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52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52화
다음 날 아침, 나는 새로운 문제에 부딪쳤다.
“아들!”
엄마가 아침부터 날 깨웠다.
“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금요일.”
“오늘은 아들이 약속한 다음 달이지.”
“……!”
그제야 나는 엄마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집에서 놀지 말고 함께 가게 나와서 닭강정을 볶으라는 엄마의 닦달에 이번 달은 봐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벌써 약속한 다음 달이 된 것이다.
“이제 닭장사의 세계에 입문할 시간이야, 아들.”
엄마는 나를 가게에서 부릴 생각으로 설레는 얼굴이었다.
‘으음.’
하지만 난 그럴 틈이 없다. 다음 시험까지 남겨진 휴식 시간을 닭강정 볶으며 보낼 수 없단 말이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취직했다는 사실을 말해야겠군.
“엄마, 사실 나 말이지…….”
“변명하지 마. 아들은 오늘부터 닭장사야.”
“천만에요. 이 아들이 놀랍게도 취직을 했거든요.”
“응? 취직?”
“네, 취직.”
“아들……. 알바자리라도 구했어? 알바는 취직이 아니야.”
이 아줌마가 근데.
내가 말했다.
“알바 말고 진짜 직장이야.”
“어느 회사가 아들을 고용해? 수상한 회사 아냐?”
“아냐! 대체 날 뭐로 보는 거야?”
“공부도 스펙도 안 되는 백수 아들이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수상한 회사에서 딴짓하지 말고 엄마랑 닭강정이나 볶자, 아들.”
이해한다. 나에 대한 엄마의 신뢰는 딱 이 정도지.
“엄마, 놀라지 마시라. 나 무려 진성그룹에 취직하게 됐답니다!”
“지, 진성그룹?”
“응.”
돌연 엄마의 눈빛이 측은하게 변했다.
“아들. 망상에 빠져 현실도피를 하는 거야? 헛소리 그만하고 엄마랑 가게 나가자, 응?”
“아 놔, 정말이라니까!”
“아들이 진성그룹에 취직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내가 설명할게.”
나는 진성그룹에 취직하게 된 이야기를 적당히 각색했다.
“등산을 하다가 다친 사람을 구했는데 그 사람이 진성전자의 이사였다고?”
“응. 내가 백수라니까 취직하래. 좋은 자리에 박아주겠대.”
“그게 정말이야? 그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니고?”
“아니야.”
“아들, 세상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분명 뭔가가 있을 거야.”
“아, 정말! 좀 믿으라니까!”
“지금 엄마한테 뻥치는 거지? 집에서 놀고 싶어서 지어낸 거 아니야?”
“아줌마, 이제 그만 좀 하세요, 네?”
나에 대한 깊은 불신에 빠진 엄마. 엄마는 심지어 지원군까지 불렀다.
“얘, 현지야! 오빠 좀 말려봐라!”
“무슨 일인데?”
후다닥 달려온 현지.
엄마는 내가 진성그룹에 취직했다고 주장한다고 이야기했다.
얘기를 듣고 현지는,
“깔깔깔깔깔깔깔깔!”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른다. 얼마나 신 나게 웃던지 ‘깔깔’ 소리가 환청처럼 귀에 아른거린다. 이년이!
“오빠가 진성그룹에 취업을? 그럼 난 구글 가겠다. 깔깔깔!”
“구글은 토익 400점짜리 인재를 원하지 않는단다.”
“흥, 진성그룹도 공무원 시험 공부만 하던 서른 다된 노땅은 취급 안 하거든?”
“얘야, 개념을 클럽에 놓고 왔니? 오라버니에 대한 존경심은 좀 더 갖지 그러니?”
“어머, 웃겨! 이보세요, 아저씨. 혹시 솔로 아니세요? 이제 슬슬 결혼할 때 되지 않았나요? 친구들은 하나둘 결혼하고 있죠? 근데 혼자 뭐하세요?”
“크윽…….”
이 잔인한 것. 인정사정없구나.
이대로 질 수 없다!
“뭐하긴? 너무 걱정 마시라. 여동생 절친과 썸 타는 중이거든요!”
“꺄악! 민정인 안 된댔다!”
“으하하! 네 허락 따윈 필요 없다!”
“죽을래?!”
