맛있겠죠?”
“어, 그래. 먹어도 돼?”
“그럼요. 다들 먹어.”
“잘 먹을게.”
“땡큐.”
그럭저럭 괜찮은 식사였다.
민정의 요리도 나쁘지 않았고, 엄마가 해놓은 반찬도 많아서 풍성한 저녁 식사가 되었다.
운동량이 많아져서 그런가. 나는 배가 고파서 두 그릇이나 먹었다.
그런데 밥솥에서 한 그릇 더 퍼온 나를 보며 민정은 흐뭇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어쩐지 내 아내가 된 듯한 태도여서 나는 식은땀이 났다. 이제는 거리낌 없이 나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는 민정이었다.
현지나 지현이 그걸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다.
묘한 분위기가 흐르자 나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너희들이 벗어날 수 없는 화제를 던져주마.
“다들 취업할 데는 정해졌어?”
현지와 지현이 움찔했다.
의외로 민정은 태연하게 말했다.
“저는 친척 오빠가 차린 회사에 들어가기로 했어요.”
그랬군.
그래서 그 시기에 여유롭게 한식 조리 기능사 공부를 할 수 있는 거야.
“부럽다! 나도 어떻게 안 돼?”
지현이란 친구는 취업 전선에 문제가 많은지 민정에게 매달렸다.
“글쎄? 말은 해보겠지만 힘들걸? 작은 벤처회사라 인원이 많이 필요 없거든. 나도 마침 경리 자리가 하나 비었다고 부른 거야. 월급도 얼마 안 돼.”
“히잉, 난 어쩌지? 토익 공부도 하고 있는데 이거 갖고는 아무 도움도 안 될 것 같아.”
“이것들아, 난 집에서 닭강정 가게 이어받으라고 압박 받고 있단 말이야!”
현지도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음, 역시 직방이군.
나는 얘기 나누는 세 사람을 뒤로 하고 짐을 싸러 방으로 들어갔다.
가져갈 게 그리 많지 않아서 보스턴백 하나에 전부 정리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정리가 쉽게 끝나자 나는 노트북을 열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노르딕 시험단의 본부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있다고 했다. 볼일이 끝나면 관광을 할 시간도 생길 거다 싶어서 미리 관광지를 조사해 보았다.
“오빠, 얘들 간대.”
현지의 두 친구가 돌아갈 때가 되어서 현관으로 배웅을 나왔다. 그런데 대뜸 민정이 내게 말했다.
“오빠, 데려다 주시면 안 돼요?”
“아, 맞다! 저도요! 포르쉐 타고 싶어요!”
지현도 매달렸다.
민정이 밥까지 해준 터라 데려다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지는 귀찮다고 집에 있기로 했고, 나는 두 사람을 차로 데려다 주었다. 두 사람은 고급스러운 차 내부 인테리어를 감상하며 감탄했다.
시동을 걸자 민정이 잽싸게 말했다.
“지현이네 집이 가까우니까 그쪽 먼저 가요.”
지현이 물끄러미 민정을 바라본다. 민정은 지현의 손등을 툭툭 친다. 모종의 이야기가 오갔는지 지현은 혼자 키득거린다.
“감사합니다!”
지현을 내려주고서 나는 내비게이션을 찍으며 민정에게 물었다.
“집이 어디야?”
“안서동 OO오피스텔이요.”
내비게이션으로 불러준 주소를 찍어본 나는 그게 현지가 다니는 학교 앞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고작 10분 거리였다.
지현이 키득거리며 웃은 이유를 깨달았다. 민정은 나와 단둘이 남기 위해 일부러 지현부터 데려다 주라고 한 것이었다.
분위기가 또다시 묘해졌다.
“집이 학교 앞이네?”
“집은 서울인데 학교 때문에 혼자 천안에서 살고 있어요.”
“…….”
혼자 산다는 말이 묘하게 야릇하게 들려오는 건 내 기분 탓일 것이다. 달리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
민정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라 나는 긴장감을 느꼈다.
민정이 사는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다.
“다 왔다.”
고개를 끄덕인 민정은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조수석의 문을 열고 내 옆에 앉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빤히 나를 바라본다.
“왜, 왜?”
“오빠, 뭐가 그렇게 무서우세요?”
“응?”
그건 나를 방심시키기 위한 질문이 틀림없었다. 다음 순간 민정의 입술이 나를 덮쳤으니 말이다.
진하게 내 입을 탐닉한 그녀는 살짝 입술을 떼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둘 사이의 거리는 불과 10㎝? 한 쌍의 눈동자가 빤히 나를 마주쳐온다.
“오빠도 제가 싫지 않잖아요.”
뭐라고 대꾸할 틈도 없었다. 다시 입술이 입술을 덮었다.
맞닿아 밀고 살짝 물어뜯는 감촉이 굉장히 부드러웠다. 입술과 입술을 통해 그녀의 체온이 굉장히 달콤하게 느껴졌다.
한 손으로 내 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그녀는 계속 일방적으로 키스를 퍼부었다.
키스가 그렇게 길 수 있는 이유는, 나 역시도 밀어내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숨 막히는 키스가 끝이 났다.
약간 상기된 얼굴로 민정은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말했죠? 저 혼자 산다고.”
“…….”
“피곤하실 텐데, 커피 한잔하고 가요.”
나는 오피스텔의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민정의 손에 이끌려 함께 올라갔다.
아마 올라가면 더 피곤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상관없었다.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서로를 탐했다.
키스를 하고 혀와 혀가 뒤얽혔다. 민정은 내 티셔츠를 벗겼고, 나는 그녀를 안아들고 침대에 올려놓았다. 내가 바지를 벗는 동안 그녀도 옷을 벗어던졌다.
검정색 란제리만 입은 매혹적인 하얀 몸이 나를 흥분시켰다.
피가 머리에 몰려 뇌가 녹는 듯한 흥분이 치달았다. 더 이상 내 머릿속에 이성은 남아 있지 않았다.

