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83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83화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내가 말했다.
“우선은 우리의 전력 비중을 이쪽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젊은 애들을 이곳에 투입하자고?”
“예, 제가 보기에 가장 큰 위험은 이곳에서 발생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간단한 얘기였다.
바스티앙 자작가는 오딘과 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없을 테고, 실버 씨족은 별게 아니다.
문제가 발생하는 곳.
무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이는 이곳에 전력을 보강해야 한다.
“흑마법사가 보다 힘을 기울이니까 당연히 우리도 똑같이 이곳에 힘을 기울여야죠.”
“아직 우리들만으로 충분하다.”
“아직은 말이죠?”
“…….”
“당연하게도, 데릭 씨의 실력을 의심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또 뭐냐?”
데릭이 내 말에 관심을 보였다.
내가 말했다.
“이곳을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계속 실패했죠. 오늘은 숫자를 늘려봤는데도 결국 실패했고요.”
“그랬지.”
“그럼 흑마법사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다른 길을 통해 공격해야겠다는 생각을 과연 하지 않을까요?”
“다른 길은 없다. 이 언덕이 아니면 훨씬 더 길로 돌아와야 해.”
“바로 그것이 맹점인 겁니다.”
“뭣?”
“계속 이곳만 쳐서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다른 길로 허를 찌르는 거죠. 저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계속 설명했다.
“이왕 계속 공격에 실패한 김에, 그것을 계략의 미끼로 써먹어서 만회하고 싶은 심리가 생기지 않을까요? 아무리 멀리 돌아야 하는 길이라도요.”
“으음!”
데릭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네 말이 맞다. 난 지금 당장 마을로 돌아가 봐야겠군.”
어머니들에게 내 의견을 전할 생각인 듯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그게 좋겠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마을을 향해 달렸다.
쿨타임 30분이 지났기 때문에 다시 바람의 가호를 펼쳐서 데릭의 전속력 질주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레벨을 올릴수록 지속시간은 늘고 쿨타임은 줄었다.
차라리 순간이동을 올리지 말고 그 카르마로 바람의 가호에 더 투자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잠시 스쳤다.
‘아냐, 순간이동도 쓸모 있는 날이 온다.’
어찌 되었든 위기탈출용으로 올려둔 스킬이니까.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데릭과 나는 곧장 생명의 나무 아래에 모여 있는 어머니들에게 향했다.
한창 수다를 떨던 어머니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모아졌다.
“어머, 여보!”
연장자 어머니가 몹시 반가워하며 달려왔다.
남편을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 나온 그녀나, 가만히 머리를 쓸어주는 것으로 화답하는 데릭이나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저걸 보니 나도 민정이가 보고 싶어졌다.
‘최소 200년은 넘긴 부부일 텐데 저렇게 사이가 좋다니.’
하기야 데릭 정도의 남자라면 그쯤 사랑할 만하다. 나도 가끔 반할 것… 흠흠! 침착하게 마음을 정화시키자.
“무슨 일로 벌써 오셨어요?”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서.”
“어머, 저에게만?”
“모두가 듣는 편이 좋겠군.”
“아이, 모두가 듣는 앞에서…….”
무엇을 상상하는지 연장자 어머니가 얼굴을 붉힌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테지만.
“아무래도 언데드들의 동향이 수상하오.”
연장자 어머니의 표정이 실망으로 바뀌었다.
좋은 볼거리를 기대했던 어머니들 또한 얼굴이 굳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킴에게 들어보는 게 좋겠군.”
이제 모두의 눈길이 내게 모였다.
난 데릭에게 했던 의견을 다시 한 번 개진하였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정리된 설명을 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난 연장자 어머니가 물었다.
“우리가 처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서쪽의 언데드란 뜻이지?”
“네.”
“우리는 인간이 더 두렵다. 인간은 명백하게 우리 종족의 아이들을 납치하려 하고, 감시를 피해 침입하려고 온갖 간교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
“이해합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네게 그런 말을 듣고자 하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는 북쪽에 대한 감시망을 조금도 느슨하게 할 수가 없어. 예전에 엘리스가 납치될 뻔했던 일도 있었고.”
그 말에 나는 다시 머리를 굴렸다.
생각을 정리하고서 답했다.
“그에 대해 두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하렴.”
“첫째로, 명백하게 이 마을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언데드입니다. 다만 그쪽은 데릭 씨와 더불어 많은 용맹한 전사 분들께서 막고 계시기에 두렵지 않았을 뿐이죠.”
“…….”
“하지만 엘리스가 납치될 뻔했던 사건에는 큰 충격을 받으셨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그 사랑스런 아이가 파렴치한 자들에게 납치되어 영영 잃을 뻔했으니까요.”
어머니들 사이에서 탄식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때 일을 생각하니 아직도 아찔한 모양이었다. 이것이 엘프 모계사회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하지만 그러한 심리적인 영향 탓에 일의 경중을 잘못 파악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가 놀란 가운데, 내 말이 이어졌다.
“조무래기 같은 인간 납치범 몇이 침범해 오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른의 동행 없이 멋대로 마을 밖에 놀러 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설령 납치되더라도 즉각 쫓아가 구출해 오는 추격대를 따로 편성해 두면 그만입니다.”
“아……!”
“하지만 언데드들은 다릅니다. 방어선이 뚫리고 생명의 나무가 훼손되어 버리면 입에 담기도 싫은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죠. 대체 어느 쪽이 더 중요합니까?”
그녀들은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모성애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납치당해도 구출하면 그만이라니…….”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
“파렴치한 인간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손대는 것 자체가 무서웠으니까.”
“추격대라니, 그건 좋은 생각 같아.”
“아이들 단속은 여자들에게 맡겨도 충분하잖아?”