우리는 서로의 아픈 점을 물어뜯으며 싸웠다. 그런 우리를 보며 엄마는 머리를 싸쥐며 괴로워했다. 하긴 나라도 내 자식들이 우리 같으면 심란하겠다.
그런데 그때였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어머, 누구지? 가스 점검인가?”
엄마가 나가보았다.
“누구시죠?”
“김현호 씨 댁 맞으십니까?”
“예, 그런데요?”
“진성그룹에서 나왔습니다.”
“네?”
“모시러 왔습니다. 김현호 씨 안에 계십니까?”
“아, 아들…….”
엄마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날 돌아본다.
박진성 회장이 보낸 사람이 벌써 왔구나. 아침부터 부르다니, 정말 일 추진 속도가 폭풍 같다.
덕분에 나는 체면 회복은 물론 콧대가 하늘을 찌를 높아졌다.
“훗, 이래도 내가 거짓말쟁이라고? 망상에 빠져 현실 부정을 한다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진성그룹에서 사람까지 올 줄은……!”
현지도 무척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씨익 웃으며 현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리 여동생, 아까 오라버니에게 뭐라고 했더라?”
“그, 그게…….”
“후훗, 이 오라버니 오늘부터 대기업에 다니게 됐는데. 이제 우리 못된 여동생은 국물도 없겠네?”
“오, 오빠. 아니, 오라버니!”
현지는 갑자기 태도가 공손하게 돌변했다.
“제가 식사 차려드릴까요? 오늘부터 존댓말 쓸까요, 오라버니?”
“이미 늦었다, 요망한 년.”
“아잉, 오빠!”
현지가 엉겨 붙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일단 현관으로 나가 마중 온 사람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예, 천천히 나오십시오. 주차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어제도 봤던 박진성 회장의 운전수였다. 사내는 공손히 대답하고는 먼저 내려갔다.
나는 서둘러 씻고 옷을 입었다.
일단 가족들에게는 취직했다고 말해뒀으니 경조사 외엔 입지 않았던 슈트를 꺼내 입어야 했다.
“오빠~”
현지가 아양을 떨며 나타났다. 요것은 내 옷장을 멋대로 뒤지더니 넥타이를 꺼냈다.
“넥타이 매줄게, 오빠.”
“호오, 고맙기도 해라. 우리 싸가지 없는 여동생이 웬일이실까?”
“아잉, 난 바라는 거 없어.”
애교를 떨며 현지는 내 목에 넥타이를 매주었다.
근데 얘 왜 이렇게 넥타이 매주는 손놀림이 능숙하냐. 대체 누구를 상대로 연습한 거야?
“바라는 게 없으니 다행이군. 난 또 용돈이라도 줘야 하나 했지.”
“아앙, 오빠! 내가 매일 아침 차려줄게, 응?”
“글쎄. 너 하는 거 봐서.”
“히히, 다녀오세요, 오라버니.”
현관에서 구두를 꺼내 신은 나는 아직도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한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엄마, 이 아들 다녀올게. 엄마는 오늘도 열심히 닭 장사, 파이팅!”
“어, 어…….”
그렇게 나는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에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사내가 운전하는 벤츠를 타고 이동했다.
진성그룹의 본사는 강남에 있지만, 우리가 향한 곳은 충북 진천군. 어제도 갔었던 그 산장이었다.
“왔는가?”
박진성 회장은 이미 사냥 준비를 전부 끝내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또 사냥이에요?”
“어제는 사냥도 아니었지 않나. 오늘은 자네의 능력 없이 제대로 해볼 생각이네. 그보다, 우선은 줘야 하는 게 있지?”
생명의 불꽃을 요구하는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냥하면서 드리겠습니다.”
“그러게.”
관리인 노인이 챙겨준 장비를 모두 가지고서 우리는 사냥을 시작했다.
단둘이 남게 되자 나는 생명의 불꽃을 만들어 박진성 회장에게 건넸다.
불꽃을 먹고서 박진성 회장은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힘이 솟는군. 매일 꾸준히 먹으면 내 병도 나을 것 같네.”
생명의 불꽃은 확실히 효과가 있어 보였다.
어제는 그렇게 힘들어했던 박진성 회장이 오늘은 앞장서서 산을 잘 타고 있었다.
끌고 온 셰퍼드가 산짐승의 흔적을 발견했는지 코를 킁킁댔다.
땅에 남겨진 발자국을 보더니 박진성 회장이 말했다.
