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71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71화
은행에서 발급받은 카드는 디자인부터가 달랐다.
일반적인 카드보다 훨씬 무게감이 있는 것이, 플라스틱이 아닌 메탈 재질로 보였다.
겉은 무광 처리가 된 검정색.
앞면은 ARENA라는 글자가 음각(陰刻)으로 금칠되어 새겨져 있었고, 뒷면에는 계좌번호가 역시 음각으로 금칠되어 새겨졌다.
그 외에 무엇도 새겨져 있지 않은 심플한 디자인이라 오히려 더 멋있었다.
마치 VVIP들이나 발급받을 수 있는 신용카드를 연상케 했다.
‘진짜 멋지다!’
계산할 때 이걸 꺼내면 감탄사를 불러일으킬 것만 같았다.
감탄하고 있는 나에게 이수현이 설명했다.
“체크카드라고 합니다.”
‘신기하네.’
호텔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내내 체크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이런 걸 가지고 있으니 마치 내가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래서 부자들이 유니크한 카드에 환장하는구나 싶었다.
밤이 되자 우리는 제네바의 야경을 감상하며 관광을 다녔다. 같이 걸으면서 웃고 떠들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제네바에서 아침부터 못 본 곳을 관광 다니다가 점심 무렵에 비행기를 타고 덴마크로 떠났다.
***
“잘 부탁드려요.”
“예.”
내 당부에 이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녀오세요, 오빠.”
“우리 먼저 논다~!”
민정과 현지가 손을 흔들며 이수현과 함께 사라졌다.
내가 오딘을 만나는 동안 그들은 코펜하겐을 관광 다닐 것이다.
나는 전에 갔었던 호텔 지하의 레스토랑으로 갔다.
카운터의 종업원에게 내 이름을 말하니, 종업원은 뭔가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안내해 주었다.
룸 앞에 이르러 노크를 하니 오딘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룸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금발의 젊은 미남자 오딘.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수염을 멋지게 기른 50대 중년 사내였다.
“저 친굽니까?”
멋진 수염의 중년 사내가 묻는다.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김현호 씨, 어서 오시오.”
“예, 오랜만입니다.”
우리는 악수를 했다. 이어서 중년 사내와도 악수를 나눴다.
“닐스 오슬란이다.”
“김현호입니다.”
닐스라는 이 아저씨가 바로 총기 제작자인 모양이었다.
오딘이 닐스를 소개시켜주었다.
“오슬란 씨는 13회차 시험자로, 클리어한 시험 회차는 적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을 아레나에서 보내신 분이오.”
“거의 30년 넘게 아레나에서 보낸 것 같군.”
순간 난 내 귀를 의심했다.
“30년이요?”
“그래, 나이 들어 지병으로 죽었더니 시험자가 되라더군. 그냥 시험이고 나발이고 그냥 죽을걸, 괜히 더 살겠다고 했다가 이 꼴이 되었어.”
“잠깐, 그럼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내 물음에 닐스가 말했다.
“자넨 정말 햇병아리군?”
“예…….”
“내 나이는 57세다. 아레나에서 보낸 기간까지 합하면 거의 90세가 다 되지만, 아레나에서는 아무리 긴 세월을 보내도 늙지 않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레나에서 보낸 시간은 시험자의 육체를 노화시키지 않는다. 그 뜻은…….
“긴 세월을 보내야 하는 시험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로군요.”
“그렇다. 그러니 내가 13회차인데 거기서 30년을 보냈지. 정말 지겨운 짓거리야.”
“대체 어떤 시험을 받으신 겁니까?”
내가 물었다.
닐스는 치를 떨며 말했다.
“동네 대장장이의 도제로 들어가라더군. 그게 1회차 시험이었어.”
“…….”
“도제는 정말 무일푼 노예 생활이야. 공짜로 노예처럼 부려먹어 달라고 대장장이에게 애걸해야 했던 꼴이라니.”
저런 시험도 있구나.
