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65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65화
“실버 씨족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가장 연장자인 어머니가 손짓으로 모두를 조용히 시키고 발언했다.
“백 마리가 넘는 라이칸스로프가 공격해 온데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우리의 남편들과 젊은 남자 아이들은 능히 그들을 물리칠 거야.”
어머니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그게 아니야. 보다 큰 관점에서 보아야 해.”
연장자 어머니가 계속 말했다.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계속되는 좋지 않은 징조들을 말이다.”
그 말에 다른 어머니들도 놀란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의 엘리스 납치도 그렇고 인간의 영역 침범이 잦아졌죠.”
“동쪽에서는 라이칸스로프, 북쪽에서는 인간들…….”
“뿐만 아니죠. 다른 방면에서도 최근 괴물들이 자주 흘러들어온다고 했어요.”
“불길한 징조가 우리에게 계속 나타나는 이유는 하나뿐이에요.”
“역시 생명의 나무는…….”
한 어머니가 무심코 눈물을 글썽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다른 어머니들이 급히 제지했다.
“쉿!”
“조용히 해!”
“아무리 친구라지만 인간 앞에서 생명의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낼 셈이야?”
그제야 말실수를 한 어머니는 사색이 되어서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뭐야?
내가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였나?
그러고 보니 생명의 나무에 가까이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제이크가 신신당부했었지.
친구로 인정받은 후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다들 예민하게 생각하기에 나는 못 들은 척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연장자 어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인간, 하나 물으마.”
“예, 말씀하십시오.”
“우리를 찾아온 목적이 무엇이냐?”
그 순간, 내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갔다.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이라고 진즉에 예상하고 있었다.
친구가 되기 위해서라는 말은 내가 들어도 납득하기에 부족하니까.
내가 말했다.
“제가 살던 곳은 바스티앙 자작가가 다스리는 영지였습니다.”
나는 코펜하겐에서 오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써먹었다.
“바스티앙 자작가의 폭정으로 핍박받는 것이 지겨워 여행을 떠났습니다. 차라리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가자는 생각에 그 숲으로 갔던 것입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리석게도 저는 정령과 함께라면 안전하리라 생각하고 불귀의 숲이라 불리는 그곳에 들어갔다가 라이칸스로프들에게 낭패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도망쳤다가 이곳으로 흘러왔구나.”
연장자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신히 숲에서 탈출했지만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도 싫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갈색 산맥에 여러분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혹시나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오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인간에게 질려 자연과 벗 삼아 살고자 했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던 모앙이었다.
뭐, 엘프들의 성향을 고려해서 꾸며낸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런데 연장자 어머니는 나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에 나는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졌다.
엄마에게 숨겼던 시험지를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묘하구나.”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들었다시피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우리에게 좋지 않은 징조가 오고 있단다. 심지어 우리 마을의 중심부에서도 말이지.”
마을의 중심부.
생명의 나무를 뜻하는 것이리라.
“이런 시점에서 네가 우리의 친구가 되고 싶다며 찾아왔지. 우리에게 너는 마찬가지로 나쁜 징조일까, 아니면 좋은 징조일까 궁금하구나.”
“…….”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오해하지는 마라. 우리는 널 의심하지 않는다.”
“아직 어머니들께 제 신뢰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천만에. 넌 이미 증명했어.”
다른 어머니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신뢰를 증명했다니?
라이칸스로프의 수상한 동향을 알려준 것을 뜻하는 건가?
그걸로 내가 신뢰해도 되는 친구라고 증명하기에 충분했던 걸까?
연장자 어머니가 말했다.
“정령들이다.”
“엑?”
나는 순간 휘청했다.
결국 정령이냐? 정령이 귀여우면 되는 거야?
“우리가 정령만 보고 널 친구로 받아준 게 이상한가 보구나.”
“…솔직히 그렇습니다.”
내 말에 어머니들이 웃었다.
연장자 어머니는 실제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매력적인 웃음을 띠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옳단다. 정령을 보면 그 소환자를 알 수 있어.”
“그렇습니까?”
“인간 중에도 정령술사가 아주 간혹 있긴 하지. 물론 정령술사가 전부 착한 건 아니란다. 정령을 나쁜 일에 이용하는 파렴치한 인간도 있었다고 들었다.”
“…….”
“하지만 정령술사의 그런 심성은 고스란히 정령에게서 드러나지.”
“예?”
“정령의 모습은 정령술사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
놀란 나에게 연장자 어머니의 설명이 이어졌다.
“네가 악인이었다면 네 정령은 그런 네 심성을 반영하여 보다 공격적인 형태를 띠게 되지. 다시 한 번 네 정령을 보여주겠니?”
“예, 예. 실프, 카사.”
나는 두 정령을 소환했다.
바람의 고양이와 불의 강아지가 나타나자 어머니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연장자 어머니가 두 손을 뻗었다. 실프와 카사가 그녀에게로 다가가 애교를 부렸다.
연장자 어머니는 실프를 번쩍 들어 품에 안으며 말했다.
“이걸 보아라. 얼마나 애교 많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니?”
“그렇습니다.”
걔네들 귀여운 건 나도 잘 안다.
연장자 어머니가 말했다.
“외로웠지?”
“……?!”
나는 갑자기 심장을 직격당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동안 외로운 삶을 살았을 거야.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었겠지.”
“그건…….”
목소리가 떨려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많은 상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깊은 수면 아래에 잠겨 있던 것들이 드러난다.
공무원 시험을 공부한다고 홀로 수년간 보냈던 외로운 나날.
하나둘 취직에, 결혼에, 여러 이유로 곁에서 사라져 가는 친구들…….