“고라니군.”
우리는 셰퍼드가 이끄는 대로 뒤따랐다. 함께 이동하면서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어제 노르딕 시험단의 연락을 받았네.”
“노르딕 시험단이 뭐죠?”
“노르딕 5국과 노르딕 이사회의 준회원인 3개 자치구의 시험자들이 연합하여 창설한 국제기관일세.”
“……?”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나에게 박진성 회장을 혀를 찼다.
“무식한 건가, 아니면 요즘 젊은이들은 다 자네 같은가?”
“제가 요즘 젊은이의 표준이죠.”
“이 나라가 큰일이군. 주둥이로만 글로벌, 글로벌 한단 말이야.”
박진성 회장의 설명에 의하면 노르딕 국가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의 다섯 국가를 뜻했다.
또한 노르딕 이사회의 준회원인 3개 자치구역은 그린란드, 올란드 제도, 페로 제도였다.
노르딕 시험단은 이들이 연합하여 설립한 아레나 관련 시험자 지원 기관이었다.
마정을 획득해 차세대 에너지자원을 확보하는 활동은 다른 국가기관과 비슷하지만, 이들은 무엇보다도 시험자들이 창설한 조직이라 시험자의 생존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한다고 한다.
“시험자의 생명을 중시 여기는 풍조 덕에 자네를 돕는 문제에 긍정적인 반응을 들었네.”
“노르딕 시험단의 시험자들이 저를 돕는다고요?”
박진성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자네는 아직 3회차잖나. 4회차 시험을 돕는 정도는 10회차를 넘긴 베테랑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물론 그만한 대가는 내가 치르기로 했지만.”
“대가가 어느 정도던가요?”
“별거 아닐세. 자네를 돕는 시험자에게 100억 원을 지불하기로 했어.”
‘100억이 별거 아니라고?!’
나는 기겁을 했다.
나 때문에 기꺼이 그런 돈을 지불한 박진성 회장의 스케일에 기가 질렸다.
박진성 회장이 정말로 자신의 불치병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다행이다.’
박진성 회장의 눈에 든 것도, 박진성 회장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스킬이 나에게 있는 것도 정말 큰 행운이었다.
“하지만 자네가 4회차에서 어떤 시험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은 자네를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보고 싶다고 했네.”
“저를 직접요?”
“사실 그들의 흥미를 끌 만한 소스를 흘렸거든.”
“정령술 말이죠?”
“그렇네. 듣기로 노르딕 시험단에도 정령술을 습득한 시험자는 없다더군. 그래서 자네에게 흥미를 보이는 거야. 덕분에 도움을 이끌어낼 수도 있었고.”
“그걸 하루 만에 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어제는 자네에게 받은 불꽃 덕분에 하루 내내 기운이 넘쳤거든. 덕분에 의욕적으로 일처리를 할 수 있었네.”
“저 때문에 100억을 쓰신 건…….”
“개의치 말게.”
“…….”
“자네는 죽지만 않으면 돼. 4회차도, 5회차도 계속 살아남아서 나를 살려주게. 그거면 되는 거야. 자네는 나에게 그 정도 가치가 있는 걸세.”
“예, 반드시 살아남겠습니다.”
“자, 그나저나 자네가 아레나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게. 그동안 자네가 어떻게 시험을 치렀는지 알고 싶군.”
“좋습니다.”
그날 함께 사냥을 하면서 나는 시험자가 되고부터 겪은 일들을 들려주었다.
확실히 박진성 회장은 사람을 대하는 법을 잘 안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감탄도 하고 때로는 안쓰러워하면서 좋은 청자가 되어주었다.
“확실히 천사 말이 옳네. 자네는 보통 사람이 아니야.”
“그런가요?”
“그렇고말고. 자네가 시험을 치르면서 했던 판단들은 보통이 아니야.”
박진성 회장은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짐작은 했지만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놓이는군. 자네는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야. 내가 확실히 지원만 해준다면, 자네는 앞으로도 혼자서도 능히 시험을 해나갈 걸세.”
앞으로도, 라…….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박진성 회장은 자신의 병이 완쾌될 때까지만 나를 필요로 한다. 그 이후는 알 바가 아닐 테지.
하지만 뭐 어떤가?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관계가 가장 좋은 관계다.
그가 나를 필요로 하듯, 나 역시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받으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이틀 전보다는 내 미래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