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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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82화
시험의 문을 통과하니 생명의 나무 위였다.
하늘까지 닿는 거대한 탑 같은 생명의 나무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60일 만이었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 마을은 조용했다.
평화롭다.
왜 인간은 이렇게 평화롭게 잘 살아가고 있는 엘프들을 해코지 못해 안달일까.
‘분명히 뭔가 이득이 되기 때문이겠지.’
상대는 언데드.
죽은 자를 완전히 살지도 죽지도 못한 상태로 일으켜 조종하는 사악한 술법을 익힌 흑마법사였다.
오딘은 흑마법을 불노불사를 연구하다가 파생된 금지된 학문이라고 했다.
죽음, 부활, 불노불사, 생명.
그 키워드를 엘프와 연관 지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건 생명의 나무였다.
엘프들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 언데드들이 생명의 나무를 노리고 있다고 데릭이 말한 바 있었다.
좀비들은 생명을 가진 것을 본능적으로 질투하기 때문에 가장 큰 생명력을 가진 생명의 나무를 노린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좀비들을 조종하는 흑마법사는 다른 이유로 생명의 나무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부활이나 불노불사와 관련된 목적이리라 싶었다.
“일찍 일어났군.”
뒤에서 문득 목소리가 들렸다.
미중년 엘프 전사.
바로 데릭이었다.
“데릭 씨!”
“왜 그리 반가워하나?”
“그냥 반가워서요.”
난 60일 만에 보거든.
“싱겁긴. 하여튼 깨어났으니 오늘은 일찍 출발하자.”
“늘 이 시간에 일어나시나요?”
“그래.”
“그럼 저도 이 시간이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해라.”
데릭과 나는 함께 출발했다.
오늘도 작은 생명의 나무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추가로 절벽을 오르는 좀비들과도 싸워야지.
데릭과 나란히 달리면서 나는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5회차 시험을 클리어하고 얻은 카르마로 나는 체력보정을 한계까지 올렸다.
중급 5레벨.
오러 컨트롤을 익히지 않은 내가 올릴 수 있는 한계치였다.
그리고 중급 5레벨의 효과는 바로 엘프의 한계 수준의 체력이었다.
즉, 엘프 최고의 전사인 데릭과 견주어도 절대로 밀리지 않는 수준인 것이다.
물론 체력만 따졌을 때의 일이지만 말이다.
“잘 따라오는군?”
데릭도 나의 상승된 체력에 놀라워했다.
“그동안 체력이 많이 붙었어요.”
“어제와 비교해도 크게 늘었는데?”
“그런가요?”
“하여간 놀랍군.”
“헤헤헤.”
“그럼 오늘부터는 제대로 달려도 되겠어.”
“네?”
“잘 따라와라.”
그러면서 데릭은 쏜살같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헉!”
나는 기겁을 했다.
난 지금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난 엘프 한계치의 체력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데릭이 나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아무튼 일단은 따라잡는 게 급선무였다.
“바람의 가호!”
결국 난 바람의 가호를 쓰고 달려서야 데릭과 나란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사뿐사뿐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생한 풍압이 내 몸을 앞으로 밀었다.
거의 점프를 하듯이 큰 보폭으로 달리니 여유롭게 데릭과 보조를 맞출 수 있었다.
나는 달리면서 데릭을 살폈다.
‘딱히 특별할 건 없는데?’
달리는 자세는 평상시랑 똑같았다. 대체 나와 차이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작은 생명의 나무에 도착하자 나는 데릭에게 물어보았다.
데릭이 설명해 주었다.
“인간들이 오러를 다루는 것과 비슷하다.”
“오러 컨트롤이요?”
“그래, 인간이 오러를 응용하여 더 강한 힘을 내듯이 엘프들은 자연의 힘을 다룰 줄 알지. 정령술도 자연의 힘을 쓰는 방법 중 하나고.”
“그래서 생명의 나무가 엘프에게 소중한 거군요.”
“그렇지. 자연의 힘이 발생하지 않는 곳에서 우리 엘프의 힘은 크게 약화되니까.”
오러 컨트롤을 다룰 수 있다 해도, 오러가 없으면 소용없다.
생명의 나무를 잃은 엘프는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이는 셈이었다.
