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88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88화
생명의 불꽃이 중급 2레벨로 오른 것은 적잖이 기쁜 소식이었다.
그 뒤로 단풍나무 마을 프로젝트는 가속화되었다.
매일 생명의 불꽃 2개씩을 먹으며 단풍나무는 대나무 죽순처럼 쭉쭉 자랐다.
중급 2레벨짜리 효과가 매일 들어가니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것은 당연했다.
‘12개월이라…….’
시험은 12개월간 갈색산맥의 엘프를 지키는 것. 이제 겨우 4개월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사이 많은 효과를 거두었다.
일단은 절벽 아래로 탐사하여 흑마법사의 동향을 파악하고 남은 좀비들을 격멸시켰다.
그리고 외지의 오갈 데 없는 엘프들을 불러들여 소나무 마을을 탄생시켰다.
100여 명 규모의 이 작은 마을은 이제 막 생명의 나무로서 자라기 시작한 소나무를 목숨처럼 아끼며 가꾸어 나갔다.
뿐만 아니라 느티나무 마을의 베테랑 전사들과 협력하여서 언데드 군단의 침공을 대비한 강력한 방어망을 형성하였다.
그들은 간신히 얻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절대로 잃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잘 자라고 있는 생명의 나무와 함께, 힘을 잃었던 소나무 마을의 전사들도 서서히 회복 중이라고 했다.
‘단풍나무만 어서 생명의 나무로 깨어나고 마을을 하나 더 유치한다면!’
나는 그야말로 제자리에서 시험을 클리어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였다.
‘단풍나무 마을이 형성될 때까지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흑마법사도 좀비 떼를 절벽에서 거의 소진하였으니, 새롭게 언데드 군세를 꾸리는 데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게 내 추측이었다.
시험 기간 12개월.
아마 본격적인 전쟁은 후반부터이리라 생각된다. 12개월 내내 주구장창 싸우라는 시험을 내지는 않았을 테니까.
‘오딘도 지난번 시험은 1년간의 전쟁 준비였다고 하잖아.’
내가 얼마나 잘 준비를 하느냐를 평가하는 시험일 터였다.
물론 추측일 뿐이고 실제로 어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1개월이 더 지나서 5개월째에 접어들었을 무렵,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단풍나무가 생명의 나무로서 성장 방향이 자리 잡았다.”
“벌써요?”
내가 놀라워하자 데릭이 보기 드물게 기쁜 감정을 표정에 드러냈다.
“그래, 네 불꽃을 듬뿍듬뿍 먹고 잘도 성장하고 있지.”
“음, 엘프 마을의 중심으로 삼기에는 어떤가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는 않나요?”
“부족하긴 하지만 이미 생명의 나무를 잃은 엘프들에게는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지. 생명의 나무 자질을 가진 나무는 찾기 어렵지 않아도, 자질을 각성해서 제대로 자라기 시작한 나무는 찾기가 매우 어렵다.”
흐음, 게다가 이곳 갈색산맥은 이미 엘프 마을이 두 개나 있어서 동족끼리 서로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지역.
새로운 마을, 즉 단풍나무 마을을 유치한다면 분명 엘프들이 이리로 이주할 것이다.
“그럼 이제 새로운 마을을 유치해 볼까요?”
“그러지.”
우리는 이 소식을 느티나무 마을의 어머니들께 전했다.
“그렇다면 소나무 마을처럼 갈 곳을 잃은 이들을 찾아보자꾸나.”
연장자 어머니가 기뻐하며 말했다.
노예 생활을 했던 엘프 8명을 불러 모아서 출신 마을의 엘프들이 어디에서 숨어사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제가 숨어 살던 은신처에 우리 마을의 엘프가 34명 있었어요. 그것도 7년 전의 일이라 이젠 숫자가 얼마나 줄었을지…….”
어머니들의 새 멤버가 된 노예 출신의 어머니가 한 마을이었다.
“우리 마을은 이미 숨어 살던 곳을 인간들에게 습격당했소.”
성인 엘프 2인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난 정찰 중에 습격을 받았었소. 우리의 은신처가 아직 들키지 않았거나, 새로운 은신처로 무사히 피난을 갔다면 41명이 그 숲에 있을 거요.”
