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99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99화
통화를 끊은 직후였다.
똑똑.
갑작스러운 노크에 김중태 소장은 재빨리 탁자에 놓인 김현호 관련 서류를 치웠다.
“누구야?”
“차지혜입니다.”
“어, 들어와.”
그 짧은 대화 도중 김중태 소장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통화 직후에 기다렸다는 듯한 노크.
통화가 끝날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린 거다.
그럼 통화 내용은 들은 건가? 차지혜가 중국어를 할 줄 알던가?
‘아냐. 중국어는 못하는 걸로 알고 있어.’
문이 열리고 차지혜가 들어왔다.
하얀 정장에 붉은색 워커 차림의 시원시원한 몸매.
언제나처럼 큰 보폭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 차지혜는 들고 온 보고서를 제출했다.
“새로운 시험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SNS에 글을 올렸는데 일단은 아이디와 비번을 해킹해서 삭제했습니다.”
“그래? 몇 회차 같아?”
“의지할 사람 없이 혼자 두려워하는 뉘앙스였습니다. 1회차로 의심됩니다.”
“새로운 시험자는 꾸준히 탄생하는군. 하루 빨리 데려와.”
“알겠습니다.”
잠시 시선이 마주쳤다.
짧은 순간에 눈빛이 교환된다.
아주 잠깐. 찰나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수고 많았어.”
차지혜는 뒤돌아 사무실을 나갔다.
‘휴, 몰랐나 보군. 앞으로 조심해야겠어.’
좀처럼 외부의 터치가 없는 극비 연구소에서 왕처럼 지내다 보니 긴장감이 없어졌다고 김중태 소장은 자책했다.
***
긴장감이 떨어졌다는 김중태 소장의 자평은 정확했다.
그와 달리 차지혜는 수상한 점을 다양한 측면에서 감지했으니까.
그녀는 중국어를 잘 모른다. 다만 몇 가지 단어는 알아들었다.
진성그룹(眞誠).
돈.
얼마(多少).
그리고 유리창을 통해서 김중태 소장이 보고 있던 모니터 화면이 반사되었다.
박진성 회장의 사진…….
그녀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김현호의 신원을 중국에 팔려고 한다.’
애당초 김중태 소장이 소문이 좋지 않은 인물임은 국정원 시절부터 익히 들었다.
탁상에서 펜대 굴리는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뒤가 더러웠다.
그런 그가 여러 정권에 걸쳐 자리를 보전한 이유는 G2로 급부상한 중국에 정통한 인물이라는 이유였다.
이번에 그는 김현호의 신원을 중국의 시험자들에게 팔려는 게 분명했다.
‘막아야 해.’
김현호는 동료를 모두 잃고 혼자가 된 뒤에도 살아남았다. 아직 생존했으니 6회차도 클리어했다는 뜻.
유능한 김현호다운 저력이었다.
하지만 중국 시험자들의 타깃이 위험해진다. 이제 겨우 6회차인 김현호는 중국 시험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한다.
‘일단은 소장의 뒤를 밟아봐야겠어.’
박진성 회장의 완쾌에 대한 정보라면 중국은 몸이 달았을 터.
오늘밤이나 내일 당장 정보를 입수하고 싶어 할 터.
방식이 고전적인 김중태 소장은 현장에서 직접 만나 김현호의 신원이 담긴 서류를 건넬 것이다.
가능하면 거래를 막고, 최소한 거래 현장을 증거로 남겨 김중태 소장을 실각시키는 재료로 써야 한다.
김현호는 더 이상 한국아레나연구소 소속이 아니었지만, 한때 담당자로서 그녀는 그에 대해 책임감을 느꼈다.
‘내 할 도리를 다 한다.’
일단은 문자로 김현호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중국을 조심. 매사에 신중하고 경계할 것. 연락금지.]
만일을 대비해 가지고 다니는 대포폰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고 차지혜는 판단했다.
박진성 회장과 있었으니 이 바닥에 대해 어느 정도 상식은 갖췄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 각국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지 못할 김현호가 아니었다.
그날 오후, 헬기를 타고 섬에서 나온 차지혜는 헬기장 근처에 주차해 놨던 차를 따로 숨겨놓고 잠복했다.
헬기장 출구로 김중태 소장의 BMW7이 나타났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미행을 시작했다.
