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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62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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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62화

 


3회차 시험이 끝났던 그 장소에 나는 도착했다.
불귀의 숲이 끝나고 거대한 산맥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경계.
악몽 같은 숲에서 탈출하여 처절하게 교차하는 기쁨과 슬픔에 통곡했던 그 장소였다.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면서 나는 피가 들끓었다. 눈에 분노를 담아 동쪽으로 숲을 노려보았다.
저곳에 그놈들이 있다.
‘반드시 복수하고 말겠다.’
나는 맹세하고는 반대편으로 돌아, 갈색 산맥으로 향했다.
엘프가 어디서 사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갈색 산맥 중심부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갈색 산맥 중심부의 방향은 길잡이 스킬로 인해 감이 잡혔다.
‘엘프들이라…….’
한국 아레나 연구소에서 챙겨온 자료에서 엘프에 대한 글을 읽은 적 있었다.
아무래도 인간 외의 다른 지성체 종족이라니 신기해서 호기심이 들었던 것이다.
엘프는 인간과 거의 동일하게 생겼지만 귀가 더 크고 피부가 하얗다고 한다. 백인처럼 하얀 게 아니라 정말 아무 색깔도 없는 것 같은 순백색 말이다.
숲, 산, 강, 바다 등 자연을 무척 사랑하며, 때문에 자연을 훼손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싫어한다.
인간이 손을 뻗지 않는 오지에서 주로 살아가며, 자신들의 영역에 인간이나 괴물이 들어오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활을 잘 쏘고 정령술을 자유자재로 다루는데, 바로 내가 습득한 정령술이 엘프들의 전승으로 이어지는 고유의 비술이었다.
간혹 그들처럼 자연을 사랑하고 가꾸는 인간이 엘프의 친구가 되어서 정령술을 배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 숫자는 아레나 전체 인구를 통틀어도 몇 되지 않는다.
‘정령술을 가진 시험자가 나밖에 없다 해도 이해할 만하군.’
이번 시험은 바로 그 엘프를 돕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우선은 엘프에게 접근하여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인간 등 타 종족에 배타적인 그들과 가까워질 수나 있을지 걱정이었다.
다행인 점은 내가 정령술사라는 점.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들이니, 대자연의 힘을 간직한 정령들도 좋아할 것이다.
‘실프와 카사를 앞세우면 일단 적으로 간주되지는 않을 거야.’
나는 갈색산맥에 들어섰다.
경사는 가파르고 가끔 맨손으로 암벽도 타야 했다. 체력보정 덕분에 악력이 강해져서 오르는 데 문제는 없었다. 떨어진데도 실프를 소환해서 받아달라면 되니까.
아라크네 장갑이 큰 도움이 됐다. 맨손으로 날카로운 바위 틈새를 잡는데도 하나도 아프지가 않았다.
“실프.”
-냥?
암벽을 다 올라서 나는 실프를 소환했다.
“주변에 위험한 맹수나 괴물이 있나 살펴봐.”
-냥!
실프는 쌩하니 날아갔다.
실프를 내버려 두고 나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돌아온 실프가 고개를 저었다.
“배설물이나 발자국 같은 흔적도 없었어?”
실프는 똑같이 고개를 저었다.
인적이 조금도 없는 이런 험한 산지에 맹수와 괴물이 없다는 뜻은…….
‘다행이다. 엘프가 가까이에 살고 있는 모양이네.’
그럼 일단은 무심코 자연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지.
땔감에 쓰겠다고 나무를 썩둑썩둑 잘랐다간 노발대발하며 화살을 날리는 엘프를 볼지도 모르니까.
나는 걸음을 옮기면서 땅에 떨어져 있는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가 많은 카고팬츠라 상당히 많은 나뭇가지를 모을 수 있었다.
10분 정도가 지날 때마다 종종 실프와 카사를 소환했다. 주변 정찰 때문이 아니었다.
혼자 걸으려니까 심심하거든.
-야옹!
-왈왈!
내 양쪽 어깨에서 자리 잡은 두 녀석은 머리 위를 놓고 치열하게 자리싸움을 했다.
