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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53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7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53화

 


반나절이 지나 날이 어두워질 무렵, 사냥에 성공했다. 셰퍼드가 덤벼들어 붙잡고 늘어지는 사이, 박진성이 쏴 맞췄다.
고라니를 들쳐 업고 산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박진성 회장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내일부터 이리로 출근해.”
“…네?”
“여기가 좋잖아. 사람 없어서 스킬 실험하기도 좋고, 공기 좋고, 밥 챙겨주는 사람도 있고.”
그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산골짜기로 매일 출근하라고?
“진성그룹에서 시험자들을 따로 관리하는 곳이 있지 않아요?”
“아레나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기관만 있지. 시험자를 따로 관리하지는 않아.”
“네?”
“우리가 연구하고 분석해 봐야 시험자 본인들만큼 잘 알겠어? 진성그룹이 하는 일은 연봉 주고, 마정 구매하고, 타 국가기관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제공하는 정도야. 훈련 같은 자기 관리는 시험자들 스스로 해야지.”
“그럼 훈련 시설이나 그런 것들은요?”
“훈련 설비는 다 의미가 없다던데. 한국 아레나 연구소 가봤지? 거기 훈련 시설에 사람 있었어?”
“…….”
그러고 보니 거기서 다른 시험자가 훈련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시설은 좋았는데.
“그냥 시험자 각자에게 맡기는 게 최고지. 아레나를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 이것저것 참견해 봐야 방해만 돼. 게다가 내가 고용한 시험자들은 대부분 10회차 이상 베테랑이거든.”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자네 집에서 여기까지 멀지도 않던데. 내일부터 이리로 출근해.”
“하지만 전 차도 없고…….”
“왜 없어?”
박진성 회장은 대뜸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 건네주었다.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한 대응이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차키가 아니었다.
“이 이게 뭐예요?”
“내가 사냥 갈 때 타고 다녔던 건데, 자네가 써.”
“차를 준다고요?”
“3년 전에 뽑은 거야. 이제 몸이 이 짝 나서 못 끌고 다니니까 너 가져.”
“이, 이거 로고가 포르쉐 같은데요?”
그랬다.
박진성 회장이 아무렇지 않게 던져준 물건은 포르쉐만의 특이하고 고급스러운 차키였다.
“국산차 쓰지 마. 에어백 안 터져.”
음, 미래자동차 회장이 들으면 멱살잡이를 하겠지?
“저 운전할 줄 모르는데…….”
“면허 있잖아?”
나 면허 있는 줄은 어떻게 아셨대? 사람 개인정보를 뭐로 아는 거야?
“6년 전에 딴 장롱면허죠.”
박진성 회장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니, 자넨 말이야. 당최 나이 서른에 할 줄 아는 게 없어? 젊은 놈이 왜 그러고 살아?”
그렇게 대놓고 정곡을 찌르면 내가 뿔이 나잖아!
“그러게요. 회장님 목숨 살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전 정말 인생을 잘못 살았나 봐요. 아, 난 왜 이렇게 무능할까!”
“아, 아니, 뭐, 그거면 됐지.”
곧바로 저자세가 된 박진성 회장이었다.
“아무튼 사람 하나 남겨서 운전 가르치라고 할게. 배우고 내일부터 출근해.”
“회장님은요?”
“나도 아침마다 운동 삼아 여기 올 거야. 불꽃 먹어야지. 회사 일은 어차피 자식들이 하고 있고.”
최근 뉴스나 신문이나 ‘박진성 회장 건강 악화설’이니 ‘3세 경영 시작’이니 떠들고 있었다.
아마 사람들은 박진성 회장이 병원이나 집안에서 끙끙 앓으며 오늘내일 하는 줄 알 것이다.
실제로는 나랑 같이 팔팔하게 사냥까지 즐기고 있는데 말이다.
심심해진 나는 농담 삼아 말을 던졌다.
“요즘 진성그룹 주가가 자이로드롭이라던데요?”
박진성 회장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하, 천하의 박진성 회장한테 이런 농담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을 거다. 나도 참 배짱이 좋아졌어.
