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72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72화
호텔로 돌아와 나는 스킬합성을 시도했다.
“전장식 마법소총과 길잡이를 합성한다.”
-전장식 마법소총과 길잡이(보조스킬)을 합성합니다.
파앗!
-합성 성공. 사격(합성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전장식 마법소총이 소멸됩니다.
-사격(합성스킬): 총기류 사용 시 일정 거리 이내에서 100%의 명중률을 갖습니다.
*초급 1레벨: 스킬적용 범위 10m
“좋아!”
나는 환호했다. 딱 내가 원했던 스킬이었다.
10m 이내의 대상을 쏠 시 실프의 도움 없이도 100%의 명중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실프는 원거리에서 저격을 하고 나는 가까운 거리에서 쌍권총으로 싸우는 패턴이 확립되는 것이다.
기분이 좋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현지와 함께 신 나게 코펜하겐 관광을 다녀온 민정은 연신 싱글벙글하며 오늘따라 더 열정적으로 나에게 안겼다.
덕분에 달콤한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다음 날, 아쉬운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인천공항.
이수현은 귀국시간에 맞춰서 모범택시까지 불러놓았다.
나는 끝까지 완벽한 일정관리로 우리를 편하게 해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정말 감사했어요. 큰 신세를 졌네요.”
“그럼 언제 한번 밥 사십시오.”
“…네?”
“어머, 좋죠! 그땐 저도 같이 갈게요!”
민정이 잽싸게 내 옆에 붙어서 블로킹을 시전했다.
이수현은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고는 떠나버렸다.
***
[진성그룹 박진성 회장 전격 복귀!]
[건강 악화설 박진성 회장 ‘건강 문제없어’]
[진성전자 실적 악화에 박진성 회장 복귀, 후계자 선정 실패?]
[박진성 회장, 건재함 과시]
[진성그룹 계열사 주가 일제 반등 ‘왕의 귀환 효과’]
[복귀한 박진성 회장 ‘우리가 죽어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것’ 생존경영 선포]
뉴스나 신문이나 모두 시끄러웠다.
건강하다 못해 회춘한 듯한 모습으로 등장한 박진성 회장이었다.
대한민국 재산 1순위.
영향력 0순위의 거인.
왕이 떠난 이후에 재편되려면 재계에 충격을 선사한 귀환이었다.
진성전사의 실적 부진을 틈타 기지개를 켜려던 경쟁사들의 주가가 대폭 하락했을 정도였다.
‘대단하구나.’
나는 시끄러운 뉴스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주 화려하게 복귀할 거야.”
완쾌된 박진성 회장은 마지막으로 생명의 불꽃을 먹으면서 말한 바 있었다.
“진성전자의 실적 악화는 사실 내 자식들 잘못이 아니야. 원래 흘러가는 시류가 그랬어. 스마트폰이며 태블릿이며 죄다 포화 상태였거든.”
“그런가요?”
“그래도 내가 돌아오면서 요란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기대감에 주가가 상승할 거야.”
박진성 회장은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주가 상승은 일시적이지만 분위기가 바뀌지. 원래 위기를 극복해야 할 땐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이제 다시 뵐 일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무슨 소리야? 넌 진성그룹 소속의 시험자야. 잊으면 곤란해.”
“그건 명목뿐이잖아요. 회장님 목적은 이미 달성됐고요.”
“너와의 인연은 계속될 거야. 내가 또 언제 아플지 누가 알아?”
“그쯤 사셨으면 됐죠, 뭘. 장수왕이라도 되시려고요? 장수왕 아들 조다 태자가 쪼다의 어원인 건 아세요?”
“인마!”
그렇게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뒤에 박진성 회장은 작별하며 말했다.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하고. 내게 새 생명을 준 보상은 조만간 추가로 해줄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
“돈은 지금도 많은데요, 뭘.”
스위스 은행 계좌에 300억이 쌓여 있다.
워낙 순식간에 부자가 되어서 별로 부에 대한 실감도 나지 않는 나였다.
돈 쓸 줄을 몰라서 그런지도 모르지.
