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87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87화
6회차 시험이 시작된 지 2개월째.
그동안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엘리스가 티셔츠를 지어주었다. 어린 나이인데도 참 대단한 솜씨였다. 원래 엘프는 다 이런가?
아무튼 내가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자 엘리스는 엉엉 울며 어디론가 달려갔고, 잠시 후 잔뜩 화난 언니 엘라와 함께 돌아왔다.
화난 엘라에게 한참을 털린 뒤에야 내 오해를 깨달았다.
삐친 엘리스를 달래주기 위해서 나는 바이올린을 꺼내 바흐의 미뉴에트를 연주해 주었다.
언제 울었냐는 듯이 뚝 그치고는 내 연주에 넋을 놓는 엘리스였다.
그런데 연주가 끝나고 나니 마을의 모든 엘프가 나를 포위한 상태.
결국은 스즈키 바이올린 교본을 3권까지밖에 배우지 못한 실력으로 한바탕 연주회를 치러야 했다.
물론 보통은 이 정도까지도 몇 년은 걸려야 정상이라더라.
아무튼 그때부터 엘프 마을에 악기 열풍이 불어 닥쳤다.
“정말 아름다운 선율이군!”
“우리도 저런 악기를 하나 만들자!”
악기라고는 풀피리밖에 몰랐던 엘프들은 바이올린과 비슷한 악기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 젊은 여성 엘프가 쟁(箏)과 비슷한 현악기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엘븐하프라 명명된 그 악기는 순식간에 보급되어 엘프 마을에 음악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특히 남자들이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해서 연주는 엘프 여성의 필수 덕목이 되었다나?
‘정말 무서운 엘프들이다.’
뭐 하나 가르쳐 줘도 파급효과가 장난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다짐하지만 절대 도박은 가르쳐 주지 말아야지.
그렇듯 언데드의 침공도 없어서 한가로운 하루하루가 이어졌는데, 그동안 나는 정령술로 새롭게 위력을 더한 사격술을 창안했다.
바로 탄환의 회전력을 극대화해 관통력을 높이는 것!
보통 총기류는 나선형으로 홈이 파여져 있어, 발사되는 탄환이 그것을 따라 회전하며 날게 된다.
실프가 그 발사 순간에 회전력을 더하여 탄환이 엄청난 스크루를 그리게 만든 것이다.
위력을 실험해 봤더니, 놀랍게도 탄환이 바위를 파고들었다.
보통은 바위에 튕겨 나가야 정상인데 말이다.
엄청난 관통력!
‘이 정도면 가까운 거리에서는 보통 총이 안 통한다는 상대에게도 통하지 않을까?’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위력이었다.
10m 이내의 근거리에서 이런 총탄에 맞으면 방탄복도 뚫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바로 이거다.
아레나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방향으로 내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편리한 무기에 의존하지 않고, 메인스킬과 결합하여 시너지를 내는 방향 말이다.
새로운 사격술도 개발해내고 마음이 여유로워진 나는 엘프들의 문제에 다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 침공해 올지 모르는 언데드 군단.
현재 광범위한 수색망을 가동하여서 철통같이 경계하고 있지만, 막상 정면으로 붙게 된다면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엘프들은 뛰어나지만, 역시 숫자가 적다는 게 아쉬워.’
데릭으로 대표되는 200살 이상의 베테랑 전사 엘프들의 숫자가 겨우 34명.
제이크를 비롯한 젊은 남성 엘프는 97명이었다.
어머니들과 젊은 여성의 숫자도 그와 비슷했다. 그녀들도 유사시에는 싸울 수 있는 전력이지만 그래도 전력상의 아쉬움은 여전했다.
‘갈색 산맥을 전부 영역으로 삼고 관리하기에는 부족한 숫자지.’
나는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연장자 어머니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혹시 갈색 산맥에 엘프들의 마을이 하나 더 들어선다면 어떻겠어요?”
“마을이 하나 더?”
“예, 역시 그건 안 되나요?”
“안 될 게 있겠니? 갈색 산맥은 광활한 곳이라 더 많은 엘프가 살아도 넉넉하게 살 수 있단다.”
“다른 지역에 생명의 나무가 쇠락하는 바람에 힘이 약해져 인간들에게 노려지는 엘프들이 있지 않을까요?”