“지레짐작 놀라서 그러는 게지. 내 아들 놈들도 아직 능력을 뚜렷하게 입증한 적 없고.”
박진성 회장은 코웃음을 쳤다.
“주가 따위는 내가 돌아오면 다시 회복돼.”
“그렇겠죠.”
“반드시 살아서 돌아갈 거야. 아직은 내가 죽을 때가 아니야.”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아레나에서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 한다. 산다는 것……. 그 당연한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게 아니다.
그런데 시험자가 아님에도 삶을 강하게 바라고 노력하는 사람이 또 있는 것이다. 남들은 다 죽는 불치병에 걸렸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극복하려는 모습에서 나 역시 용기를 얻게 된다.
산장에 돌아와 잡은 고라니를 노인에게 맡겼다.
노인은 고라니를 해체해 냉동 창고에 넣어두고, 어제 잡은 멧돼지 고기로 바비큐를 해주었다. 이번엔 포도주가 아닌 막걸리와 함께였다.
병든 노인답지 않게 바비큐와 막걸리 한 사발을 장정처럼 잘도 먹는 박진성 회장. 그 모습을 보며 충성스러운 관리인 노인은 감동에 빠진 얼굴이 된다.
‘확실히 생명의 불꽃이 효과가 있는 모양이구나.’
살짝 아쉬움이 들었다. 여러 개 만들 수 있으면 엄마도 줬을 텐데. 음, 이 불꽃은 뭐냐고 기겁하겠구나. 잘 때 몰래 입안에 넣어야겠지?
식사를 마친 뒤에 산장 뒤편에 주차된 두 대의 차를 보았다.
한 대는 박진성 회장이 타고 다니는 벤츠. 그리고 또 한 대는 검정색의 유려한 곡선을 가진 아름다운 SUV. 앞에 떡하니 달린 포르쉐의 로고가 인상적이었다.
“이거 포르쉐 카이엔이에요?”
“그래, 3년 된 건데 타고 다닐 만해.”
타고 다닐 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잘은 모르지만 1억가량 하는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이었다.
“정말 이걸 저 준다고요?”
“차 없다며? 어차피 난 안 타는 거야.”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운전 잘해. 교통사고로 죽거나 하지 말고.”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는 않으니까 걱정 마세요.”
“장렬하게 죽지도 마, 이놈아. 악착같이 살아남아. 그래야 나도 살 거 아냐?”
“알았다니까요.”
“난 이만 가볼 테니까 운전 배워.”
“예.”
박진성 회장은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벤츠에 탔다. 수행원들은 그를 모시고 떠나 버렸고, 한 사람만 남았다.
“운전을 가르쳐 드리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예, 시작하죠.”
한숨을 쉬며 나는 운전 연수를 시작했다. 키 박스가 왼쪽에 달려 있는 게 신기했는데, 시동을 걸자 부르릉― 하고 부드러운 엔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엔진 소리도, 등을 받치는 가죽시트도, 실내디자인도, 정말 예술이다.
‘이게 정말 내 차라고?’
나는 들뜬 마음으로 운전을 배웠다.
운전면허 딸 적에 실기에서 세 번 떨어진 기억이 난다. 난 정말로 운전에 재능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아주 쉽게 배웠다.
“잘하시는군요.”
칭찬까지 받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알고 보니 사실 난 운전에 재능이 있었던 것일까?
그럴 리가. 내가 안다. 난 정말 운전을 못한다.
‘운동신경이다!’
나는 비결을 알 수 있었다.
합성스킬인 운동신경 덕분이었다. 운동신경 덕에 어떻게 핸들과 브레이크를 조작해야 하는지, 그 요령이 더 쉽게 몸에 체득되는 것이었다.
요령이 파악되자 도로 주행 연습을 할 겸 남부대로를 타고 천안까지 직접 운전했다. 그리고 천안에 도착하자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는 연습까지 손쉽게 마쳤다.
“면허를 이미 따셔서 그런지 금방 익히시는군요.”
“잘 가르쳐 주신 덕분이죠.”
“별말씀을. 아무튼 운전은 확실히 배우셨으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사내를 떠나보내고 나는 한동안 주차장에서 포르쉐 카이엔을 감상하였다. 이게 내 차라니!
