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00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00화
차지혜는 일단 가까운 나무로 다가갔다.
출현하는 적을 확인해 보고 나무 위로 올라 피하든 할 생각이었다.
“시이익……!”
요사스러운 소리를 내며 나타난 괴물은 예상대로 리자드맨이었다.
성인 남성보다 약간 작은 키.
배 부분만 제외하고 거의 온몸을 덮은 비늘.
날름거리는 혀와 날카로운 손발톱.
그동안 삽화로만 보았던 리자드맨의 실물이었다.
한 마리뿐이었다.
차지혜는 싸우기로 결심했다.
싸울 만한 상대였다.
30분 동안 생존하면 되지만, 싸워 이기면 더 좋다.
‘손발톱과 이빨만 주의하면 돼.’
가드를 올린 채 차지혜는 천천히 리자드맨에게 접근했다.
“시익!”
성급한 리자드맨이 먼저 달려들었다.
순간, 사이드스텝으로 빠지며 레프트 잽을 날렸다.
슈팍!
“쉭!”
잽은 리자드맨의 튀어나온 주둥이를 건드렸다.
계속해서 레프트 잽과 라이트 훅을 잇달아 주둥이에 꽂아 넣었다.
퍼퍽!
“쉬이익!”
리자드맨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뒤로 물러섰다.
쉭쉭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울려 퍼졌다.
리자드맨의 약점은 주둥이와 비늘이 덮이지 않은 복부였다. 그래서 주둥이를 집중적으로 노린 것이었다.
‘의도대로 됐다.’
리자드맨의 눈이 앞으로 살짝 내민 왼 주먹을 향했다. 그녀의 주먹에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요리하기가 더 쉬워진다.
잽을 하려는 듯 왼 주먹을 살짝 흔들었다. 리자드맨의 몸이 움찔 흔들렸다.
시간차로 곧바로 뻗은 라이트가 스트레이트로 주둥이에 꽂혀 들었다.
뻐억!
“쉬익!”
제대로 맞았다.
리자드맨이 살짝 비틀했다.
주둥이는 치명적인 약점은 아니지만, 리자드맨의 신경을 거스르게 만드는 분위였던 것이다.
그 틈에 차지혜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과감하게 양팔로 클러치를 걸고, 니킥을 날렸다.
뻑!
무릎이 강타한 부위는 복부!
리자드맨의 얼굴에 드디어 고통의 기색이 나타났다.
“쉬익! 시이익!”
독이 잔뜩 올라 손톱을 마구 휘젓는 리자드맨.
하지만 이미 클러치를 풀고 물러난 차지혜에게는 닿지 않았다.
“쉬이익!”
리자드맨이 잔뜩 화난 기색으로 쫓아왔다.
차지혜는 다시 왼 주먹을 들었다.
주먹으로 시선을 잡아당기고, 사슴처럼 탄탄한 오른다리를 힘껏 뻗었다.
뻐어억!
명치에 꽂히는 프런트 킥!
“식!”
달려오던 리자드맨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퍼억!
다시 한 번 프런트 킥으로 가슴팍을 밀어냈다.
리자드맨의 몸이 뒤로 휘청거리자, 차지혜는 재빨리 몸을 낮추고 축이 되는 리자드맨의 뒷발을 걷어찼다.
리자드맨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차지혜는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가장 가까이에 보이는 주먹만 한 돌을 집어 들었다.
뾰족한 끝으로 리자드맨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뻑!
“쉬익!”
“흐아압!”
고함을 지르며 양손으로 다시 돌을 내리쳤다.
뻐걱!
살이 짓이겨지는 감각이 들었다.
리자드맨은 얼굴도 비늘로 덮여 있었지만, 오른쪽 눈은 아니었다.
“씨이이익-!”
괴이한 비명 소리.
쩌억! 쩍! 뻐억!
차지혜는 이를 악물고 계속 돌을 내리찍었다.
찍었던 부위를 계속해서 강타했다.
녹색 피가 튀었다.
더 이상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리자드맨은 꿈쩍도 않지 못하고 죽어 있었다.
“허억, 헉!”
숨을 몰아쉬며 차지혜는 일어섰다.
“석판 소환.”
석판을 소환해 남은 제한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대략 17분가량 남아 있었다.
차지혜는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피신한 채 남은 시간을 보냈다.