그러다가 맞이한 갑작스런 죽음.
시험.
아레나.
죽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하는 숙명.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그 누구도 나의 고뇌를 알지 못했다.
나는 혼자 싸워야 했다.
‘그래서 실프가 내게로 와준 건가?’
나는 실프를 바라보았다. 연장자 어머니는 품에 안고 귀여워하던 실프를 나에게 내밀었다.
“자, 네 거란다.”
“아…….”
“널 위로해 주려고 찾아온 소중한 친구야.”
실프가 내 품에 뛰어 들어왔다.
오른쪽 어깨로 올라와 내 뺨에 얼굴을 마구 부빈다.
-멍멍!
이에 질세라 카사도 왼쪽 어깨 뛰어 올라와 꼬리를 마구 흔들며 애교를 부린다.
어머니들은 그런 정령들을 보며 호호 웃는다.
‘그렇구나.’
너희는 날 위로해 주려고 그런 모습으로 나에게 와준 거구나.
…난 외로웠던 거구나. 훨씬 오래전부터 줄곧.
부끄럽게도, 눈물이 나왔다.
연장자 어머니는 날 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정령술의 의미를, 소중한 사실을 일깨워 준 그녀에게 감사했다. 보답을 하고 싶었다. 시험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연은 없다.’
내가 정령술을 익힌 것도, 실프와 카사를 얻은 것도 모두 필연.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필연이다.
‘그렇다면…….’
생각 끝에 내가 말했다.
“실례 불구하고 꼭 여쭈어보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물어보아라.”
“생명의 나무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겁니까? 혹여 생명의 나무는 아픈 겁니까?”
그렇다면 내가 가진 모든 스킬도 우연이 아닌, 율법의 안배라는 거겠지.
나와 정령들을 보며 흐뭇해하던 어머니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어두워졌다.
연장자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짐작이 옳다. 수십 년 전부터 생명의 나무는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어. 우리는 믿고 싶지 않았고,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시들기 시작하지 않는 이상 확인할 방법도 없었기에 애써 외면해 왔지. 하지만 이제 인정할 때가 됐다. 생명의 나무는 약해지고 있어.”
어머니들의 얼굴에 슬픔이 어렸다.
몇몇은 나직이 훌쩍거리고 있었다. 생명의 나무가 그들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생명의 나무에 대해 저는 전혀 모릅니다. 그게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이고 그것이 없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요.”
“생명의 나무는 자연을 지탱하는 근간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벗 삼아 살아가는 우리 엘프에게는 부모 같은 존재지.”
“…….”
“생명의 나무가 사라져도 우리 엘프는 살 수는 있단다. 하지만 그건 소중한 의미를 잃어버린 우리이겠지. 그리고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정령들의 기운이 약해진다.”
그녀가 말했다.
“생명의 나무는 대자연의 근간이고, 풍부한 생명력으로 주변 자연에 힘을 준다. 정령도 마찬가지지. 생명의 나무가 사라지면 정령들도 약해질 거야.”
말을 들어보니 생명의 나무는 자연에서 살아가는 엘프들의 정체성 그 자체로 보였다.
내가 물었다.
“저 생명의 나무가 끝내 시들고 말면, 방법이 없는 겁니까?”
다소 무례한 질문일까 봐 걱정됐지만, 다행히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없지는 않지. 새로운 생명의 나무를 찾아 가꿔서 기르면 되니까.”
“생명의 나무의 종자가 어딘가에서 자생하는 모양이군요?”
“어디에나 있지. 왜냐하면 모든 나무는 다 생명의 나무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예?”
연장자 어머니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거대한 생명의 나무를 가리켰다.
“저게 무슨 나무로 보이니?”
“그, 글쎄요. 생명의 나무라는 것 말고는 잘…….”
“느티나무란다.”
나는 경악을 했다.
느티나무가 자라서 저렇게 빌딩처럼 거대해졌단 말이야?
믿을 수가 없었다.
느티나무는 지구에도 많이 있다고!
연장자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 모든 느티나무가 저렇게 크게 자라 생명의 나무가 되지는 않지. 모든 종의 나무를 통틀어도 생명의 나무로 자랄 수 있는 자질을 가진 나무는 매우 드물지.”
“그럼 그 자질을 가진 나무를 어떻게든 찾아내야 하는군요.”
“찾는 건 어렵지 않아. 드물긴 해도 우리라면 찾을 수 있어. 이 갈색 산맥에도 우리가 발견한 자질을 가진 나무가 몇 그루 있고.”
“그럼 그것을 새로 기르면 되지 않습니까?”
“이미 돌보고 있지. 젊은 남자아이들은 동쪽과 북쪽을 순찰하지만, 우리 남편들은 동쪽과 남쪽에서 그 나무들을 매일 보호하고 가꾸고 있어.”
연장자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자질을 가졌다 해서 다 생명의 나무가 되는 건 아니란다. 우리가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가꿔도 끝내 생명의 나무가 되기 전에 죽고 마는 게 대부분이지.”
이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30년 전에도 생명의 나무가 될 자질이 있는 소나무가 시들어 죽었다고 한다.
60여 년 전에도, 심지어 200년도 전인 그녀의 어린 시절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바로 이거구나!’
이게 진짜 시험이다!
이걸 놓쳤으면 시험이 클리어되어도 아주 소량의 카르마밖에 못 얻을 뻔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 미소에 연장자 어머니는 의아해했다.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고서는 도리어 웃는 내가 이상하리라.
“이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박진성 회장이 아주 좋아 환장하는 생명의 불꽃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