그래, 모든 시험이 다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나도 4회차에서 배웠다.
“가장 오래 걸린 시험은 소총을 만들라는 거였어.”
닐스는 투덜거리듯이 말을 계속했다.
“전장식으로 대충 모양새는 그럴듯하게 만들고, 마법사에게 의뢰해서 반발마법을 새겨달라고 했지. 그렇게 납구슬을 마법으로 튕겨내는 방식의 소총을 발명하고서야 시험이 클리어되더군.”
“어? 그거 혹시 전장식 마법소총 아닌가요?”
“맞아. 그거 내가 처음 발명한 거야.”
나는 멍해졌다.
오딘이 부연설명을 간단히 해주었다.
“카르마 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은 전부 실제 아레나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뿐이오.”
닐스가 발명한 전장식 마법소총은 잠깐 대륙 북서부 지방에서 유행했지만, 제작비용 대비 성능이 형편없어서 금방 사장됐다고 한다.
“전 전장식 마법소총 덕분에 2회차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딴 걸 쓰고서도 시험을 클리어했다고?”
닐스는 뜨악한 표정이었다. 발명한 장본인마저 형편없는 성능을 인정하는구나.
하긴, 나 역시 실프가 아니었으면 사용 못했을 것이다.
“그딴 물건을 유용하게 썼다니, 자네는 사격의 신이라도 되나? 정말 총을 주 무기로 삼을 만하군.”
“정령술 덕분이죠.”
나는 실프에 대해 간단히 말해줬다. 닐스는 무릎을 탁 치며 소리쳤다.
“그렇군! 그러면 개떡 같은 총도 잘 쓸 수밖에 없지!”
“예, 쏘다가 고장만 안 나면요.”
“난 쏘다 고장이 날 정도로 허술한 설계는 안 해.”
닐스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말했다.
“좋아, 자네라면 내가 만든 총을 받을 자격이 있어. 뭐, 어차피 오딘 님께 진 빚이 있으니 주려고 했지만.”
나는 기대 어린 눈으로 닐스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어떤 총을 주려는 걸까?
이왕이면 자동소총, 아니, 적어도 반자동소총이었으면 좋겠다.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볼트를 왕복시켜야 하는 볼트 액션방식은 너무 지겹다.
그것 때문에 코앞에 레온 실버를 두고도 쏴 맞추지 못했다.
놈은 내 총구의 방향과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보고 피한 것이다.
반자동이나 자동 소총이었다면 연속으로 쐈을 테니 아무리 놈이라도 전부 피하지 못했을 터였다.
“원하는 총에 대해 말해봐. 내가 만든 것 중 최대한 비슷한 걸 줄 테니까.”
그의 말에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자동사격 방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최소한 반자동방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쓴 총이 개떡 같은 전장식 마법소총과 모신나강 두 개였으니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하군. 모신나강이라니… 그건 이제 싼 맛에 갖고 노는 마니아들 장난감인데.”
닐스는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직 난 자동사격 방식의 총을 만들지 못했어. 내가 만든 총 중에 반자동은 소총 한 자루와 권총 몇 자루뿐이야.”
“그럼 그 소총을 원합니다.”
“잘 생각해봐.”
“예?”
“왜 반자동 방식을 원하는 거냐? 조금의 불편을 감수한다면 모신나강으로도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조준도 재장전도 볼트 액션도 모두 실프가 한다면서?”
“…….”
“볼트 액션식이기 때문에 극히 불리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건 적이 가까운 거리에 있었을 때뿐이지.”
그 말에 나는 혜수가 죽었던 그날을 다시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놈은 아주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함이라면, 권총은 어떠냐? 권총이라면 두 자루를 줄 수도 있다.”
“두 자루씩이나요?”
“어차피 조준은 네가 안 하잖아? 실프가 하지. 그럼 양손에 쥐고 마구 휘갈겨도 전부 적중된다는 뜻 아니냐?”
닐스의 발상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가까운 거리에서의 전투라면 그 방법이 훨씬 강력했다.