죽은 리자드맨의 피 냄새가 다른 괴물이나 맹수를 끌어들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17분이 모두 지나자 눈앞에 웬 문이 나타났다.
‘시험의 문!’
그녀는 거침없이 문을 열고 눈부시게 쏟아지는 빛줄기 사이로 성큼 들어섰다.
잠시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더니, 이윽고 풍경이 변했다.
하늘도 땅도 모두 하얬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백색이었다.
차지혜는 주위를 살폈다.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그녀라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웬 아기천사가 바로 머리 위에서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안녕하신가요?”
장난스럽게 첫 인사를 건네는 아기 천사.
차지혜는 아기 천사의 위아래를 살폈다.
어쩐지 아니꼬운 얼굴.
장난 가득한 말투.
그리고 덜렁거리는 작은…….
“시험자 김현호의 담당 천사?”
“이야, 제 얘기 많이 들었나 봐요?”
“주로 욕을.”
“히히히.”
아기 천사는 키득거렸다.
참새처럼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정신없이 날아다닌다.
정말로 김현호가 이를 갈며 싫어할 만하다고 차지혜는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을 읽은 아기 천사가 손을 휘휘 저었다.
“에이, 아니에요. 안 그런 척하면서 은근히 절 좋아한다니까요?”
‘정말 싫어할 만하군.’
차지혜는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야, 아무튼 놀랬어요. 첫 시험을 그렇게 능숙하게 처리한 사람은 처음이거든요. 여러 회차를 거친 시험자 같은 노련함이었어요.”
“결과를 확인하려면 석판을 소환해야 하나?”
“호오, 그것도 잘 알고 계시네요.”
“석판 소환.”
-성명(Name): 차지혜
-클래스(Class): 3
-카르마(Karma): +400
-시험(Mission): 다음 시험까지 휴식을 취하라.
-제한 시간(Time limit): 10일
3클래스, 400카르마.
괜찮은 성적이었다.
“카르마 보상. 체력보정을 습득하고 싶다.”
거침없이 카르마 보상을 받는 차지혜.
석판의 글씨가 변했다.
-체력보정(보조스킬) 초급 3레벨이 적용되었습니다. 초급 4레벨부터 습득 가능합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체력보정(보조스킬): 체력을 강화합니다.
*초급 4레벨: 특수훈련을 받은 정예군인 수준의 체력을 얻습니다. (-250)
-잔여 카르마: +400
“습득한다.”
파앗!
석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차지혜의 몸에 스며들었다.
-250카르마로 체력보정(보조스킬)을 초급 4레벨로 올립니다.
-잔여 카르마: +150
차지혜는 스스로의 몸을 살피며 양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확실히 힘이 강해진 느낌이 들어.’
뭔가 더 단단하고 강해진 기분.
시험자들이 느꼈던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이었던 모양이다.
‘남은 카르마는 일단 놔둬야겠군.’
쉽게 결정을 내린 차지혜는 아기 천사에게 말했다.
“부탁이 있다.”
“뭔가요?”
“생각을 읽을 수 있을 텐데 일부러 묻는 걸 보니, 정말로 김현호 씨가 싫어할 만하군.”
“히히히, 시험자 김현호와 한 팀이 되고 싶다는 부탁인가요? 안 돼요.”
그랬다.
차지혜는 시험자가 된 김에 김현호의 동료가 되고 싶었다.
그 편이 팀원을 전부 잃고 혼자가 된 김현호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 안 되나?”
“이제 겨우 첫 시험을 넘기신 분이 시험자 김현호와 함께 행동할 수는 없죠.”
아기 천사는 기분 나쁘게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애당초 같은 6회차가 된다 해도 김현호와 비슷한 수준이나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걸요.”
“그게 무슨 뜻이지?”
“그분 말이죠, 매번 시험마다 신기록 행진을 하고 있다고요. 또 최근은 휴식 도중에 요상한 방법으로 추가적인 카르마를 얻은 것 같고요.”
차지혜는 새삼 김현호의 저력에 감탄했다.
6회차까지 이어지는 동안 내내 신기록이라니!
그럼 6회차밖에 안 된다 해도 실질적인 강함은 그 두 배 이상 시험을 치른 시험자보다 강할지도 몰랐다.
차지혜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그럼 다른 요구사항이 있다.”
“그건 돼요.”