외제차가 문제가 아니다.
하루에 1억!
앞으로 박진성 회장에게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부자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4회차, 5회차, 6회차……. 앞으로의 시험에서 계속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
삶에 대한 의욕이 강하게 든다.
어쩌면 박진성 회장의 삶의 의지도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가질수록 버리고 떠날 수 없는 미련 말이다.
‘죽고 싶지 않아!’
혜수야.
준호야.
너희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살아 있었더라면 나와 함께 이 같은 것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살아만 있었더라면!
“흐흐흐…….”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눈물도 나온다.
미안하다.
내가 정말 미안해. 너희를 살리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나는 주차장에서 펑펑 울었다.

***

포르쉐 카이엔을 갖게 된 사실은 굳이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에 들통 나고 말았다.
커피와 간식거리를 들고 아양을 떨기 위해 방에 들어온 현지가 책상에 놓인 포르쉐 차키를 발견한 것이다.
“어? 오빠! 이거 포르쉐 차키잖아!”
“응? 아…….”
“이거 어디서 났어? 응? 응? 어디서 났어? 이거 오빠 꺼야?”
“아니, 그게…….”
“꺄악! 엄마! 언니! 이것 좀 봐봐!”
현지는 차키를 들고 거실로 뛰쳐나갔다. 이년아, 질문을 했으면 좀 설명할 시간도 달란 말이야!
엄마와 누나까지 우르르 내 방에 들어와 추궁을 했다.
결국 난 등산에서 구해준 진성그룹의 이사가 일자리는 물론이고 차까지 선물로 줬다는 이상한 스토리를 지어내야 했다.
“정말이야? 받으면서 이상한 계약서를 쓴 건 아니고?”
누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추궁했고, 나는 아니라고 부정했다. 결국 내일 근로계약서를 보여주기로 했다. 회장님한테 말해놔야겠군.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엄마는 차키를 유심히 만지작거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정말 불신에 걸린 집안이군. 대충 넘어가자고 좀!
오직 현지만이 들떠서 방방 뛰었다.
“오빠! 내일 나 학교 데려다 줘! 포르쉐로 데려다 줘! 포르쉐!”
그만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약속대로 산장으로 출근하려는데, 어느새 학교 갈 준비를 마친 현지가 잽싸게 튀어나와 따라붙었다.
“오빠~ 현지랑 같이 가야죠. 귀여운 여동생 학교 데려가주세요.”
“전철 타고 가.”
“아잉, 지하철 무서워. 치한이 너무 많아.”
“뭔 치한이야. 얼른 안 꺼져? 쉿쉿.”
“아앙, 오빠!”
앙탈을 부리며 매달리는 현지. 정말 끈질기게 따라붙더니 주차장에 있는 검정색 포르쉐 카이엔을 보더니 꺄악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레이싱 모델이라도 된 양, 보닛 위에 다리 꼬고 앉아 셀카를 찍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스위치를 눌러 차 문을 열자 후다닥 조수석에 들어가 앉은 현지는 계속해서 셀카를 찍어댔다. 난 슬슬 내 여동생이 제정신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시동을 켜고 운전하는데, 옆에서 계속 현지의 스마트폰에서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그세 사진을 SNS에 올린 모양이었다.
신이 나서 메신저를 주고받는 현지.
이윽고 현지는 깔깔거리며 내게 말했다.
“오빠, 민정이가 사랑한대. 근데 오빠가 민정이 깠다며?”
“…….”
“진심이래. 포기하지 않겠대, 깔깔깔! 얘 제정신 아니라니까 정말.”
네 친구니까.
현지가 다니는 학교는 천안에 있어서 금방 도착했다. 현지를 받아준 지극히 너그러운 대학교에 진입한 나는 지나가던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계속 나아갔다.
“오빠 땡큐! 사랑해! 출근 잘하세요. 저녁 맛있는 거 해놓을게!”
끝까지 아양을 떠는 현지였다. 내리자마자 친구들이 현지에게 몰려와 누구냐고 정말 오빠냐고 묻기 시작했다.
나는 혀를 차고는 차를 몰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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