김중태 소장은 인천 선린동의 차이나타운으로 향하고 있었다.
‘예상대로야.’
거래 대상인 중국인은 이미 한국에 있었다.
김중태 소장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에 이미 한국에 있었다는 뜻이다. 아니면 얘기를 듣자마자 곧장 한국으로 날아왔거나.
아무튼 김현호를 찾느라 몸이 달았다는 뜻이었다.
황금 알 낳는 거위를 손에 넣고 싶은 탐욕에 미쳐 있다.
‘지금 칠까?’
김중태 소장을 당장 덮치고 김현호 관련 서류를 빼앗는 선택지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무모했다.
상대는 소장이고 청와대와도 직통라인으로 연결된 거물이었다.
뒷감당도 안 될뿐더러, 그런다고 김현호에 대한 정보가 중국에 흘러 들어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일단 뒷거래 증거 자료를 확보해서 김중태 소장의 실각에 쓰는 편이 낫다.
당장은 김현호의 안전을 본인 스스로가 지킬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경고까지 해줬으니 박진성 회장이든 덴마크 시험단의 오딘이든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방어할 수 있을 터였다.
차에서 내려서 김중태 소장을 계속 미행했다.
김중태 소장은 중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어느 한적한 식당에 들어갔다.
차지혜는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식당 창가를 응시했다.
다행히 김중태 소장이 앉은 자리가 보였다.
‘상대는 누구지?’
무음 카메라 어플로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면서 차지혜는 창문 내부를 주시했다.
이윽고 한 남자가 나타났다.
큰 키에 장발을 한 젊은 남자였다. 나이는 30대 초반쯤 되었을까.
차지혜는 놀라 숨을 들이켰다.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리창위!’
중국 시험단 최대 거물.
공식 랭킹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세계 시험자를 통틀어도 톱클래스일 거라고 추측되는 인물.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데는 앞장서서 중국 공산당 실세들의 주구가 된 덕이 컸다.
같은 시험자들이 정치인들 입맛에 맞게 통제하는 데 협조하면서 시험단의 실세가 된 것이다.
이를테면 현장 총지휘관.
권력자들과 강력한 연이 생기면서 여러 가지 음험한 방법으로 대량의 카르마를 얻어 강해졌다.
‘설마 리창위가 직접 나서지는 않겠지?’
만약에 그가 직접 나선다면 김현호는 절체절명이다.
당장 덴마크로 도피해서 오딘의 곁에 있지 않는 이상은 리창위를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다행히 리창위는 그렇게 쉽게 나서는 인물이 아니었다. 더러운 일 대부분은 아랫사람을 시켜서 처리한다.
***
“오랜만에 뵙소.”
김중태 소장은 히죽 웃으며 인사했다.
리창위는 맞은편 자리에 앉아 손짓했다.
“정보.”
“입금되는 걸 먼저 확인해야지.”
“입금할 만한 정보인지부터 봐야 하지 않소.”
“정보만 확인해 놓고 입금은 쌩 까거나 후려쳐 버리는 댁들의 막무가내 방식을 내가 모르지를 않거든.”
“죽고 싶나 보군?”
“쯧쯧.”
김중태 소장은 혀를 찼다.
“이래서야 거래가 되겠나. 당연한 요구를 하는데 죽이네 마네 하면 되겠소? 보는 앞에서 스위스 계좌로 이체나 해주시오.”
“잘못된 정보면 목숨 내놓을 준비나 해라.”
“그건 아까도 들었던 말이고.”
리창위는 코웃음을 쳤다.
“노련한 척하는 꼬락서니가 우습군. 꼬리나 달고 나타난 꼰대 주제에.”
“뭐, 뭣?”
김중태 소장의 얼굴이 처음으로 당혹으로 물들었다.
“꼬리?”
“댁들 소속이지? 젊은 여자.”
젊은 여자라는 말에 김중태 소장의 뇌리로 차지혜가 스쳤다.
‘젠장! 그때 들킨 건가.’
낭패 어린 기색이 역력한 김중태 소장.
그런데 그때 리창위는 그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자, 사진 찍고 있는데 포즈 좀 잘 잡아보라고.”
그러면서 리창위는 품속에서 지폐다발을 테이블에 꺼내놓는다.
“뭐, 뭐하는 짓이요?”
