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50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50화
“진천군에 있는 내 산장으로 갈 건데 괜찮겠나? 산중에 있는 작은 별장이라 인적이 없는 곳인데.”
박진성 회장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회장님과 함께라면요.”
“허허, 그건 왜인가?”
“실례지만, 여차하면 회장님이 인질이잖아요.”
내 말에 박진성 회장은 껄껄 웃었다.
“똘똘한 친구군. 마음에 들어.”
“영광입니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사내들은 별로 마음에 안 들었는지 심기 불편한 모습이었다.
남부대로를 타고 이동한 치량은 한 시간 정도 달린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충북 진천군의 어느 산골로 들어선 차량은 좁은 산길을 조심스럽게 나아간 끝에 산장 앞에서 멈췄다.
사내들이 먼저 내려서 문을 열어주었다.
“여기가 내 별장이야.”
의외로 평범한 산장이었다. 대기업 회장의 별장이니 뭔가 굉장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왜 이런 곳에 별장을 두셨어요?”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박진성 회장은 씨익 웃었다.
“수렵장일세. 지금은 수렵 허가 기간이고.”
“아…….”
“작년까지만 해도 매년 와서 며칠씩 사냥하곤 했어. 올해는 못 올 줄 알았는데.”
박진성 회장은 반가운 얼굴로 산장으로 향했다.
산장에서도 비슷한 나이대의 노인이 나왔다. 산장의 관리인으로 보이는 적당한 체격의 노인이었다.
박진성 회장이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나 왔어, 이 친구야.”
“어이쿠, 회장님!”
“회장님은 무슨. 그냥 이름 부르라니까.”
관리인 노인은 달려와 박진성 회장과 포옹을 했다.
“회장님! 올해는 안 오실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쯧, 자네도 그 얘기 들었나?”
“예. 말씀 듣고 제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내 아들 놈한테 들었겠군. 원래 때 되면 다 가는 거야, 걱정 마.”
“흐흐흑…….”
“아이고, 이 친구 왜 또 질질 짜? 사냥 준비나 좀 해줘.”
“예, 예.”
관리인 노인이 안으로 들어가고, 박진성 회장은 날 돌아보며 물었다.
“사냥 할 줄 아나?”
“예.”
“아침식사는 같이 사냥하면서 간단히 하지. 어때?”
“문제없습니다.”
아레나에서 내내 그 짓만 했는데 뭘.
관리인 노인은 뭔가가 잔뜩 든 배낭 하나와 엽총 두 자루, 그리고 큼직한 셰퍼드 한 마리를 끌고 왔다. 저게 훈련 받은 사냥개인 모양이었다.
나는 배낭을 건네받고 짊어졌는데 꽤나 묵직했다.
박진성 회장이 엽총 한 자루를 들이밀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 총이 따로 있습니다.”
“호오, 그런가?”
박진성 회장은 자기 엽총과 실탄, 그리고 셰퍼드의 목줄을 갖고 사냥에 나섰다. 따라오려는 사내들을 제지시켰다.
“둘이 다녀올 거니까 부를 때까지 여서 기다려.”
“예, 회장님.”
“자, 감세.”
“예.”
그렇게 사냥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최고 갑부, 살아 있는 성공신화의 주인공인 박진성 회장과 단둘이 사냥이라니.
옆에서 열심히 산을 오르고 있는 박진성 회장을 보며 나는 신기한 기분에 휩싸였다.
“몸이 편찮으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아이고, 말도 말게. 힘들어 죽겠군.”
박진성 회장은 바위에 걸터앉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몸이 고장 나서 산 조금 올랐는데 이 모양이야. 쯧, 작년까지만 해도 팔팔했는데, 이제 끝난 게지.”
박진성 회장의 얼굴에 쓸쓸한 회한이 어렸다.
그걸 보고 내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아까 관리인 노인과의 대화도 그렇고, 아마도 박진성 회장은…….
“제게 용건이 있으신 것도 그 때문이시지요?”
박진성 회장은 씨익 웃었다.
“역시 똘똘하군.”
“별말씀을요.”
아마도 죽을병일 것이다.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을 극복할 마지막 수단으로 아레나를 선택한 것이리라.
햇병아리 시험자인 나를 직접 만나러 올 정도로 지극정성으로 말이다. 아마 내가 남다른 메인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겠지.