***

침대 아래에 두 사람의 옷과 속옷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불 속에 쏙 들어간 민정은 생글생글 웃으며 내 몸을 만지작거렸다. 애정 어린 손길로 가슴과 복부를 쓰다듬는다.
나도 함께 이불을 덮고 싶었지만, 내 몸을 보고 싶다는 민정의 당당한 요구 때문에 불빛 아래에 고스란히 알몸을 드러내놓아야 했다.
나도 같은 요구를 하니까 부끄러워서 싫단다. 자기만 이불 속에 숨은 민정이 살짝 얄밉게 느껴졌지만 귀엽다는 생각이 더 컸다.
“이런 몸을 만들려면 굉장히 힘들겠어요.”
“그다지.”
“이렇게 대단한 몸은 TV에서도 본 적 없는데.”
민정은 보기 좋게 쪼개진 복근을 만지작거리며 신기해했다.
카르마 보상으로 얻은 몸이지 내 노력이 아니라서 살짝 양심에 찔리긴 했다.
‘그런데 이젠 어쩐다?’
거사를 마치고 후희를 즐기고 나니 슬슬 이성이 돌아왔다.
나도 남자라 민정이 대놓고 유혹을 하니까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제 민정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민정아.”
“네, 민정이 여기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가까이 밀착해 오는 민정. 누가 현지 친구 아니랄까 봐 대단한 애교 내공이었다.
“진지하게 나 좋아하는 거야?”
“네, 좋아해요.”
“왜?”
“좋은 차, 좋은 직장, 좋은 몸, 좋은 성격.”
“…….”
노골적인 대답이라 잠시 할 말을 잃은 나를 보며 민정은 키득거렸다.
“농담이에요.”
“완전히 농담은 아닌 것 같은데.”
민정은 깔깔 웃었다.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그럼?”
“그날 밤에요, 저 봤어요. 오빠랑 그 사람들.”
그 순간 내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봤다고?”
“네. 오빠가 걱정돼서 몰래 지켜봤어요. 여차하면 경찰에 신고하려고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진성그룹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죠?”
“응.”
“회장님이 어쩌고 하는데 오빠는 싫다고 거절했고요.”
“그랬지.”
“그걸 보고서 오빠한테 반했어요.”
“진성그룹과 관련된 사람이라서?”
“그런 거 말고요.”
“그럼?”
“오빠가 중요한 일을 하는 남자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오빠한테 팍 꽂혔어요. 오빠 생각밖에 안 나고, 다른 남자들이 하나같이 하찮게 느껴지더라고요.”
“…….”
“제가 조신하게 살아왔다고는 말 못하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빠한테 접근한 건 아니에요.”
“…난 노는 여자 싫어.”
“이제 안 놀아요.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면 더는 어린애로 남을 수 없어요.”
제발 우리 현지도 이런 마인드를 가졌으면 좋겠다.
“난 아무것도 약속해 줄 수가 없어.”
“아무것도 약속해 주지 않아도 돼요. 그냥 오빠가 좋아요.”
나는 민정을 빤히 바라보았다.
민정은 장난스럽고 여유 있는 평소와 달리 진지한 얼굴이었다.
잘 모르겠다.
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고, 민정에게는 호감만 있을 뿐 진지하게 좋아하는 건 아니다. 언제 이별할지 모르는 허술한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원한다면, 그것도 나쁠 것은 없었다.
조금 이기적이긴 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이니 틈틈이 만날 수 있는 여자가 있어도 좋으리라. 예쁘고 자기를 꾸밀 줄도 알고 애교도 많은 민정은 더할 나위 없는 상대였다.
나는 민정을 감추고 있는 이불을 붙잡았다. 그러자 그녀도 이불을 꼭 붙들고는 말했다.
“대답 안 하시면 이제 허락 안 할 거예요.”
나는 대답 대신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그래, 우리 연애 해보자.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번 같이 가보자.”
내 말에 민정은 해맑게 웃었다.
“오빠 생각보다 훨씬 길게 갈 걸요? 제가 말한 적 있었죠?”
그녀는 스스로 이불을 들췄다.
눈부신 나신이 눈앞에 하얗게 펼쳐지면서,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보고 싶어서 안달복달하고, 화났을까 봐 조마조마하고, 조금만 잘해줘도 좋아서 잔뜩 들뜨고.”
두 손으로 내 머리를 끌어안아 봉긋하게 솟은 가슴으로 인도한다.
“저랑 사귀면 다 그렇게 된다고요. 나중에 물러도 소용없어요.”

