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89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89화
8개월째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수상한 동향이 포착되었다.
“각종 괴물의 흔적이 포착되었소.”
소나무 마을의 전사가 와서 소식을 알려주었다.
데릭이 마을로 돌아왔다.
휴식 시간이었던 베테랑 전사들도 참석하여서 어머니들과 회의가 열렸다.
생명의 나무 위에서 바이올린 연습을 하던 나도 거기에 불려왔다.
새로운 마을을 유치시킨다는 아이디어도 나에게서 나왔고, 이미 엘프들 사이에서 나는 매우 비중 있는 조언자가 되었다.
“네 말대로 아라크네들의 흔적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대형 괴물들이 그렇게 무리 지어 다닐 리는 없으니, 분명 조종받는 언데드들이라고 봐야 하지.”
데릭이 말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제 싸울 때가 됐다는 얘기겠네요. 단풍나무 마을에도 소식을 전했죠?”
“물론입니다.”
연장자 어머니의 물음에 소나무 마을에서 온 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를 쭉 하다가 데릭이 문득 나를 바라보았다.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데릭은 내 판단력을 많이 신뢰하는 눈치였다.
나는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했다.
모든 것은 힌트가 된다.
시험자가 되고서 깨달은 진리를 나는 늘 기억하고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주의를 기울여왔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킴?”
데릭이 채근하자 내가 비로소 말했다.
“놈들이 잔꾀를 부리고 있습니다.”
“잔꾀?”
“떠오른 게 있니?”
모두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내가 말했다.
“일부러 흔적을 보였다는 것에서 수상합니다. 왜 막 바로 습격을 해오지 않고 흔적만 보여준 걸까요?”
“그러고 보니…….”
“정말 이상해요.”
“공격하겠다고 미리 예고한 거나 다름없는데.”
데릭이 물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좀비 무리처럼 우리의 주의를 끌고 다른 수작을 부려올 거라는 뜻이구나.”
“예, 아마 갈색산맥에 엘프가 많아져 전력이 보강되었음을 알아차렸겠죠. 정면 공격보다 무언가 다른 책략이 더 필요했을 겁니다.”
“그게 무엇이냐?”
“조심스럽게 한 가지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말해보렴.”
연장자 어머니가 재촉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말했다.
“전 대륙에 많은 엘프들이 생명의 나무를 잃고 인간의 습격을 받은 점을 기억해 보십시오.”
“기억할수록 화가 나는구나. 생명의 나무를 해한 것이 흑마법사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면……!”
“어쩜 그렇게 못된 짓을!”
어머니들이 분노를 성토했다.
내 말이 이어졌다.
“인간의 군대는 엘프들을 노예로 잡아갔습니다. 살아 있는 엘프들을요. 그럼 싸우다가 죽는 엘프는 어떻게 된 걸까요?”
“……!”
“주, 죽은 동족들……!”
“설마!”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만약 정말로 그 엘프들의 비극에 흑마법사가 관여했다면, 같은 인간의 시체도 마구잡이로 좀비로 만드는 그놈들이, 죽은 엘프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언데드로 만들었겠지…….”
“나쁜 녀석들!”
“어떻게 그런 짓을……!”
모두가 분노했다. 나직이 흐느끼는 어머니들도 있을 정도였다.
나도 화가 나는데 같은 동족을 아끼는 엘프들은 어떻겠는가?
“대형 몬스터들의 흔적을 일부러 보여준 건 우리의 이목을 그쪽으로 돌릴 계획이군. 실제로는 보다 민첩하고 은밀히 움직일 수 있는 우리의 동족 언데드를 침투시키고…….”
데릭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지금 즉시 모든 마을에 전해서 경고하고 우리들끼리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팔에 띠를 두른다던지 해서요.”
“그게 좋겠구나. 모두 오른팔에 천으로 만든 띠를 매도록 하자. 여자들도 어린 아이들도 모두.”
연장자 어머니의 결정이 떨어졌다.
데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단풍나무 마을에 이 사실을 알려 경고하겠소.”
“저희 소나무 마을은 제가 돌아가서 알리겠습니다.”
소나무 마을의 전사도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갈색산맥의 세 엘프 마을에 엘프 언데드 경고령이 떨어졌다.