나머지 어린 엘프 5명은 이미 숨어 살던 엘프들까지 전부 인간에게 잡혀 버린 경우였다.
‘제길.’
이들의 말을 들을수록 인간의 야만과 악함에 대한 분노가 강해진다.
‘탐욕스러운 새끼들. 그냥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어디가 덧나는 거냐.’
지구에서도 남의 민족을 노예로 삼고 식민지로 만들어버린 야만의 역사가 있었다. 인간은 별수 없는 이기적인 동물인가 싶었다.
“두 군데에서 모두 동족들을 찾아 데려오도록 하자.”
연장자 어머니가 결정을 내렸다.
어머니들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어느 한 쪽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쪽은 데릭이 맡았고, 다른 한 쪽은 그 못잖은 베테랑 전사인 콥이 맡았다.
그렇게 새로운 마을을 유치하기 위한 두 팀이 출발했다.
‘잘되기를!’
그들이 무사 귀환할 동안,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생명의 불꽃을 만들고 스킬 수련을 했다.
단풍나무가 생명의 나무로 각성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불꽃을 하나만 주고, 다른 하나는 소나무 마을에 전달했다.
소나무 마을은 굉장히 고마워했다.
보름이 지났을 때, 오딘으로부터 서신이 왔다.
울펜부르크 백작가에서 왔다는 사람은 내게 서신을 전해준 뒤에 곧바로 떠났다.
[재미있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더구려. 엘프 유민들이 안전하게 이주할 수 있도록 나 역시 최선을 다해 협조하고 있소. 그대의 계획대로 된다면 언데드의 침공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질 것 같소.
나는 현재 바스티앙 자작가와 전쟁 중에 있소. 실버 씨족이라는 라이칸스로프 놈들도 인간으로 변장하여 그들을 돕는 눈치요.
하지만 그들은 내 상대가 되지 않소. 나를 두려워하여 전면전을 피하고 있지만, 아마 3개월 내로 결판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소.
전쟁이 끝나는 대로 그쪽을 돕도록 하겠소. 우리는 우호관계이니 말이오.
-오딘]
역시 딸 벨라를 치료해 준 덕분인가. 오딘은 성심껏 나에게 협조를 해주고 있었다.
아무튼 오딘이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니 한시름 덜었다.
‘그나저나 실버 씨족 놈들, 나날이 간이 부어가는구나.’
나는 레온 실버를 떠올렸다.
준호, 혜수, 강천성을 잃었던 그날은 레온 실버가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라이칸스로프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깨어 있는 지혜와 카리스마를 가진 존재.
하지만 지금 보니 그는 그때의 인상처럼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지혜롭지 않다.
인간의 문물과 방식을 받아들이면서 씨족을 강화시키는 것은 인상 깊었으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세상을 모르는 오만함이지.’
기본적으로 자기 스스로를 절대강자로 알고 있는 것이 레온 실버의 가장 큰 패착이다.
아마 조만간 그는 크게 쓴맛을 보게 되리라.
‘기회가 된다면 그 전에 내 손으로 끝장을 내고 싶다.’
이제는 나도 몰라보게 성장했다. 실버 씨족과 단독으로 붙어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동료들의 복수를 내 손으로 직접 해야 한이 풀릴 것 같다.
‘이번 시험에서 언데드의 침공을 물리치고 나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그놈들을 찾아가봐야지.’
물론 난 무모하지 않으니 혈혈단신으로 찾아가지 않는다.
제이크쯤 되는 전사 한둘만 데리고 가면 충분할 것 같다.
***
시험 시작 7개월째.
데릭과 콥의 팀이 돌아왔다.
데릭 팀은 31명의 엘프 유민을 데려왔고, 콥의 팀은 26명만이 살아남은 엘프 유민을 이끌고 왔다.
숫자가 적었으므로 두 무리를 단풍나무에서 함께 살도록 권했고, 그들은 당연히도 승낙했다.
“정말로 생명의 나무로군요!”
“작지만 잘 자라고 있어!”
“강한 생명의 힘이 느껴집니다. 흐흑, 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엘프들은 생명의 나무로 각성하여 무럭무럭 자라는 단풍나무를 보며 감격하였다.