먼저 사뿐히 머리 위에 올라간 실프가 앞발로 마구 펀치를 날렸지만, 카사는 머리를 들이밀며 밀어붙여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실프는 꼬리로 카사의 다리를 잡아당겨 떨어뜨린 후 자리 의기양양하게 올라갔다.
카사는 득달같이 점프해 실프의 몸 위를 덮쳤다.
아웅다웅 다투는 두 녀석이 나를 즐겁게 했다.
걷다가 토끼 똥을 발견했다.
실프를 시켜서 사냥하라고 시키니 5분도 되지 않아서 토끼를 잡아왔다.
‘여기서 쉬었다 갈까?’
주워 모은 나뭇가지들로 불을 피웠다. 토끼를 손질하고 구우려 했는데, 큼직한 땔감이 없어서 그런지 화력이 약했다.
“카사, 구워줘.”
-멍멍!
카사는 똥을 싸듯이 힘주는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불꽃을 일으켜 토끼를 한순간에 구워 버렸다.
화르륵!
실프를 시켜서 먹기 좋게 토막 내고 뜯어먹으니 아주 잘 익었다. 불의 정령다운 솜씨였다.
소환시간을 아끼기 위해 두 정령을 돌려보내고 식사를 했다.
‘이럴 때를 위해 챙겨온 게 있지.’
“아이템백 소환.”
아이템백이 나타나 내 어깨에 걸렸다.
안에서 조그만 비닐봉지를 꺼냈다. 그 안에는 맛소금과 후추를 섞은 조미료 한 줌이 담겨 있었다.
조미료를 살짝 뿌려가며 먹으니 고기가 더 맛있었다.
카사가 기막히게 잘 구운 덕에 육즙도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야말로 아레나에서 먹어본 최상의 식사였다.
물론 민정의 요리만큼은 아니었다.
‘벌써 보고 싶네.’
밖에서 데이트를 즐기다가 민정의 오피스텔로 돌아오면, 잠자리를 갖기 전에 꼭 밥을 해주곤 했다.
그냥저냥 평범했던 민정의 요리 솜씨는 구사할 수 있는 레시피가 늘면서 일취월장했다.
특히 동태를 세 장 뜨기로 손질해서 계란, 당근, 버섯 등의 야채와 함께 어선을 만들어 보였을 땐 깜짝 놀랐었다.
한숨이 나온다.
‘앞으로 30일간 못 보겠구나.’
민정을 만난 게 실수였을까. 혼자 있을 때는 몰랐던 외로움을 이제는 곧잘 느끼게 된다.
이제 팀원도 없어서 고독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말이다.
하늘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좀 더 이동할까, 오늘은 그냥 여기서 일찍 쉴까 고민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움직이지 마라, 인간.”
등 뒤 멀리서 웬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무장!”
손에 모신나강이 나타났다.
“움직이지 말랬다.”
다시 들려오는 남자의 경고.
‘실프를 소환해서 공격할까?’
일방적으로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는 모신나강을 땅에 내려놓고 두 손을 들어보였다.
“전 싸울 의사가 없습니다.”
“그건 내가 정한다.”
아, 그러셔?
살짝 울컥했지만 참기로 했다. 상대가 누군지 알기 때문이었다.
엘프가 틀림없었다.
나를 인간이라고 부른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도 가만히 있어라.”
바로 등 뒤 가까이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발소리가 안 났는데 언제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지?
마치 그림자처럼 다가온 엘프는 무언가를 살펴보는 듯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뒤를 돌아볼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
“나무를 훼손하진 않았군.”
엘프 남자는 안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떨어진 나뭇가지를 모았죠.”
“기본 예의는 아는 인간이군. 태도로 보니 이곳에 우리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온 것이냐?”
“예.”
“용건이 뭐냐? 우리는 인간의 방문을 원치 않는다.”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엘프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너희는 악인이든 선인이든 늘 친구로 행세하며 접근하지. 일전에 침입했던 파렴치한 놈들도 그랬어.”
“어떤 파렴치한 놈들이었죠?”
“우리 일족의 아이를 납치하려 했다.”
‘인신매매?’
그것도 자료에 있었다.