“이제 아무도 없으니 자네 총 좀 보여줘. 한번 보고 싶군.”
“예, 무장!”
모신나강이 나타나 오른손에 잡혔다. 박진성 회장은 이미 여러 시험자를 만나봐서 익숙한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대신 박진성 회장은 내 모신나강을 보자 시름에 잠겨 있던 눈빛에 활기가 돌았다.
“이야, 그거 구소련 물건 아냐. 어디 줘봐!”
총을 건네주자 박진성 회장은 장난감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야, 때갈 좋다. 내 인생보다 더 오래된 놈인데.”
“총을 아십니까?”
“그럼! 내가 나름 총 마니아야. 사냥도 총 쏘는 재미로 시작했거든. 캘리포니아에 있는 내 별장에 소총이랑 권총이랑 잔뜩 수집해 놓았다. 이 모신나강도 소련제랑 핀란드제랑 갖고 있고.”
역시 총은 남자의 물건인가.
모신나강을 연신 만지작거리며 좋아하는 박진성 회장이었다.
박진성 회장은 모신나강을 다시 나에게 돌려주었다.
“근데 카르마가 부족해서 이런 구식 총을 쓰는 겐가?”
“예.”
“얼른 카르마 더 모아서 반자동소총으로 바꿔.”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하아, 그나저나 어쩐다? 내 몸 상태가 생각보다 더 안 좋아서 사냥은 안 되겠는데. 에이, 총 한번 쏘고 싶었는데…….”
“그럼 사냥은 후딱 끝내죠. 한두 시간은 걸을 수 있으시겠어요?”
“그 정도야. 가능하겠어?”
“예, 실프!”
-냐앙?
실프가 소환되자 박진성 회장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뭔가?”
“정령입니다.”
“정령? 아, 정령술인가? 그래서 자네 메인스킬이 특이하다고 한 거였군.”
“예.”
나는 실프에게 지시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산짐승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줘.”
고개를 끄덕인 실프는 휙 하니 사라졌다. 잠시 후에 실프가 돌아와서 앞발로 왼편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숫자 174를 땅에 적었다.
“토끼니?”
실프는 고개를 저었다.
“사슴? 고라니?”
실프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
“멧돼지?”
그제야 끄덕이는 실프.
나는 박진성 회장에게 말했다.
“멧돼지라네요. 가죠.”
“그러지.”
함께 걸으면서 박진성 회장은 연신 실프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나는 실프에게 다시 지시를 내렸다.
“우리의 냄새와 소리를 모두 없애줘.”
-냥.
그때부터는 우리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박진성 회장은 더욱 신기해했다.
이윽고 실프가 앞을 가리켰다.
무성한 수풀에 몸을 감춘 채 앞을 살펴보니, 정말로 멧돼지 한 마리가 보였다. 아주 큼직한 놈이었는데, 놈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쏘시겠습니까?”
“그러지. 맡겨두라고.”
박진성 회장은 자기 엽총으로 멧돼지를 겨누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나 역시 모신나강으로 조준을 했다. 박진성 회장의 사격이 빗나가면 멧돼지가 도망치기 전에 내가 맞출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퍼억!
엽총이 발사되면서 멧돼지의 옆구리에 피가 터졌다. 실프의 소리차단으로 총성은 울려 퍼지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멧돼지에게 박진성 회장은 한 발 더 쏘았다.
퍽!
이번에도 몸통!
멧돼지는 그대로 즉사했다.
“이야 하하! 해냈다!”
뛸 듯이 기뻐하는 박진성 회장. 병에 걸려 죽어가는 자신이 다시 사냥에 성공할 수 있을 줄은 몰랐으리라.
“이렇게 사냥이 쉽다니 정말 정령은 대단하군.”
“예. 대단하죠, 실프는.”
내 칭찬에 실프는 꼬리로 툭툭 내 뺨을 치며 애교를 부린다.
“이야, 이거 아침거리로 싸온 샌드위치도 필요 없겠군. 식사는 이놈으로 하는 게 어때? 산장 노인네가 이런 거 요리를 기막히게 하거든.”
“그러죠.”
“잠깐만 기다려 봐. 내가 애들 불러서 이놈을 가지러 오게 해야지.”