모두들 오른팔에 띠를 맸고, 나 또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내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그날 데릭이 야간 순찰 중에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엘프 무리를 발견, 오른팔에 띠가 없을 확인하고 즉시 척살했다고 한다.
데릭은 카사를 소환해 밤하늘에 불꽃을 쏘아 올려 모두에게 경계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를 시작으로 마을에서 쉬던 전사들까지 일제히 출격.
갈색산맥을 샅샅이 뒤지며 엘프 언데드를 찾아 사살했다.
무려 97명이나 되는 엘프 언데드가 그날 모조리 사살되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마을 주민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인원파악을 해서 숨어든 언데드가 없나 점검까지 마쳤다.
야밤에 벌어진 대규모 전투.
우리의 피해는 전무(全無).
미리 알고 준비하고 대응한 덕분에 거둔 완벽한 승리였다.
나 역시 작전에 참가했지만 싸움 한번 해보지 못했다.
다른 엘프 전사들이 워낙 열심히 움직이며 사냥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는 없었다.
“으흐흐흑!”
“마크! 우리 마을의 마크야!”
“세라! 어쩌다 이렇게……!”
“나쁜 놈들!”
언데드가 된 엘프들 중 상당수가 소나무 마을과 단풍나무 마을 주민들의 가족이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는 슬픈 모습들이 이어졌다.
아는 얼굴인 엘프들은 소나무 마을과 단풍나무 마을이 알아서 수습해 화장을 했고, 나머지는 세 마을의 중간 지점에 전부 화장에 재를 뿌렸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위기를 해쳐나가요.”
연장자 어머니가 세 마을 엘프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위로의 말을 했다.
그렇게 장례식이 끝나자 엘프들은 나에게 다가왔다.
“킴!”
“정말 훌륭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정말 넌 우리들의 선물이군.”
“대자연은 공평해. 못된 인간들을 세상에 낸 대신 너를 우리에게 선물했으니까.”
“넌 역시 천재야!”
나는 수많은 찬사에 휩싸였다.
능력을 인정받아서 기쁘면서도 나는 한편으로는 억울함이 들었다.
‘이렇게 다들 대단하고 똑똑하다는데, 왜 공무원 시험은 자꾸 떨어졌느냔 말이다!’
‘아직 배를 안 굶어봐서 정신을 못 차린 거죠.’
아기 천사의 진리의 한마디가 귓가에 어른거렸다.
***
“어째서 실패한 거냐!”
퍼억!
지팡이로 나무를 후려치며 사내가 분노를 터뜨렸다.
어두운 갈색 계열의 더러운 로브를 쓰고 피부는 창백한 데다, 살아 있지 않은 것처럼 깡마른 중년 사내였다.
역정을 내는 깡마른 중년 사내를 앞에 두고, 로브 차림의 다른 두 젊은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게…….”
“아직 원인을 파악하지…….”
“쓸모없는 놈들!”
중년 사내의 지팡이가 젊은 남자들에게 날아들었다.
퍼억! 퍽!
“크윽!”
“윽!”
남자들은 머리에 한 대씩 얻어맞고 피를 흘렸다.
“이곳에 쏟은 시간만 벌써 3년이 다 되어 간다! 3년! 다른 곳은 1, 2년 안에 끝났던 일을 여기서만 3년이란 말이다!”
중년 사내가 히스테리를 부리듯 말을 쏟아냈다.
“시들라고 저주를 건 생명의 나무는 왜 이전보다 더 멀쩡해졌으며, 이놈의 갈색산맥에 엘프들의 숫자는 왜 그 짧은 시간에 두 배 가까이 늘었어!”
“소, 송구합니다.”
“죄송합니다!”
남자들은 쩔쩔매며 사죄부터 한다.
그 비굴한 모습이 중년 사내를 더욱 화나게 한 모양이었다.
“좀 생각을 하란 말이다! 왜 멍청한 엘프들이 갑자기 우리의 계획이란 계획은 모조리 꿰뚫고 대응하느냔 말이다!”
그들이 알던 엘프는 원래 이렇게 기민하고 판단력이 빠른 종족이 아니었다.