“이 나무가 성장하면 여러분의 힘이 더 강해지겠군요?”
“물론이다. 생명의 나무가 두 그루나 있는데 무서울 게 없지.”
그렇다면 역시 이번 6회차에서 내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일은 이 작은 생명의 나무를 크게 키우는 것이었다.
4, 5회차에서 지금의 6회차로 이어지는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봐도 정답은 그거였다.
‘엘프와 함께 싸우는 것보다도 이게 훨씬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야.’
아무리 내가 강해졌다지만, 뛰어난 전사들이 수두룩한 엘프들 사이에서 내가 한 손을 거든다고 싸움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아마 그래서는 시험을 클리어한다고 해도 높은 카르마를 받을 수 없다.
‘그래, 이거야. 첫 시험 때도 그랬고, 시험에서는 싸움 실력보다 머리를 쓰는 것에 더 높은 보상을 줬어.’
일단 나는 생명의 불꽃을 2연속으로 만들어 작은 생명의 나무에게 불어넣었다.
많이 먹고 쑥쑥 자라라.
작은 생명의 나무는 마치 고맙다고 말을 하는 것처럼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살짝 흔든다. 바람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나를 데릭이 흐뭇하게 바라본다.
“킴, 너는 대자연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군.”
“헉!”
“응? 왜 그러지?”
“아, 아닙니다. 너무 감동해서요.”
데릭은 피식 웃었다.
휴우, 하마터면 반할 뻔했다. 또 심장을 직격하는 멋진 말을 하다니! 데릭, 이 마성의 엘프!
“다 됐으면 가자.”
“예.”
우리는 절벽으로 향했다.
절벽 위에는 이미 다른 나이든 엘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24시간 교대하며 항시 지키고 있다고 했다.
“여어, 킴!”
“오늘도 잘해보라고.”
“최근에 실력이 많이 늘었던데.”
이젠 모두와 친해진 터라 다들 친근감 있게 한마디씩 격려했다.
좋아, 오늘은 발전한 내 실력을 똑똑히 보여줘야지.
바람의 가호는 초급 5레벨로 올렸고, 바이올린 연습 덕분에 운동신경도 중급 2레벨!
‘제한시간은 12개월. 즉, 12개월 동안 엘프들을 지키면 시험이 클리어되는 거야.’
12개월이나 되는 장기전이라면 총알은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물론 초급 4레벨로 올린 덕에 더욱 넓어진 가공간에 권총에 쓰이는 매그넘탄이 수없이 쌓여 있다.
하지만 무지막지한 숫자의 좀비 떼가 12개월간 매일 몰려들면 그 총알 갖고는 부족해진다.
‘권총은 중요한 싸움이 생기지 않는 한 아껴두자.’
이윽고 싸움이 시작됐다.
“크아아아!”
“크르르르!”
“으아아!”
괴성을 지르며 가파른 낭떠러지를 기어오르는 시체들.
“먼저 가지.”
데릭이 스타트를 끊었다.
좀비 떼를 향해 수직으로 떨어지며 쌍검을 뽑는다.
충돌 순간, 쌍검을 동시에 휘둘러 교차시켰다.
촤촤촤ㅤㅊㅘㄱ―!
“끄하악!”
“크아아!”
팔다리나 목이 잘린 좀비들이 우수수 추락했다.
데릭은 기어오르던 좀비를 잇달아 밟으며 추락 속도를 늦췄다. 발판이 된 좀비들이 마찬가지로 우르르 떨어졌다.
좀비들을 밟아가며 추락 속도를 늦추면서, 데릭은 그 와중에도 검을 계속 휘두르는 신기(神技)를 발휘했다.
60일 만에 보는 데릭의 활약상이라 나는 입을 쩌억 벌리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운동신경이 얼마나 되어야 저걸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아마 상급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음은 제가 갈게요.”
내가 나섰다.
“오오, 킴이?”
“한번 봐주지!”
“잘해봐.”
나이든 엘프들이 격려해 준다.
씨익 웃은 나는 바람의 가호를 펼치고서 좀비 떼를 향해 뛰어내렸다.
두 발을 아래로 향한 채, 양팔로 균형을 잡으며 똑바로 떨어졌다.