***

집에 돌아왔을 땐 새벽 2시였다.
엄마도 누나도 내가 밖에서 늦게까지 있든 상관하지 않았다. 난 현지가 아니거든.
방으로 들어갔는데,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던 현지가 도끼눈을 뜨고 날 노려보았다.
“뭐하다 늦게 왔어?”
“운동하고 왔어.”
“오호라, 운동? 그래, 열심히 땀 흘리며 운동하고 오셨겠지.”
현지의 비아냥거림에 나는 움찔했다.
‘설마?’
아니나 다를까. 현지가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민정이: 잘 부탁해 시누이~ 내가 잘할게~ >▽<]

“그렇게 말렸더니 결국 그 여우한테 걸려들고, 같이 열심히 운동까지 하셨어? 좋디?”
“크흠, 흠흠! 얘야, 남매끼리 불편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꾸나.”
“얼씨구, 남매끼리 이야기하면 불편한 짓을 하셨어요? 자랑이세요, 자랑!”
얘 좀 봐라?
내가 현지에게 잔소리를 들을 날이 올 줄은 몰랐구나.
내가 반격했다.
“이제 널 찾아 클럽까지 간 내 기분을 알겠니? 뭐? 손이 안 떨어져? 그딴 놈들이랑 아주 재미있었겠다!”
“왜 또 그 얘기야!”
투덕투덕 다투자 그 소란에 엄마가 자다 말고 부스스한 눈으로 들어왔다.
“이 시간에 왜들 싸워?”
“엄마! 글쎄……!”
“어이!”
막 나가는 현지는 미주알고주알 나불나불 고자질했다.
다 듣고 난 엄마는 날 빤히 보더니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들, 굿 잡.”
“별말씀을.”
“뭐가 굿 잡이야!”
딴죽을 거는 현지에게 엄마가 말했다.
“현지야, 엄마는 아무래도 좋단다. 무슨 사고를 치든 엄마한테 손주만 안겨준다면 상관없어.”
“…….”
“…….”
엄마의 배포에 우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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