“있을 게다. 요번에 노예생활을 하다가 온 아이들도 그런 경우고. 생명의 나무만 멀쩡하다면 엘프들이 그렇게 인간의 악의에 순순히 당할 일은 없었을 텐데.”
연장자 어머니는 안타까운 얼굴이 되었다.
내가 말했다.
“그럼 그렇게 보금자리를 잃은 엘프들을 이리로 불러들어 마을을 새로 형성하게 하면 어떨까요?”
“엘프의 마을에는 반드시 생명의 나무가 있어야… 아!”
연장자 어머니는 뭔가를 깨달은 표정이 되었다.
나 역시 알고 있다.
엘프들의 마을은 그 중심부에 반드시 생명의 나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대자연의 힘을 공급해 줄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지주도 되는 것이다.
근데 이 갈색 산맥에는 생명의 나무가 또 하나 있지 않은가?
“남서쪽에서 새롭게 자라고 있는 작은 생명의 나무를 중심으로요.”
“그래, 그 작은 생명의 나무도 네 덕에 하루가 다르게 잘 자라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엘프 마을이 하나 더 생기면 그만큼 숫자도 늘어나니 언데드 군단이 침공해도 여유 있게 격퇴할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생각이다. 일단은 노예생활을 하다가 온 아이들에게 물어보마.”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노예 출신의 엘프 10인 중에 어머니들의 모임에 새로 끼게 된 나이 든 여성 엘프도 3명이나 있었던 덕분이다.
“생명의 나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들어 버렸고, 우리는 인간의 침략을 피해 깊숙이 숨어야 했어요.”
“저도 같은 마을 출신이에요. 혹시나 싶어 생명의 나무를 다시 살피러 갔다가 거기에 잠복한 인간들에게…….”
이 두 어머니는 같은 마을 출신인 모양이었다.
“이상하네요. 우리 마을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어요.”
이야기를 모두 들어본 나는 연장자 어머니에게 내 추측을 설명했다.
“아마도 사악한 흑마법사들의 음모가 전 대륙의 엘프들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흑마법사들이?”
“네, 그들은 어떤 흑마법과 관련한 이유로 생명의 나무를 집중적으로 노리는 겁니다.”
내가 계속 설명했다.
“엘프 노예가 비싸게 팔리니 가까운 지역의 영주를 쉽게 꼬드겨서 힘을 빌릴 수 있죠. 흑마법사들이 어떤 술법으로 생명의 나무를 시들게 만들면, 영주의 군대가 습격해 엘프들을 잡아가는 패턴이죠.”
“이런 못된! 여태껏 그런 짓을 계속해 왔고, 이제 우리의 차례가 된 게로구나!”
“네, 물론 추측이니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연장자 어머니는 매우 분개해했다.
“놈들이 생명의 나무를 노리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 이상 놈들은 우리의 철천지원수다.”
“동감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네 덕에 생명의 나무를 무사히 보전할 수 있었구나. 정말 다행이야.”
연장자 어머니는 따스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았다.
“네 의견에 따르겠다. 같은 엘프로서 그렇게 곤경에 처한 동족을 모른 척할 수야 있겠니? 우리가 그들을 갈색 산맥으로 데려와야겠어.”
“생명의 나무의 자질을 가진 나무가 갈색 산맥에 더 있다고 했는데, 그것들도 제 힘으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 능력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겠지! 그럼…….”
“생명의 나무 한 그루당 마을도 하나씩. 갈색 산맥에 엘프 마을이 여러 개 생기면, 그야말로 갈색 산맥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엘프의 낙원이 되지 않을까요?”
“대단하구나! 모두 모여 힘을 합하면 아무도 우릴 어쩌지 못할 거야.”
어머니들은 토론 끝에 내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일단은 노예 출신의 어머니 셋 중 두 사람의 마을 엘프들부터 구하기로 했다.
“그 일은 내가 나서야겠군.”
데릭이 나섰다.
갈색 산맥 밖으로 나가야 하는 임무였다. 엘프들을 데리고 인간의 땅을 가로질러 이곳까지 와야 하는 위험천만한 임무이니만큼, 최강의 전사인 데릭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데릭은 베테랑 전사 2인을 더 뽑고, 경험을 심어주기 위해 젊은 남성 엘프 3인을 더 뽑았다.
나는 데릭에게 당부했다.
