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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46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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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46화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곳에 하얀색만이 가득했다.
세상이 온통 하얀 이 지긋지긋한 곳에 나는 돌아왔다.
“오셨나요, 시험자 김현호.”
아기 천사가 시험의 문을 열고 돌아온 나를 맞이했다.
그래도 사람 기분을 아예 배려하지 않는 건 아닌지 이번에는 요란하게 나팔을 불지 않는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험의 문을 통과하면서 육체는 회복되었지만 정신은 아니었다.
아기 천사는 조금은 쓸쓸한 어조로 말했다.
“혼자 오셨군요.”
“…….”
그랬다.
혼자였다. 이곳에 돌아온 것은 나 한 사람뿐이었다.
그 지옥에서 오직 나만이 돌아왔다.
준호도 혜수도 죽었다.
강천성의 죽음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돌아오지 못한 걸 보니 아마도 죽었을 게 틀림없었다.
그날, 혜수가 죽고서 이성을 잃었을 때 나를 구한 것은 강천성이었다.

‘먼저 가라. 여긴 내가 맡겠다.’

그 말에 비로소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혼자 도망친단 말인가?
나는 망설였다.
함께 싸워야 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했다. 소환시간이 끝나는 바람에 실프가 되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강천성은 이미 나에게서 신경을 껐다. 그의 두 눈은 오직 레온 실버라는 강자를 향해 있었다.
레온 실버 또한 강천성의 강한 눈빛에 새로운 흥밋거리를 발견한 표정이 되었다.
“가라. 이놈과 결판을 짓고 따라가겠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간에.”
그렇게 나는 강천성을 놔두고 도망쳤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다행히 체력보정 초급 4레벨에 달하는 내 체력은 그 강행군을 견뎌내 주었다.
숲이 끝나고 높고 가파른 산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나타난 시험의 문을 보며 나는 비로소 털썩 주저앉고 울음을 터뜨렸다.
허망하게 살해당한 준호.
죽는 순간에 슬픈 눈으로 날 쳐다보던 혜수.
날 보내고 홀로 싸움을 계속한 강천성.
이제 와서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고독감에 미칠 것만 같았다. 팀의 리더였던 나란 놈은 마을 주민들뿐만이 아니라 팀원까지도 전부 희생시키고 혼자 살아남고야 말았다.
“슬퍼 보이시네요.”
아기 천사의 말에 나는 회상에서 깨어났다.
“그래도 시험은 클리어하셨으니 축하는 드릴게요. 축하해요, 시험자 김현호. 이번에도 가장 높은 성적을 거두셨어요.”
“…….”
“에이, 기운이 없으시니까 재미가 없네요.”
은근슬쩍 나를 약 올리려는 아기 천사였지만, 나는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
아기 천사는 그런 날 빤히 보다가 문득 말했다.
“그럼 기분 전환용 퀴즈 하나!”
“…….”
“실프를 시켜서 저격을 했을 때, 레온 실버는 보지도 않았는데 어느 방향에서 총을 쏘는지 어떻게 알아챘을까요?”
그 말에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나도 그게 이상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총을 쏘는지 놈은 무슨 수로 알아차렸을까?
실프의 움직임이 놈에게 들켰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한 가지 답에 도달했다.
“…냄새.”
“정답!”
“빌어먹을!”
냄새였다.
물론 실프는 소리도 냄새도 없지만, 소총 모신나강은 아니었다. 여러 번 총을 쐈으니 화약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내가 어리석었어.’
그때 그 점도 감안했더라면.
실프의 능력으로 냄새까지 차단해 놓고 저격하게 했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 지도 모른다.
준호의 죽음과 놈의 심리적인 압박에 제대로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그러면 혜수는 죽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러게 말이에요.”
아기 천사가 내 생각을 읽고서 빈정거렸다.
“시험자 김현호가 조금만 더 잘하셨으면 시험자 이혜수는 죽지 않았을 텐데요.”
“이 자식이!”
“히히히.”
나는 화가 나서 노려보았지만 아기 천사는 빙글거리며 재수 없게 웃었다.
“이제 조금은 교훈을 얻으셨나요?”
“무슨 교훈? 멍청하면 죽는다는 교훈?”
“멍청하다니요. 시험자 김현호는 이번 시험에서도 아주 잘 하셨어요. 그래도 말이죠.”
아기 천사는 파닥파닥 날아와 나에게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보다 더 잘하셔야 해요.”
“…….”
“그것보다 더 죽음에 가까운 긴박한 순간에도, 시험자 김현호는 냉철하고 지혜로워야 해요. 아셨나요? 저는 시험자 김현호가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라고 있으니까요.”
“…….”
“자자, 여기까지. 이제 얼른 가버리세요, 다음 시험에 또 봐요.”
아기 천사가 손가락을 딱 튕기자 시험의 문이 나타났다.
나는 문을 열고 밝은 빛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3회차 시험은 끝났다.