긴 수명만큼이나 느긋하고 경각심이 부족하다.
그래서 셋이서도 문제없이 가장 강성한 엘프들이 산다는 갈색산맥을 맡은 것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계획한 수순대로 척척 진행됐다.
생명의 나무에 저주를 걸었고, 엘프 사냥꾼들을 고용해 침투시켜서 엘프들의 이목을 돌렸다.
그러면서 흔한 인간의 시체로 만든 좀비 떼를 지속적으로 공격을 시켜서 엘프들의 힘을 뺐다.
좀비들만으로 공격했다가 어느 순간 대형 괴물 시체로 만든 언데드로 강력한 일격을 먹이면 된다.
생명의 나무를 잃고 힘이 빠진 엘프들은 그 일격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생명의 나무는 저주를 이기고 건강해졌다. 도리어 또 한 그루의 생명의 나무가 탄생하기까지 했다.
절벽을 공략하던 좀비들은 모두 잃고 말았다.
중년 사내는 좀비 떼를 이용한 공격의 실패를 작전의 일환이었다고 얼버무려 상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조바심이 들어서 아끼고 아꼈던 엘프 언데드를 전부 투입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이냐? 왜 실패한 거냐!’
하루 만에 엘프 언데드가 전멸했다.
흑마력이 감지되는 엘프 언데드가 한 구도 보이지 않았다.
단 하룻밤 사이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 대응한 엘프들이었다.
‘나이 든 엘프 계집들이 이렇게 똑똑할 리가 없어!’
어머니들이라 불리는 나이 든 여성 엘프들은 길게 보는 안목에는 능하지만, 상황이 수시로 변하는 긴박한 상황에 취약하다.
덕분에 그들은 여태껏 모계사회로 이루어진 엘프들을 많이 공략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가 자신들보다 훨씬 날카롭고 기민했다.
엘프일 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울펜부르크 백작 오딘이 엘프들과 동맹을 맺었지.’
마을을 잃은 엘프들이 대거 이주하는 것을 울펜부르크 백작가가 도와주었다.
반대로 소수의 강한 엘프들이 울펜부르크 백작가를 도와 바스티앙 자작가를 공격하기로 했다.
갈색산맥의 엘프들은 기존의 엘프들과 달리 인간과 손잡고 대응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이구나.’
엘프들에게 지혜를 주고 있는 인간이 있다.
아주 똑똑하고, 모든 엘프를 움직이게 할 정도로 신뢰받는 인간이 있다.
“스, 스승님.”
“이제 상부에는 뭐라고 보고해야 할까요?”
쓸모없는 두 놈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이딴 놈들을 제자로 둔 자신이 한심해지는 중년 사내였다.
“실패를 인정하고 새판을 짜야 한다고 순순히 실토해야지!”
“히익?!”
“그, 그럼 우리는……!”
두 제자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질려들었다.
“하지만 그냥 실패는 안 돼.”
스승의 말이 이어졌다.
“뭔가 성과가 하나라도 있어야 그나마 용서를 받을 만한 면이 살지 않으냐!”
“어떤 성과를 말씀하시는지……?”
“인간이다, 이 멍청한 놈들아!”
스승은 다시 지팡이를 휘둘러 제자들을 구타하며 소리쳤다.
“엘프들에게 지혜를 주고 있는 그 인간 놈이라고 제거해야지!”
“그런 자가 있습니까?”
“아…… 그래서 엘프들 저렇게 똑똑하게…….”
한심한 제자들은 그 정도도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스승이 소리쳤다.
“앞으로의 우리의 계획에 아주 큰 장애가 될 위험한 인물이라고! 그런데 다행히 우리가 제거했다고! 그렇게 되어야 내 체면이 산다! 가진 전부를 투입해서라도 그놈만큼은 없애버려야 해!”
“엘프 언데드도 잠입에 실패했을 정도인데 어떻게 암살을 해야 할까요?”
“분명 엘프들의 보호를 받고 있을 텐데…….”
“멍청한 놈들아! 당연히 암살은 불가능하지!”
“그, 그럼?”
스승이 말했다.
“괴물들을 전부 투입해! 전면전이다. 전쟁의 혼란을 틈타야 그놈을 제거할 찬스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