어머니들이 웅성거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후, 연장자 어머니가 말했다.
“아주 좋은 의견 같다. 여자들에게 아이들 단속을 맡기고, 추격대를 따로 편성하겠다.”
내가 첨언했다.
“여자들은 각자 맡은 아이가 사라지면 즉시 추격대에게 알리는 체계가 구축되면 좋겠습니다.”
“그래, 그거야! 좋은 생각이구나.”
그리고 그 두 가지 조치로 아이들의 안전이 확보되면, 북쪽을 경계하던 인원을 남서쪽 언데드 방면으로 돌린다.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흘렀다.
결론을 내린 어머니들은 마을의 모두를 불러 모아서 이 결정사항을 알렸다.
“좋은 생각이야.”
“킴의 아이디어래.”
“킴은 천재잖아. 그럴 만도 해.”
“그럼 난 내 동생들을 맡으면 되는 거지?”
다들 좋은 생각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평판이 더 좋아졌다.
특히 젊은 남자들이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그동안 나이 든 어른들만이 맡았던 남서쪽 지역의 방어에 자신들도 참여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다들 마을 모두를 위해 용맹하게 싸울 기회를 얻고 싶어 했다.
그렇게 남서쪽의 방어를 강화하자 언데드들을 막는 게 한층 더 수월해졌다.
데릭은 젊은 엘프들을 싸움보단 순찰에 투입했다. 혹시나 다른 길로 우회해서 침공하는 언데드들을 수색하게 했다.
허를 찔릴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다.
엘프 아이들도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웬만해서는 밖에 나돌아 다니지 않고 마을 내에 있었다.
사실 아이들은 더 이상 마을 밖 탐험에 관심이 없었다. 다들 술래잡기에 미쳐 있거든.
나는 매일 생명의 불꽃 2개씩을 작은 생명의 나무에 투입했다.
그리고 절벽에서 언데드들과 싸우고, 오후에는 술래잡기 훈련, 늦은 밤에는 자기 전까지 바이올린 연습을 했다.
바이올린은 실프에게 소리를 차단시키고 아무도 몰래 혼자 연습했다.
엘프들이 바이올린에 관심을 보이면 귀찮아질 거란 예감이 들어서였다. 너도나도 해보겠다고 난리 치겠지. 안 봐도 뻔해.
그렇게 단조롭지만 충실한 하루하루가 흐른 지도 1개월이 넘어갈 무렵이었다.
“인간들이다―!”
엘프 마을에 한바탕 소란이 발생하였다.
그 얘기가 언데드와 싸우는 절벽까지 전해져서 내가 데릭과 함께 부랴부랴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분위기는 흉흉했다.
순찰에서 급히 돌아온 남성 엘프들은 물론, 여성들까지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아이들은 집 안에 있는지 한 명도 안 보였다.
마을에 나타난 무리는 인간 3명, 그리고 많이 야위어 보이는 엘프 10명이었다.
나이 든 여성이 2명, 남성은 3명, 나머지 5명은 어린 엘프들이었다. 하나같이 고생이 많았는지 얼굴색이 안 좋다.
인간 3인은 무장을 갖추고 있었으나, 무기를 꺼내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내가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오딘?”
내가 알은체를 하자 오딘은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김현호 씨!”
엘프들은 우리를 보며 웅성거렸다.
“아는 사인가?”
“킴과 친한 모양인데.”
“킴과 잘 아는 사이라고?”
“킴과 친하다면야 일단 적은 아니겠네.”
“한번 지켜보자고.”
적개심이 강했던 엘프들의 태도가 많이 수그러졌다.
하하, 그동안 내가 엘프 마을의 인심을 많이 얻은 덕이다.
오딘은 엘프들의 분위기를 쭉 둘러보다가 나에게 말했다.
“그동안 엘프들의 신뢰를 많이 얻으신 모양이오.”
“예, 그렇게 됐습니다. 근데 함께 온 엘프들이…….”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예였지. 자금을 있는 대로 풀어서 확보한 숫자가 저 정도였소.”
그때, 어머니들이 나타났다. 연장자 어머니의 옆에는 데릭이 호위무사처럼 함께 있었다.
연장자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킴, 아는 사이냐?”
“예, 친구입니다. 이 사람은 믿을 만하니 염려 마세요.”
오딘이 걸어 나와 연장자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울펜부르크 백작 오딘입니다.”
“이곳에는 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함께 온 저 엘프분들은…….”
엘프 10인을 본 연장자 어머니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짐작이 되었던 것이다.
“제 친우 김현호가 엘프 여러분의 친구가 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킴의 친구라면 적은 아니겠군요.”
“예, 함께 오신 엘프분들은 노예 생활을 하시다가 요번에 제가 구해드린 분들입니다.”
“이자가 하는 말이 사실인가요?”
연장자 어머니의 물음에 엘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인간이 우리를 샀어요.”
“동족이 있는 갈색산맥에 데려다주겠다고 하더군요.”
“고마운 인간입니다.”
나이 든 여성 셋이 대표로 한마디씩 말했다.
연장자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지 저로서는 상상이 가질 않네요. 이곳은 안전하니 앞으로 우리와 함께 지내도록 해요.”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오딘이 데려온 엘프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동안 엘프와 함께 어울리면서 그들이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는지 느꼈다.
인간의 노예가 되어 살아오며 많은 고생을 했으리라 싶었다.
엘프에게 딱히 중노동을 시키지 않았겠지만, 자연에서 멀어진 것만으로도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인간들은 모를 것이다.
“고마운 일을 해주셨군요. 하지만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이득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장자 어머니의 말에 오딘이 답했다.
“말씀드렸듯 첫째는 엘프를 사랑하는 제 친우 김현호를 위한 선물이고, 둘째는 여러분과 우호를 다지고 싶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