아무튼 복귀 후 폭풍 같은 행보를 보이는 박진성 회장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쓸모없는 제품 라인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IT와 디자인 인재를 공격적으로 영입하는 등의 행보를 시작하는 박진성 회장은 매우 즐거워 보였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오랫동안 함께 사냥하며 어울렸던 나는 박진성 회장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살아 있다는 기쁨.
삶의 기회를 다시 얻은 데에 대한 감사.
박진성 회장은 다시 얻은 인생을 일분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듯이 열심히 일했다.
최고경영자가 그러니 휘하에 임직원들도 덩달아 바빠져 진성그룹 전체에 활기가 띠었다.
박진성 회장의 의도대로 분위기를 멋지게 반전시킨 것이었다.
아무튼 박진성 회장의 완쾌와는 별개로, 내 남은 휴식시간은 점점 끝이 다가왔다.
“오빠, 우리 너무 자주 만나는 거 아니에요?”
시험 직전날 밤.
오피스텔에서 함께 밤을 보내면서 민정이 문득 물었다.
“그런가?”
거의 매일 만나긴 했다.
5회차 시험이 시작되면 또 얼마나 오래 민정을 못 볼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미리 잔뜩 만나 실컷 놀 생각이었다.
민정의 입장에서는 조금 질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매일 와서 좀 귀찮았지?”
“아이, 오빠는. 그런 얘기 하려는 게 아니에요.”
민정이 나에게 안겨왔다.
“너무 빨리 불타고 사그라질까 봐 무서운 거예요. 오빠가 얼마 안 가 저한테 질리면 어떡해요?”
“그럴 일은 없어. 약속할 수 있어.”
“치, 그게 약속한다고 되는 일인가.”
약속할 수 있고말고.
이제 내일이면 다시 아레나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돌아오면 오랜만에 재회한 민정에게 다시 타오를 수밖에 없다.
“너야말로 그동안 길게 연애해 본 역사가 없다면서? 현지한테 다 들었어.”
“이씨, 걘 별 소릴 다 해!”
“너도 마찬가지잖아. 현지한테 좀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말자, 응?”
민정은 키득거렸다.
“이번엔 달라요. 오빠랑은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어요.”
“나도 그래.”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가벼운 관계로 생각하고 시작한 연애인데.
내가 죽어도 그냥 조금 슬퍼하다가 잊어버리는, 그 정도의 미련 없는 관계이길 원했다.
그런데 민정은 첫 인상과 달리 내가 생각했던 그런 가벼운 여자가 아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자유분방한 현지와는 반대로 진지했다.
걱정된다.
‘내가 죽으면 슬퍼하겠지?’
민정을 본 나는 몰래 한숨을 쉬었다.
역시 내가 살아남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끈질기게 살아 돌아오는 수밖에 없다.
다음 날 아침에 민정을 학교에 바래다 주고 산장으로 출근했다.
이제 박진성 회장은 전처럼 이곳에 매일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대신 아랫사람을 시켜서 내가 부탁했던 물건을 전달해 주었다.
볼일 다 끝났다고 날 소홀히 대하는 건 아닌 듯했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박진성 회장의 제3비서과 사람들에게서 탄 박스를 건네받고 내 차 트렁크에 실었다.
바로 357매그넘탄의 탄 박스였다.
새로 생긴 2정의 권총 닐스 H2에 쓸 357매그넘탄이 필요했던 것이다.
곧장 집으로 돌아와 가공간에 탄 박스 몇 개를 집어넣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서른이구나.’
어느새 12월이었다.
5회차 시험을 마치고 돌아오면, 민정이나 현지나 대학 수업이 전부 끝나게 된다.
민정은 학교 끝나면 친척 오빠가 하는 회사에 다녀야 하기 때문에 서울로 가야 한다고 했다.
벌써부터 인터넷으로 원룸 매물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나도 독립할까?’
민정을 따라 서울로 함께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아예 동거도 하고 싶은데 연애한 지 이제 한 달이 좀 넘은 시점에서는 너무 진도가 빠르지 싶었다. 내 욕심일 뿐이다.