이번에는 생각을 읽고서는 들어보지도 않고 대답하는 아기 천사였다.
딱!
아기 천사가 손가락을 튕기자 시험의 문이 나타났다.
“첫 시험이 끝나자마자 휴식 없이 바로 두 번째 시험을 원하는 시험자는 처음이네요.”
차지혜는 거침없이 문을 열고 나아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이었다.
***
“오빠, 나 요즘 살 찐 거 같지 않아요?”
화장대 앞에서 민정은 자기 몸을 거울에 비춰보며 물었다.
예쁜 디자인의 노란색 란제리가 아찔하게 내 눈을 자극했다.
“하나도 안 쪘어.”
난 평범한 모범답안을 말했다.
민정의 몸은 운동으로 탄탄하게 단련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허리는 날씬하고 옆구리와 아랫배에 조금의 군살이 살짝 귀엽게 붙은, 딱 좋은 몸매였다.
……라고 말해봐야 쟤 귀에는 ‘군살’밖에 안 들릴 테니 성의 없게 대답한 거다.
“아이, 좀 제대로 봐줘요. 요즘 살 찐 것 같단 말이에요. 요리를 배우니까 더 먹어서 그런가 봐요.”
그 조금의 군살마저 없애고 싶다니, 넌 옷걸이라도 되고 싶은 거냐?
“지금이 딱 좋아. 지금 상태 그대로 저장해 놨으면 좋겠네.”
“찌긴 쪘단 뜻이죠? 맞죠?”
울컥!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건가? 그동안 너무 무탈해서 심심했나?
나는 머리를 굴린 끝에 한 가지 답에 도달했다.
“이리 와봐, 자세히 살펴보게.”
난 민정을 잡아당겨 가까이 세워놓고 하얀 나신을 눈으로 훑었다. 내 눈길이 닿는 곳마다 민정이 부끄러움에 움츠러들었다.
“흐음, 만져봐야 알겠는데.”
“아이, 또 시작이야!”
민정이 앙탈을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강한 힘으로 민정을 번쩍 들어 침대에 눕혀놓았다.
심장 부근에 강하게 입을 맞추자 민정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무려 운동신경 상급 1레벨! 나는 달인의 솜씨(?)를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했다.
살쪘냐는 등의 헛소리로 어그로를 끌던 민정은 이내 흥분하여 정신을 못 차리게 되었다.
그런데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위잉.
내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나는 민정에게 키스를 하면서,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한 팔로 끌어안으며, 다른 손으로 문자메시지를 확인한다.
[중국을 조심. 매사에 신중하고 경계할 것. 연락금지.]
모르는 번호였다.
하지만 난 대번에 이 문자를 보낸 장본인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차지혜?’
내 신원이 노출됐다면 근원지는 한국아레나연구소다.
그리고 한국아레나연구소에서 내게 이런 경고를 해줄 사람은 차지혜밖에 없다.
‘연구소의 누군가가 내 신원을 중국에 팔았다는 뜻이야!’
오딘의 경고도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중국의 시험자들에게 내 정체를 들키게 될 줄은 몰랐다.
‘망할 자식들!’
한국아레나연구소를 떠올리며 나는 이를 갈았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당해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차지혜는 괜찮을까 모르겠네.’
모르는 번호인 걸 보니 비밀리 내가 경고해 준 것 같은데. 이 사실을 들키면 징계를 받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녀라면 알아서 잘 처신하리라 싶었다. 워낙 똑똑한 여자였으니까.
“오빠?”
한창 흥분감에 몰입해 있던 민정이 불만스럽게 날 부른다.
나는 재빨리 문자메시지를 삭제하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미안. 기다렸어?”
“치, 몰라요.”
“뭘 몰라. 자, 어디가 얼마나 살쪘나 보자.”
“아이, 징그러워요!”
“먼저 물어본 건 너잖아?”
“아, 아니에요. 생각해 보니까 전 살찐 데가 하나도 없어요.”
“아냐. 잘 보면 살이 쪘을지도 몰라.”
“어, 없어요, 살찐 데! 전 완벽해요!”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 그리고 넌 이미 나의 어그로를 끌었어.”
“꺄악!”
달콤한 시간이 흐른다.
하지만 나는 중국의 타락한 시험자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잡념을 떨치기 위해 더욱 민정에게 매달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