좀비 떼와 충돌하는 순간,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두 발로 아래쪽을 박찼다.
추락하는 가속도까지 더한 드롭킥이었다.
쿠아아앙―!
엄청난 풍압이 발생하였다. 바람의 가호의 레벨이 오른 터라 위력 역시 강해졌다.
내 발에서 시작된 작은 폭풍이 좀비 떼를 휩쓸었다.
“크르르르!”
“으아아!”
“끄하악!”
무려 여덟 마리나 되는 좀비 떼가 일격에 휩쓸려 나갔다.
나는 한 손으로 돌부리를 붙잡고 매달린 채 계속 발차기를 날렸다.
그때마다 일어나는 풍압이 좀비들을 두세 마리씩 떨어뜨렸다.
나는 그야말로 먼지떨이가 먼지를 털어내는 것처럼 좀비들을 추락시켰다.
“오오!”
“대단한데!”
“엄청난 킥이었어!”
절벽 위에서 엘프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신이 난 나는 다시 좀비들을 발판처럼 밟아가며 절벽을 횡으로 가로질렀다.
발판이 된 좀비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물론 아직 데릭 같은 경지에는 이르지 못해서 가끔씩 손으로 절벽을 잡아야 했다.
사실 두 발만으로 절벽을 종횡무진하는 것이 비정상 아닌가!
다른 엘프들도 하나둘 가세하니 좀비들은 빗자루에 쓸려나가듯 정리되었다.
한참을 싸운 후에야 좀비 떼의 습격은 멈췄다.
“휴우, 이제야 끝났군.”
“오늘따라 언데드들의 숫자가 더 많아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기분 탓이 아니야. 나도 그렇게 느꼈어.”
엘프들이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휴식을 취했다.
싸움은 이겼지만 모두의 목소리에 우려가 어렸다.
데릭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비들이 쓸려 나간 절벽을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무슨 생각 하세요?”
“언데드들에 대해 생각한다.”
“오늘따라 숫자가 많았죠?”
데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우연인지 모르겠군.”
“우연이 아니겠죠.”
데릭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내가 말했다.
“언데드들을 조종하는 건 흑마법사라고 들었어요.”
“그렇겠지.”
말투로 보아 데릭도 흑마법에 대해 그다지 알고 있는 지식은 없어 보였다.
“좀비들의 숫자가 늘었다면, 흑마법사가 평소보다 더 많이 보낸 거라는 뜻이죠.”
“그렇지.”
“생각해 보세요. 흑마법사는 여태껏 매일 좀비를 보내 공격해 왔어요. 그때마다 우리는 격퇴했고요.”
데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이어졌다.
“우리는 좀비와 싸우고 있지만 진짜 상대는 흑마법사예요. 단순한 좀비가 아니라 생각을 하는 인간이요.”
“그렇지.”
“계속 공격을 반복했는데 쭉 실패를 거듭했는데, 인간이라면 당연히 평소와는 다른 방법을 시도하지 않을까요?”
“…….”
“아마도 지금까지 똑같은 공격을 반복한 이유는 계속 그러다 보면 여러분이 언젠가는 지칠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겠죠.”
“우리가 지치기를 기다렸다?”
“예, 하지만 그런 지루한 싸움을 반복하다 보니 흑마법사가 먼저 인내심이 바닥난 거예요. 이래 봤자 끝이 없을 거라고요.”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군. 인간은 우리보다 수명이 짧은 만큼 인내심도 약하니까.”
“그래서 무언가 변화를 주고자 오늘은 숫자를 늘린 거예요.”
그 말에 얼굴빛이 심각해진 데릭에게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물론 이건 추측일 뿐이지만요.”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데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킴 네 말이 옳다. 그렇게 생각해야 앞뒤 정황이 맞아떨어져.”
“그런가요?”
“그럼 킴, 하나 묻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 것 같으냐?”
“예? 그건 어머니들께서 판단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최종 결정은 그녀들이 한다. 난 그 판단에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을 첨언하고 싶은 거다. 넌 저 흑마법사와 마찬가지로 인간이니 도움이 되리라 본다.”
‘으음.’
어머니들에게도 전해질 의견이니 나는 말하기에 앞서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