‘다녀오면 내 집도 마련하고 하자.’
돈도 많은데 좀 펑펑 써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다 되었다.
“가자.”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
“일어나세요. 언제까지 퍼 잘 거예요?”
귀에 익숙한 아니꼬운 목소리에 눈을 떴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난 누워 있었다.
파닥파닥 날아다니는 아기 천사의 얼굴이 가장 먼저 보여서 기분이 나빴다.
“이번 시험은 뭐야?”
내가 물었다.
아기 천사는 히죽히죽 웃었다.
“아주 쉬운 시험이에요.”
저 녀석 입에서 쉽다는 소리가 나오자 나는 불길함을 느꼈다.
쉬운데 왜 히죽거려?
“석판 소환.”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10
-카르마(Karma): 0
-시험(Mission): 생명의 나무를 회복시켜라.
-제한시간(Time limit): 무제한
‘예상대로다.’
역시 생명의 나무를 회복시키라는 시험이 나왔다.
생명의 불꽃에 카르마를 다량 투자한 내 판단은 옳았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단어가 있었다.
“무제한?”
“이야, 좋겠네요. 시간제한도 없고 위험할 일도 없이 그냥 한가롭게 엘프들과 세월을 보내면 되잖아요.”
“잠깐, 왜 무제한인 거야?”
“불만이에요?”
“아, 아니, 불만은 아닌데…….”
“시간제한이 있으면 어쩔 건데요? 뭐 달라지는 게 있나요?”
“…없지.”
어차피 생명의 나무를 회복시키는 수단은 하나뿐이었다.
매일 2개씩 만들 수 있는 생명의 불꽃.
내가 서두른다고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시간제한이 없는 것이리라. 의미가 없으니까.
…가만.
‘의미가 없다고? 그럴 리가.’
의미가 없는 건 없다.
이것 역시 의미가 있다. 시험은 모든 것이 다 힌트가 된다.
뭔가 숨겨진 의미.
이번 시험의 의도.
율법이 나에게 바라는 안배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혹시 1년 이상 걸릴 수도 있는 거야?”
“시험 하나로 6년씩 보내는 사람도 있는데요. 1년이 대수인가요?”
“…….”
닐스를 떠올린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거기서 세월 보낸다고 늙는 것도 아닌데 상관없잖아요? 아, 밤마다 외로울 테니 문제 있던가? 히히히.”
권총으로 저 자식을 쏘고 싶다.
“자자, 제게 적개심 불태우지 마시고 얼른 가버리세요.”
시험의 문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나아갔다.
밝은 빛이 내 몸을 감쌌다.
***
“형, 일어나! 언제까지 잘 거야?”
“해가 중천에 떴는데 퍼 자게 가만 놔둘 것 같아?”
“우리가 용납 못하지, 암.”
놀기의 화신인 흉악한 어린 엘프들이 내 천막에 쳐들어와 날 둘러싸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가니 아이들과 여자들이 놀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여성 엘프들은 내가 보급한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그 난이도가 놀라웠다.
한 손에 자갈 10개씩 양손으로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것!
‘원래 엘프들은 다 운동신경이 좋은 건가?’
나는 실프와 카사를 소환하여 아이들을 떨어뜨려 놓고, 생명의 나무로 향했다.
생명의 나무 아래에는 어머니들이 있었다.
“왔니? 오늘은 늦었구나.”
연장자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네, 죄송합니다.”
“뭘. 오늘도 부탁한다.”
“예, 그런데 생명의 나무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효과가 있나요?”
연장자 어머니는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꼼꼼하게 살펴보았는데 확실히 미세하지만 차도가 있었어. 이대로라면 10년 안에 생명의 나무가 완전히 회복될 거야.”
10년?!
나는 부르르 떨었다.
‘거기서 세월 보낸다고 늙는 것도 아닌데 상관없잖아요? 아, 밤마다 외로울 테니 문제 있던가? 히히히.’
번데기 새끼의 말이 귓가에 경종을 때리듯이 아른거렸다.
“그,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기필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