“아뇨, 그냥 제가 들고 가겠습니다.”
“응? 이 큰 놈을?”
나는 죽은 멧돼지에게 다가갔다. 뒷다리를 들고서 번쩍 등에 들쳐 업었다. 수백 킬로그램짜리 멧돼지가 가뿐하게 들렸다. 체력보정 초급 5레벨 덕분이었다.
“체력보정도 익혔나 보군. 그 정도면 초급 4레벨 정도 되나?”
“5레벨입니다.”
“그래? 이야, 이제 3회차일 텐데 성장이 빠르네?”
시험자도 연구소 관계자도 아니면서 시험자에 대해 빠삭하군.
박진성 회장이 얼마나 아레나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멧돼지를 들고 돌아오자 산장은 난리가 났다.
박진성 회장의 수행원들은 물론이고 산장 관리인 노인도 기겁을 했다.
“아니, 멧돼지를 잡으셨습니까?”
“하핫! 어때? 오늘내일 하는 늙은이가 제법이지?”
“아아, 정말 회장님은 대단하십니다!”
“하하핫! 뭐, 이 친구가 거의 잡은 건데 뭘. 우리 아직 아침도 안 먹었으니까 이놈으로 빨리 요리나 해줘.”
“아이고, 그래야지요. 시장하실 텐데 빨리 솜씨 발휘해서 갖다드리겠습니다!”
노인은 능숙하게 멧돼지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배를 가르고 장기를 꺼낸 후에 발목을 자르고 박진성 회장 수행원들의 도움을 받아 가죽을 벗겨낸다. 척척 해내는 노인의 손길을 나는 감탄하며 지켜보았다.
박진성 회장이 자기 자랑처럼 말했다.
“사실 저 노인네가 진짜 사냥의 달인이야. 매달 생활비 안 보내줘도 총이랑 개만 있으면 잘 먹고 살걸?”
“예, 손질하는 걸 보니 한두 번 하시는 게 아닌 것 같네요.”
아레나에서 산짐승을 몇 번이고 손질해 봤기에 노인이 얼마나 능숙한지 알 수 있었다.
한참 후에야 우리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막 잡은 멧돼지 고기를 바비큐로 구워서 매콤한 양념을 바른 요리였다. 박진성 회장의 말대로 노인은 요리 솜씨도 기막혔다.
대기업 회장과의 식사라 뭔가 호화로운 것을 생각했었는데,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기야 격식 있는 최고급 레스토랑 같은 데는 내가 부담스러웠을 테고.
함께 사냥까지 즐긴 것을 보면 박진성 회장은 나와 좋은 관계를 이루고 싶은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자 관리인 노인은 적포도주를 한 잔씩 가져다주었다.
“고마워. 이제 잠시 둘이서 얘기 좀 하겠네.”
“예.”
노인도 수행원들도 물러났다.
산장 앞마당에 회장과 나 단둘이 남게 되었다.
박진성 회장은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며 맛을 음미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가?”
“목숨이요.”
내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박진성 회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 말이 바로 나와야 해. 질문을 받았을 때 돈 같은 다른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라서는 안 돼.”
“동의합니다.”
“내가 왜 시험자를 찾아다니고, 아레나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알지?”
“예.”
“나도 자네들과 같아. 나도 살고 싶어서 노력하는 거야. 사람이 태어나서 결국은 죽게 되지만, 아직은 살아 있으니까 눈 감기 전까지는 살려고 노력할 거야.”
“…….”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내 병을 치료할 만한 수단이 있겠나?”
“글쎄요. 힐링포션 같은 상처를 치료하는 약품도 있으니 질병을 치료하는 물건도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없어. 많은 시험자를 수소문해서 의뢰했는데 아직까지는 아무도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어. 상처는 치유할 수 있어도 병을 낫게 만드는 건 아레나에 없어. 그쪽 세계는 의학이 지구보다 훨씬 미개하거든.”
“…….”
“그래도 내가 한 가지 희망을 거는 건 스킬이야.”
“스킬이요?”
“그래. 그 힐링포션은 마법으로 만들었다고 하더군. 그것처럼 질병을 낫게 하는 스킬을 습득한 시험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내 희망이야.”
가만, 스킬?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스킬합성이 떠올랐다.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