아레나의 인간들은 간혹 엘프를 납치해서 노예로 쓰기도 한다고 했다.
외모가 아름답기에 관상용이나 성노예로 쓰기도 한다고 했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법으로 금지했지만, 내로라하는 귀족가문은 부의 증거로 값비싼 엘프 노예를 두고 자랑스러워한다지?
그 때문에 인간에 대한 엘프의 감정은 기피에서 경멸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한다.
하필은 엘프를 전문적으로 노리는 놈들이 얼마 전에 나타났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실패했나 보군요.”
“잘게 다져 나무 비료로 만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한 말이라 더 으스스했다. 위협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했다는 걸 가르쳐 주는 말투였다.
“하지만 그 가여운 아이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지.”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나는 계속 우호적인 말로 대꾸했다.
“다섯 놈을 쫓아가 사살한 장본인이 나다. 그러니 인간, 넌 나를 속일 생각도 대적할 생각도 하지 마라.”
“하지 않습니다.”
“용건을 말해봐.”
“엘프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편견에 휩싸여 마냥 그 말을 거짓말로 매도할 수만도 없지. 그 점을 감안하여 답하겠다. 그냥 돌아가라. 우리는 친구를 원치 않는다.”
“…….”
“분명히 우리의 입장을 말했다. 그러니 지금 내 눈앞에서 일어나 돌아가라.”
어쩌지?
다행히 적으로 간주되지는 않았는데, 태도가 너무 배타적이다.
나는 일단 시키는 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떠나기 전에, 나는 혹시나 싶어 실프를 소환했다.
“실프.”
-냐앙?
사뿐히 머리 위에 앉은 실프.
“아니?!”
엘프 남자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 그건 정령이냐?”
“예.”
“정령술을 익혔나?”
“보다시피 말이죠.”
“어떻게 이럴 수가!”
“그렇게 신기한 일인가요?”
“그보다는 기적이다!”
“……?”
기적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 일 아닌가? 아레나 사람 중에는 아주 드물게 정령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어지는 엘프 남자의 말.
“고양이라니,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실프라니! 이건 말도 안 돼! 존재 자체로 기적이야!”
“…네?”
“자, 실프를 잠깐 이리 다오! 어서!”
“시, 실프. 들었지?”
-냥.
실프는 사뿐히 내 머리 위를 박차고 엘프 남자에게 갔다.
나 역시 뒤를 돌아보았다. 비로소 엘프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190㎝가 넘는 장신.
호리호리한 체격.
아무런 색소도 없는 눈부시게 하얀 피부.
길쭉한 귀.
어깨에 걸고 있는 활과 화살통.
듣던 대로 빼어난 외모를 가진 엘프 남성은…….
-냐앙~.
“이렇게 귀여운 수가! 이런 기적이 있을 수가!”
실프를 끌어안고 뺨을 부비고 난리법석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아까의 위험한 기백은 다 어디로 간 거냐?’
자료에는 없던 정보를 하나 알게 되었다. 엘프들은 정령을 좋아한다. 그걸 넘어서서, 그냥 정령바보들이다.
실프도 본능적으로 엘프를 좋아하는 것일까? 엘프 남자에게 같이 뺨을 부비며 애정표현을 했다.
나는 저 남자의 반응이 궁금해서 카사까지 소환했다.
“카사.”
-멍!
뿅 하고 나타난 불타는 작은 강아지.
“허억!”
엘프 남자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인간, 넌 정체가 뭐냐!”
“예?”
“실프에 이어 어떻게 카사까지 그렇게 귀여운 녀석으로 데리고 있는 것이냐! 대자연의 축복을 받았냐!”
“그, 그런가요?”
엘프 남자는 카사도 끌어안고 난리를 피웠다.
차지혜가 엘프가 되고 남자가 된다면 저 작자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저기… 전 이제 가야 하나요?”
“가긴 어딜 가?”
엘프 남자는 돌변한 태도로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넌 친구다! 자격이 있어! 어머님들께 말씀드려서 널 소개해야겠다!”
인간에게 배타적인 엘프의 태도에 대해 걱정했던 것이 무색해졌다. 일이 쉽게 풀린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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