엘프들에게 생명의 나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소중히 여기는 것을 빼앗으려 하다니.’
흑마법사란 놈들이 다시 한 번 괘씸해진다.
인간이란 대체 얼마나 많은 아픔을 양산해야 직성이 풀린단 말인가.
‘전부 격퇴해 주마.’
아무튼 그렇게 57명의 엘프로 이루어진 단풍나무 마을이 북서쪽에 탄생했다.
느티나무 마을.
소나무 마을.
그리고 단풍나무 마을.
본래 갈색산맥의 주인이었던 느티나무 마을을 종주가 되고, 소나무 마을과 단풍나무 마을이 협력하는 체계가 완성된 것이다.
어찌 보면 소나무 마을과 단풍나무 마을을 언데드 침공의 방어벽으로 삼은 셈이었다.
하지만 두 마을도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언데드의 습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사전에 듣고도 내린 선택이었고, 무엇보다 생명의 나무를 얻었다는 것에 매우 만족해했다.
심지어 단풍나무 마을에서는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가 살펴보니 갈색산맥에 생명의 나무의 자질을 가진 나무가 아직 두 그루나 더 있었어요.”
“그것들도 생명의 나무로 키워낸 후에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족을 찾아 데려오는 게 어떨까요?”
단풍나무 마을의 어머니들 몇이 대표로 찾아와 우리에게 제시한 의견이었다.
느티나무 마을의 최고 어른인 연장자 어머니가 물었다.
“그런 안 된 처지에 놓인 동족들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요?”
“네, 풍문으로만 들었기 때문에 한번 찾아봐야 하지만요.”
느티나무 마을의 어머니들이 그 의제를 놓고 장시간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회의랄까…….
무서운 수다였다.
수다 끝에 연장자 어머니가 결정을 내렸다.
“우리와 우호를 맺은 울펜부르크 백작의 도움을 받겠습니다.”
그녀의 의견은 이러했다.
울펜부르크 백작가에 엘프들을 파견해서 오딘의 전쟁을 돕기도 하면서 숨은 동족들을 수소문하는 임무를 맡기는 것이었다.
“동족들을 찾아 데려오는 대로 규모가 작으면 단풍나무 마을에 편입시키죠. 그리고 킴.”
“네, 어머님.”
“불꽃을 두 개 만들 수 있었지? 하나는 계속 단풍나무 마을에 주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생명의 나무를 키워내는 데 쓰자꾸나.”
“알겠습니다.”
일단은 오딘에게 우리의 뜻에 협조해 줄 것인지 의향을 물어보아야 했다.
베테랑 전사 콥이 울펜부르크 백작가로 갔다. 그는 실프를 타고 빠르게 날아가 오딘의 의사를 듣고 돌아왔다.
“허락하겠다는구려.”
콥의 말에 연장자 어머니는 즉시 계획을 실행시켰다.
오딘이 바스티앙 자작가와 치르는 전쟁에 참전하기도 하는 위험한 임무라, 콥을 비롯하여 베테랑 전사 5인이 편성되었다.
데릭은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언데드와의 싸움에 대비해 갈색산맥에 남았다.
그렇게 울펜부르크 백작가로 간 콥의 팀은 떠난 지 불과 열흘 만에 성과를 가져왔다.
“파렴치한 바스티앙 놈들이 우리 동족을 9명이나 노예로 삼고 있더군.”
놀랍게도 콥의 팀은 바스티앙 자작가의 저택을 습격한 모양이었다.
거기서 바스티앙 자작가의 식솔 5명을 암살하고 노예로 있던 엘프 9명을 구출하는 엄청난 전과를 세웠다.
덕분에 바스티앙 자작가가 혼란에 휩싸여 오딘도 크게 기뻐했다고 했다.
‘정말 대단하구나, 베테랑 전사들은!’
그렇게 구출해 낸 엘프 9명은 소나무 마을과 단풍나무 마을에 나눠서 보냈다.
모두 단풍나무 마을에 보내려 했는데, 그중 2명이 놀랍게도 소나무 마을 엘프들과 같은 출신이었던 것이다.
소나무 마을은 잃었던 마을의 가족 2명과 재회하여 감격의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갈색산맥의 엘프들은 위기를 기회로 부흥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