먼 거리에 있으면 지금까지처럼 실프를 시켜 모신나강으로 저격하게 하면 된다.
“대단하십니다.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리시다니!”
“아무도 없는 외지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6년씩 걸리는 시험을 치르는 동안 내가 심심해서 어떻게 살았을 것 같나?”
“…….”
“혼자 별짓을 다 하면서 놀았어. 심심했거든.”
혼자서 수년을 보내면 정신이 나가기에 딱 좋겠지.
쌍권총을 들고 뛰어 노는 중년이 아주 쉽게 상상된다.
닐스는 권총 두 자루를 소환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가져라.”
“감사합니다.”
권총 두 자루를 받아 들고 석판에 확인을 해보았다.
-닐스 H2: 아레나 유일의 총기 제작자 오슬란이 제작한 반자동 권총. 357매그넘탄을 사용한다.
*장탄 수: 9+1
*유효사거리: 200m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카르마로 환불받을 수 없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훌륭하네요.”
“데저트 이글을 거의 베꼈으니까.”
“아.”
어쩐지 권총 모양새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더라.
“매그넘탄은 강력한 위력 대신 반발력이 세서 다루기 힘들지만 시험자는 해당사항이 없지.”
“예, 문제없을 겁니다.”
체력보정이 중급 1레벨이라 내 손목은 강철과도 같았다.
근거리에서 쓸 수 있는 권총 두 자루가 생기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이 무기에다 체력보정과 운동신경, 불꽃의 가호와 바람의 가호까지 있다면 이제 실버 씨족의 수장 레온 실버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문득 사격 관련 스킬을 얻을 수는 없을까 싶었다.
‘길잡이와 총을 합성하면 스킬을 하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럴듯했다.
체력보정과 길잡이를 합성했을 때 운동신경이 탄생했다. 몸을 움직이는 길을 알려주는 스킬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럼 총과 길잡이를 합성하면 당연히 사격술 같은 게 생길 법했다.
나는 혹시나 싶어서 닐스에게 물었다.
“혹시 버리는 총 같은 거 없으신가요?”
“그건 왜?”
“조금 사정이 있어서요.”
“내가 만든 총은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카르마로 환불받지 못해. 알지?”
“예, 설명을 봤습니다.”
닐스 아슬란이 만든 총기의 주인은 오직 제작자인 닐스 아슬란만이 선택할 수 있었다.
“전장식 마법소총 알지? 그거는 시험 때문에 만든 게 아직 10자루 정도 있어.”
“그거면 됩니다. 염치없지만 하나만 주실 수 없을까요?”
“상관은 없지. 어차피 쓸모도 없는 건데. 줘도 안 갖는 거고.”
닐스는 전장식 마법소총을 소환해 나에게 주었다.
‘좋았어!’
이 정도면 덴마크에 온 보람이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거래가 끝나고서 우리는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술이 들어가자 닐스는 자기가 아레나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횡설수설하며 들려주었는데, 정말 많은 역경을 겪은 사람이었다.
가장 황당한 시험은 7회차.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오지로 나가 정착하라니, 그건 진짜 심했다.’
여기서 나는 중요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천사 놈들이 왜 시험으로 나를 외딴곳에 보냈는지 알아?”
“글쎄요. 총기제작기술이 아레나 인류 사회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한 게 아닐까요?”
“그것도 있지. 근데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
닐스는 맥주 한 잔을 원 샷에 비우며 말했다.
“시간의 괴리에 의한 오류를 없애기 위함이야.”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오딘과 똑같이 시험을 시작하고 똑같이 끝나는데, 지난 시험에서 오딘은 40일밖에 안 걸렸고 닐스는 3년을 보냈다.
그 시간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 천사들은 닐스를 아무도 없는 외딴 오지로 보내버렸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의견이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의문이 든 적이 있으니까.
어찌 보면 시험자들이 처음에 인적 없는 변두리에서 시작하는 이유도 이 같은 시간 개념 때문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