“뭐긴, 좋은 사진 찍게 해주고 있지. 난 사진이 잘 받으니 상관없지만 댁은 아니지?”
“크윽…….”
졸지에 리창위에게 돈을 받는 노골적인 사진이 찍혀 버린 김중태 소장이었다.
이런 식으로 당할 줄은 몰랐기에 그는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잠시 후, 마음을 추스른 김중태 소장이 말했다.
“900만.”
“500만.”
“이보시오!”
“450만. 점점 내려간다. 뒷거래 모습이 찍힌 형씨.”
“제길, 알겠소.”
리창위는 빙글거리며 웃었다.
“그러게 누가 감 떨어지래? 쯧쯧, 미행이라니. 하여간 한국 첩보원들 수준은.”
“됐고 얼른 처리나 해주시오.”
“그럴 생각이야.”
리창위가 말했다.
“순간이동.”
그 순간, 리창위의 모습이 사라졌다.
***
“큭!”
리창위가 사라진 순간, 차지혜는 반사적으로 오른편으로 몸을 굴렸다.
파앗!
간발의 차이로 나타난 리창위의 손길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오! 피했어?”
차지혜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였지만, 뉘앙스로 말뜻은 대충 전달되었다.
벌떡 일어선 차지혜는 은밀히 손가락을 놀려서 사진을 이메일로 전송시키려 했다.
하지만 리창위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리창위의 신형이 흐릿해진 순간, 차지혜는 정면으로 과감하게 뛰어들며 플라잉 니킥을 날렸다.
퍼억!
리창위의 팔뚝에 막혔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공격에 또 한 번 제동을 거는 데는 성공했다.
“하하! 또? 이 여자 대단한데? 시험자였으면 대단한 거물이 됐겠어. 그런데 이를 어쩌나?”
리창위는 손에 든 무언가를 보여준다.
“이게 내 손에 있네?”
“큭!”
자신의 스마트폰을 뺏겼음을 비로소 알아챈 차지혜는 신음했다.
빠드득!
리창위는 그대로 스마트폰을 힘껏 쥐어 부숴 버렸다.
“상으로 깔끔하게 보내주지. 소환, 카이저실버 롱 소드.”
짙은 은색으로 빛나는 롱 소드가 그의 오른손에 나타났다.
차지혜는 끝까지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의 심장이 찔리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어떤 말을 끊임없이 되뇔 뿐이었다.
소원을 빌 듯.
유언을 남기듯.
콰직-
짙은 은색의 롱 소드가 그녀의 심장을 관통했다.
“……!”
차지혜는 리창위를 똑바로 응시하며, 죽음을 맞이했다. 입술이 달싹거리다가 멎었다.
“소환해제.”
롱 소드가 사라졌다.
리창위는 한동안 자기가 만든 참상을 감상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 계속 중얼거린 건지 통 못 알아듣겠군. 통역스킬 같은 게 있었으면 좋았을걸.”
리창위는 다시 순간이동으로 현장에서 사라졌다.
피를 흘리는 차지혜의 시체만이 어두운 골목에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었다.
***
정신을 차렸을 때, 후끈한 열기가 먼저 느껴졌다.
습기와 열기가 뒤얽혀 그녀의 온몸을 엄습했다.
눈을 뜨니 울창한 밀림이 보였다.
커다란 나뭇잎들에 가려진 푸른 하늘.
쨍쨍 내리쬐는 태양.
이윽고 노트 크기의 직사각형의 석판이 나타났다.
-시험자 차지혜. 시험을 원하는 당신의 바람은 잘 들었습니다.
-시험자로 선택되기에 알맞은 적성을 지녔다고 판단하여 당신을 시험자로 임명합니다.
-시험을 원하면 긍정, 원치 않으면 부정을 하십시오.
차지혜는 쥐어짜는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한다.”
그러자 꿈틀거리며 석판의 글씨가 변했다.
-성명(Name): 차지혜
-클래스(Class): 1
-카르마(Karma): 0
-시험(Mission): 제한 시간까지 생존하라.
-제한 시간(Time limit): 30분.
생존.
30분.
차지혜는 벌떡 일어났다.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늪이 많은 밀림.
열기와 습기.
‘리자드맨. 진흙 골렘. 1회차 난이도상 리자드맨.’
새로운 시험자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