***

연구소는 난리가 났다.
차지혜를 비롯해 연구소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이준호, 이혜수, 강천성이 실려 나오고 있었다.
세 사람은 심장마비로 숨져 있었다. 그것이 아레나에서 죽은 시험자의 최후였다. 그래도 현실에서는 시체가 온전해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적어도 현실에서의 그들은 평온해 보였으니까.
“괜찮으십니까?”
차지혜가 다가와 물었다.
나는 힘없이 되물었다.
“괜찮아 보이나요?”
“죄송합니다. 괜한 질문이었습니다.”
“준호랑 혜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병원으로 데려갈 겁니다. 돌연사로 처리될 테고 가족에게 통보됩니다.”
“저도 그렇게 되겠네요.”
“…시험에서 목숨을 잃으시면, 그렇습니다.”
쉽게 상상된다.
죽은 나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할 가족들의 모습이. 가족들에게는 갑작스러운 날벼락일 것이다.
“오늘은 돌아가서 푹 쉬십시오. 3회차 시험의 경위는 나중에 정신적으로 충분히 안정을 찾으시면 그때 듣겠습니다.”
“그러죠.”
차지혜는 간단히 작별을 하고는 바쁜 일이 있는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데 그때, 유지수 팀도 시험을 마치고 나왔다.
유지수, 차진혁, 이진용.
19회차, 아니 이제 20회차 팀인 그들은 세 사람 다 무사히 돌아왔다. 그게 너무나도 부러웠다.
“우와! 너 진짜 오랜만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네! 너 이름이 뭐랬더라?”
금발로 염색한 유지수는 나를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름을 까먹었을 정도로 오랜만이라고?’
나는 그녀의 태도에 의아함을 느꼈다.
사람 좋은 인상의 이지용이 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그쪽은 3회차였을 테니 시험기간이 길어야 보름 정도였지? 우리는 장장 3개월간 시험을 치러야 했거든.”
“아…….”
나는 아레나에서 열흘을 보냈다. 저들은 3개월이나 보냈다. 그런데도 같은 날 깨어나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똑같은 시각에 돌아왔는데도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았다니.
“다른 멤버는?”
차진혁이 물었다.
“…2, 3회차 징크스라고 하셨죠?”
대답은 그걸로 충분했다.
유지수과 이지용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런…….”
차진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너 빼고 다 죽었다고? 너희 정도 되는 팀이? 말도 안 돼! 얼마나 개떡 같은 시험이었던 거야? 그 강천성이라고 했던 사람은 실력이 상당했잖아!”
유지수가 믿기 어렵다는 듯이 말했다.
“다 제 잘못이죠.”
“아, 이를 어째. 그럼 이제 너 혼자 시험을 치러야 하는 거야?”
“그렇겠죠.”
그러자 이지용이 다가와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혼자 남았어도 자포자기는 하지 마. 가까운 지역에 있는 다른 시험자의 도움을 받는 등의 방법도 있으니까.”
“다른 시험자요?”
“그래, 너처럼 곤경에 처한 팀을 가까운 지역에 있는 팀이 구원해 주기도 하거든. 아마 연구소에서 널 지원해 줄 팀이 있는지 수소문할 거야.”
“반대로 가망이 없는 팀은 그냥 포기해 버리기도 하지.”
차진혁이 말했다.
“이봐!”
이지용이 핀잔을 했다.
차진혁은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연구소를 너무 믿지 마. 이놈들은 자원봉사단체가 아니야. 시험자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 같아도, 가망 없는 시험자를 위해서 인력과 자원을 투자할 정도로 착한 놈들은 아니니까. 특히 너처럼 동료가 전부 죽고 홀로 남은 3회차 햇병아리는 더더욱 말이야.”
“야! 너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할래?”
유지수가 차진혁에게 버럭 화를 냈다.
“모르는 소리 마. 뒤늦게 뒤통수 맞지 말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아냐!”
차진혁은 나에게 계속 말했다.
“잘 들어, 네 담당인 차지혜는 성실한 여자지만 그 윗대가리들은 안 그래. 정치권의 높으신 네들에게 꼬박꼬박 성과보고를 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손해 볼 짓을 안 해. 아마 계약을 파기해 버리고 널 그냥 버릴 가능성도 있어.”
“…….”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두고, 어떻게든 혼자 살아갈 궁리를 해야 돼. 오늘 집에 가기 전에 차지혜한테 아레나 관련 자료를 최대한 많이 달라고 해. 버림받게 되면 그런 아레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게 되니까.”
차진혁의 조언은 냉정했지만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곧 죽을 가능성이 높은 나를 위해서 연구소가 돈과 시간과 노력을 쏟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장기계약도 아니고 1년짜리 단기 계약이었으니, 버리기는 더욱 쉬울 것이다.
나는 차진혁에게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조언 감사합니다.”
“자, 얼른 가봐.”
“잠깐잠깐!”
유지수가 나를 붙잡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번호 찍어.”
“예?”
“시험자끼리 서로 연락하고 지내면 좋잖아.”
“아, 그렇겠네요.”
나는 순순히 유지수의 핸드폰에 내 번호를 찍어주었다.
유지수는 내 어깨를 툭툭 쳤다.
“힘내.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네.”
“감사합니다.”
차진혁의 조언대로 나는 곧장 차지혜를 찾아갔다.
그래도 차지혜는 속이 음흉한 여자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연구소가 계속 저를 지원해 줄 확률이 얼마나 됩니까?”
“…….”
차지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역시 차진혁의 추측대로였다.
“아레나에 대한 자료를 최대한 많이 주세요. 연구소의 지원을 더 이상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저는 계속 시험을 치르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확실히 상부에서 김현호 씨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김현호 씨가 특이한 메인스킬을 가진 시험자라 해도, 이제 3회차인데 팀원을 전부 잃으셨다는 점을 비관적으로 볼 테니 말입니다.”
“이해합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제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드리겠습니다. 그래 봐야 고급 정보는 없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차지혜는 노트북을 꺼내서 실행시키더니 USB 메모리에 파일 몇 개를 옮겨 담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일단 이것을 가져가십시오. 그리고 설령 저희 연구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저는 계속 김현호 씨와 연락을 하며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담당 연구원으로서 제가 미흡한 탓에 여러분이 그런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때로는 얄밉기도 했지만 차지혜가 성실한 여자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작별을 고하고 헬기와 차량을 타고 천안으로 돌아왔다.
현실의 시간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수년 만에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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