“되도록이면 오딘의 영지를 이용하는 편이 좋을 거예요.”
“그의 도움을 받겠다. 우호관계를 맺었으니 편의를 봐주겠지.”
나는 생명의 나무에 불꽃을 줘야 하기 때문에 따라갈 수가 없었다.
노예생활을 했던 어머니 2인도 길잡이로서 합류했고, 그렇게 데릭 일행은 출발했다.
***
“이 나무를 정말 우리에게 맡겨주신다고요?!”
나이 든 여성 엘프들의 얼굴에 감격이 어렸다.
데릭은 2개월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만에 임무를 완수했다.
마을을 잃고 숲 속 깊숙이에 숨어서 살아야 했던 엘프들을 이리로 안전하게 데려온 것이다.
중간에 엘프 사냥꾼 무리를 세 번이나 만났지만, 모두 데릭이 격파했다고 한다.
그렇게 갈색 산맥에 새롭게 온 100명이 약간 안 되는 엘프들에게 작은 생명의 나무를 새로운 보금자리로 지정해 주었다.
“아직 나무가 한참 덜 자라서 마을의 중심으로 삼기에는 부족하긴 할 거예요.”
연장자 어머니가 말했다.
새로운 마을의 어머니들은 손사래를 쳤다.
“그렇지 않아요! 아직 덜 자란 만큼 가능성도 무궁무진하죠. 게다가 아직 작아도 어엿한 생명의 나무인걸요.”
“우리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렇게 엘프 마을이 하나 더 들어섰다.
마을을 구분하기 위해 새롭게 생긴 이 마을을 ‘소나무 마을’이라 이름 지었다. 우리 마을은 ‘느티나무 마을’이고 말이다.
소나무 마을이 생긴 덕에 순찰 부담이 한결 줄어들었다.
소나무 마을의 전사들은 생명의 나무 덕에 힘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고, 그들은 새롭게 얻은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열심이었다.
‘좋아, 이걸로 전력이 크게 상승했다.’
얼떨결에 떠올린 내 계획이 대성공을 이루었다.
‘이런 식으로 마을을 더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생명의 나무를 또 하나 키워내서 마을을 만든다면?
그땐 언데드 무리를 조종하는 흑마법사들의 음모를 문제없이 격퇴할 수 있다.
나는 손도 안 대고 이번 시험을 완벽하게 클리어하는 것이다!
‘이래서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하는 거야!’
직접 피 터지게 싸우지 않아도 시험 클리어에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지 않은가!
“한 그루를 더 키우죠!”
난 어머니들에게 달려가 주장했다.
어머니들은 이미 내 원대한 계획을 알고 있었기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당분간은 네 힘을 새로운 생명의 나무를 만드는 데 집중하자꾸나.”
연장자 어머니가 말했다.
“북서쪽에 생명의 나무의 자질을 가진 단풍나무가 있다. 위치상으로 고려했을 때 그게 적절할 것 같아.”
“그럼 이번에는 단풍나무 마을이 탄생하겠네요.”
“호호호, 그렇겠구나.”
일명 단풍나무 마을 프로젝트.
나는 생명의 불꽃 2개를 만들어서 북서쪽으로 순찰을 가는 엘프들에게 맡겼다.
나는 느티나무 마을의 거대한 생명의 나무 위에서 수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정령술과 운동신경의 스킬 레벨을 올리는 데 집중할 생각이었다.
머리만 잘 쓰면 제자리에 앉아서 이번 시험을 클리어할 수 있거든.
그렇게 단풍나무 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보름쯤 지났을 때였다.
정령술이나 바이올린 연습으로 수련하던 운동신경이 아닌, 엉뚱한 스킬이 올랐다.
-생명의 불꽃(합성스킬): 생명의 불꽃을 불어넣어 생명력을 북돋습니다. 하루 2회만 사용 가능합니다.
*중급 2레벨: 원기회복, 노화방지, 질병 및 저주 치료에 효과.
‘헐?’
생각해 보니 이상할 것 없었다.
매일 2개씩 꼬박꼬박 펼쳤는데 스킬 레벨이 오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혹시 스킬을 사용해서 큰 효과를 볼수록 스킬 레벨이 오르는 게 아닐까?’
RPG게임에서도 몬스터에게 강한 타격을 줄수록 경험치를 많이 먹지 않은가.
나는 스킬 훈련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